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화 〉첫사랑 옆집누나가 누나 친구 (2)
33화.
5.
그들이 들린 곳은 감성주점이었다.
최혜진의 픽이었는데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클럽이나 헌팅포차 같은 곳은 아니었다.
일반 술집 치곤 분위기가 그럴싸한 정도?
조명이 은은하니 여기서 사진 찍으면 인생 샷 하나 건지겠구나 싶은 느낌이었다.
그렇기에 최종택과 서진희도 불평하지 않고 자리에 앉았다.
“처음처럼 한 병이랑 참이슬 한 병주세요.”
앉자마자 술부터 시킨 누나 놈이 안주까지 몇 개 더 시키곤 말문을 열었다.
“그래서 헌터는 어떻게 된 건데? 한 번 말해봐.”
시작부터 돌직구다.
뭐라 설명할까 고민하던 최종택이 적당히 얼버무렸다.
“그냥 뭐… 그렇게 됐어.”
“김새게 그게 뭐야. 누구는 뭐 불난 집에 갇혔다가 각성되기도 했다는데 넌 그런 사연 없어?”
“음…”
있긴 하지.
그 누구보다 기가 막힌 사연이.
궁금하다는 듯 쳐다보는 서진희를 본 그가 고개를 저었다.
진실을 밝혔다가는 저 표정이 어떻게 변할지는 불 보듯 뻔했다.
“딱히 없어. 그냥 자다가 일어나니까 이상한 시스템 창이 떠있더라고.”
“진짜? 와, 그렇게도 각성하는구나. 자다가 날벼락도 아니고… 아니, 이건 자다가 돈벼락 수준인가?”
“신기하다. 나는 몬스터한테 습격당했을 때 각성한 건데…”
“어, 진짜?”
이건 좀 놀랐다.
요즘 같은 세상에 몬스터한테 습격을 당하다니.
간혹 게이트 붕괴에 휩쓸릴 수가 있다고는 하는데, 이게 말이 간혹이지 살면서 경험하기 힘든 일이다.
확률도 적을뿐더러 게이트 붕괴가 되기 전에 협회에서 헌터들을 미리 대치시키니까.
“그때 헌터들이 대피하라고 해서 돌아갔는데 하필 거기서 고블린 하나랑 마주쳤거든. 그래서 내가 몬스터를 잡는 게 더 무서운 건가봐.”
“힘들었겠네.”
운도 참 지지리 없는 경우였다.
돌아가래서 돌아갔는데 그곳에서 고블린이 나오다니.
“그래도 그때 마침 각성해서… 어찌 보면 잘 된 일이었을 수도 있지. 위기는 곧 기회라고들 하잖아.”
“그래도 그건 아니지. 협회에선 보상 해줬어?”
자기도 처음 듣는얘기였는지 최혜진이 발작하듯 따지고 든다.
예상했던 반응이었다.
싸가지가 없어서 그렇지, 어릴 때부터 불의를 못 참는 성격이었으니까.
한 번 거들고 나서면 둘 중 하나는 죽어야 성이 풀리는 게 그의 누나였다.
다행히 그녀가 나설 일은 없었다.
“응. 미안하다고 지원을 좀 해주더라고.”
“으음… 그래? 그럼 다행이네.”
기본 안주로 나온 과자를 먹으며 최종택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들 사연 하나쯤은 가지고 있네. 교관님도 그런 사연이 있으려나?’
듣다보니 문득 궁금해졌다.
헌터가 된 직후 그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고 하던데 무슨 계기가 있던 건 아닐까.
그런 고민을 하는데 주문한 안주가 나왔다.
탁.
“안주 나왔습니다.”
종업원이 두부와 고기가 듬뿍 들어간 김치찌개를 조심스레 내려놓는다.
소주에 김치찌개 좋지.
흡족해하는데 종업원이 안주 하나를 더 내려놓는다.
한데 안주의 상태가 좀 이상하다.
“이건 뭐야. 메밀국수?”
아무리 봐도 술안주로 나올 법한 음식은 아니었다.
잘못 나온 거 아닌가 생각하는데 누나 놈이 슬쩍 손을 든다.
“아, 내가 시킨 거야.”
“아니 미친…. 소주에 메밀국수를 먹는 사람이 어디 있어?”
“여기 있다 왜. 네가 몰라서 그렇지 시원하니 먹어보면이것만한 게 없다니까?”
“허…”
번데기를 먹으라고 외국인 강사에게 주었을 때 그의 기분이 이랬을까.
지금 그의 표정이 딱 그러지 않나 싶다.
