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화 〉본 교관은 1회 차에 실망했다 (1)
28화 : 본 교관은 1회 차에 실망했다.
7.
던전이 끝난 후.
집에 돌아온 최종택은 어딘가 멍한 얼굴이었다.
“도대체 그 여잔 뭐였지?”
무언가 태풍이 지나간 느낌이다.
요즘엔 던전에서 원나잇하는 게 대세인가?
확실히 보통의 야외플과 다른 쫄깃함이 있기는 하다.
‘뭐, 나름재밌었어.’
어찌됐든 자신에게 나쁠 건 없었다.
[이름 : 최종택]
[레벨 : 18]
[능력치]
[근력 : C (30 / 100)], [민첩 : C (20 / 100)]
[체력 : C (10 / 100)], [마력 : C (20 / 100)]
보스까지 잡고 나온 덕에 능력치가 꽤 올랐으니까.
미미한 상승폭이긴 했지만, 어차피 이번 소득의 핵심은 이게 아니다.
[은신]
-등급 : B
-설명 : 기척을 감추고 몸을 은신한다.
발소리가 나지 않지만, 흔적은 남는다.
“크… 내가 이걸 손에 넣을 줄이야.”
절로 감탄이 나온다.
B등급이라 그런지 은신의 성능도 좋지만 무엇보다 좋은 건 시너지 효과였다.
‘이제 파티해도 문제없겠어.’
자박꼼과 은신의 시너지는 그의 예상대로였다.
기운을 숨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자박꼼의 영향이 사라진 이상 파티를 해도 피해를 끼치지 않을 수 있게 됐다.
보통 솔플 위주로 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여러모로 쓸모 있으니까.’
기운을 숨기는 것 자체로 활용할 구석이 많다.
‘한 번 실험해보고 싶은데… 다음 던전은 어디로 가야할까.’
당장 확인하고픈 마음이 굴뚝 같지만 상황이 애매하다.
지수한테는 통 연락이 없고, 그렇다고 따로 파티를 구하기도 뭔가 안 끌린다.
‘흠… 그냥 고향가서 부모님이나 뵈고 올까?’
누나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그간 통 연락이 없긴 했으니까 이참에 고향이나 내려갈까 싶다.
진동이 울리며 화면 상단에 알림이 뜬 건 그때였다.
[전직차도녀 : 시간 되실 때 혹시 만날 수 있습니까. 던전 관련으로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응? 교관님이네?”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이름에 최종택이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바로 답장을 보내볼까 하다 이내 화면을 내렸다.
일단 부모님한테 먼저 연락을 한 후에 시간을 정하던가 할 생각이었다.
‘지금 던전 가는 것도 좀 고민되기도 하고…’
막상 고향에 내려가는 쪽으로 생각이 기운 탓일까.
오랜만에 쉬고 싶기도 했다.
그런데…
[전직차도녀 : 던전 관련으로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전직차도녀 : …바쁘신가요?]
[전직차도녀 : 저와 던전에 가면 종택 씨에게도 이득인 부분이 많습니다.]
[전직차도녀 : 우선 경력이 쌓이고…… 높은 곳에도 갈 수 있으며……]
톡을 읽고도 몇 분동안 답장을 안 보내자 몇 초 간격으로 폰이 울린다.
텍스트인데도 팔딱팔딱 거리는 게 초조함이 느껴진다.
마지막엔 반장 선거하는 것도 아니고 자기와 함께할 시 장점에 대해 나열하고 있다.
[나 : 아, 죄송합니다. 잠시 연락이 와서.]
[나 : 음… 그럼 지금 시간 되나요?]
저러다 숨넘어갈 것 같아서 톡을 보내자 곧장 답장이 온다.
[전직차도녀 : 당연히 됩니다.]
단번에 진정된 모습에 웃음이 나온다.
초조하게 톡을 보낼 땐 언제고 이제 와서 무덤덤한 척 하는 모습이 상상돼서 더 웃기다.
‘역시 귀엽네.’
좀 더 골려줄까 싶다가 진짜 숨넘어갈 거 같아서 그만두었다.
몸 상태를 확인한 그가 톡을 보냈다.
[나 : 지금 보시죠.]
[전직차도녀 : 알겠습니다.]
휴대폰을 덮은 최종택이 침대에서 일어났다.
