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화 〉S급 유망주 (1)
46화.
4.
승급시험의 꽃이 무엇인지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그리 대답할 것이다.
"당빠 시상식이지!"
여배우가 레드카펫 밟는 걸 꿈꾸듯 헌터들도 시상식에 서는 것을꿈꾸니까.
화려한 조명과 박수.
그리고 평소라면 자신을 거들떠도 보지 않을 거대 길드들이 추파를 보내온다.
이곳에서만큼은 헌터가 갑인 것이다.
겨우 D등급 헌터가 누리기엔 지나친 호사.
"섬의 보스가 잡혔다며?"
"사신 이후 아마 처음이지?"
하지만 오늘.
이곳에 모인 이들 중 이를 호사라고 느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더 이상은 깨질 줄 알았는데. 한국이 확실히 인재가 많긴 해."
전무후무한 업적을 이루어냈으니까.
그리고 그게 뜻하는 바는 단순명료했다.
"새로운 S등급 떴네."
"3년 안에 S등급 못 찍으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진다."
때문에 궁금했다.
"그래서 대체 누가 잡은 건데?"
"몰라. 얼마 전에 각성한 헌터라는데?"
"미쳤네. 근데 드락사르를 잡았다고?"
저 말도 안 되는 업적을 달성한 헌터가 대체 누구인지.
궁금해했고 또 기대했다.
그건 엉덩이 무거운 대형 길드 마스터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까 대박인 거지. 웬만한 대형 길드에서도 다 몰려왔다던데."
"역대급이네. 확실히 대단한 업적이긴 한가보다."
어떻게든 얼굴 한 번 보기 위해 모든 스케줄을 취소하고 시상식에 왔다.
철저하게 돈으로 굴러가는 그들이다.
그런 그들이 하루 스케줄을 합친 것보다 최종택을 직접 한 번 보는 게 가치가 더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내가 씨발, 간만 보지 말고 미리 채가자 했지! 이걸 어떻게 할 거야! 이젠 손도 못 대겠잖아!"
"…미안하긴 한데 너도 동의했으면서 갑자기 그러는 건 좀 아니지 않냐."
"닥쳐! 이걸로 왕창 까일 게 분명하다고. 흐아아앙."
수료식 때부터 눈독을 들이던 주민아와 진철수 입장에선 피눈물이 나는 상황이었다.
진행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온 건 그때였다.
-지금부터 시상식을 시작하겠습니다.
"야, 그만 울고 봐. 시작했다.
진철수의 말에주민아가 훌쩍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목소리는 이어졌다.
-이야, 많이도 모이셨네요. 이번에는 정말 걸출한 사람이 많이 나와서 치열한 경쟁이 됐죠. 그중에서도 유난히 돋보이는 헌터가 있었는데요.
그러면서 한 박자 쉬는 진행자.
그에 다른 곳을 보던 사람들도 모두 진행자가 있는 곳을 바라봤다. 이목이 쏠리자 그가 만족스런 얼굴로 입을 열었다.
-여태까지 D급 승급시험에서 보스를 쓰러트린 사람은 전부 지금 S급까지 올라간 현 길드 마스터들밖에 없었죠.
"……"
-그런데 지금, 새로운 전설이 나타났습니다. 최종택 씨. 올라오시죠!
진행자가 양팔을 크게 벌리며 선언하자 레드카펫 위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동시에 화려한 조명과 플래쉬가 터져 나왔다.
연예인 저리가라 할 정도의 반응.
그에 대형 길드 마스터들의 시선도 자연스레 레드카펫 위를 향했다.
멋들어지게 댄디펌을 한 남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저 남자가 섬의 보스를 잡았단 말이지…"
"기운을 숨긴 건가? 겉으로 볼 때는 그저 그런 것 같은데 숨긴 거라면 대단한 실력이군."
우리 안 원숭이를 보는 듯한 시선.
A등급 헌터들이 작정하고 샅샅이 파헤치고 있었지만, 최종택은 당당하게 걸었다.
그렇다고 전혀 위축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음. 센놈들이 많네.'
척 보기에도 있어 보이는 놈들에게서 나오는 기운이 장난이아니었다.
'이게 A등급 헌터인가.'
B등급과 A등급에는 하늘과 땅 차이가 있다더니.
그 말이 왜 나온 지 알 것 같다.
풀발 2단계 극의를 사용해도 어찌하지 못할 놈들이 수두룩했다. 그런 그의 시선이 이번엔 승급시험에 참가한 헌터들에게로 향했다.
'나 말고도 센 놈들이 많았네.'
과연 진행자의 말은 허풍이 아니었다.
생각보다 실력자들이 즐비했다.
기운의 무게부터가 D등급 헌터라곤 생각되지 않을 정도.
'그래도 내가 제일 세. 내가 최고야.'
물론 자신에 비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건 A등급 헌터들도 마찬가지였다.
'금방 따라잡는다. 딱 대라.'
지금 당장은 약해도 머지않아 저들이 자신에게 위압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 각오 속에서 교단 앞에 섰다.
