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화 〉풀발 2단계 극의! (2)
44화.
8.
거대한 동굴.
보는 것만으로도 오싹해지는 공허한 동굴 앞에 선 순간 알림이 울렸다.
[섬의 보스를 파악했습니다.]
“맞네.”
알림 시스템.
육각형 모양을 한 손바닥만 한 크기의 기계의 기능.
협회에서 괜히 잘못 들어가서 보스한테 전멸당하지 말라는 의미에서 준 장치였다.
‘음. 성능 좋고.’
반대로 생각하면 보스 찾기 가장 확실한 장치이기도 했다.
장치를 다시 배낭에 넣은 최종택이 주위를둘러보았다.
개미 한 마리도 돌아다니지 않는다.
“되게 조용하네.”
예상외였다.
좀 전에는 포효가 울려 퍼져서 경쟁자가있을 거라 생각했건만.
한데 조금 생각해보니 당연한 결과였다.
‘하긴, 잡는 게 미친 거라 했었으니까.’
보스에게 괴멸당하는 순간 완장을 압수당하니까.
그리고 그 완장의 수만큼 보스를 잡는 사람에게 추가점수가 붙는다.
악랄한 페널티였다.
‘어지간한 각오로는 트라이조차 못하겠네.’
협회의 의도가 분명히 보이는 제도였다.
‘이벤트는 이벤트로 즐기라는 거겠지.’
이쯤 되니 세삼 긴장된다.
‘얼마나 강할까.’
현 S등급 헌터들을 제외하곤 아무도 클리어하지 못한 보스.
놈은 과연 어느 수준일까.
멘티스 때보다 더 강할까?
‘최소 걔보단 강하겠지.’
묘한 긴장감과 기대감이 전신에 퍼진다.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것을 느낀 최종택이 피식 웃었다.
‘헌터 다됐네.’
언제부터일까.
전투를 앞두고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된 것은.
방구석에 박혀서 상딸이나 치던 게 엊그제 같건만….
이제는 어엿한 헌터의 모습이었다.
“그럼 준비해볼까.”
감상은 여기까지였다.
스윽.
주머니에 손을 넣은 그가 작은 통을 흔들었다.
하나, 둘, 셋.
세 개의 알약을 꺼낸 그가 망설임 없이 입안에 털어 넣었다.
띠링-
[과도한 기운이 생성되고 있습니다.]
[방어 시스템이 재개됩니다.]
“좋아.”
평소와는 다른 메시지.
하나 그는 전혀 당황스런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이번에도 의도했던 대로 돼서 다행이야.’
늘 고민이었다.
풀발 2단계의 지속시간을 늘릴 순 없을까.
혹시라도 강한 상대를 만나 지속시간 안에 끝내지 못한다면 역으로 당하는 건 자신이 없을까.
그렇게 그는 시험 전날까지 체력훈련과 더불어 풀발에 대해 연구했다.
그리고 발견했다.
‘한 번에 여러 알을 복용하면 시간차로 발동된다니… 홧김에 먹었던 건데 운이 좋았지.’
시간차로 발동되는 대신, 지속시간도 보다 길어진다는 것을.
서서히 올라오는 기운을 느끼며 최종택이 동굴 안에 발을 들이밀었다.
“그럼 1위 찍으러 가볼까.”
크아아아-!
그 말에 대답하듯 거친 포효가 들려왔다.
최종택, 그가 첫 솔플 레이드를 준비하는 순간이었다.
9.
동굴 안은 넓었다.
터벅터벅, 몇 번이나걸었는지 모를 정도로 끝도 없이 이어졌다.
강당을 걷는 것처럼 치이는 게 없었고, 천장에 닿으려면 엘리베이터를 설치해야 할 정도로 높았다.
그 넓은 동굴을 외곽 벽에 박힌 수많은 마정석이 밝히고 있었다.
‘흠….’
감탄할 법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내 그가 눈썹을 찌푸렸다.
“쓰읍.”
그 사람에 대해 보다 자세히 알고 싶으면 방을 들어가 보면 된다고 한다.
방 안엔 그의 습관과 성격이 고스란히 담겨있으니까.
보스의 경우도 이와 비슷했다.
‘…이 보스 새끼, 얼마나 큰 거야?’
놈의 둥지의 크기나 디자인, 냄새를 보면 얼추 예상이 가는 것이다.
그 관점으로 봤을 때.
‘이 정도면 못해도 6m는 넘을 거 같은데… 무슨 진격의 거인도 아니고 뭔.’
섬의 보스는 상상이상의 몸집을 자랑한다는 결과가 나온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정확히 적중했다.
