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화 〉첫사랑 옆집누나가 누나 친구 (1)
32화 : 첫사랑 옆집누나가 누나 친구.
4.
[A급불꽃퀸카 : 종택아... 나 당분간 연락 못할 것 같아 ㅠㅠ]
[A급불꽃퀸카 : 저번에도 갑자기 잠수타서 미안해…! 절대 고의가 아니었어!]
[A급불꽃퀸카 : (무릎 꿇고 사과하는 지방이 이모티콘)]
[나 : 아냐. 그럴 수 있지.]
[A급불꽃퀸카 : 다음에는 승급시험 때나 보는 건가?]
[나 : 음. 우리 서로 열심히 하자.]
[A급불꽃퀸카 : 그래! 우리 선의의 경쟁을 하자!]
[A급불꽃퀸카 : (주먹을 불끈 쥐는 토끼 이모티콘)]
[나 : 오키 ㅋㅋ]
왠지 의욕 넘치게 주먹을 쥐는 그녀가 상상돼서 피식 웃음이 나온다.
무슨 일 있나 했는데 다행히 큰일은 없는 것 같다.
사정이 있는 것 같긴 한데…
‘뭐 별 일은 없겠지,’
반응을 보니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했다.
기차 시트에 등을 기댄 최종택이 창밖을 바라봤다. 빠르게 슉슉 스쳐지나가는 게 확실히 KTX가 빠르긴 빠르구나 싶다.
테크닉 모드일 때가 딱 이런 느낌이었는데.
‘그렇게 생각하니 묘하긴 하네.’
기차만큼 빠르다는 소리 아닌가.
뭐 진짜 기차만큼 빠르진 않겠지만 비견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거지.
시선을 뗀 그가 옆 좌석에 놓인 짐을 바라봤다.
수북이 쌓인 짐을 보니 마음이 든든하다.
‘음. 첫 선물인데 좋아하시려나.’
나름 명품으로 챙겼으니 좋아할 것 같긴 하다.
프라다 백이랑 롤렉스 시계 같은 것들로 준비해놨으니 말이다.
정확히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바리바리 싸들고왔으니 마음에 드는 걸로 서로 나누라할 생각이었다.
물론 누나 선물은 없었다.
‘그년 건 필요 없겠지.’
옛 말에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지 않은가.
대뜸 욕부터 박는 그년에게 줄 선물 따윈 없다.
11억이나 있는데 집 하나는커녕 겨우 명품 백이랑 시계 하나로 생색내려는 최종택이었다.
하지만 이건 그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헌터인 건 이번에 가서 말해야겠다.’
부모님은 아직 그가 헌터인 걸 모르기 때문이다.
이번에 말한다고 해도 갑자기 집 한 채 사드린다하면 부담스러워할 게 뻔하다
명품 선물도 부담스러워할 것 같기야 한데 집보다는 낫지 않은가.
첫 선물이니 모처럼 기분 내고 싶기도 하고.
‘몰래 찾아가는 거라 그런가 묘하게 설레네.’
서프라이즈의묘미랄까.
반응이 어떨지 상상하니 좀 두근거린다.
우선 아버지는 아닌 척하면서도 좋아할 거 같고.
어머니는 웃음꽃이 핀 얼굴로 잔소리를 하지 않을까 싶다. 아니면 이 비싼 거 어디서 났냐고 등짝을 때릴지도 모른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집 앞에 도착한 최종택이 설레는 마음으로 문을 열었다.
삐비비빅 삐빅-
벌컥-!
“저 왔어요!”
그렇게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으로 들어간 순간!
“……”
놀랍게도 아무도 반겨주지 않았다.
폐가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고요하다. 신발장에 신발이 몇 없는 걸 보며 최종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상병 휴가 때가 생각나는구만.”
그때도 이랬었는데.
묘한 데자뷰를 느끼며 그는 다짐했다.
다음부터 서프라이즈 같은 건 준비하지 않겠다고.
역시 이런 것도 이벤트를 자주 해본 집에서나 하는 거였다.
‘음… 뭐할까?’
잠시 머리를 긁적이던 그가 이내 한 방으로 들어갔다.
예전에 그가 쓰던 방이었다.
에어컨이 작동되지 않는 방이라 불평불만을 하며 썼던 방이었는데…
털썩-
“키야… 이거지. 개편하다 진짜.”
오랜만에 와서일까?
아니면 줄곧 썼던 침대라 그런 걸까.
침대에 눕자마자 안락하게 몸을 감싸는 감촉에 절로 심신이 안정된다.
그래, 방은 이래야지.
‘역시 집이 최고다.’
어찌나 편한지 솔솔 잠이 온다.
