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8화 〉성녀 백보아 (1) (48/124)



〈 48화 〉성녀 백보아 (1)

48화

[전직차도녀 : 종택 씨. 혹시 시간 되시나요?]

'교관님이네. 웬일이지?'

카톡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예나 교관이었다.
오랜만에 온 연락에 최종택이 바로 답장을 보냈다.

[나 : 네. 무슨 일이에요?]
[전직차도녀 : 바쁘실 텐데 죄송하지만 혹시 지금 협회로 올  있습니까?]
[나 : 엥? 협회요?]

'갑자기 웬 협회? 뭔 일 있나?'

순간 스카웃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예나 교관님이라면 바로 본론을 꺼냈겠지.'

그게 이유라면 굳이 협회로 부를 그녀가 아니었다.
답장이온 건 그때였다.

[전직차도녀 : 협회장님이 만나 뵙고 싶어하십니다.]

'협회장이?'

순간, 자신을 막아주던 그가 떠올랐다.
S등급 헌터 세 명을 앞두고도 전혀 꿇리지 않은 모습.
오히려 그 혼자서 압도하고 있었다.
노년 간지란 이런 거다를 보여줬던 노인을 떠올린 최종택이 흔쾌히 톡을 보냈다.

[나 : 좋아요. 지금 갈게요]
[전직차도녀 : 감사합니다. 그럼 협회에서 뵙겠습니다.]

"협회장이라… 무슨 용건인진 몰라도 기대되네."

유명세를 타고 보니 협회장과 따로 만날 일도 생긴다.
그가 부푼 기대를 안고 협회로 향했다.
택시가 협회에 가까워질수록 설레는 마음도 조금씩 커져 갔다.

"도착했습니다."
"네. 수고하세요."

이윽고 택시에서 내려 건물에 들어선 순간.
 기대는 절정에 달했다.
그리고 협회장실에 들어선 순간, 절정에 달한 기대감이 단번에 가라앉았다.

"…히이익! 당신! 여기가 어디라고 온 거죠!"
"……"

최종택이 눈을 뻐끔거렸다.
몇  손으로 비비던 그가 이내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눈앞에 보이는 여자와 상태창은 여전했다.

[아리아]
……
[상태 : 무척 반가워하고 있음]
……
[특이사항 : 그날의 추억을소중히 간직 중]

그에 최종택이 당혹스러움을 온몸으로 표현했다.

'피카츄 새끼가  여깄지?'

예나 교관까지는 이해가 된다.
애당초 연락을 한 게 그녀이니 협회장실에 있을 수도 있지.
한데 저 여자는 대체 왜 있단 말인가.

"어서 오시게."

그에 대한 답을 내려준 협회장이었다.
반갑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허허, 내 손녀가 신세를 많이 졌네."
'…아. 여기까진가.'

아무래도 좆된  같다.

8.
다행히 협회장이 부른 이유는 질책이나 복수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

"사신 이후에 이런 인재가 나올 줄이야. 아주 감명 깊게 봤네."
'…보지 않은 것 같습니다만.'

친근감을 표시하는 그를 보며 최종택이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말은 저렇게 해도 영상을보지는 않은 것 같다.
손녀를 강간하듯 괴롭힌 걸 알면 저렇게 인자한 미소를 지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러고 보니 교관이 지켜봤을 텐데 그걸 생각 못 했네.  아무런 제재가 없지?'

이상한일이었다.
그땐 시합에만 집중하느라 생각 못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강간범도 그런 강간범이 없었다.

'뭐 아무렴 어때. 좋은 거지.'

설마 예나가 봤을 거라는 생각은 1도 안 하는 그였다.
덕분에 다소 편안해진 마음으로 사소한 대화 몇 마디를 주고받았을 때였다.
 한잔을  마셨을 쯤 협회장이 본론을 꺼냈다.

"내가 바쁜 사람 오라가라 한 거 아닌가 싶구먼."
"아닙니다."
"사실 내가 자네를 부른 이유는 부탁을 하나 하기 위해서라네."
"부탁 말입니까?"

고개를 끄덕인협회장의 얼굴이 진지하다.
다소 머뭇거리던 그가 이내 결연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어느 길드에도 소속되지 말아주었으면 하네."
'응?'
"자네 같은 엄청난 인재가 어느  곳에 들어간다면 지금껏 유지하던 균형이 무너진다네."

