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화 〉풀발 2단계 극의! (3)
45화
1.
풀발 2단계에는 두 가지 버전이 있다.
거근 모드와 테크닉 모드.
각기 상반되는 능력으로 뭐 하나 빠트릴 게 없는 능력들이다.
다만 그런 아쉬움은 있었다.
‘동시에 사용할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저 두 모드의 장점을 합치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깨달았다.
[일시적인 풀발 2단계가 됩니다]
처음에는 의심이었다.
저 일시적이라는 뜻이 지속시간만을 뜻하는 건 아니지 않을까 하는.
‘에이. 그건좀 너무 희망적이지.’
그렇기에 금방 기대를 접었다.
그가 생각해도 두 가지가 합쳐진다는 건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그렇게 그 의심은 한동안 잊혀졌다.
[풀발 2단계가 발동되었습니다.]
하나 우연히 지속적인 풀발 2단계를 발동시킨 순간.
그 의심은 다시 올라왔다.
‘이거 설마…?’
그리고 그의심이 확신이 되는 건 순식간이었다.
비아그라 3알을 먹은 순간.
혹시나 했던 생각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쿠구구구-
‘이게 극의…’
그 결과가 지금 모습이었다.
한층 거대해진 몸과 붉게 변한 피부.
온몸에 흐르는 기운이 피부를 강철처럼 단단하게 만드는 게 느껴진다. 그 여파로 피부 구멍 하나하나에서 수증기가 올라왔다.
스으으-
변한 건 외관뿐만이 아니었다.
2m가 넘게 커진 덩치인데도 날아갈 듯 몸이 가볍다. 단순히 몸이 깃털 같던 테크닉 모드와는 다른 감각이었다.
‘가벼우면서도 묵직하다.’
그 묘한 감각에 최종택이 가볍게 땅을 박차는 순간.
콰앙-!
폭발하는 듯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대포알처럼 날아간 그가 착지한 곳은 드레이크의 뒤쪽이었다.
순식간에 20m 거리를 주파한 것이다.
크아아아!
쿠웅-
그런 그의 밑으로 굵직한 꼬리가 떨어졌다.
그제야 최종택은 떠올렸다.
자신이 땅을 박차며 크고 두꺼운 무언가를 베고 지나간 것을. 그게 뭔가 했더니 놈의 꼬리였던 모양이다.
스으으윽-
크르르…
드레이크도 도마뱀의일종인 탓일까.
잘린 부분이 꿈틀거리더니 새로운 꼬리가 자라났다. 하나 체력을 많이 썼는지 놈도 상당히 지친 모습이었다.
반면에 그는 아직도 쌩쌩했다.
‘지금이라면 가능하다!’
그리 판단한 최종택이 다시 땅을 박찼다.
그 순간, 시야가 어두워졌다.
잠깐사이 점프한 드레이크의 그림자가 그를 뒤덮은 것이다.
‘이런 미친…!’
시작부터 이러는 건 반칙이었다.
특히 저 몸집으로 도약은 너무하지 않은가.
체급이 깡패라는 말이 어째서 나온 건지 뼈저리게 느낀 최종택이 다급하게 발을 놀렸다.
콰앙-!
‘피했…’
간발의 차로 피한 순간.
후웅-!
“흡!”
기다렸다는 듯 후속타가 이어졌다.
아까 그가 잘라서 새로 자란 그 꼬리였다.
어찌나 큰지 끝으로 맞았는데도 성인 남성보다 컸다. 웬만한 헌터라도 내장 육부가 뒤틀릴만한 위력.
‘하지만 단단하다!’
하나 극의 상태인 그에겐 큰 위력이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허리춤에 꼬리를 부여잡곤 팔꿈치로 내려찍었다.
쾅! 콰앙!
해머로 내려찍는 듯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한데 그 소리가 비정상적으로 빠르다.
쾅! 쾅! 쾅! 콰앙! 쾅!
크아아아아아아아--!!!
순식간에 수십 번의 가격이 이어지자 놈이 떠나가라 비명을 내질렀다.
“미친… 뭐 저런 무식한 싸움 법이…”
지켜보던 교관이 경악해서 소리쳤다.
교관 생활을 하며 별의별 헌터를 다 봤지만 저런 상남자는 처음이었다.
놀란 건 최종택도 마찬가지였다.
‘와우, 이게 되네.’
단순히 두 모드를 합친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위력이나 스피드가 전과는 비교가 안 된다.
‘그렇다면…!’
자신감을 되찾은 그가 다시 검을 쥐었다.
