소설리스트

〈 50화 〉성녀 백보아 (3) (50/124)



〈 50화 〉성녀 백보아 (3)

50화

사람이 너무 놀라면 말이 안 나온다고 했던가.
그 말은 사실이었다.
지금 최종택이 딱 그런 상태였으니까.

'내가 뭘 들은 거지?'

순간 귀를 의심했다.
여태껏 수많은 꼴림을 겪었지만, 대놓고 저리 묻는 여자는 처음이었던 것이다.
멍하니 벙 쪄있는 그를 보며 여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맞는  같은데…"
"……"

뭐라 입을 열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 그를 구해준  뒤늦게 온 협회장이었다.

"인사는 잘 나누었나?"
"……"

아뇨.
첫 마디가 꼴리셨나요였습니다.

"자매님이 생각보다 빨리 와서 말이네. 바로 안내해달라해서 왔네."
'자매님이라…'

최종택의 시선이 여자를 향했다.
다시 봐도 파격적인 복장이었다.

'음. 요즘 수녀는 존나 파격적이구나.'

저게 수녀라니.
성당에 갔는데 저런 복장의 수녀가 있으면 없던 신앙심도 생기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는데 협회장의 말이 이어졌다.

"아, 수녀라 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네. 정식 수녀는 아니고 신부님과 수녀님 밑에서 자라서 수녀복을 입고 있는 것뿐이니."
"아아…"

하기야 진짜 수녀가 저런 복장일 순 없었다.
자매님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그럴 수가 없는데?'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그냥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대충 납득한 최종택이 인사를 나누었다.

"최종택이라고 합니다."
"김예나입니다. 원거리 딜러를 맡고 있습니다."
"아리아라고 해요. 탱커구요."

뒤에서 지켜보던 예나와 아리아도 합세하자 그녀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전 백보아라고 해요."
"…? 아, 그렇군요."

순간 흠칫한 최종택이 아무렇지 않은 척 대답했다.

'오우야, 백보라는 줄 알았네…'

여러 사람을 만났지만 이름만 듣고도 충격을 주는 여자는 처음이었다.
세상엔 참 별의별 이름이 다 있구나.
왠지 싸해진 분위기에 머리를긁적인 최종택이 화제를 돌렸다.

"음. 그럼 이제 어떻게 할까요? 합을 맞추고 있었는데 보아 씨도 같이 합을 맞춰보실래요?"
"여기서 맞추는 건가요?"
"뭐, 그렇죠."

백보아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던전을 가는 게 어때요."
"아, 던전도 좋죠. 하지만 아무래도 구하기 번거롭기도 하고 처음이니까 일단은 여기서 맞춰보는 게……"
"아니요."

말을 끊은 그녀가 최종택을 보며 싱긋 웃었다.

"그쪽이랑 저. 단 둘이서."

슬쩍 눈웃음친 모습이 영략없는 데이트를 신청하는 여자의 모습.
하나 눈치라곤 좆도 없는 그에겐 어림도 없었다.

'나랑? 굳이?'

어차피 합을 맞춰야 하는 거면 다 같이 가는 게 낫지 않나?
그 생각에 말없이 있자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아리아가 발작하며 끼어들었다.
승급시험 때가 떠오른 것이다.

"왜,왜 굳이 둘이 가려는 거죠!? 탱커 없는 던전은 위험하다구요!"
"…확실히 둘이서 가는  위험하다 생각합니다."
"맞아요! 전 반대에요! 당신 무슨 이상한 속셈이 있는 거죠!"

