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9화 〉본 교관은 1회 차에 실망했다 (2) (29/124)



〈 29화 〉본 교관은 1회 차에 실망했다 (2)

29화

9.

“이번 승급시험은 유난히 치열하겠군요.”

교장의 말에 다른 교관들도 수긍했다.

“유망주가 너무 많습니다. 이번 기수만 해도 그렇고.”
“확실히… 날이 갈수록 훈련생들의 수준이 높아지고 있죠.”
“그래도 역시 이번 승급시험 수석은 아리아겠지?”
“저번 기수 수석? 아니, 저저번인가? 확실히 눈에 띄는 얘기는 했지. 교장님도 그렇게 생각해요?”
“모르죠. 서리 길드에도 유망주가 몇 있으니까. 아마 5대 길드 중에 나오지 않을까 싶습니다.”

교장의 말에 다들 이게 맞다는 듯 손뼉을 쳤다.

“크… 그쵸. 이게 맞지.”
“여윽시 솔로몬. 이번 수석도 보나마나 5대 길드 중 하나겠죠.”
“난 오케스트라나 서리 길드에 한 표.”

단순히 5대 길드라서 치켜세우는  아니었다.
그간다른 건 몰라도 D등급 승급시험에서만큼은 5대 길드가 압도적이었던 탓이다.
6년 연속 5대 길드 출신이라면 믿어지는가.
거의 그쪽으로 의견으로 쏠릴 때쯤 문득 교장이 물었다.

“이진혁 교관님은 누가 수석일  같나요?”
“…신경 쓰이는 놈이 하나 있지만 아직 말씀드리긴 이르군요.”
“호오. 이진혁 교관님이 신경 쓰일 정도란 말이죠.”
“오오, 뭐야뭐야. 저 짠돌이 교관님이? 이럼 또 아직 모르지.”

감탄하는 교장과 호들갑을 떠는 유지아 교관.
무언가를 떠올리는 듯 보이던 이진혁 교관이 무덤덤한 얼굴로 대답했다.

“결과를 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합니다.”
“흐음. 그렇지. 뭐든 결과가 나와야 아는 법이니.”
“그렇긴 하죠.”

맞는 말이라며 맞장구치던 유지아가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보다 김예나 교관님은 어디 갔나요?”
“당분간 휴가를 간다더군요.”

그 말에 대답한 건 한 이진혁 교관이었다.
그에 교장이 의외라는 듯 턱밑을 매만졌다.

“음. 별일이군요. 3년 동안 휴가  번  갔던 사람이….”
“그걸 몰아서 쓴답니다.”
“…뭔 일이 있나요?”
“아까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신경 쓰이는 놈이 있다고.”
“호오.”

 별일이었다.
그 예나 교관이 휴가를 몰아  정도의 헌터라니.
 전까지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던 교관들도 놀랐는지 그들을 바라보고 있다.
그 시선에 교장이 기껍다는 듯 미소 지었다.

“2주 뒤에 있을 승급시험이 무척 기대되는군요.”


10.
C급 던전 탐사에는 보통 두 가지 조건이있다.
하나는 최소 4명 중 3명이 C급 이상의 헌터일 것. 이때 나머지 1명의 헌터가 D급 이상의 헌터여야만 한다.
하지만 B급 이상의 헌터가 개입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B급 헌터 한 명과 D급 헌터 한 명.
단 둘이서도 C급 던전을 탐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내가 잘해야 해.’

그렇기에 예나는 굳게 다짐했다.
아직 헌터가 된  얼마 안 된 최종택이 위험해지지 않게 하자고.
하나 그 생각은 던전에 들어온 순간 바뀌었다.

서걱-!
푸확!

“꾸에에에엑!!”

거침없는 일격.
섬광과도 같은 일섬에 오크의 목이 동강동강 베어나간다.
질기기로 유명한 오크의 가죽도 최종택의  앞에선 하등 고블린의 가죽과 다를 바 없어보였다.
일방적인학살을 예나는 멍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왜, 왜 이렇게 세지…?’

불과 얼마 전인데 사람이 달라졌다.
진짜 단어 그대로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이 정도면 B등급 수준인데…’

성장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빠르다.
아직 그녀보다야 약하지만, 이대로 가면 따라잡히는 것도 먼 미래가 아니리라.
달라진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묘한 압박감도 안 느껴져.’

