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야생의 포니테일 (3)
40화
8.
어느새 깊어진 밤.
치이익-
노릇노릇 구워진 멧돼지 다리를 들며 최종택이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와씨, 이제야 밥을 먹네.’
얼마나 오래 기다려왔던 밥인가!
배꼽시계가 울린 후에도 섹스를 몇 번이나 했더니 뱃가죽이 달라붙다 못해 늘어질 지경이었다.
‘크으… 존맛탱.’
그런 배속에 육즙이 좔좔 흐르는 고기가 들어가니 호화도 이런 호화가 없다.
본래 무언가 들어가면 배고픔이 배가 되는 법.
최종택은 걸신들린 거지처럼 멧돼지 고기를 입 안에 쑤셔 박았다.
그런 그의 옆에서 아리아도 조신하게 앉아 식사를 했다. 다리 하나를 클리어 한 그녀가 고기를 집으려고 손을 뻗을 때였다.
“…어? 어어?”
없었다.
푸짐하게 쌓여있어야 할 고기가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 3개 남은 고기를 멍하니 바라보던 그녀가 대뜸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이익… 이런 비겁한 사람! 천천히 좀 드시죠! 제 몫이 없어지잖아요!”
“…?”
그에 고기를 씹고 있던 최종택이 얼굴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이거 내가 잡고 요리한 고긴데? 네가 갑자기 끼어든 거잖아.”
심지어 그녀는 분명 입맛이 없다고 했다.
이건 야식 안 먹는다해서 라면 하나만 끓였더니 대뜸 젓가락을 들이미는 누나와 다를 게 없지 않은가.
하지만 누나도 그랬듯, 아리아는 당당했다.
“치사한 사람! 한국에서는 음식으로 차별하는 게 가장 치사하다 들었어요!”
“응, 여긴 한국 아냐. 섬이야. 먹고 싶으면 미리 말을 하던가.”
“이익…! 됐어요,안 먹어요!”
토라졌는지 그녀가 휙 고개를 돌린다.
그리곤 쿵쿵거리며 자리를 뜨는데 최종택은 분명 봤다.
그녀의 손에 들린 고기 3조각을.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 그가 헛웃음을 흘렸다.
‘이거 뭔… 초딩도 아니고.’
21살이나 먹었으면서 하는 짓은 애기였다.
외국인이라 좀 다른 건가?
문득 생각이 들었지만, 최종택은 곧 고개를 저었다.
저건 그냥 쟤가 어린 거다.
“뭐, 적당히 놀리다가 하나 더 구워주려 했는데… 어쩔 수 없지.”
작게 중얼거리자 침낭을 꺼내던 아리아의 귀가 쫑긋했다.
고민하는 듯 멈춰있던 그녀가 헛기침을 했다.
“……그러하다면 어쩔 수 없군요.”
그러면서 자연스레 옆자리에 앉아 접시를 꺼내든다.
태세 전환이 탈룰라 급이다.
어이없기도 하고 좀 웃기기도 해서 빤히 바라보자 민망했는지 슬쩍 시선을 피한다.
‘진짜 솔직하지 못한 성격이네.’
피식 웃은 최종택이 접시를 받아들었다.
“기다려봐. 거의 다 익어가니까.”
“…비겁한 사람.”
그러자 그녀가 고개를 숙이며 작게 중얼거린다.
살짝 붉어진 얼굴이 언뜻 보였지만, 최종택은 그저 불빛에 물들었다 여겼다.
무심하게 고기를 담은 접시를 돌려주자 식사가 재개되었다.
“음, 맛있다.”
“……”
좀 전보다 다소 조용해진 식사시간이었다.
9.
기분 좋은 식사를 마치고.
최종택과 아리아는 배급받은 침낭에서 잠을 청했다.
혹시 몰라 돌아가며 불침번을 선 탓에 다소 뒤척이며 잠을 자야했다.
그렇게 겨우 눈을 붙였을 때.
“…!”
갑자기 느껴지는 소름끼치는 감각에 퍼뜩 눈을 떴다.
배와 가슴이묵직하다.
하지만 다행히 가위는 아니었다.
대체 언제 온 건지 아리아가 그를 껴안고 자고 있던 것뿐이었다.
하지만그는 그녀를 쳐다보지 않았다.
‘아까 그건 분명….’
그를 깨운 건 분명 살기였으니까.
그것도 등골이 다 오싹해질 정도의 농도 짙은 살기.
그리고 곧 최종택은그 살기의 원인을 찾아낼 수 있었다.
나무 너머로한 여자가 있었다.
비녀를 낀 올림머리에 한복을 입은 여자였는데 어찌나 흉흉하게 노려보는지 순간 귀신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그 눈과 마주친 순간 최종택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바람 피다 들킨 그런 느낌의 살기다 싶더니….’