최종택의 눈이 커졌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이었기 때문이다.
한데 그걸 다른 의미로 받아들인 협회장이 다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아무런 보상 없이 바라는  아니네. 자네의 가치를 알고도 그런다면 그건 양아치지."
"어…"
"자네에게 딱 어울리는 던전들을 몰아주겠네. 거기에 사체를 가져오면 협회에서 원할  무기를 만들어주지. 이 정도면 어떤가?"
"어어…"

뭐지?
가만히만 있었을 뿐인데 조건이 계속 늘어난다.
그것도 아주 좋은 쪽으로.

'어차피 아무 곳도  들어갈 생각이었는데…'

입 다물고 있으면 반은 간다는 말이 사실이었던 것인가.
재물이 알아서 굴러 들어온다.
개이득도 이런 개이득이 없었다.

'뭐… 서리 길드 못 가는 건 좀 아쉽긴 한데.'

서리 길드.
한지수도 있고, 조건도가장 좋아 보여서 파티플을 떠올릴  가장 먼저 생각한 곳이었다.
거길 못 가는건 좀 아쉽긴 했다.

'그래도 조건이 넘사벽인데?'

던전을 몰아주는 것도 상당했지만, 무엇보다 탐이 나는 건 무기제작이었다.
협회 표 무기우대 제작권.
그건 세계적인 대장장이 권 노아의 무기를 필요할 때마다 공급받을  있단 소리였다.
사체를 직접 가져와야 한다지만, 던전을 몰아주니 어려울 것도 없고.

'이럼 안 할 이유가 없지.'

판단을 마친 최종택이 자세를 바꾸며 대답했다.

"좋네요."

여유로워 보이는 모습이 마치 그 정도는 당연한 거라 말하는 듯했다.
다소 건방진 모습.
하나 협회장은 질책 대신 감사를 표했다.

"고맙네. 덕분에 한시름 놓았어."
"뭘요."

대답하면서도 최종택은 내심 의문이었다.
진심으로 안도하는 모습엔 조금의 아까움이나 가식도 없었던 탓이다.

'근데 사실 협회 측에선 별 이득이 없지 않나?'

5대 길드의 세력이 커지면 안 좋다곤 해도 이상한 일이었다.
정확히는 과했다.
던전은 그렇다 쳐도 권 노아 제작 우대권은 좀 너무 갔다.

-권 노아 장비를 쓰면 힘을 100%그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

세계 랭킹 1위가 했던 말이다.
그걸로 협회가 벌어들이는 돈과 명성을 생각하면 밑지는 장사일 정도.
굳이 협회 측에서 저런 손해를 볼 필요가 있나 싶다.
심지어 저 손해를 봐서 얻은 게 최종택의 영입도 아니고 그냥 아무데도 들어가지 말아달라는 거라니.

"그런데 균형이 중요해도 이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나요?"

결국 참지 못하고 묻자 협회장이 쓴웃음을 지었다.

"다들 그리 묻더군. 이득이 없다. 손해다."
"……"
"맞는 말이지. 하지만, 헌터 협회는 한국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야만 하네. 그러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니까. 이익을 추구하는 건 길드가 할 일이지."

그리 말하는 협회장의 눈빛이 또렷해서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모습에 협회장의 눈빛이 인자해졌다.
좀 전의 날카로운 모습은 사라지고 할아버지 같은 얼굴이된 그가 너털웃음을 지었다.

"허허. 그저 늙은이의 푸념일 뿐이네. 어찌되었건 권력이  쪽으로 몰리는 건 좋지 않아서 이런 결정을 내렸다네. 답변이 충분히 되었는가?"
"예. 충분합니다."

진심이었다.
저런 숭고한 의지가 있었다니.

'그것도 모르게 협회 욕 밥 먹듯이 했는데.'

게이트 붕괴와 같은 일이 터질 때마다 가장 먼저 욕을 먹는 건 협회였다.
나랏밥 먹으면서 일 처리도 제대로 못한다고 말이다.
진희 누나를 만났을  아주 질겅질겅 씹었던  왠지 뜨끔해진다.

'다음부턴 쉴드도 좀 쳐줘야겠네.'

공인이면 어쩔 수 없다곤 해도 저런 사람이 욕 먹는  찝찝했다.
 후로도 둘은 사소한 대화를 나누었다.
할아버지와 손자가 하는 것처럼 정말 별 거 없는 대화였다.
슬슬 말수가 줄어들 즘 협회장이문득 물어왔다.

"혹시 생각 중인 파티원이 있으신가?"
'파티원이라…'

그간 솔플만 해온 탓에 없었다.
그나마 지수와 파티를 한 적이 있긴 한데, 그건 서리 길드의 파티지 그의 파티는 아니었다.
대답을 못하고 있자 협회장이 웃으며 제안했다.

