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9화 〉성녀 백보아 (2) (49/124)



〈 49화 〉성녀 백보아 (2)

49화

10.
최종택과 협회장이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아리아와 예나는 협회장실  소파에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면서 연신 서로를 힐끗거렸다.

'이 여자…'
'이 여자… 종택 씨와 있던…'

명백한 경계의 눈빛.
특히나 예나가 농도가 짙었다. 밤낮으로 붙어 다니며 관계를 맺은 걸 봤으니 어쩔 수 없었다.
아리아의 경우는 촉이었다.

'그 암살자와 같은 냄새가 나.'

유연에게서 느꼈던 그 느낌이 낯선 여자에게서 느껴진다.
아니, 오히려 지금이 더 컸다.
그때는 그나마 같은 승급시험 참가자라는 명목이라도 있지, 저 여자는 협회 소속의 교관이 아닌가.

'으응? 자, 잠깐만'

그때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들.
잊지 못할 짜릿함을 남겼던 날들이 스쳐 지나갔다.

"서, 설마 교관이면……"
"네. 제가  처리했습니다."
"……"

그녀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혹시나 했던 생각이 사실이었다니. 부끄러워서 미쳐버릴 것만 같다.

'미쳤어, 미쳤어… 이게 다 그 비겁한 사람이 문제야!'

자신을 참지 못하게 만든 그 사람이 문제다.
그렇게 애써 위로했지만, 푹 숙인 고개는 한참이나 올라오지 않았다.

"……"
"……"

어색한 기류가 감돌았다.
그녀만큼이나 예나도 부끄러운  매한가지였다. 자신도 쓰리썸을 했기도 하고, 그녀를 보면 그 모습이 자꾸 떠오르는 탓이었다.

더, 덥지?
으, 응. 그러네.

이런 대화가 오갈  같은 그림이 이어지길 한창.
먼저 입을 연  예나였다.

"…그래도 앞으로 팀이  텐데 통성명 정돈 하죠."
"아,  그래도 그러려고 했어요!"

아리아가 발작하듯 대답했다.
그녀도 할아버지에게 얘기를 들어서 팀이 될 거란 걸 미리 알고 있었다.
다만, 하필 팀이 될 사람이 저 여자라니.

'…그래도 교관이니까.'

실력은 확실하리라.
쎄하긴 해도여기서 거부하는 건 어리광이었다. 그녀가 짐짓 태연함을 가장하며 말을 이었다.

"아리아에요. 탱커구요. 어그로와 방어가 주특기에요."
"김예나입니다. 궁수입니다."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궁금한 걸 묻기에는 부끄럽고, 팀적인 걸 묻자니 이미 너무 많은 걸 알고 있었다.

'김예나 교관… 엘리트 교관으로 B등급 헌터. 속사 스킬을 보유한 원거리 딜러… 너무 유명하잖아.'
'방어에 특화된 전형적인 탱커…. 종택 씨 이전 유망주 중 역대급 성적을 거둔 인물.'

예나와 아리아는 모두 협회 소속이다.
심지어 교관과 유망주의 관계.
알기 싫어도  수밖에 없는 관계인 것이다.

'저 사람이라면 괜찮기는 한데… 여자가 너무 늘어나는 것 같아.'

협회장에게 미리 전해 들은  멤버를 떠올린 예나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곤 스스로의 모습을 자각하고 깜짝 놀란다.

'앗. 내가 무슨 생각을…'

이건 자기답지 못한 모습이었다.
사적인 감정으로 팀에 영향을 끼치는 건 프로페셔널하지 못하지 않은가.

'…불안해.'

하지만 불안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건 아리아도 마찬가지였다.

'흐, 흐응… 꽤 이쁘긴 하네요.  비겁한 남자가 보는 눈은 있어서…'

최종택의 주위에 꼬이는 여자가 하나같이 예뻤다.
힐끔 곁눈질하던 아리아가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흐흠."
"……"

한동안 사이에 어색한 기류가 감돌았다.

1.

"바쁜 시간 내주어서 고마웠네. 유익한 시간이었어."
"저도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허허, 다음에  차나 한 잔 하지."
"좋죠."

협회장이 기분 좋게 웃으며 악수를 건넸다.
마주 붙잡은 손에 힘이 넘친다.

'역시 S등급이긴 하구나.'

가볍게   같은데도 악력이 장난 아니었다.
노인에게서 나오는 힘이 맞나 싶을 정도.

'하기야  협회장이니…'

그의 위업을 생각하면 수긍이 된다.
기분 좋게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 최종택은 그와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여러모로 유익한 시간이었다.
무기도 해결됐고, 던전도 원하는 만큼 들어올 테니까. 하지만 무엇보다 좋은 건 짜임새 있는 파티였다.

'피카츄는  마음에 안 들긴 하지만뭐…'

뭐든 완벽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피카츄도 좀 모자라서 그렇지 능력 있는 헌터긴 했다.

'그나저나 수녀라…'

새로 올 멤버를 상상하는 그의 귓가로 익숙한 알림이 들려왔다.