여자의 정체는 유연이었다.
그에게 은신을선사해준 서리 길드의 암살자.
부들부들 떨고 있는 그녀와 자신에게 안겨있는아리아를 슥 둘러본 최종택이 머리를 긁적였다.
‘음.’
상황이 난처했다.
진짜 바람을 피고 있던 것도 아닌데 배덕감이 몰려온다. 머쓱해진 그가 조심스레 몸을 일으키려던 순간.
“으응…”
아리아가 몸을 뒤척이다 그를 껴안았다.
물컹한 감촉이 옆구리에 느껴지는 것과 동시에 유연의 신형이 사라졌다.
파앗!
무지막지한 기세로 달려든 그녀의 손에는 어느새 서바이벌용 단검이 쥐어져있었다.
살인자의 눈이 뭔지 궁금했는데, 지금이라면 알 것 같았다.
유연의 눈이 딱 그러했으니까.
‘빠르다’
과연 서리 길드의 암살자.
유망주 중에서도 주목되는 그녀의 속도는 최종택의 기준에서도 빨랐다.
아리아가 전형적인 탱커라면, 그녀는 전형적인 암살자였다.
눈 깜빡할 새에 코앞까지 다가온 그녀의 모습에 최종택이 옆에 놓인 검을 뽑았다.
쾅-!
장검과 단검이 부딪히며 묵직한 진동이 울렸다.
물론 힘겨루기가 길지는 않았다.
아직 풀발이 발동되지 않았다 해도 단검인 이상 결국 불리할 수밖에 없던 탓이다.
휙-
덕분에 최종택의 검은 애꿎은 허공을 갈라야했다.
그가 검 한 번을 휘두르는 사이 유연은 두세 번의 움직임을 보인 것이다.
‘역시 빨라. 하지만…’
아직 그에겐 비장의 한 수가 남아있다.
“하앗!”
그의 눈이 부릅 뜨였다.
동시에 무언가를 본 그의 자세가 바뀌었다.
꼿꼿하던 검술 자세에서 다소 엉거주춤한 사냥개의 자세로.
그런 그의 귓가로 익숙한 알림이 들려왔다.
띠링-
[풀발이 발동되었습니다.]
그는 문구를 확인하지도 않고 땅을 박찼다.
“…!”
유연의 눈이 커졌다.
좀 전과는 확연히 다른 속도였다.
사람이 달라진 것처럼 빠르게 파고드는 것에 당황한 그녀가 다급히 뒤로 물러났다.
그 와중에 느껴지는 감각.
유연은 본능적으로 일직선이 아닌 대각선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휙-
동시에 최종택의 검이 그녀의 머리카락을 스쳤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뒷목을 맞고 기절했을 상황.
당황해서 물러나는 게 보통이지만, 유연은 오히려 반격을 가했다. 검을 휘두르며 어쩔 수 없이 드러난 빈틈을 노린 것이다.
“어?”
암살자다운 훌륭한 판단이었다.
그런데 그순간.
“체위술…”
최종택이 자세를바꾸었다.
아니, 정확히는 검로가 바뀌었다.
분명 빈틈이었던 검이 어느 순간 그녀의 공격을 빨아들이듯 휘감고 있었다.
“…!”
뒤늦게 유연이 단검을 회수하려했지만, 한 발짝 늦었다.
“…육구!”
그가 앞으로 한 걸음 내딛은 것이다.
순간, 시야가 반전되었다.
거울세계에 온 듯 위아래가 바뀐 시야 속에서 굵고 기다란 무언가가 목을 찔러왔다.
“읍!”
그 무언가를 자각하기도 전에 몸이 공중에서 회전했다.
그 힘을 이기지 못하고 날아간 그녀가 나무에 처박혔을 때였다.
스윽-
“체위술…”
최종택의 자세가 또 다시 바뀌었다.
언제 왔는지 그녀의 뒤에 자리한 그가 검을 휘둘렀다.
“뒤치기!”
“커헉!”
크리티컬이 실제로도 있다면 이러할까.
정신이 아찔할 정도의 충격에 유연이 몸을 바르르 떨다 털썩 쓰러졌다.
그런 그녀를 향해 최종택이 천천히 다가왔다.
슥.
그리곤 허리를 살짝 숙였다.
완장을 챙기기 위함이었다.
쓰러져 있던 유연이 발작하듯 몸을 일으킨 건 그때엿다.
완장을 뜯어내는 순간, 기다렸다는 듯 그녀가 올림머리를 지탱하던 비녀를 뽑아들었다.
쉬익-!
그리곤 가차 없이 급소를 찔러온다.
