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1화 〉둘 다 상을 주지 (1) (41/124)



〈 41화 〉둘 다 상을 주지 (1)

41화

10.

“으음…”

아리아는 지금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맛있군요.”
“그쵸? 멧돼지 고기가 은근 맛있더라고요.”

잠에서 깨어보니 웬 모르는 여자가 최종택과 식사를 나누고 있는 게 아닌가.
심지어 그녀도 익히 아는 여자였다.

‘서리 길드?’

서리 길드에서 키운 유망주.
아직 D등급이지만 실력은 그 이상이라 이미 승급이 확정된 여자.
임무 성공률이 100퍼센트에 가깝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저여자가 왜?’

그래서 더 의문이었다.
그 유명한 여자가  여기 있단 말인가.
신출귀몰하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건 너무 소리 소문 없었다.
심지어 분위기도 묘하다.

‘…왜 이렇게 달달한데.’

사실 신혼부부처럼 달달한 그런 분위기는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대화수도 적어서 삭막해 보이는 모습.
하나 여자의 감이 강하게 말하고 있었다.
저  사이에 뭐가 있다고.
그리고 그건 어젯밤에 이루어졌다고.

‘헉! 설마…?’

문득 스쳐지나간 망상에 그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최종택이 핀잔을 주었다.

“넌  먹냐? 또 칭얼거릴 거 같아서 많이 해놨는데. 일어나자마자 왜  때리고 있어?”

그에 아리아가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

“당신! 내가 자고 있을 때 혹시…?”

그러자 곧장 대답이 돌아왔다.

“어, 했어.”

괜히 또 변명해봤자 귀찮아질 게 뻔하다는 판단에서였다.
한데 과정이 너무 없었나보다.
아리아의 얼굴이 멍해졌다.
충격이 상당히 컸는지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한 그녀가 부르르 떨며 소리쳤다.

“어쩜 그리 파렴치한…!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요  쓰레기!”
“그건 제가 해야 할 소리 같은데요.”

이번엔 대답이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
묵묵히 식사를 하던 유연이었다.
그녀가 특유의 날카로운 눈으로 아리아를 노려보자 아리아가 황당하다는  헛웃음을 뱉었다.

“뭐라구요? 지금 그쪽이 그런 말  처진가요?”
“제가 할 말입니다만.”

정실과 후실이 만나면 이러할까.
아니, 이건 서로 자신이 정실인 줄 아는 후실의 만남이었다.
서로를 괘씸하다는 듯 노려보고 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듯 살벌하던 기세싸움을 끝낸 건 최종택의 한 마디였다.

“제발 아침은 조용히 먹자.”
“……”
“……”

놀랍게도  다 조용해졌다.

‘뭐지, 이 정도의 효과를 기대한 건 아니었는데.’

 성깔 하는 여자들이라 따지고 들 줄 알았는데 예상외로 순종적이다.
이게 말로만 듣던  남자에겐 순종적인 그런 건가?
어찌됐든 좋은 일이었다.

‘2박3일중 벌써 1박이 지났어.’

생각을 이어나갈 환경이 만들어졌으니까.

‘지금 모은 완장은 9개.’

적은 양은 아니다.
랭킹을 확인할 순 없지만,웬만한 유망도 하루 만에 열두 명을 사냥하는  힘들 테니까.
아직까진 꽤 좋은 성적이었다.

‘이런 식으로 다니면 완장 모으기 힘들 거 같은데…’

아직까지는 말이다.
최종택의 시선이 잠시 두 여자에게 닿았다. 조용히 하랬더니  안 나게 서로 노려보고 있다.

‘유연 씨는 몰라도 쟨 분명 문제 있어.’

실제로 전과도 있다.
야생의 포니테일이 따라붙을 때 완장을 얻은 횟수가 확 줄어들지 않았는가.
저 비겁함이라고는 조금도 모르는 여자를 어떻게든 떼어내야 했다.
문제는 저 거머리를 어떻게 떼어 내냐는 거다.

“쓰읍… 이거 1위할 수 있을까.”

답답함에 절로 한숨이 나온다.
그런데 그때였다.

“흠흠, 종택 씨.”