띠링-

[풀발이 발동되었습니다.]

'아… 이 쓰레기 새끼.'

감히 수녀로 불경한 생각을 하다니.
종교인, 특히 어머님이 알면 야단맞을 일이었다. 고개를 흔들어 상념을 떨쳐낸 최종택이 대기실로 나왔다.
그러자 보였다.

"…흐흥."
"……"

지독하게 어색한 분위기가 흐르는  여자의 모습이.

'…수학여행 때가 떠오르는구만.'

그때 딱 저런 모습이었는데.
추억에 젖은 얼굴이 된 그가 천천히 그녀들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귀신같이 발견한 그녀들이 소리쳤다.

"아, 오셨군요."
"당신! 왜 이리 늦게 왔어요?"
"……"

다시 돌아갈까?
진지하게 고민한 그가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앉았다.

"음. 저희 앞으로 팀이  것 같아요. 잘 부탁해요."
"흐흥, 뭐 그래요. 저도 잘 부탁해요."
"저도 잘 부탁합니다."

어색하게 있을 순 없어서 적당히 말을 건네자 아리아가 기세등등해졌다.
그 모습이 왠지 아니꼽다.

"너는 빼고."
"뭐요? 아니.  사람 차별하고 그래요!"
"너는 그럴 만해."
"이이익…!"

적당히 골려주니 분한 얼굴로 입술을 짓씹는다.
그래, 피카츄는 저래야지.
툭툭 건들 때마다 통통 튀는 반응을 보이니 놀릴 맛이 난다.
그런 둘을 심란한 얼굴로 바라보던 예나가 조심스레 말을 꺼낸  그때였다.

"…종택  혹시 종택 씨의 능력에 대해 아시나요?"
"…제 능력이요?"

그에 최종택의 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여기까진가.'

결국 자박꼼을 알게 된 건가.
앞날이 캄캄해진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엄마, 아빠. 못난 아들 먼저 가볼게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최종택의 반응을  예나가 역시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말했다.

"모르셨군요."
"…예?"
"종택 씨와 하면… 그 사람의 능력치가 오릅니다. 그러니 되도록……"
"예?"
"무, 물론 질투나 그런  절대 아닙니다. 다만 걱정이 되어서……"

연신 발뺌하는데 귀가 새빨갛다 못해 터질  같다.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이내 푹 고개를 숙이는 예나.
귀여운 모습이었지만, 최종택은 그런 걸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나랑 하면 능력치가 오른다고?'

자박꼼을 각성한 지 두 달 차가 되어서야 알게  사실이었다.
동시에 그간 여자들의 반응이 이해가 됐다.

'아! 그래서 나랑 그렇게 하려고 했던……'

모든 퍼즐이 맞춰지……

"에엥?"
"…?"

려는 순간 아리아의 놀란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식간에 그녀에게 시선이 쏠렸다.
그러자 그녀가급히 표정을 정돈하곤 진중한 목소리를 냈다.

"으흠… 저도 알고 있었어요."
"……"

당연한 사실이라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거린다.
최종택이 슬쩍 시선을옆으로 돌렸다.

[아리아]
……
[상태 : 매우 놀람]
[특이사항]
[정말 능력치가 올랐다는 걸 확인하고 경악하는 중]
[갑자기 그날이 떠올라 젖고 있음]

"나도 병신이지만 쟤는 진짜 참……'

저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이었다.

'어찌 됐든 나랑 하면 능력치가 오른다는 건가.'

그리 생각하니 마음이 좀 편해지긴 했다.
기브  테이크였던 것 아닌가.
물론 자신이 얻는 게 훨씬 크지만, 그래도 죄책감이 덜어지는 건 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해야 할 건 하나였다.

"그럼 슬슬 합도 맞춰볼 겸 던전에 가볼까요?"

그녀들과 합을 맞추는 것.
다소 후련한 얼굴로 묻자 예나 교관이 고개를 저었다.

"던전보다 좋은 곳을 알고 있습니다."

동시에 들리는 익숙한 알림.

띠링-

[풀발이 발동되었습니다.]

'음. 난 쓰레기가 분명해.'

최종택이 조용히 다리 사이를 가렸다.

2.
헌터들이 능력을시험하기 가장 좋은 곳이 어디일까?

"던전 아님?"

열에 셋은 그리 대답한다.
헌터가 된  얼마  된 새내기들의 생각이 보통 이러했다.
그렇다면 짬밥 좀 먹은 헌터라면?

"무조건 VR이지."

백이면 백 똑같은 대답을 한다.
가상전투시스템.
정식 명칙 VR.War.
마정석이신에너지원이 되면서 생겨난 시스템임과 동시에 헌터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시스템이었다.

키에에에엑!

"와, 진짜 세계관 최강자의 기술이다."
"이게 가짜라고? 나 지린 것도 가짜라고 해줘."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그래픽.
귀가 저릴 정도의 사운드.
몬스터의 습성과 패턴을 정확하게 꿴 움직임.
마지막으로 원하는 몬스터를 선택할 수 있다는것.