예나도 아닌 척하며 맞춰주자 기세등등해져서 쿠사리를 넣었다.
그러면서 째려보기까지 했지만, 백보아는 끄떡도 없었다.
그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전 저분이  지킬  있다 해서 왔는걸요. 믿을 만하다고는 했지만, 직접 확인해보고 싶어요."
"그 말이 맞네. 자매님은 일반 헌터보다 더 위험한 능력을 가지고 있지. 우리가 보호했던 것도 그 이유에서였고."
"으윽…"

협회장까지 거들자 아리아의 기세도 수그러들었다.
그녀 입장에선 할아버지가 저렇게까지 말하니 할 말이 없던 것이다.
예나도 차마 반박할 말이 없었는지 입을 다물었다.
이쯤 되니 최종택도 궁금해졌다.

'위험하다고? 대체 무슨 능력을 가졌길래?'

호기심이 생긴 그가 엿보기 구멍을 사용했다.
동시에 눈이 크게 떠졌다.

['신의 은총'의 영향으로 엿보기 구멍이  효력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능력치와 스킬 외의 항목이 은닉됩니다.]

'…뭐?'

난생처음 보는 메시지.
얼 탄 사이 상태창이 떠올랐다.

[백보아]
[성별 : 여]
[나이 : ??]
[등급 :???]
[레벨 : ??]
[능력치]
[근력 : F (0 / 100)], [민첩 : F (0 / 100)]
[체력 : F (0 / 100)], [신성력 : S (60 / 100)]
[상태 : ???]
[특이사항]
[???]
[??]
[SS등급 스킬 ‘신의 은총’ 보유.]
[S등급 스킬 ‘천상의 하모니’ 보유.]
[S등급 스킬 ‘구원의 손길’ 보유.]
[S등급 스킬 '생명의 원천' 보유]

'미친…!'

절로 경악이 튀어 나온다.

'엿보기 구멍으로도 안 보인다고?'

같은 SS등급 스킬이라서일까.
아니면 신의 은총이 특별해서일까.
어찌 됐든 확실한  저 여자가 평범한 헌터는 아니라는 것이다.

'모든 스킬이 S등급 이상이야.'

비이상적인 스킬 구조.
자박꼼을 보유한 그보다 어찌 보면 더욱 화려하다.
한데 능력치가 이상했다.

'왜 신성력 빼고 전부 F등급이지? 저런 스킬들을 가지고 저럴 수가 있나?'

이상한 일이었다.
스킬이  정도라면 레벨도 30이 넘을 텐데 F등급이라니.
심지어 (10)도 오르지 않은 백지상태다.

'저 여자… 뭔가 있다.'

그렇게밖에 볼 수 없었다.
협회장의 말이 귓가에 들려온 건 그때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강요할 수는 없지. 자네 생각은 어떤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최종택이 시선을 돌려 백보아를 쳐다봤다.
싱긋 웃는 얼굴은 무슨 생각인지  수가 없었다. 그런 그녀를 빤히 보던 최종택이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저야 상관없습니다."


3.
던전 앞에 도착한 최종택의 표정은 떨떠름했다.

"……"
"……"

아까부터 분위기가 어색했던 탓이다.
벌써 1시간째   마디  했다.
뻘쭘하다 못해 얼어붙을 것만 같은데 백보아는 혼자 싱긋싱긋웃는다.

'왜 웃는 거지 씨발?'

어색함을 즐기는 타입인가?
외관부터 능력까지 정상이 아닌 년이니 충분히 가능성 있다.
생각해보면 그 혼자 어색했지  여자는 딱히 어색해 보이지도 않고.
평소라면 뭐라 한 마디 했겠지만, 그는 입을  다물었다.

'얘는 함부로 대하면 안 될  같아. 내 좆이말하고 있어. 좆될 수 있다고.'

그의 지능이 상승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조심스러운 분위기에서 던전에 입장한 최종택은 주변부터 파악했다.

'필드형이네. C등급 던전이니까 오크가 나오려나.'

아니나 다를까.

쿠어어억-!
취익-! 취륵!


수풀 너머로 오크 특유의 멱 따는 소리가 들려왔다.
C등급 단골 몬스터다웠다.
제법 가까운 곳에서 들린 소리에 최종택이 검을 뽑았다.

'그럼 가볍게 조져볼까.'