작게 중얼거린 말을 들은 건지 아리아가 선심 쓰듯 말했다.

“저는 완장이 필요 없습니다. 굳이 완장 없어도 그간 쌓은 게 있어서 승급하는 데 문제가 없거든요.”

그러면서 기대하는 눈으로 쳐다본다.
뭐지, 칭찬해달라는 건가?

“쯧. 그 정돈 당연한 거 아닌가요.”

한데 입을 열기도 전에 다른 쪽에서 대답이 들려온다.

“그런 기본적인 걸로 생색을 내다니… 당신은 종택 씨 옆에 있을 자격이 없군요.”
“뭐라구요!? 그러는 당신은 제가 먼저 말하기 전까지 생각도 못한 거 다 알거든요!”
“너무 기본적인 거라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었으니까요. 당신은 숨 쉬는 걸 일일이 말하면서 쉬나요?”
“이익…! 이 비겁한 여자! 어물쩡 넘어가는 여자답지 못해요!”

그 대답을 계기로 아주 물꼬가 트였다.
이러다간 끝이 없을 것 같아서 최종택이 끼어들었다.

“알았으니까 좀 닥쳐요. 둘 다.”
“……”

말은 참 잘 듣는다.
아직 남아있는 게 많은지 서로를 노려보면서도 입은 꾹 다문  보면.
절레절레 고개를 저은 최종택이 다시 생각을 이어갔다.
뭐랄까.
저 거머리를 떼어내면서도 쉽게 완장을 얻을 수 있는 그런 방법이 없을까.

‘그런  있을 리가 없지.’

그건 너무 과한 욕심이었다.
피식 웃은 최종택이 눈싸움을 하는 두 여자를 본 건 그저 우연이었다.

‘어?’

둘을 보고 뭔가 떠오른것도 우연이었다.
한데  결과가 아주 기가 막힌다.

‘이거 괜찮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훌륭한 생각에 최종택이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곤 다소 진지한 어조로 물었다.

“그러니까 둘 다 완장이 필요 없다는 거죠?”
“물론이죠!”
“물론입니다.”

동시에 대답이 나온다.
예상했던 대답에 최종택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때요?”
“…?”
“둘  완장을 더 많이 모아온 사람에게 상을 드릴게요.”
“…!”

침묵이 가라앉았다.
무슨 상이라고는 말하지 않았지만, 최종택의 미소나 분위기에서 이미 답이 나왔다.
이건 분명 포상이다.
거기까지 생각이 이른 순간.

타앗!

“아앗!”

유연이 자리를 박차고 뛰어갔다.
한 발 늦게 상황을 파악한 아리아가 이를 갈았다.

“비겁하게…!”

그러면서 묵직한 방패를 들고 허겁지겁 뒤를 쫓는다.
그런 둘의 콩트를 보며 최종택은 후련한 얼굴로 팔짱을 꼈다.

“하아… 조용해졌다.”

 명이 없어졌을 뿐인데 세상 조용하다.
그래, 이게 서바이벌이지.
만족스런 얼굴로 배낭을 멘 최종택이 걸음을 옮겼다.

“그럼, 이제 완장 모으러 가볼까.”

둘이 얼마나 모아올지는 몰라도 그는 그 이상을 모을 생각이었다.
최종택, 그가 본격적인 사냥을 나섰다.

1.
보통 서바이벌은 팀을 이룬다.
당연한 결과였다.
혼자 살아남는 것보다 여럿이서 살아남는 게 더 편하니까.
그리고 그만큼 적이 줄어드니까.
가뜩이나 유망주가 많은 승급시험에서 헌터들이 팀을 이루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봐도 될 정도였다.

“그거 다 실력 없는 얘들이 그러는 거 아님?”
“난 혼자서도 쌉가능.”
“혼자 해야 완장도 독식하지. 파티해서 나누면 언제 좋은 성적 얻을 건데?”

물론 솔플을 고집하는 헌터들의 수도 적진 않다.
그런 그들의 논리도 틀린 건 아니었다.
단순계산으로 보면 파티보다 솔플을  때 얻을 완장이 훨씬 많은  사실이니.
유독 첫 날에 솔플이 많은 이유이기도 했다.
동시에 첫 날에만 솔플이 많은 이유이기도 했다.