그의 곁에 있으면 늘 느껴졌던 그 느낌이 안 든다.
신기한 일이었다.
이전에는  느낌 때문에 시선이 갔는데, 지금은 오히려 그 느낌이 안 나기에 더 눈이 간다.

휙- 푹!

‘정말 강해지셨다.’

오크를 어린아이 상대하듯 가볍게 제압하는 모습을 멍하니 보고 있을 때였다.
어그로가 튀었는지 오크 하나가 갑자기 튀어나왔다.

쿠아아아!

멀리서 가만히 지켜보는 그녀를 약자로 여긴 듯했다.
갑작스런 상황에 예나가 급히 허벅지에  단도를 꺼내려는 순간.

쾅!

어느새 나타난 최종택이 눈앞에서 도끼를 막았다.
눈 깜빡할 새에 일어난 일이었다.
퍼뜩 정신을 차린 예나가 감사인사를 하려는데 최종택이 먼저 입을 열었다.

“집중해주시죠.”
“…죄송합니다.”

예나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설렘 때문이 아니었다.
처음 그가 지켜줬을  순간 가슴이 뛰긴 했지만, 그보다는 부끄러움이 더 컸다.
그녀가 질끈 눈을 감았다.

‘…프로답지 못했어.’

달라진 그의 모습에 신경 쓰느라 정작 자신의역할은 수행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래서야 그를 데리고 온 게 무안하지 않는가.
명색이 엘리트 교관인데 이대로 아마추어처럼 있을 순 없었다.

‘정신 제대로 차리자.’

부릅뜬 그녀의 눈빛이 달라졌다.
달라진 건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걸 계기로 그녀의 움직임이 놀랍도록 세련되게 바뀐 것이다.

팍팍!
파바박!

오크가 나타난 순간 시위를 놓는다.
 놈  두 발씩.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날아온 화살에 오크들이 고통에  비명을 내질렀다.

“꿰에엑!”

단말마였다.
관통화살에 가슴이 꿰뚫린 놈들이 털썩 무릎을 꿇었다.
전방에 나선 최종택보다 더 빠른 속도였다.
쓰러진 오크들을 보며 그가 진심으로 감탄했다.

“와… 벌써 다섯 마리나 잡은 거예요?”
“예.”
“어우, 제대로 하니까 따라잡질 못하겠네요.”
“그러는종택 씨도 세 마리나 잡지 않았습니까.”

언뜻 보면 꽤나  격차다.
하지만 사냥 타입을 생각하면 그리 큰 차이가 아니었다.
직접 다가가야 하는 그와 달리 예나는 시위만 당기면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로 뱉은 말에 최종택도 내심 뿌듯했다.

‘확실히 강해지긴 했다.’

며칠 전만 해도 그녀와 같이 홉고블린을 잡고 있었는데 이제는 오크를 상대로도 거뜬하다.
그가 생각해도 미친 성장속도였다.
새삼 깨닫게 된다.
자박꼼 능력이 얼마나 개사기인지.

‘자박꼼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진 못 됐겠지.’

어쩌면 아직도 헌터 자격증을 못 땄을지도 모른다.
당장 신서희만 해도 아직 수업을 받고 있는 걸로 아니까.
그리고 그게 보통의 경우고.
힐끗 예나 교관을 본 그가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다.

‘시너지 효과가 제대로 적용되나보네.’

예전이었다면 다소 버벅거려야할 그녀인데 오늘은 놀랍도록 정확하고 신속하다.
자박꼼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다는 증거였다.
이제는 한지수와 파티를 맺거나 다른 사람과 팀을 짜도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자박꼼의 등급이 높아지면 어떻게 될 진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은 안심해도 될 듯했다.
그리고 설령 나중에 효과가 없다 해도 은신 자체 성능이 좋았다.

‘정확히는 효율이좋아.’

꼭 자박꼼이 아니라도 샤프아이와 같은 스킬과도 합이 잘 맞는다.
당장 이번에만 해도 몸을 숨겼다가 빠르게 급소를 노리니 평소보다  빠르게 사냥할 수 있었다.
은신, 기습.
이 단순한 방식만으로도 이런데 다른 활용법을 찾아내면 어떨까?

‘좀 더 연구해봐야겠다.’

차차 연습하면 좀 더 사냥의 폭이 넓어질 것이다.
그렇게 최대한 은신을 활용하며 사냥하길 한창. 어느새 마지막 남은 오크까지 숨통을 끊어낸 순간.