조금씩 감기는 눈에 그가 아예 한숨 잘까 고민하고 있을 때였다.
띵동-
“흡.”
갑자기 들리는 초인종에 눈을 퍼뜩 떴다.
당장이라도 잠들 듯한 졸음이 순식간에 달아났다.
‘웬 초인종? 택배라도 시켰나….’
모처럼의 단잠이 깨어난 게 못내 아쉽다.
입맛을 다시던 그가 눈을 비비며 현관으로 나가 문을 열었다.
“누구세…”
“짜잔! 나 왔… 응?”
그리고 한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꽤나 이쁘장한 여자였다.
연예인처럼 예쁜 건 아니지만 하얀 피부와 청순한 외모가 매력적이었다.
학창시절 남자 여럿울리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한데 묘하게 얼굴이 낯이 익다.
저 갈색 반올림머리도 그렇고 분위기도 묘하게 익숙한 게…
‘어라?’
누군지 기억났다.
최종택이 저도 모르게 검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어! 진희 누나?”
서진희.
누나의 친구로 초등학생 때부터 알고지낸 사이다.
어릴 적부터 예쁜 걸로 유명했는데 그게 꽃을 피운 건지 아주 물이 올랐다.
“엥? 누구세요?”
그녀는 바뀐 그를 못 알아봤는지 아리송한 얼굴이었다.
그러면서도 뭔가 익숙한지 뚫어져라 쳐다본다.
이대로는 끝이 없을 것 같아서 최종택이 먼저 답을 말했다.
“나야, 나. 최종택.”
“어어…? 종택이?”
잠시 생각하는 듯하던 그가 이내 손뼉을 친다.
그녀의 목소리가 한 톤 올라갔다.
“와, 진짜 종택이라고? 진짜 오랜만이다. 너 언제 왔어?”
“방금 왔어. 부모님이 연락 좀 하고 살래서 서프라이즈로 왔는데…… 뭐, 이렇게 됐네.”
“아아, 옆집 들어가는 소리 들려서 와봤는데 너였구나.”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린다.
“그런데 무슨 일이야?”
“아, 혜진이가 택배 맡아 달라 해서 돌려주려고 왔지.”
그 의심 많은 여자가 또 사람 귀찮게 한 모양이었다.
속으로 혀를 차는데 그녀가 감탄하듯 말했다.
“그런데 너 왜 이렇게 잘생겨졌어! 키도 엄청 크고… 나 완전 다른 사람인 줄 알았잖아. 뭐 먹고 이렇게 큰 거야?”
“그러는 누나도 예뻐졌네.”
“에이, 뭐래. 오랜만에 봤다고 또 금칠부터 들어간다.”
칭찬이 낯부끄러운지 손사래를 친다.
별 거 아닌 행동인데도 묘하게 가슴이 두근거린다.
분명 외모만 보면 예나 교관이나 지수가 더 예쁜데 이상한 일이었다.
첫사랑 버프가 들어가서 그런가?
‘그럴 때가 있었지.’
오랜만에 그녀를 보니 풋풋했던 때가 떠오른다.
그때는 진희 누나 얼굴 한 번 보려고 등교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준비하고 그랬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다 추억이었다.
‘음?’
향수병에 젖어 빤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데 묘한 기운이 느껴진다.
기운의 정체를 알아내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누나도 혹시 각성했어?”
“어? 어떻게 알았… 설마 너도?”
깜짝 놀랐는지 눈이 커진 그녀가 아리송한 얼굴로 물었다.
그러고도 이상한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닌데… 기운이 안 느껴지는데.”
헌터라고 하기에는 그에게서 아무 기운도 느껴지지 않는 탓이었다.
‘아, 맞다 은신.’
뒤늦게 은신으로 기운을 감추고 있다는 걸 자각한 그가 은신을 풀었다.
그러자 그녀가 손뼉을 친다.
“어? 너 진짜 각성했네? 어쩐지 엄청 잘생겨졌더라니…! 언제 각성한 거야?”
“나 얼마 안 됐어. 그나저나 나도 놀랐어. 누나도 각성했을 줄은 몰랐는데…. 누나는 언제 한 거야?”
“난 조금 됐지. 한 1년 정도?”
그녀가 다소 씁쓸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근데 말이 헌터지 사실상 장롱헌터야. 던전 돌기가 좀 그래서 사냥을 거의 안 가거든.”
“그렇구나.”
최종택은 대답하면서 엿보기 구멍을 사용했다.