쿠아아아아!!
동굴을 지나 학교 운동장만한 동공에 발을 들이미는 순간 놈이 포효를 내지른 것이다.
그 모습에 최종택이 혀를 내둘렀다.
“워…”
살벌한 사이즈였다.
그 드높던 천장이 낮아 보일 정도로.
포효 한 번 내질렀을 뿐인데 풍압이 장난이 아니다.
찌푸린 눈살 사이로 드러난 도마뱀 눈깔을 확인한 최종택이 경악했다.
‘드래곤?’
하나 곧 고개를 저었다.
날개가 없는 걸 확인한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그는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드래곤이면 뒤도 안 돌아보고도망치려했는데 다행이네.’
드래곤이 진정 무서운 건 비행능력이다.
창공을 날아다니며 브레스와 마법을 퍼부으니 상대할 재간이 없는 것이다.
마법과 날개가 없는 드레이크라면 충분히 상대할 법했다.
‘근데 저건 티라노야 뭐야? 왜 저리 커?’
하지만 그건 상대적일 뿐.
저 거대한 덩치를 어떻게 잡아야 하나 막막했다.
‘데미지가 박히긴 하려나?’
고민할 시간은 없었다.
놈이 그를 향해 주둥이를 벌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주둥이 사이로 붉은 빛이 맴도는 걸 보니 브레스를 쏘려는 게 틀림없었다.
“오우, 시작부터 화끈한걸.”
드레이크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스킬.
그에 최종택도 조금 전부터 터질 듯 솟구치는 기운을 풀었다.
“필살기라면 나도 있지. 풀발 2단계…”
띠링-
[풀발 2단계가 발동되었습니다.]
“…테크닉 모드!”
익숙한 알림과 함께 솟구치는 풀어낸 최종택이 곧장 검을 쥐었다.
동시에 뿜어지는 브레스.
지름 5m가 넘어가는 압도적인 공격에도 그는 물러나지 않았다.
‘피하기엔 늦었어.’
그 대신 검을 뽑았다.
“체위술… 가위치기!”
발도한 그의 검이 유려하게 움직였다.
부드럽게, 하지만 정확한 검로로 휘둘러진 검 사이로 드레이크의 눈이 언뜻 보였다.
브레스를 베어낸 것이다.
아주 찰나의 순간이 지나고,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지만 그거면 충분했다.
타앗!
테크닉 모드가 된 그에겐 많은 시간이었으니까.
잠깐의 틈 사이로 피한 그가 곧장 은신을 썼다.
크르르…
드레이크 입장에선 브레스에 흔적도 없이 소멸된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으리라.
실제로 모니터로 지켜보던 교관들은 난리가 났다.
“미친…! 죽었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고…? 브레스가 그 정도로 강하진 않을 텐데!”
“맙소사. 우린 다 잘릴 거야.”
무려 이번 기수 수석이다.
-승급시험을 보던 수석 유망주 사망. 헌터협회, 과연 이대로 두어도 되는가.
그런 기사가 헤드라인을 장식할 미래가 훤히 보인다.
담담한 목소리가 흘러나온 건 그때였다.
“진정하고 저길 봐라. 멀쩡히 살아있지 않나.”
“아…?”
“저, 정말이네요!”
이진혁 교관의 말에 교관들이 곧장 화면을 뚫을 기세로 쳐다봤다.
그의 말대로 화면 속 최종택은 멀쩡했다.
-내부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주지…
아니, 멀쩡하다 못해 허공을 날아 드레이크의 명치에 칼을 박아 넣고 있었다.
바닥에 착지한 그가 나직하게 말을 이었다.
-체위술… 74!
그와 동시에 무언가 끓는 소리가 나더니 무언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내부에서 충격파가 터진 것이다.
크아아아아!
피해가 상당했는지 드레이크가 고통에 찬비명을 내질렀다.
거대한 몸집이 발버둥 치니 그것만으로도 위압적이게 느껴진다.
-역시 74…
본인도 감탄한 듯 중얼거리는 최종택.
그런 그를 보던 김우진 교관이 감탄과 의문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대단한데… 기술명이 왜 저래?”
“…크흠.”
듣고 있던 예나 교관이 헛기침을 했다.
그런 그녀를 이상하게 쳐다보자 예나가 괜히 말을 돌렸다.
“집중하시죠. 기술명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아……”
아닌데.
저건 좀 중요한 거 같은데.
그 말이 목구멍까지 치솟았지만, 곧 이어진 긴박감 넘치는 전투에 김우진도 화면에 집중했다.
파앗!