슬며시 미소지은그가 잠시 눈을 감았다.
청초한 외모, 언뜻 비치는 살색과 가터벨트를 떠올린 순간익숙한 알림음이 들려왔다.

띠링-!

[풀발이 발동되었습니다.]

'좋아.'

자세를 낮춘 그가 앞으로 튀어 나갔다.
살짝 놀란 목소리가 들려온  그때였다.

"어라? 버프는  받으시나요?"

 말에 최종택이 멈칫했다.
그녀가 서포터라는 사실이 뒤늦게 떠오른 것이다.
그녀를 돌아본 최종택은 밑에 힘이 들어가는 걸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받고 있는데…'

저 화끈한 복장  자체로 이미 버프였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순 없기에 적당히 돌려서 대답했다.

"애당초 저를 믿으려고 들어온 건데 님 능력 받고 던전 클리어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나요."

어느 정도 사실이긴 했다.
제법 멋진 말에 그녀의 눈이 커졌다.
의외라는 듯 보던 그녀가 이내 싱긋 미소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하고 싶으면 그렇게 하세요."
"그러죠."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뒤도 안 돌아보고 땅을박찬 최종택이 곧장 오크 무리에게 달려들었다.

파밧.

"취륵?"

갑자기 수풀에서 튀어나온 그의 모습에 오크가 깜짝 놀란  뒷걸음질 쳤다.
 틈을 놓칠 최종택이 아니었다.

"일단 한 놈!"

순식간에 목을 베자피가 솟구쳤다.

"취이익!"
"취륵취륵!"
"쿠어어엉!"

동료의 죽음에 오크들이 분노를 터트렸다.
한데 그 수가 상상 이상이었다.

드글드글.

"…뭐지?"

어림잡아도 수십 마리는  법한 수였다.
이상한 일이었다.
아무리 오크가 물량으로 유명하다곤 해도 이렇게까지 무리 지어 다니진 않는데…

취이익!

의문이었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을  때가 아니었다.
미친 듯이 달려오는 오크들을 보며 최종택이 자세를 다잡았다. 그와 동시에 도끼가 사방에서 내려찍혔다.

파앗!

가볍게 백스텝으로 피한 최종택이 검을 휘둘렀다.

까앙!

공격이 아닌, 방어였다.
한 놈의 공격을 막거나 피하면 곧장 다른 놈이 공격을 해대는 탓이었다.

'뭐 이리 많아? 정신없네.'

 답을 알려준 건 백보아였다.

"저 때문이에요."
"…?"

이건 또  헛소리지.
 생각이 표정으로 드러났음에도 그녀는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

"저한테 맛있는 냄새가 난대요."
"…?"

어째 들으면 들을수록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다행히도 그 뒷말은 납득 됐다.

"신의 은총이라는 스킬이 있는데 그것 때문에 신성력을 제외한 능력치를 올릴  없어요."
"아…"

그녀의 능력치가 유독 낮은 이유가 풀리는 순간이었다.
스킬 때문이라면 그 비정상적인 구조도 이해가 된다.
다만 궁금하긴 했다.

'대체 어떤 스킬이길래 저런 말도 안 되는 디버프가 있는 거지?'

사실상 평생 강해질 수 없는 것 아닌가.
서포터라 해도 최소한의 능력치는 있어야 고위 던전에 들어갈 수 있었다.
탱커가 어그로를 잘 끈다 해도 만에 하나의 상황이 있었으니까.

'근데 그게 몬스터 많은 거랑 뭔 상관이야?'

문득 든 생각에 최종택이 눈썹을 찌푸렸다.
누구는 지금 죽어라 몬스터들 상대하고 있는데  헛소리란 말인가.
그녀의 말이 이어진 건 그때였다.

"신의 은총을 받아서 그런지 몬스터들이 저만 보면 유독 미치는 게 있어요. 하… 이런 치명적인 여자란…."
'미친년인가?'