주먹 하나 들어갈 정도로 근접한 거리.
피할 수 없는 일격이었다.
타악!
“위험했네요.”
하나 최종택은 굳이 피할 생각이 없었다.
단단한 팔로 막은 그가 멍한 얼굴이 된 그녀를 보며 씨익 웃었다.
“제 승리입니다.”
그런 그의 손에는 완장이 쥐여져있었다.
그녀의 눈에 눈물이 맺힌 건 그때였다.
“어, 어어…?”
최종택을 황망한 눈으로 쳐다보던 그녀의 눈이 그렁그렁해지더니, 이내 서럽게 물들었다.
“왜, 왜 울어요?”
최종택의 입장에선 당황스런 일이었다.
먼저 습격한 건 그녀인데왜 그녀가 울고 있단 말인가.
평소 여자의 눈물에 그리 약한 건 아니었지만, 지금 저 눈물은 조금 달랐다.
세상 서럽다는 듯이 눈물이 주륵주륵 흘러나온다.
그것도 평소 피도 눈물도 없어보이던 여자의 눈에서.
‘여, 엿보기 구멍!’
이럴 때 필요한 건 갓보기 구멍이었다.
그가 다급하게 스킬을 발동하자 이내 그녀의 상태창이 떠올랐다.
[유연]
[성별 : 여]
[나이 : 23]
[등급 : D]
[레벨 : 29]
[능력치]
[근력 : D (60 / 100)], [민첩 : B (10 / 100)]
[체력 : C (0 / 100)], [마력 : C (40 / 100)]
[상태 : 서럽고 분함.]
[특이사항]
[서리 길드에 속해있음]
[헌터 이수 수석 경력이 있음]
[B등급 스킬 ‘은신’ 보유.]
[B등급 스킬 ‘꿰뚫어보는 눈’ 보유.]
[D등급 스킬 ‘단도 숙련’ 보유]
[질투심에 사로잡혀 있음]
[살면서 이토록 서럽고 분한 적이 없음]
“아…”
그 상태창을 본 최종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구나.”
그녀의 행동이 모두 이해가 된다.
자신이 무얼 해야하는지도.
스윽.
침착해진 그가 조용히 유연에게 얼굴을 가져다댔다.
천천히입술에 다가가던 그가 귓가에 대고 작게 속삭였다.
“싫으면 말해요.”
“……”
그러자 울먹이던 유연의 눈이 최종택을 향했다.
그녀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서러워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부끄러운 여인만이 남아있었다.
그녀가 대답 대신 슬쩍 고개를 돌리자 최종택이 알겠다는 듯 입술을 마주 댔다.
“으음…”
입을 맞춘 최종택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옷을 벗겨냈다.
간드러지는 애무나 달콤한 속삭임은 없었다.
이전에는 그녀가 일단 덮치고 봤으니, 이번에는 최종택이 그럴 차례였으니까.
“흐읏...”
최종택이 위를 점한 정상위 자세로 물건을 그녀의 가랑이 사이로 갖다대자, 그녀는 살짝 신음을 흘렸다.
이미 최종택에게 체위술을당했을 때부터 젖어있던 건지, 애무 따위 없이도 그녀의 가랑이는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흣!”
그는 그 모습을 보고 피식 웃더니 허리에 힘을 주어 한 번에 그녀의 안으로 물건을 밀어 넣었다.
쑤컥~!
“흐아아앗...!”
그러자 유연이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신음을 내뱉었다.
“오호, 이번엔 안 참아요?”
“......”
최종택의 장난스러운 질문에,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를 슬쩍 돌려버렸다.
그 귀여운 모습에 흥분한 최종택이 허리를 격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즈퍼억!
“하으읏~!”
철썩! 츠거억~!
처음 할 때와 달리 그녀는 신음도 참지 않고 굉장히 즐기는 것 같았다.
그 덕에 최종택도 빠르게 움직이며 즐거운 마음으로그녀를 찔러댔다.
츠퍽 츠퍽퍽!
길지 않은 시간이 지나고, 최종택은 그녀를 짓누르듯이 허리를 내려찍으며 그녀의 가장 깊숙한 곳에 찔러넣었다.
“흐읏...!”
“하아앗~!”
퓨웃! 뷰륵!
부르르─
그리고 동시에 두 사람은 몸을 바르르 떨며 함께 절정했다.
“하아... 하아...”
“후우...”
그래도 멧돼지로 체력을 회복한 덕인지, 연속된 행위에도 별로 지치지 않은 듯한 최종택이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만족했어요?”
“......”
그 대답에 유연은 슬쩍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보더니 다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입니다.”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최종택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날, 둘의 밤은 매우 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