"솔플을 할 생각이 없다면 우리 손녀와 예나 교관과 같이 파티를 하는 건 어떤가?"
"손녀라면…"
"아리아 말일세. 자네를 무척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걔가요?"

보자마자 히익! 거리던 놈이?
이상한 일이긴 한데 그간 보았던 걸 생각하면 그럴법했다.
워낙 이상한 놈이어야지.
쿠사리를 생각하면 걷어차고 싶지만, 객관적으로 생각하면 나쁘지 않았다.

'모든 스킬이 다 방어에 도움 되는 스킬이니까. 쳬력도 B등급이나 되고.'

방어력과 지구력은 그보다 나을 것이다.
현재 등급에서 탱커 역할을 맡기기엔 걔만 한 인재가 없다는 뜻.

'교관님이야 말할 것도 없고.'

이미 여러  던전을 돌았던 예나는 진작파티원으로 생각 중이었다.
솔플엔 한계가 있다는  느꼈으니까.

'그럼 맴버가…'

원거리 딜러 하나와 탱커 하나.
그리고 근접 딜러라 할 수 있는 최종택까지.

"서포터가 없군."
"그러네요."

협회장의 말에 최종택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그도 생각했던 부분이었다.

'서포터가 필요하긴 하지.'

그에게도 힐이 있기는 하지만, 서포터의 역할을 하기엔 부족했다.
서포터의 유무로 생사가 갈리는 게 던전이기도 하고.
정연아가 대우를 받는 이유가 단순히 아가씨라서가 아닌 것이다.

"혹시 생각 중인 서포터가 없다면 내가 추천해줘도 되겠나? 마침 적임자가 한 명 있다네."

그 고민을 해결해준 건 협회장이었다.

"협회 측에서 보호하고 있던 수녀인데 자네라면 충분히 보호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네."
'정연아는 아닌가보네.'

그녀가 협회에게 보호를 받을 이유가 없으니까.
경호원들의 보호라면 모를까.

'협회에서 보호할 정도면 상당한 능력자인가 보네.'

그렇다면 그로서도 나쁠 건 없었다.
그렇기에 최종택은 흔쾌히 승낙했다.

"좋아요. 그럼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허허. 믿을만한 친구이니 걱정마시게. 한국에오면 연락하도록 하겠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수녀가 어떤 인물인지.

9.
브하라 성당.
유럽에서 가장 규모가  성당으로, 매일 기도하러 오는 사람만 수백에 달할 정도였다.
그런 성당에서도 깊숙한 곳.
일반인들의 출입을 허가하지 않는 방에는 늘 한 줄기의 빛이 맴돌았다.

아아아- 아아-

절로 거룩해지는 음색.
 하모니를 들으며 기도를 올리는 여성은 성스러움 그 자체였다.
다만, 일반적인 성스러움은 아니었다.

"아멘…."

기도를 마치고 일어난 그녀의 몸은 나신이었다.
정확히는 아무런 속옷도 입지 않은 채 얇은 수녀복 하나만을 걸친 상태였다.
그녀의 은밀한 부분까지 모두 비치는 옷차림.
가린  만듯한 옷이 수녀복이라는 것에 배덕감이  법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해방감을 느꼈다.

"역시 기도는 시원한 마음으로 해야지."

마음의 짐을 씻겨 보낸 듯 후련한 얼굴.
아침 기도를 마친 그녀가 옆에 벗어놓은 옷을 집었다.
검은색 속옷을 입은 그녀가 마찬가지로 검은색 스타킹을 신었다.

스윽.

한데 그 스타킹이 조금 특이했다.
야시시한 디자인에 끈이 여러 방향으로 꼬아있었다.
그 끈의 끝부분을 잡은그녀가 능숙하게 집게를 열어 팬티에 걸치듯 끼워 넣었다.

'역시 이걸 입어야 마음이 편해.'

흔히 부르는가터벨트였다.
수녀와는 어울리지 않은 디자인.
하나 그녀를 찾아온 남자는 익숙한지 담담한 얼굴로 본론을 꺼냈다.

"성녀님. 준비되셨습니까."
"네. 아침 기도를 올리니 상쾌하네요."

마찬가지로 그녀도 대수롭지 않은 얼굴이었다.
그러다 미심쩍은 얼굴로 물었다.

"그 남자와 있으면 제가 안전해지는 거 맞죠?"
"물론입니다,"
"흐음… 믿어볼게요."

성녀, 백보아가 한국에 귀환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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