주춤주춤 물러나 경계하는 놈에게 달려간그가 몸을 회전하며 발도하듯 검을 뽑았다.
“체위술… 정상위!”
아래에서 위로.
촤악-!
하반신부터 상반신까지 정직하게 베어진 선에서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왔다.
‘쓰러트렸나?’
마법의 주문을 왼 그가 돌아보자 아니나 다를까.
제법 상처가 짙긴 해도 놈은 멀쩡했다.
크르르…!
오히려 한층 날카로워진 눈으로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투우소가 돌진 자세를 잡듯.
몸을 낮춘 놈이 앞발을 몇 번 휘젓더니 이내 온 힘을 다해 돌진해왔다.
쿠구구구-!
엄청난 압박감이었다.
그 거대한 몸이 달려올 때마다 땅이 흔들리고 먼지가 일어났다. 그런 놈을 앞두고도 그는 여유로웠다.
“체위술…”
도망치는 대신 다시금 검을 바로 쥐었다.
이윽고 놈과 부딪히기 직전.
콰앙!
그가 간발의 차로 피하자 동공의 벽이 드러났다.
멈추기엔 이미 가속도가 붙은 상황. 이내 벽과 박치기를 한 드레이크가 멈칫한 사이 최종택이 움직였다.
“가위치기!”
빠르게 휘둘러진 검.
하나 이번엔 한 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측위…! 뒤치기!”
옆에서 한 번, 그리고 반대편에서 다시 한 번.
마지막으로 등에 칼을 꽂은 그가 한 마디 덧붙였다.
“…마지막은 74다.”
쩌적-!
무언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놈의 몸에서 폭탄이 터지듯 피가 튀어올랐다.
가히 피의 분수라고 칭할 법한 모습.
그에 최종택이 검을 회수하며 낮게 읊조렸다.
“쌌다.”
섬의 보스, 드락사르가 10년 만에 잡히는 순간이었다.
2.
아직 최종택이 보스와 싸우고 있을 때.
'여기가 보스 방이지?'
동굴 앞에 선 한지수가 마른 침을 삼켰다.
멀리서도 느껴졌다.
쿠웅! 쾅-!
'이미 싸우고 있구나.'
묵직하게 울려 퍼지는 전투의 흔적이.
어찌나과격하게 싸우는지 이게 정녕 보스와 인간의 싸움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땅이 울릴 때마다 무지막지한 기운이 퍼진다.
멘티스 때와 비교해도 압도적인 기운.
'분명 종택이겠지.'
저런 전투가 가능한 건 그녀가 아는 한 그밖에 없었다.
그 괴음 앞에서 한지수는 각오를 마쳤다.
휙.
그리곤 등을 돌렸다.
'이 정도 싸움에서 난 방해야.'
아무리 그녀가 불꽃의 지배자 보유자라 해도 저기서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으니까.
그녀는 민폐가 되고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특히나 그 대상이 최종택이라면 더더욱.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종택이라면 분명 잡을 수 있을 거야.'
그 멘티스도 손쉽게 잡아냈던 그다.
더 성장한 지금, 그가 승리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그녀였다. 그렇게 아쉬움을 뒤로하고 떠나려는 순간.
"…어?"
"…응?"
뒤돌아가는 중 한 여자와 마주쳤다.
한눈에 봐도 있는 집 자식처럼 보이는 여자였다.
고귀함이 뚝뚝 묻어나는 분위기에 맞지 않게 다소 작은 몸집과 앳된 얼굴.
'…그때 옆에 있던 여자잖아?'
승급 시험 첫날.
종택이의 옆에 몰려온 여자 중 하나임을 기억한 그녀가 눈매를 좁혔다.
그리고 그건 정연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분 옆에 붙어 있던 여시?'
동시에 둘은 세한 감을 느꼈다.
여자의 촉이었다.
'저 여자… 그분이랑 뭔가 있는 거 같아.'
'저 사람… 분명 종택이랑 연관이 있어.'
놀라울 정도의 적중률.
하나 물증이 없었기에 둘은 그저 입술을 짓씹을 수밖에 없었다.
대뜸 종택이랑 무슨 관계냐고 따질 순 없지 않은가.
"……"
"……"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자리를 비켜줄 법도 하건만 누구 하나 양보하는 이가 없었다. 마치 이 자리를 양보하면 다른 걸 주게 된다고 여기는 것처럼.
땅이 울릴 정도로 큰 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쿠웅!
-시험 종료!
곧이어 섬 전체에서 진행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완장 69개에 보스를 처치한 최종택! 204포인트로 우승! 이어서 2위는 61포인트로……
'아! 결국 우승했구나!'