쑤욱.

검을 뽑아낸 최종택이 기다렸다는 듯 예나에게 물었다.

“몇 마리 잡았어요? 전 방금 걸로 딱 29마리 잡았는데.”
“35마리 잡았습니다.”
“아… 졌네요.”

참담한 패배였다.
나름 선방했다 생각했는데….
역시 숙련된 궁사를사냥속도로 이기는 건 무리였나 보다.
보스 타임어택이면 몰라도 잡몹 잡는 것엔 궁사만한  없으니까.

‘비아그라를 먹을 걸 그랬나?’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깟 경쟁심이 뭐라고 부작용을 안기는 싫었다.
왠지 자존심 상하기도 하고.
그래도 6마리차이면 나쁘지 않다 생각하는데 문득 그녀의 모습이 눈에 띈다.

‘음. 착각인가?’

왜일까.
표정은 평소와 같은데 이상하게 당당해 보인다.
처음엔 몰랐는데 자세히 보니 보인다.
아주 미세하게 올라간 입꼬리와 평소보다  당당하게 편 어깨와 허리가.
그리고 그것보다.

쭈욱.

허리를 피면서 쭉 내민 미드가 독보적이었다.
볼륨감있게 솟은가슴 때문에단추가 살짝 벌어졌는데 그 사이로 언뜻 검은색이 보인다.
순간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씨익 웃은 그가 그녀에게 다가갔다.

말캉.

“…아앗!”

그러더니 대뜸 미드를 만진다.
마치 어린아이의 머리를 쓰다듬듯 자상하게.
깜짝 놀란 그녀가 뒤로 살짝 물러나자 최종택이 이상하다는  말했다.

“전 보상이라 생각했는데… 아닌가보네요.”
“…에요.”
“네? 뭐라고요?”
“…아니에요.”

그러며 푹 고개를 숙이는 예나.
계속 가슴에 손을 대고 있는데도 거부하는 기색이 없다.
오히려 더 잘 만지기 쉽게 몸이 살짝 기울어져있다.
 보면 귀도 새빨갛게 물들어있고 미약하게 거칠어진 숨소리도 들린다.

‘아, 귀엽네.’

어쩜 저리 겉과 속이 다를까.
속으론 아닌 척하는데 몸은 이미 반응을 하고 있다.
슬쩍 어루만지던 손을 떼자 아쉬운 눈으로 손을 바라보다 고개를 돌린다.
최종택은 모르는 척 물었다.

“이제 보스만 남은 건가요? C급 보스겠네요.”
“예… 생각보다 더 빠르게 왔네요.”

그리 종횡무진하고 다녔으니 몬스터가 남아나는 게 이상하지.

‘보스 잡으면 20찍을 수 있으려나…’

경험치가 얼마 안 남았었는지 사냥하면서 19레벨은 찍었는데 20까지 찍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10레벨 후반이 되니 통 경험치가 오르지를 않았던 탓이다.
아무리 클리어 경험치가 크다고는 해도 이미 1업한 상태에선 좀 힘들지 않을까 싶다.
그때 문득 뇌리를 스쳐가는 게 있었다.

‘잠시만.  번 해도 경험치 오르잖아.’

그가 저도 모르게 예나를 훑었다.
조금씩 다리를 배배 꼬던 그녀가 눈이 마주치자휙 시선을 피한다.
그런 그녀에게 다가간 최종택이 은근하게 물었다.

“보스 들어가기 전에 잠시 쉴까요?”
“…그러죠.”

그렇게 그녀의 옆자리에 앉은 그가 조금씩 손을 올렸다.
너무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은 속도였다.
대놓고 다가오는 손길에도 그녀는 피하지 않고 모르는 척 눈을 피하고 있었다.

스윽.

이윽고 검은 블라우스 단추에 손이 닿은 순간.

“싫으면 피해요.”
“……”

그가 낮게 경고하자 예나가 시선을 피했다.
블라우스 단추를 푸는데도 그녀는 끝내 몸을 가리거나 피하지 않았다.
풀린 단추 사이로 레이스 형식의 검은 브레지어가 언뜻 보였다.

스르륵.

이윽고 블라우스를 벗긴 그가 부드럽게 살결을 쓸어내렸다.

“으응…”

옅은 신음이 귓가를 자극한다.
듣기 좋은 소리에 그의 손이 목부터 허리까지 천천히 내려오더니 이내 브레지어의 후크를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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