“아이씨, 무슨  모드도 아니고… 혼자 하니까 못해먹겠네.”
“치사한 새끼들…! 나도 팀 짠다.”
“딱 대라. 팀원 끌고 복수하러 간다.”

몇 시간만 지나도 그 생각이 아주 틀려먹었다는 걸 뼈저리게 깨닫게 되니까.
단순한 원리였다.
혼자보다는 둘이 강하고, 둘보다는 셋이 강하다.
이 단순한 원리를 가장  지키는 게 박중혁이었다.
그는 첫날부터 4인 파티를 구성했고, 승승장구하며 완장을 모았다.

“벌써 21개다.”

그렇게 모은 완장만 21개.
 사람씩 나눠도 5개가 넘는 완장을 모은 것이다.
때문에 그는 자신의 생각이 옳았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대로 가다가 우승하는 거 아냐?’

그런 꿈마저 품었다.
저 괴물을 마주하기 전까지는.

콰앙-!

“마, 막아! 어떻게든 막아!”
“씨발! 지금 방패 찌그러진  보여? 딜 좀 넣어보라고!”
“저렇게빠른데 어떻게 맞추라고!”

그것은 천재지변에 가까웠다.
단신으로 자신들을 압도하고 있는 저 ‘괴물’이 천재지변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저건 자신과 같은 등급의 범주가 아니었다.

“체위술… 가위치기!”
“피, 피해!”
“커헉-!”

서바이벌용  한 자루를 들고 요상한 주문을 외우며 휘두르는데 그 위력이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분명 타격을 입히기 힘들게 만들어진 구조건만.
 검을 휘두를 때마다 최소 치명상이 터져나갔다.

‘저게 말이 돼?’

그나마 자신은 탱커라 버티는 거지.
자칫하고 공격을 허용한 검사는 한 방에 넉다운이 되어버렸다.
신기한 광경이었다.
분명 왼쪽에서 베인 걸 봤는데 정작 공격이 양쪽에서 교차로 들어온 것이다.
마치 가위에 잘린 것처럼.

“당황하지 마! 스킬이 특이하긴 해도 저놈은 일단 검사다! 거리를  좁히게 사격해! 거리를 벌리란 말이야!”

위축된 두 남녀의 모습에 박중혁이 소리쳤다.
그 말에 그들이 고개를 들었다.

‘…맞아.’
‘끽해봐야 저놈은 혼자야. 아무리 뛰어나도 다구리엔 장사 없잖아?’
‘중혁이가 나름  버티고 있기도 하고…’

무엇보다 C등급 방어스킬을 가진 박중혁이  버텨주고 있다.
사기가 오른 두 남녀가 시위를 쥐었다.
그들 남매의 전매특허, 피어싱을 쏘아낼 생각이었다.

‘이건 너도 버틸 수 없을 거다…!’

피어싱.
궁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속사에는 못 미치지만, 그에 준할 수 있는 딜링기!
흔히 관통샷이라 불리는 이 스킬은 거리나 속도에 따라 추가 딜이 붙는다.

‘그래도 나름C등급짜리라고…!’

그들의 피어싱은 C등급.
스킬 종류나 등급에 따라 위력이 천차만별이지만, C등급만 되도 어디 가서 꿇리지는 않는다.
피어싱 자체가 희귀한 스킬이니.
그런데  순간.

콰앙-!

“커헉!”

굳건하게 버텨줄 것만 같았던 박중혁이 볼품없이 날아갔다.
불과 몇 초만의 일이었다.
방패가 사정없이 찌그러지고 갑옷도 성한 구석이 없었다.
나무에 처박힌 채 미동도 없는 그를 본 남매의 동공이 크게 흔들렸다.

“미, 미친…!”
“일단 쏴!쏘라고 오빠!”
“아직 게이지가 다 안 찼는데…”
“지금 그게 중요해? 쏘라고 그냥! 이러다 다 죽어!”

