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본 교관은 1회 차에 실망했다 (4)
31화.
2.
아무리해도 질리지 않는 게 있다.
누구에겐 게임이기도 하고, 누구에겐 운동이기도 하다.
종목은 모두 다르지만,대개 그런 이들은 모든 것을 쏟아 붓곤 했다.
그런 그들이 최종택은 신기했다.
입이 짧다는 소리를 듣는 그는, 음식이 아닌취미 활동에도 금방 질리곤 했으니까.
무엇 하나 끈덕지게 한다는 건 그로선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오우야.’
그에게도 결코 질리지 않는 게 생겼다.
‘오늘도 하얗게 불태웠다.’
모텔에서 뜨거운 시간을 보낸최종택이 벌러덩 침대에 누웠다.
예나는 지쳤는지 이미 쓰러진지 오래였다.
하기야 다섯 번을 넘게 해댔으니 제아무리 헌터인 그녀라도 지치지 않고 배길까.
‘오늘도 최고였어.’
늘 느끼지만 예나 교관과 할 때가 가장 짜릿했다.
가장 자주해서 그런가?
다른 이들과 할 때와는 다른 편안함과 쾌감이 공존하는 느낌이다.
‘마음 같아선 더 하고 싶은데… 피곤해보이네.’
쉬지도 못하고 시달린 그녀를 생각하면 참는 게 맞으리라.
한데 막상 생각하니 이상하다.
‘내 능력치가 더 낮을 텐데 왜 나만 쌩쌩하지?’
다른 여자들이야 그렇다 칠 수 있다.
그보다 능력치가 낮으니까.
한데 예나 교관은 민첩과 근력은 물론체력도 더 높다.
그럼에도 늘 쌩쌩한 건 최종택이었다.
‘이것도 자박꼼 덕분인가?’
정황상 그런 것 같긴 한데…
‘뭐, 아무렴 어때. 나한텐 좋은 거지.’
어깨를 으쓱인 그가 가쁜 숨을 정돈하는 예나를 바라봤다.
눈이 마주친 그녀가 부끄러운지 시선을 피한다.
여전히 새빨갛게 물든 귀를 흐뭇하게 바라본 그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
눈앞에 뜬 메시지 때문이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20레벨을 달성하셨습니다.]
[달성 보상이 지급됩니다.]
[S급 스킬 ‘체위술’을 획득하셨습니다.]
3번째쯤이었나.
그녀와 섹스를 끝내자 레벨이 오르며 보상이 떴다.
처음엔 눈이 절로 떠졌다.
‘S등급….’
풀발에 이어 또 S등급 스킬을 획득했으니까.
남들은 평생 하나 얻기도 힘들다는 S등급 스킬을 2개나 얻었으니 놀라지 않고 배길 리가.
하나 스킬을 확인한 순간, 그는 심란해졌다.
[체위술]
-등급 : S
-설명 : 체위에서 영감을 얻어내 만들어진 무술.
숙련도에 따라 보다 다양한 체위를 구사할 수 있다.
‘이게 대체 뭔 스킬이냐.’
체위술이라니.
이름만 들어도 정상적이지 않은 냄새를 물씬 풍긴다.
자박꼼을 처음 얻었을 때도 이런 기분을 느꼈던 것 같은데.
‘그래도 S등급이면 좋긴 하다는 건데…’
같은 S급 스킬인 풀발을 생각하면 나쁘지는 않지 않을까.
체위술이라…
그는 잠시 검을 들고 체위술을 사용하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해보았다.
‘음… 상상이 안 가네.’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그나마 떠오르는 거라곤 여자 헌터와 갖가지 체위를 하는 모습 뿐.
변태적인 상상이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체위술이면 그거밖에 없지 않나?’
이름이 그런 걸 어떡하란 말인가.
‘무술이랬으니 진짜 그런 스킬일 리는 없을 테고… 흐음…’
이걸 어떻게 실험해보나 고민하던 그가 이내 스킬 창을 닫았다.
지금 고민해봤자 답도 안 나온다.
다음에 던전에 갔을 때나 집에서 확인해보는 게 나으리라.
‘상태창.’
[이름 : 최종택]
[레벨 : 20]
[능력치]
[근력 : C (40 / 100)], [민첩 : C (40 / 100)]
[체력 : C (30 / 100)], [마력 : C (40 / 100)]
떠오른 상태창을 보며 최종택이 만족스런 얼굴을 했다.