'역시 믿어 의심치 않았어요…!'
두 여자가 동시에 반응했다.
반응 또한 비슷했다.
한 명은 친구의 우승에 대한 기쁨을, 다른 한 명은 동경하는 사람의 우승에 대한 축하를 하고 있었으니까.
축하 이후의 반응 또한 같았다.
"…!"
"…!?"
그의 우승에 기뻐하는 서로의 모습에 흠칫 몸을 떨더니 대뜸 서로를 째려보았다.
둘의 눈매가 날카로워졌다.
'역시 뭔가 있어.'
'저 여자… 그분과 무슨 관계지?'
아무래도 경쟁자가 생긴 것 같았다.
설마 새로운 여자가 추가됐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하는 그녀들이었다.
3.
B등급 보스.
그게 뜻하는 바는 조금 특별했다.
B등급은 같은 등급 사이에도 급이 나뉘는 탓이었다.
유독 B등급에 A등급에 필적하는 보스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이다. 반면 B등급일지언정 C등급 최상위와 별반 차이가 없는 보스도 허다했다.
'진짜 존나 빡셌다.'
섬의 보스 드락사르.
놈의 급은 결코 일반적인 B등급이 아니라 최종택은 확신했다.
'멘티스는 존나 귀여운 수준이네.'
이전에 상대했던 보스와는 차원이 달랐으니까.
A등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아…"
그가 후련한 얼굴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그런 그의 귓가로 익숙한 알림음이 들려왔다.
[풀발이 해제됩니다.]
극의를 쓴 후유증일까.
온몸이 뻐근하게 저려온다.
손가락 하나 움직일 힘이 없었지만, 심장은 빠르게 뛰고 있었다.
강한 보스였던 만큼 승리의 쾌감이 더욱 컸던 것이다.
'이게 씨발, 헌터지.'
동경했던 TV 속 영웅.
그런 그들의 심정이 어떠했는지 조금이나마 체감이 된다.
섹스의 쾌감에 결코 꿇리지 않았다.
스스로의 강함에 도취하는 모습이 썩 보기 좋진 않았지만, 알 바 아니었다.
그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최종택 씨. 축하드립니다."
"설마 그 드락사르가 잡힐 줄이야…"
지켜보던 교관들이 우르르 몰려와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런 그들의 시선에는 감탄을 넘어 경외심이담겨있었다.
그 정도였다.
최종택이 이루어낸 업적의 수준은.
'진짜 대단하네.'
'현 S등급들과 같은 수준이라는 거 아냐. 미리 눈도장 찍어놔야지.'
'어디서 이런 괴물이 나온 거지?'
섬의 보스를 잡아낸 것, 그건 현 5대 길드 마스터와 같은 업적이었으니까.
그게 이유였다.
"혹시 드락사르의 시체를 어떻게 쓰실지 생각하신 게 있으신가요?"
최종택을 향하는 말투가 공손해진 이유.
그 태도를 그는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당연하다는 듯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음… 글쎄요. 사실 그런 것까진 생각을 안 했어서."
사실 정말 생각이 없던 거긴 하다.
어쩔 수 없었다.
'그동안은 재료들이 좋지 않아서 쓸만한 게 없으니…'
평소 그가 잡던 재료로는 무기는커녕 악세사리 하나 만들기도 애매했으니까.
그만큼 아티펙트는 품질이 중요했다.
'그나마 좋았던 건 멘티스 때였지?'
하지만 그땐 돈이 중요했을 때라 돈으로 받아버렸었다.
하여튼물어보긴 했으니 잠시 고민하던 그가 적당히 대답했다.
"뭐, 무기나 만들지 않을까 싶네요."
"그렇군요."
그러자 교관들이 결연한 얼굴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 시체는 헌터 협회가 책임지고 좋은 무구로 만들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다시 한 번 축하드립니다, 최종택 씨."
"아… 감사합니다."
이게 얘기가 그렇게 되나?
좀 의아하긴 했지만 나쁠 건 없었다. 헌터 협회표 무기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할 정도였으니까.
'권 노아가 있으니 당연한 거겠지만.'
세계적인 대장장이 권 노아.
그녀가 몸을 담그고 있는 것이 협회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 예약해도 1년 이상은 걸린다던데.'
그런 협회가 책임지고 무구를 만들어준다는데 이득이면이득이지 결코 손해는 아니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보내자 곧 호르라기 소리가 울렸다.
-시험 종료!!
'끝났구나.'
그 소리를 들으며 최종택이 지그시 눈을 감았다.
썩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