[서진희]
[성별 : 여]
[나이 : 27]
[등급 : E]
[레벨 : 11]
[능력치]
[근력 : E (70 / 100)], [민첩 : E (70 / 100)]
[체력 : E (30 / 100)], [마력 : E (90 / 100)]
[상태 : 신기함]
[매우 반가움]
[특이사항]
[누군가의 첫 사랑]
[옆집누나]
[친누나의 절친]
[E등급 스킬 ‘파이어볼’ 보유.]
[E등급 스킬 ‘재빠른 몸놀림’ 보유.]
‘확실히 레벨이 낮긴 하네.’
딱 신서희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각성한지 1년이나 지났다고는 믿기지 않는 처참한 능력치.
예전부터 무언가를 해치는 걸 좋아하지 않았던 심성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기도 했다.
각성했다고 모두가 헌터생활을 하는 건 아니니까.
‘연예인 중에서도 사냥은 안 하는 헌터가 있다 들었으니까.’
그녀도 비슷한 경우라 보면 될 것이다.
그렇게 소소한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응? 뭐야, 누구세요?”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여자가 집 앞에 서 있는 최종택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더니 혼자 오해한다.
“아, 진희 남자친구 생겼어?”
“어, 어…?”
갑작스런 발언에 진희가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상상도 못한 질문에 뭐라 답해야할지 뇌정지가 온 것이다.
최종택도 당혹스러운 건 매한가지였다.
‘뭐야, 저년 일할 시간 아닌가? 왜 벌써 왔지?’
여자의 정체는 최혜진.
그의 친누나였다.
저 눈치 없는 누나 놈이 기어코 남자친구로 받아들였는지 갑자기 표정이 진지해졌다.
그리곤 마치 희대의 미스테리를 발견한 사람처럼 묻는다.
“근데… 왜 우리 집에 있어?”
“……”
순간, 정적에 휩싸였다.
그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일 초, 이 초…
그렇게 수초가흐르고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최종택이 말했다.
“음. 나야.”
“에??”
“나라고 병신아.”
깜짝 놀란 듯 흠칫하던 그녀의 눈이 커졌다.
그리곤 거의 발작하듯 소리친다.
“너…, 너 뭐야! 성형했냐? 왜 이렇게 달라졌어!”
“뭔 개소리야, 또.”
“아, 아니… 말이 안 되잖아!”
그의 짜증난다는 듯한 반응에 최혜진이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상황을 설명해준 건 서진희였다.
“얼마 전에 각성했대.”
“뭐? 너 각성했어? 언제! 왜 말 안 했어!”
그러자 누나놈이 기겁하며 쏘아붙인다.
어찌나 빠르게 쏘는지 머신건으로 고막을 후드려 맞은 기분이다.
최종택이 한숨을 내쉬었다.
“네가 이럴까봐 말 안 했지.”
“어쭈? 이 새끼 헌터 되더니 무서운 게 없어졌나보네.”
“또 뭐라는 거야.”
“이 새끼 부모님한테 연락 한 통 없을 때부터 알아봤다. 싹수가 노란 놈이었어 아주. 이제 헌터 됐다고 가족 필요 없다 이거야?”
“순식간에 호로 자식 만드네. 그것도 재능이다 야.”
티격태격 대는 둘의 모습에 서진희가 풉 웃음을 터트렸다.
“너희 진짜 여전하다. 아직도 그렇게 싸워?”
“얘가 버릇이 없잖아.”
“누나놈 성깔이 난폭해서 그래요.”
마치 짜고 치는 고스톱처럼 동시에 서로를 디스하는 남매.
그런 그들을 보며 서진희가 또 웃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을 못마땅하게 보던 최혜진이 불쑥 물었다.
“근데 넌 얘 각성한 거 어떻게 알았어? 원래 연락하고 지낸 거야?”
“아니. 문 열리길래 너 온줄 알고 택배 가져다주려고 왔는데 이렇게 됐네.”
“아 진짜?”
전후설명을 하니 최혜진이 깔깔 웃는다.
한참 서서 대화를 나누던 중 그녀가 문득 물었다.
“이것도 인연인데 셋이 술이나 마실까?”
술 좋지.
최근에 두형이 놈이랑 마신 것 외엔 잘 안 마시기도 했고.
하나 오늘은 날이 아니었다.
“나 부모님 보러 왔는데. 얼굴 먼저 봐야하는 거 아냐?”
“?”
최혜진의 표정이 괴기하게 일그러졌다.
이 병신은 뭐지?
그런 표정으로 보던 그녀가 황당하다는 듯 입을 연다.
“엄빠 여행 갔잖아 병신아.”
“아…”
“그러니까 연락 좀 하고 오지. 저 병신 진짜…”
“……”
아무래도 며칠 더 묵어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