‘확실히 높은 등급일수록 잘 오르는구나.’
유연이나 지수와 했을 때는 눈에 잘 띄지 않았는데 그녀와 하니 능력치가 오르는 게 눈에 확 띈다.
이게 B등급과 D등급의 차이인가.
여러 번 한 탓에 어느 순간부터는 오를 듯 말 듯했지만,이 정도면 충분한 소득이었다.
‘모든 능력치가 30을 넘겼으니까.’
충분하다 못해 차고 넘치지.
‘벌써 C등급 40이라… 풀발 생각하면 A등급 찍는 것도 머지않았겠는데?’
왠지 기분이 묘하다.
엊그제만 해도 F등급이었던 것 같은데 A급을 넘보고 있다니.
그가 생각해도 미친 성장속도였다.
‘옛날엔 재능 없다고 꾸중 자주 들었었는데.’
이래서 헌터가 인생역전 직업인가 싶다.
세삼 감성에 젖어있는데 갑자기 휴대폰이 진동했다. 상단을 내려 보니 헌터협회에게서 문자가 와있다.
[헌터 협회입니다. 2주후 D등급 승급시험이 있을 예정이니 참가를 원하시는 분들은 착오가 있지 않게……]
‘아, 승급시험… 벌써 2주밖에 안 남았구나.’
당연하지만 이번 승급시험에 그도 나갈 생각이었다.
이제 D등급 던전으로는 레벨도 잘 안 오른다.
못해도 C등급 던전은 되어야하는데 그러려면 승급은 필수적이었다.
‘아직 지수한테도 연락 없고… 당분간은 교관님이랑 다녀야겠다.’
B등급인 그녀는 여러 의미로 도움이 될 것이다.
그녀의 말대로 경력을 쌓기도 편하고, 던전에 입장하기도 편했으니까.
무엇보다 귀엽지.
그런 생각을 하는데 불쑥 팔짱이 끼어진다.
뭉클한 가슴의 감촉에 시선을 돌려보니 예나가 팔짱을 낀 채 살짝 안겨있었다.
최종택이 장난스런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직 힘이 있으신가보네요?
“……”
그녀의 얼굴이 빨개졌다.
팔짱을 푼 그가 자연스레 그녀를 눕히고 이불을 덮었다.
아직 그의 밤은 끝나지 않았다.
3.
한편 그 시각.
승급시험을 앞두고 한지수는 예민해진 상태였다.
이번 시험에 유독 유망주가 많은 것도 한몫했지만, 그보다는 다른 이유가 컸다.
“선배!”
“여기선 팀장이라 불러라.”
얄미울 만큼 사무적인 반응.
귀찮다는 듯 지나가는 수민을 황당한 눈으로 바라보던 그녀가 툭 쏘아붙였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어차피 여기 저희밖에 없는데.”
“그래도 여긴 길드다. 지금은 네 선배가 아냐. 팀장이지.”
“어휴, 그래요 팀장님. 됐어요?”
“그래.”
한지수가 질린다는 듯 혀를 찼다.
아무리 길드 내라곤 해도 복도에 그들 말곤아무도 없는데 저러는 꼴이라니.
융통성이 없어도 너무 없었다.
‘하긴… 그러니까 길드장님이 믿는 거겠지.’
고지식하다는 건, 그만큼 규율을 잘 지킨다는 거니까.
어쨌거나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왜 종택이랑 같이 있으면 안 되는 건데요?”
당분간 최종택을 만나지 말라는 상부의 명령이 있었다.
그녀로선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었다.
같은 길드로 받아들일 생각이라면서 왜 오히려 거리를 두라하냔 말인가.
‘모처럼 가까워졌는데…’
이러다 멀어지는 건 아닌가 걱정이 들었다.
그게 표정에 드러난 걸까.
무심하게 돌아본 그가 그녀의 얼굴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
“반했나보지?”
“아, 아니. 누가 그래요?”
“네 얼굴이.”
정곡을 찔린 그녀가 횡설수설했다.
“아니… 그건 아니고 그냥 길드 입장에서 영입하는 것에 더 안 좋을 거 같아서 그렇죠. 나랑 친구기도 하니까 제가 더 잘 이야기하면 되는 거 아냐?”