웬만한 몬스터의 기록을 전부 보유하고 있는 시스템 특성상 이보다 더 효율적인 연습 방법은 없었다.
첫 트라이라면 먼저 VR을 들려라.
이 말은 헌터 새내기가 필수로 지켜야 할 교훈이 되었을 정도.

캬아아아악-!

'오…'

그 VR방의 홀로그램 앞에 선 최종택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되게 진짜 같다.'

현실성이 장난 아니라곤익히 들었는데 실제로 보니 생각한 것보다 더 진짜 같았다.
얼마나 진짜 같은지 송곳니에 맺힌 침까지 재현했다.
시스템이 재현한 건 단순히 외관이 아니었다.

키이이…

으르렁거리는 괴수에게서 특유의 압박감이 전해졌다.
B급 보스에 걸맞는 위압감이었다.

'간만이네.'

양팔의 칼날을 벼리는 놈을 보며 최종택이 씨익 웃었다.
도발로 받아들인 것일까.

캬아악!

줄곧 경계하던 놈이 작은 포효와 함께 움직였다.
동시에 최종택이 소리쳤다.

"시작해!"
"안 그래도 준비하고 있었다구요!"

그 말대로 아리아가 방패를 치켜들었다.
순간 빨간빛이 퍼진다싶더니 멘티스의 몸이 움찔거렸다.
최종택과 아리아 사이에서 혼란스러운지 고개를 흔드는 멘티스.

키익!

그러다 이내 아리아에게 달려 든다.
D등급 헌터를 단 한 방에 제압했던 칼날.

쾅!

"이 정돈 끄떡 없다구요!"

하나 탱킹에 올인한 아리아를 제압하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키이?

그에 당황한 멘티스가 한 발짝 뒤로물러난 순간
그 찰나를 놓치지 않은 최종택이 놈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체위술… 가위치기!"

빠르게 놈의 옆구리를 베고 지나가자 이내 가위 모양의 검흔이 새겨졌다.
하나 명색이 B등급 보스.

키에에엑!

치명상은 아니었는지 놈이 사나운 기세로 최종택의 목을 노리고 팔을 휘둘렀다.
피하기엔 늦은 상황.
검으로 막으려는 순간 화살이 날아왔다.

푹! 파바박!

카아아악! 카악!

한 발. 두 발, 세 발….
쉴새 없이 박히는 화살에 멘티스가 발버둥 치는 사이 최종택이 뒤로 물러났다.

"도발!"

그 사이 다시 어그로를 잡는 아리아.
멘티스의 칼날이 아리아의 방패와 격돌했다.
그러기를 몇 차례.
결국 포식자였던 멘티스는 제대로 된 공격도 못하고 절명했다.
신기루처럼 사라진 놈을 보며 최종택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합이 미쳤는데?'

미리 잔 것도 아닌데 연계가 물처럼 흐른다.

'효율이 진짜 장난 없다.'

사실 멘티스 정도는 이제 손쉽게 잡을  있다.
한데 이건 효율이 달랐다.

'풀발 2단계도 안 썼어.'

풀발 2단계를 쓸 필요도 없이 1단계만으로도 손쉽게 잡아낸 것이다.
둘이서 10의 힘을 낸다더니….
그런 소리가 왜 나오는지 알 것도 같았다.

'이렇게만 가면 하루에 여러 던전 깰 수도 있겠다.'

그런 생각을 하는건 최종택만이 아니었다.

"우리 합 되게 잘 맞는 거 같은데 아니에요?"
"확실히 수월했습니다."
"잘 맞는 거 같은  아니지. 존나  맞는 거지."

아리아와 예나도 느꼈는지 표정이 밝았다.
특히 예나는 생각 외라는  떨떠름해보이기까지 했다.
하기야 그녀 입장에선 학생이었던 헌터 둘과 합을 이룬 거니 감회가 색다를 법했다.
그래도 살짝 입꼬리가 올라간 걸 보면 썩 나쁘진 않아 보였다.

'이대로만 가면 되겠다.'

옥구슬 굴러가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온  그때였다.

"저는 왜 빼시죠?"

듣기 좋은 목소리.
그 안에 담긴 짓궂은 장난기와 어울리지 않는 음색.
하지만 그래서 더 시선을 끌었다.

'뭐지?'

그에 홀린 듯 고개를 돌린 그의 눈이 커졌다.
 여자가  있었다.
흑발이 잘 어울리는 다소 성숙한 분위기의 미녀였다.
한데 그 여자의 복장이 파격적이다.

'수녀…?'

분명 수녀복인데 치파오처럼 옆이 트여있다.
그리고 그 틈으로 화려한 디자인의 검은색 가터벨트가 보였다.

[풀발이 유지중입니다.]

"아……"

 화끈한 모습에 탄성을 내뱉는 순간.
수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허리를 살짝 숙였다. 아래에서 위로 올려다본 자세가  그녀가 불쑥 물었다.

"꼴리셨나요?"
"……"

아무래도 정상은 아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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