한데 생각해보니 상대는 그 누나다.
‘저년 취향이 뭐 그럼 그렇지…’
어릴 때부터 괴식가였던 그녀라면 그럴 법했다.
케이크에 김치도 먹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누나 때문에 알게 됐는데 술안주로 메밀국수 정도야 먹을 수도 있지.
서진희도 그런 그녀가 익숙한지 별 타격이 없는 얼굴이다.
“음, 늘 궁금했는데 그렇게 먹으면 맛있어?”
“응. 먹어볼래?”
“아냐. 난 김치찌개 먹을래.”
“그래? 그럼 일단 짠이나 하자.”
짤그랑-
잔 끼리 부딪히며 청량한 소리가 울려 펴졌다.
대충 목으로 털어놓고 보니 둘도 시원하게 술잔을 비운 상태였다. 그렇게 몇 잔 더 술이 들어가니 하나둘씩 얘기가 나왔다.
“옛날에 너 쪼그마한 때부터 봤는데 진짜 많이 컸다.”
“진희 너가 얘 언제 처음 봤지? 우리 중학교 때였나?”
“아마 그럴 걸? 애기였는데 그땐….”
“그럼 종택이랑 우리랑 3살 차이니까…”
손가락으로 숫자를 세 보던 최혜진이 감탄을 내뱉는다.
“와, 그때 얘는 4학년이었네?”
“그렇게 들으니까 우리 되게 나이 든 거 같다.”
“아직 20대 후반이야. 괜찮아.”
둘의 얘기에 피식 웃음이 나온다.
20살 되기 전에도 저런 비슷한 얘길 들었던 것 같은데. 아마 30대 후반에도 저 얘기를 하지 않을까 싶다.
‘되게 오래되긴 했네.’
지금 그의 나이가 스물넷이니까….
대충 계산해도 10년은 넘는다.
10년 전 첫사랑이었던 진희 누나와 이렇게 연이 닿으니 세삼 기분이 묘했다.
그때는 얼굴만 봐도 떨렸는데.
‘지금은 이렇게 같이 술도 마시네.’
이래서 세상 일 모르는 건가보다.
하기야 헌터가 된 것부터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으니까. 왠지 기분이 들떠서 웃으며 술을 마실 때였다.
“누나 전화 오는 것 같은데?”
“어? 그러네.”
테이블에서 진동하는 폰을 집은 최혜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러더니 한숨을 푹푹내뱉는다.
“하아… 또 호출 떴어.”
“뭐야, 쉬는 날 아니야?”
“간호사 일이 뭐 다 그렇지…. 온전히 쉬는 날이 딱히 없어.”
“아….”
“미안한데 나 일단 급해서 들어갈게. 둘이 더 놀다와.”
정말 급한지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난다.
그러면서도 연신 폰을 확인하는 게 생각보다 긴박한 상황인가보다.
저거 술 마셨는데 괜찮으려나.
‘몇 잔 안 마셨으니까 괜찮겠지.’
세삼 누나 일이 힘들긴 하구나 싶다.
맘 편히쉬는 날도 없다니.
불쌍하긴 한데 그것보다는 지금 분위기가 더 신경 쓰인다.
“음…”
“……”
연결다리였던 최혜진이 사라지니 갑분싸가 시전된 것이다.
민망한지 그녀가 애꿎은 젓가락만 까딱인다.
한동안 불편한분위기가 유지되던 찰나 그녀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그런데 종택이 네가 D등급이라니 진짜 대단하다. 각성한 지도 얼마 안 됐다며. 난 1년째 E등급인데….”
“뭐, 운이 좋았지.”
“에이, 운이 어디 있어. 수료하기 빡센 거 나도 뻔히 아는데. 부르는 곳도 많겠다.”
“음… 처음에는 그랬는데 지금은 딱히 없어. 그렇게 유명한 데서 부른 것도 아니고.”
수료식 날 많은 길드에서 스카웃이 오긴 했지만 전부 중형 길드였다.
서리 길드는 던전만 같이 갔지, 섭외가 온 것도 아니고.
그런 의미에서 한 말인데 그녀는 부른 곳이 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지 연신 감탄한다.
“와… 그래도 대단하다. 나는 한 번도그런 적이 없었거든.”
“그래도 E급만 되도 돈 잘 벌지 않아?”
“잘 벌지. 내가 던전에 잘 안 가는 편인데도 웬만큼은 버는 거 같아.”
그러더니 다소 심란한 얼굴로 말을 잇는다.
“그래서 그런가? 더 못 올라가는 거 같기도 해. 지금도 괜찮으니까 절실하지가 않은 거지.”