미간을 짚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모습이 아무리 봐도 정상은 아니었다.
하나 실상은 달랐다.
미간을 가린 손 틈 사이로 드러난 그녀의 눈은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그것 때문에 돌아가셨지….'

처음 신의 은총을 각성한 날.
수많은 몬스터들이 성당으로 쳐들어왔다.
비정상적인 움직임이었다.
자신의 거처에서 떠나지 않던 몬스터들이 갑자기 한데 모여 습격한 것이다.
협회가 자각했을 땐 이미 늦은 후였다.

-살아라, 보아야… 너만은 살아라.
-여기 꼭 숨어있어야 한다.

그녀를 지키기 위해 신부님과 수녀님이 희생한 것이다.
그녀를 성녀로 만들어준 SS등급 스킬.

'저주받은 능력이야.'

사기적인 스킬이지만 그녀에게 있어 이 스킬은 그저 저주였다.
부모님과도 같았던 분들을 앗아간 저주.
저주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저랑 같이 파티하실래요?
-저희 길드에 들어오시죠. 당신 같은 버프를 가진 헌터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A급 버프 다수 보유자 백보아.  것이 되어라.
-버프 말곤 아무것도 없는 네가 뭘 어쩔 거지?

그녀의 능력을 탐내는 사람들이생겨났다.
처음에는 단순히 파티를 원하던 그들이, 어느 순간부터는 소유를 원했다.
S급이라는 말을 일절 하지 않고 A급인 척 능력을 숨겼는데도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자포자기하던 그녀를 구해준 게 헌터 협회였다.

'고마운 분이지.'

협회장이 아니었다면 탐욕의 시선 속에서 하루하루를 살았으리라.

-믿을 만한 친구가 있네, 그와 팀을 맺는 건 어떠한가?

그런 협회장의 제안이기에 수락했다.
마음의 빚을 조금이나마 갚겠다는 생각이었으니까.
그렇기에 기대하지 않았다.

'결국저 사람도 똑같겠지.'

믿을 만하다던  남자도 아직까진 유망주일 뿐이다.
버프와 힐을 받는 순간, 그간 봤던 사람들과 같은 반응을 보일  뻔했다.
그 말로 또한 뻔했다.

'지쳐서 나가떨어지겠지.'

끊임없이 몰려드는 몬스터.
그걸 항상 감당하기엔 억누른버프로는 어림도 없었으니까.
때문에 그녀는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데 확실히 많이 몰려드네요. 감당 안 될 거 같으면 포기하세요."
"에?"

한데 예상외의 반응이 돌아왔다.
포기하라는 말에 최종택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릴 하냐는 얼굴로 말했다.

"많이 몰려드는 게 뭔 상관임? 오히려 몹 몰이 최강 스킬인데 개꿀 아닌가요?"
"예? 하지만 죽을 수도 있잖…"

전혀 생각지 못한 대답이어서일까.
그녀는 드물게 당황한 모습이었다.
 순간.

서걱-

어느새 마지막 오크를 정리한 그가 세상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남자는 빼지 않죠."
"……"

의외라는  올려다보던 백보아가 씨익 웃은 건 그때였다.
그에게  걸음 다가간 그녀가 묘한 미소를 지으며  내뱉었다.

"그거 성희롱인가요?"
"예??"
"장난이에요."

그러며 최종택을 스쳐 지나간다.
먼저앞으로 나아간 그녀는 이전과는 다른 미소를 짓고 있었다.
최종택이 한 번도 보지 못한 미소를.

'바보 같아.'

하지만….

'그래서 믿을 만한 것 같아.'

한국에 온 게 나쁜 선택은 아니었던 같다.
천천히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최종택은 생각했다.

'신성력 빼고 전부 F인 년이 깝죽대네.'

저러다 뒤지면 어쩌려고.

'어쩔  없지.'

한숨을 내쉰 그가 그녀의 옆을 지켜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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