그런 그에게 협회장이 작은 케이스를 건넸다.
"원래라면 C급으로 승급이지만… 보스를 잡은 걸로 인한 가산점과 성적으로 B급 승급을 허합니다."
'미친, B급?'
그리고 그 케이스를 건네받는 순간 최종택의 결연한 표정이 깨졌다.
'한 번에 2단 승급? 조졌다.'
현 S급 헌터들만 받았다던 특전.
그걸 자신이 받았다는 사실 앞에서도 무게를 잡을 정도로 그는 대단하지 못했다.
심지어 보상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상금으로 1억이 주어집니다. 축하합니다. B등급 헌터 최종택."
짝짝짝짝-!
그 말을 끝으로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멍하니 서서 쳐다만 보고 있을 때 협회장이 웃는 얼굴로 다가오며 악수를 건넸다.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들려온 건 그때였다.
"…천랑 길드를 조심하십시오."
"…?"
정말 찰나의 순간이라 최종택은 순간 잘못들은 줄 알았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협회장은 여전히 웃는 얼굴로 인사를 건네고 있었다.
하지만 의미심장한 눈빛을 보는 순간.
'잘못 들은 게 아닌데.'
그는 환청을 들은 게 아니란 걸 확신했다.
그래서 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게 뭔 소리지?'
천랑 길드라면 5대 길드 중 하나 아닌가.
한데 갑자기 협회장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다니?
'천랑 길드에 뭔가 있나?'
무언가 석연치 않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와중에도 연설은 계속되었고, 이내 그 끝을 장식한 협회장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앞으로도 승승장구하시길….마지막으로 인재는 언제나 환영이니 저희 협회도 생각해주셨으면 고맙겠군요. 허허."
"저 양반이 은근슬쩍 홍보를…!"
스카웃하기 위해 온 길드 입장에선 열불이 터지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건 후폭풍으로 찾아왔다.
"최종택 헌터! 스카니아 길드가 모시겠습니까!"
"어딜 무역 길드가 깝쳐…! 그러지 마시고 저희 천무문으로 오시죠! 무에 관심이 많은 헌터들이 모인 곳이니 분명 마음에 들 겁니다."
"허. 어딜 열정페이를 시키려고. 그러지 마시고 저희 루나로 오시죠. 계약금으로 50만 달러를 드리겠습니다."
시상식이 끝나는 순간, 썰물처럼 몰려온 것이다.
어릴 적 소독차가 지나갈 때 뒤쫓던 아이들도 이렇게 많지는 않았는데.
심지어 그 대상이 하나같이 범상치가 않다.
천무문.
스카니아.
루나.
5대 길드만큼은 아니지만, 전부 헌터계에서 알아주는 길드였다.
대형 길드 중 가장 5대 길드와 가깝다는 평을 받는 이들.
그런 그들이 발빠르게 움직인 순간, 다른 스카우터들은 기가 죽을 수밖에 없었다.
"에라이, 50만 달러는 니미럴. 정도가 있지."
"가뜩이나 배때지 부른 것들이 상도덕도 없나. 우리 같은 사람들은 뭐 먹고 살라고!"
나름 큰 길드라 해도 그들에 비하면 한 수 접어주는 게 사실이었으니까.
"아예 이참에 5대 길드도 오지 그래?"
5대 길드라도 나타나지 않는 한 사실상 저들 중 한 명이 채가는 게 확실시된 상황.
물론 그럴 리는 없었다.
"에이, 그 양반들이여길 왜 와? 공석에서 얼굴 못 본지 한참이나 된 것 같은데 겨우 D등급 승급시험에……"
그들은 1초 단위로 스케줄이 잡힌 이들이니까.
A급 헌터조차 스카웃을 하는 게 아닌, 본인이 먼저희망해야 하는 게 5대 길드다.
이런 승급시험에 올 위인들이 아닌 것이다.
"올 시간에 차라리 보스 하나를 더 잡겠지. 아, 뭐 사람을 보낼 수도 있긴 하겠다."
"그렇긴 하… 어? 어어? 야 씨발! 사신 떴다!"
"뭐? 뭔 개소… 미친! 오케스트라까지 왔잖아?"
"야이, 천랑 길드까지 왔어! 미쳤다 미쳤어."
그런데 그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갑작스런 그들의 등장에 시상식은 초토화가 되었다.
5.
천랑.
오케스트라.
서리.
백두산.
구성.
한국을 대표하는 5대 길드들.
그중 3개의 길드가 D등급 승급시험에 모습을 드러냈다.
심지어 일개 길드원이 아닌 길드 마스터가!
"미친, 특종이다!"
"서둘러!"
그 사실에 다른 유망주들을 인터뷰하던 기자들이 마이크를 내팽개치고 달렸다.
인터뷰하던 헌터들로선 뻘쭘한 상황이었다.
"…왜 저러는데?"
"5대 길드 마스터 3명 떴대!"
"뭐? 미친! 이럴 때가 아니잖아!"
하나 사건의 전말을 알게 된 순간.
그들은 뻘쭘함과 민망함은 저 멀리 집어던지고 기자들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도착한 곳에는 3명의 거인이 서 있었다.