“흐음. 그럴 수 있지.”
확실히 E급 헌터만 되도 많이 벌긴 한다.
잘 나가는 D급 헌터가 억대 연봉이니 E급이면 대략 달에 400은 벌지 않을까.
그 정도면 굳이 위를 넘보지 않을 법도 하다.
특히나 그녀처럼 몬스터에게 안 좋은 트라우마가 있는 경우면 더욱.
“넌 어떻게 할 생각이야?”
“나야 뭐… 이번 승급 시험 봐야지.”
“그렇구나. 잘 됐으면 좋겠다.”
“고마워.”
현실적인얘기를 해서일까.
내심 떨리던 마음이 가라앉고 잠잠해졌다.
같은 직업에 관련된 얘기를 나눠서 편해진 건가?
썩 나쁘지는 않다.
덕분에 분위기가 많이 편해졌으니까.
그래서인지 그녀도 낯부끄러운 말을 서스럼치 않게 꺼낸다.
“너 애기일 땐 귀여웠는데 커지니까 멋있어졌다.”
“뭐야 갑자기. 헌터 됐으니까 그렇지 뭐.”
“키킥, 그렇기는 해. 나도 헌터 되고 처음에 깜짝 놀랐어. 거울 봤는데 내 얼굴이 낯설더라고.”
“아 맞아, 인정. 나는 아예 다른 사람인 줄 알았어. 한동안 내 얼굴 보고 감탄했다니까?”
“우와, 사람 생각하는 거 다 똑같구나.”
왠지 동질감이 느껴진다.
자기만 그런 건가 했는데 다른 헌터들도 다 바뀐 얼굴보고 감탄하는구나.
하기야 생각해보면 당연했다.
남의 얼굴 바뀐 것도 그리 관심이 많은데 제 얼굴이면 오죽하겠는가.
그 소리를 하니 뭐가 그리 웃긴지 혼자 빵 터진다.
이상해서 쳐다보니 다소 진정된 그녀가 웃음기가 남은 목소리로 말한다.
“아, 미안. 갑자기 예전에 본 게 생각나서.”
“뭔데?”
“한 여자가 쌍수를 하고 왔는데 자고 일어나니까 하루 만에 붓기가 다 빠지고 엄청 예뻐졌다더라고.”
“엥? 하루 만에 그게 가능한가?”
그게 사실이면 국보급 의사인데.
아니면 붓기 빠지는 속도가 탈 인간 급이거나.
흥미로운 내용에 귀를 기울이자 그녀가 조금 가까이 다가왔다.
다소 작아진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게… 알고 보니 헌터로 각성을 한 거였대.”
“헐? 그럼 헌터 돼서 얼굴이 바뀐 거야?”
“응. 신기하지 않아? 성형을 해도 얼굴이 바뀌는 거 같더라.”
그녀의 물음에 최종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신기하네. 그럼 코 성형한 사람이 각성하면 보형물이 사라지나?’
저 여자의 전례를 들어보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생각하니 좀 웃기다.
자고 일어났는데 코에 감각이 달라져있는 거 아닌가.
헌터라는 게 참 알다가도 모를 놈이구나.
그렇게 시시덕거리며 얘기하는데 문득 그녀가 아쉽다는 듯 말했다.
“너 대학 다른 곳 간데서 좀 아쉬웠는데 이렇게 보니까 좋다.”
“어?”
최종택이 잠시 멈칫했다.
‘어라? 이거 뭔가…’
어디선가 본 데자뷰가 떠오른다.
그래서일까.
그녀와의 거리가 갑자기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언제 이렇게 가까워진 거지?’
처음에는 분명 반대편이었는데 지금은 거의 옆자리나 다름없다.
헌터 얘기를 할 때인가?
하여튼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누나가 날 생각했다고?’
갑자기 분위기가 묘해지자 그녀가 슬쩍 떨어진다.
“내가 별 소리를 다 했다. 이만 들어갈까?”
한데 왜일까.
지금 그녀의 말이 들리지 않는다.
심장이쿵쾅거리는 소리만이 그의 귓가에 맴돌 뿐이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그녀를 붙잡은 건 그때였다.
꽈악.
“…종택아?”
팔목이 잡힌 그녀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그녀의 흔들리는 동공을 보자 생각이 뇌를 거치지 않고 튀어나왔다.
“…누나. 우리 2차 갈래?”
“…어?”
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그러기를 잠시, 이내 그녀의 고개가 작게 끄덕여진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 최종택은 모텔에서 그녀와 혀를 섞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