그녀의 말이 맞았다.
탱커가없는 이상 더는 버텨줄 사람이 없다.
기회는 지금 뿐.
이번 이후에 다시 피어싱을 기회가 찾아오는 행운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쏜다!”
“체위술…”

이윽고 그가 시위를 놓으려는 순간.

“가위치기! 그리고 뒤치기!”

어느새 남매의 뒤에 나타난 남자, 최종택이 검을 휘둘렀다.
검이 부드럽지만 빠르게 움직였다.
남자의 허리를 스쳐간 가위와 여자의 등을 찍은 검.

“커헉…!”
“아악!”

순식간에 둘을 넉다운 시킨 최종택이 머리를 긁적였다.

‘뭘 자꾸 싼다고 그런대… 거참.’

덕분에 마지막까지 풀발을 유지하기 편했다.
완장을 집어든 그가 속으로 개수를 셌다.

‘오늘만 43개.’

어제 모은 것까지 합하면 55개다.
썩 괜찮은 성과였다.
 성과에 최종택이 싱글벙글 미소를 지었다.

‘오늘따라 파티가 많아서 좋네. 한 탕 뛸 때마다 이게 몇 개야.’

마치 경험치 2배 이벤트를 하는 것만 같다.
전투한 횟수만 보면 어제보다 적은데 소득은 더 크니 사냥할 맛이 났다.
파티가 많아진 덕이었다.
보람찬 기분으로 고개를  그가 침음을 냈다.

‘흠. 벌써 어두워지기 시작했네.’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었다.
해가 지고 달이뜨고 있는 시기.

‘어쩐다…’

한 탕 더 뛰자니 금방 해가 질 것 같고, 그냥 자자니 한창 물이 올라서 아쉽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그러고 보니 둘은 언제 오는 거지? 슬슬 올 때 된 거 같은데…’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던가.
저 멀리서 다소 상처 입은 유연과 아리아가 터덜터덜 걸어오는  보였다.
한데 오는 방향이 다르다.

“제가 왔습니…어?”
“…쯧. 당신도 왔군.”

그녀들도 뒤늦게 발견하곤 질세라 눈살을 찌푸린다.
그런 둘을 보며 최종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음. 오늘 장사는 접자.’

저 둘이 온 이상 사냥은 끝이었다.
고민을 한순간에 종식시켜준 둘에게 고마움을 표하며 물었다.

“여긴 또 어떻게 알고  거죠?”
“…여자의 감입니다.”
“흥. 그런 있답니다.”
“……”

이쯤되니 그런 생각마저 든다.
여자의 감이 단순히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스킬이 아닐까 하고.
저 감이 틀린 꼴을 못 봤거든.
머리를 긁적인 그가 본론으로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몇 개나 모아왔는데요?”
“7개입니….”
“무려 7개라…!”

동시에 대답하던 둘이 멈칫하곤 서로를 노려본다.

“당신이 일곱 개나 구했다구요? 허, 쉬운 상대를 만났나보네요.”
“…상상은 자유인 법이죠. 당신한테 당해주는 헌터가 있다는 게 더 놀랍습니다만.”

그러다 뒤늦게 무언가 깨달았는지 침울해진다.

“…무승부네요.”
“…그렇군요.”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받지 못한 아이처럼.
기대감으로 가득 차있던 얼굴이 실망으로 번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착각은 절대 아니었다.

[유연]
[특이사항]
[무척 침울해하는 중]
[고대했던 포상을 받지 못하여 서러움]

[아리아]
[특이사항]
[느린 속도로 노력했는데 결실을 맺지 못함]
[서러워서 눈물이 나올 지경]

갓보기 구멍이 그렇게 말하고있었으니까.
최종택이 피식웃으며 말했다.

“무승부라… 그럼 둘 다 상을 줘야겠네요.”
“…!”

그 말에 숙였던 고개가 튕겨 올려왔다.
최종택이 천천히 다가오는 모습을 본 두 여자가 꿀꺽 침을 삼켰다. 이윽고 그녀들의 앞에  순간.

띠링-

[특이사항이 추가됩니다]
[밑이 조금씩 젖고 있는 중.]

둘에게 동시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묘한 기대감을 안고 빤히 올려보는 그녀들을 보며 최종택이 바지 지퍼를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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