그런 그녀의 변명에 수민은 가소롭다는 듯 코웃음을쳤다.
척 봐도 심리가 보인다.
여전히 거짓말을 못하는 모습에 그가 묵직한 펙트를 꽂아주었다.
“그런 거 신경 쓸 시간에 이번 승급 시험이나 더 신경 써라. 네가 부족하면 너랑 그 남자는 같은 조가 못 된다.”
“아니, 날 뭐로 보는 거야! 저 그 정도는 되거든요?”
“그거야 두고 봐야 알겠지.”
갑자기 명치를 맞은 그녀가 부들거리자 김수민은 피식 웃고는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괜히 그 모습이 더 얄밉다.
뭐라 한 마디 쏘아붙이려던 그녀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그녀도 내심 느끼고 있던 것이다.
‘…재수 없긴 한데 선배 말이 맞아. 나도 더 강해져야해.’
나름 능력 있는 그녀도 종택에 비하면 볼품없다는 것을.
그리고 그건 아직 진행형이었다.
아직 각성한지 얼마 안 됐는데도 그렇게 강한데 앞으론 얼마나 성장하겠는가.
다음에는 옆에 설 기회조차 없을지도 모른다.
‘종택이도 분명 특훈 중일 거야. 나도 질 수 없지!’
그녀가 의욕을 불태웠다.
그 마음이 전해졌는지 그녀의 주위로 불꽃이 한 차례 넘실거렸다.
각오를 불태우는 건 단연 그녀만이 아니었다.
“요즘 아가씨가 변한 것 같지않아?”
거대한 저택.
한 청소 도우미의 말에 동료들이 기다렸다는 듯 말문을 폭포수처럼 열었다.
“말도 마. 그만 하라 해도 훈련을 쉬지를 않는다니까?”
“듣기론 되게 겸손해지셨다는데… 확실히 요즘 잠잠하긴 해.”
“던전에 간 이후로 무슨 일이 있었나? 사람이 바뀌었네.”
공용 던전에 간 이후로 사람이 변했다.
특유의 싸가지 없는 말투와 행동거지 때문에 속앓이를 하던 비서와 집사들도 인정할 정도의 변화였다.
오죽하면 아가씨의 탈을 뒤집어쓴 누군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진짜 아가씨는 던전에서 죽었다나 뭐라나.
“그런 소문이 도는 거 알고 계시나요?”
“…내가 뭐 얼마나그랬다고.”
그 소문을 전해들은 지도교사가 너털웃음을 지으며 묻자 정연아가 삐죽 입을 내밀었다.
그렇다고 또 부정은 하지 않는다.
그녀가 생각해도 이전 자신의 모습은 썩 좋지 않은 걸 아는 것이다.
지도교사의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성장하셨군요, 아가씨.”
“…장비서까지 그러지 마요.”
부끄러운지 괜히 투정을 부린다.
그 모습에 지도교사이자 직속비서, 장예진이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호호. 그런데 어째서 이리 열심히 하는 건가요?”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었다.
인성은 둘째 치고 훈련량이 평소의 3배로 껑충 뛰었다.
엊그제만 해도 버프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검술과 체력훈련을 땡땡이치기 일쑤였는데 지금은 먼저 하자고 안달이었다.
“…그냥 제가 생각이 좁았다고 느껴서요.”
“흐응… 다른 이유도 있는 것 같은데요?”
집히는 구석이 있는지 장예진이 묘한 미소를 짓자 그녀가 뾰루퉁해졌다.
그러면서 샐쭉하게 쳐다본다.
다 알고 있으면서 물어보냐고 질책하는 듯했다.
이내 한숨을 내쉰 그녀가 훈련하느라 지친 숨을 가다듬고 진심을 꺼냈다.
“그분의 서포터가 되고 싶어요. 반드시….”
“그분이라면 그때 그 남자 말인가요? 아가씨를 구해주셨다던.”
“……”
그녀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직접 연락해보심이…”
“그건 안 돼요. 감히 내가 어떻게…”
그를 떠올리는지 낯선 표정이 된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다시 검을 휘두른다.
마치 연락할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강해지겠다는 포부를 드러내는 듯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장예진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번졌다.
‘어지간히도 푹 빠지셨나보네.’
그녀들은 모르고 있었다.
지금 최종택이 피나는 훈련이 아닌, 교관과 허리 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