서걱- 콰앙!
무지막지한 속도로 움직이는 최종택.
그리고 그런 그를 쫓지는 못해도 꿈쩍도 않는 드레이크.
둘의 공방이 계속되었다.
“미친… 이게 그 찐따 같은 D등급 헌터의 싸움 수준 맞냐?”
“진짜 세계관 최강자들의…”
“그만해라.”
장난 끼 많은 김우진이나 유지아 교관 외엔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그저 감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미쳤다. 진짜…’
‘난 D등급 때 뭐했냐.’
‘저 정도면 현 S등급들 소싯적이랑 견줄 수 있는 거 아닌가? 나보다 센 거 같은데…’
그 정도였다.
최종택이 보여주는 수준은.
묵묵히 지켜보던 이진혁 교관도 내심 감탄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대로 꽃을 피웠군…. 그새 더욱 성장했어.’
볼 때마다 이례적으로 성장한다.
늘 새로운 자극을 주니 보는 맛이 있는 남자였다.
‘…탐이 나는군.’
오죽하면 그가 욕심을 품을 정도로.
이상하게 그를 보면 소싯적이 떠올랐다.
저런 사내가 협회에 온다면 길드와의 균형이 더욱 잘 맞춰질 텐데….
‘욕심이겠지.’
하지만 이진혁은 탐욕을 마음 한 구석에 밀어 넣었다.
욕심 때문에 저 앞날이 창창한 유망주를 가둘 수는 없지 않은가.
때문에 그저 묵묵히 전투를 바라보았다.
그가 이기기를 응원하면서.
“흠?”
그의 눈에 이채가 발한 건 그때였다.
재빠른 움직임으로 착실하게 레이드를 하던 최종택이 돌연 멈춘 것이다.
한데 어딘가 조금 이상했다.
-진정한 남자는… 모든… 갖춰야하…
쉴 새 없이 주문을 외우는 게 아닌가.
그러자 그에게서 뿜어지는 기운이 완전히 달라졌다.
콰앙!
그 순간, 드레이크의 꼬리가 멈춰있는 그를 향해 맹렬히 휘둘러졌고,
“…아니!”
“맙소사!”
모두가 두 눈을 부릅떴다.
10.
‘미친.’
최종택은 내심 감탄했다.
엄살을 부리긴 했어도 내심 자신만만했다.
적어도 D등급 내에선 적수가 없으리라 생각했었으니까.
크아아아-!
한데 아니었나보다.
그렇게 피해를 입고도 드레이크는 쌩쌩한 상태였다.
오히려 신경이 예민해졌는지 더 흉폭해졌다.
‘존나 단단하네 진짜.’
테크닉 모드에 체위술까지 사용했는데도 고작 저 정도 데미지라니.
현 S랭크들이 D등급 때 저걸 잡았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구라 아냐?’
자기야 자박꼼이라는 편법이 있다 치고.
그들은 대체 무슨 수로 저 괴물을 혼자 잡았단 말인가.
‘하긴… 그러니까 S등급이겠지.’
규격외의 괴물들.
지금 최종택이 하려는 건 그들과 동일시되는 일이다.
오히려 쉬운 게 더 이상했다.
‘거근 모드는 놈과 상성이 안 좋아.’
놈의 맷집은 일반적인 수준이 아니다.
게다가 공격력이 강하며 저 덩치에 안 맞게 빠르기까지 하다.
거근 모드의 완벽한 상위호환.
그렇다고 테크닉 모드로만 잡자니 결정타가 없다.
‘체력 싸움으로 가면 결국 내가 져.’
뭔가 다른 방안이 필요했다.
입술을 짓씹던 그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만은 사용하지 않으려했는데…’
그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런 그의 입에서 주문을 외는 듯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진정한 2단계는 자유자재로 가능해야 한다. 그리고 진정한 남자는 모든 게 갖춰줘야 하지…”
스으으-
그의 몸 위로 수증기가 올라왔다.
기운이 내부에서 맹렬히 회전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걸까.
크아아아!!
드레이크가 거대한 덩치를 이끌고 달려들었다.
정신을 집중한 상태에서 간발의 차로 피해낸 최종택이 마저 말을 이었다.
“전희의 테크닉과 단단함의 거근, 그것의 조화…! 그게 극의다!”
후웅-!
그 순간, 드레이크가 몸을 회전했다.
거대한 꼬리가 사각에서 그를 덮쳐왔다.
이윽고 묵직한 꼬리에 닿기 직전, 그가 선언하듯 말했다.
“풀발 2단계… 극의!”
최종택, 그의 기운이 폭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