사신 이설.
지휘자 최현우
수왕 채유린
서리 길드와 오케스트라, 천랑 길드를 대표하는 마스터들.
한국에 몇 없는 S등급 헌터들이기도 했다.
지금 이 순간, 그들은 아름다운 얼굴이란 게 무엇인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저게 사람이냐?'
'S등급은 규격외라더니 분위기부터가 미쳤네.'
그들의 외모는 단순히 잘생겼다, 예쁘다로 끝낼 수준이 아니었던 것이다.
특유의 분위기에 압살당하는 느낌.
위험하게 느껴질 정도의 아름다움에 기자들이 흠칫 뒤로 물러났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들의 시선은 오로지 한 명만을 향했다.
"……"
중후한 멋은 이런 거라 말하는 듯한 노인.
정장을 입었음에도 떡 벌어진 어깨를 감출 수 없는 노인과 마주한 최현우가 미소지으며 말했다.
"자리 좀 비켜주시겠습니까."
"오늘 같은 좋은 날에 초치지 말고 돌아가시죠."
물론 협회장에겐 씨알도 안 먹히는 미소였다.
협회장은 오히려 더욱 진중해진 목소리로 그들을 다그쳤다.
"오늘은 5대 길드가 나설 자리가 아닌 걸 잘 아실 텐데."
여러 의미가 담긴 말이었다.
대부분의 스카우터들이5대 길드가 단순히 엉덩이가 무겁다고 생각하는데, 그건 틀린 말이었다.
그들은 무거운 게 아니라, 나설 수가 없던 것뿐이니까.
"균형을 지키시게."
5대 길드와 협회의 균형.
그것을 지키기 위해 서로의 영역엔 침범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오늘은 협회의 날이었다.
그걸 알기에 최현우는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선뜻 뒤로 물러났다.
하나 성깔이 난폭한 수왕의 경우는 달랐다.
머리 위에 난 고양이 귀를 바짝 세운 그녀에게서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여튼 영감탱이, 고지식하기는… 쯧."
"그게 원칙입니다. 설마 사신까지 수왕과 같은 생각은 아니겠지요?"
"…알겠습니다. 협회장님."
다소 언짢은 기세로 꾸벅 고개를 숙이는 이설.
협회장의 떡 벌어진 등에 보호받는 최종택으로선 어리둥절한 상황이었다.
'오우야. 이게 뭔 일이래?'
갑자기 대형길드는 뭐고 5대 길드는 또 뭐란 말인가.
'가는 길에 차나 한 대 뽑을까 고민 중이었는데…'
그래도 5대 길드라니 관심이 가긴 한다.
슬쩍 등 너머로 쳐다보니 웬 선남선녀들이 보였다.
'와, 저게 인간이냐.'
유일한 남자인 최현우의 얼굴만 봐도 연예인 뺨을 김치로 후려쳐도 대꾸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특유의 차가운 분위기가 뚝뚝 묻어나는 얼굴.
안경을 썼음에도 찐따 같지 않고 쿨한 느낌을 풍기는 남자였다.
'존나 예쁘네.'
물론 가장 충격적인 건 사신의 외모였다.
아름다운 그림을 보는 것 같다. 그림 속 인물이 살아 움직인다면 저런 느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하지만 하이라이트는 역시 수왕이었다.
쫑긋.
잔뜩 찌푸린 얼굴 위로 움직이는 고양이 귀를 본 순간.
[풀발이 발동되었습니다.]
'음. 조심할 만하네.'
절로 다리가 겸손해졌다.
'이게 말로만 듣던 수인인가… 어우, 장난 없네.'
작은 키와 미드가 아쉽긴 한데, 고양이 귀가 합쳐지니 오히려 더 잘 어울린다.
그치, 수인은 저래야지.
흐뭇하게 보는데 눈이 마주친 천랑이 돌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흐응…… 확실히 강하네."
'어? 은신으로 가린 상태인데…'
그가 당황해하자 요염하게 눈웃음친 그녀가 제 혀를 핥으며 입을 움직였다.
-다음에 보자고. 꼬맹이.
머릿속에서 울리는 목소리에 최종택이 깜짝 놀라 중얼거렸다.
'지가 더 작으면서 좆만한 게.'
역시 정상은 아니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수왕은 호기롭게 돌아섰고, 이설은 잠시 그를 쳐다보곤떠났다.
"이거이거, 너무 불리한 싸움인 거 같군요. 두 길드장이 설마 나올 줄이야. 이랬으면 제가 아니라 한팀장을 시킬 걸 그랬는데…"
그런 둘을 보며 푸념한 최연우가 지나가듯 덧붙였다.
"두 여성분이 대쉬 해도 저희 길드도 재고해주면 감사하겠군요.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그리곤 미련 없이 돌아간다.
그런 그들의 뒤로 기자들이 빠르게 따라붙었고, 순식간에 조용해진 자리에서 최종택은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 데도 안 들어갈 건데 병신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 하는데 왜 난리일까.
이해가 안 되는 최종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