샤워는 집에 오자마자 해서 옷만 갈아입으면 될 듯했다. 적당한 옷을 고르던 그가 문득 생각했다.
‘아. 그럼 또 하는 건가?’
오늘만 두 탕인데.
잠시 멈칫하던 그가 나쁠 것 없다는 듯 다시 옷을 골랐다.
‘우리 교관님 불방망이 찜질 좀 하셔야겠네.’
8.
[종택 씨 : 지금 보시죠.]
[나 : 알겠습니다.]
답장을 보낸 예나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상상만해오던 그와의 만남을 생각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큼큼 헛기침을 한 그녀가 옷차림을 살폈다.
잠옷 상태였다.
“……”
이내 떡 진 머리를 확인한 그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씻지도 않은 걸 뒤늦게 자각한 것이다.
일단 신나서 지르고 봤는데 이럼 큰 문제가 생긴다.
‘…빨리 씻어야겠어.’
그녀의 눈이 결연해졌다.
호다닥 화장실로 달려간 그녀가 빠르게 앞머리만 감으며 양치를 했다. 그리곤 바로 옷을 갈아입고 나가려다가 멈칫한다.
‘화… 화장.’
다급히 화장품을 챙긴 그녀가 엘레베이터에 탔다.
그녀의 집은 17층.
내려가는 시간동안 화장을 마칠 생각이었다.
보통은 매우 힘든 작업이지만, 그녀는 1초에 5발 이상 쏘는 명사수.
그녀의 민첩함이라면 충분하다.
띠잉-
[문이 열립니다.]
이윽고 문이 열리는 순간.
화장을 마친 그녀의 얼굴이 화사하게 빛났다.
초조해하던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차가운 도시 여자의 분위기를 물씬 풍긴다.
또각또각 걸으며 그녀가 시간을 확인했다.
[6 : 30 PM]
‘서두르자.’
약속 장소까지는 5분 거리.
하나 그녀의 속도라면 2분이면 충분하다.
6시 20분에 약속을 잡았으니 이 정도면 그리 늦지 않았다.
축지법에 가까운 속도로 카페에 도착한 그녀가 상태를 정돈할 때였다.
“어, 오래 기다리셨어요? 준비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나봐요.”
때마침 최종택이 들어왔다.
예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들어가시죠.”
그녀를 따라 들어가려던 그가 순간 멈칫했다.
그리곤 예나의 입술을 가리킨다.
갑작스런 행동에 흠칫 몸을 떤 순간 그가 입을 열었다.
“그런데 립스틱 번지셨어요.”
“……”
그녀의 새하얀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사람 얼굴이 저렇게 빨개질 수가 있구나 싶을 정도로. 홍당무처럼 변한 그녀가 고개를 돌렸다.
잠시 후, 자리에 앉았을 때.
그녀의 입술에 번져있던 립스틱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었다.
“오랜만입니다.”
“풉!”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최종택이 그만 웃음을 터트렸다.
결국 그녀는 한동안 숙인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 모습에 뒤늦게 정신을 차린 그가 헛기침을 하며 화제를 돌렸다.
“크흠. 아무튼 던전 얘기하셨죠?”
“…예. 같이 던전에 들어가고 싶어서 연락했습니다.”
다행히 예나도 그 의도에 따라주었다.
“카톡으로 보내드렸던 것과 같이 저와 같이 던전에 가게 되면 이득인 점이 많습니다. 우선 이제 곧 승급시험인데 그 전에 경력을 많이 쌓아두면 승급시험에 떨어져도 승급을 할 수 있는데……”
“아앗… 물론 종택 씨가 떨어진다는 소리는 아니지만…”
“어어…”
아니, 따라주는 걸 넘어서 강연하는 수준으로 설명한다.
부끄러워하던 모습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어떻게든 같이 던전에 데리고 가겠다는 열의만 보일 뿐.
이대로 가다간 1시간째 듣겠다 싶어서 그가 말을 잘랐다.
“그, 그만요. 무슨 얘기인지 충분히알았어요.”
“…그렇군요.”
자기가 생각해도 말이 많았다는 걸 자각했는지 그녀가 머쓱한 표정을 짓는다.
표정이 적은 그녀로선 다소 희귀한 모습이었다.
가까스로 한 숨 돌린 최종택이 슬쩍 그런 그녀를 살펴봤다.
‘…어차피 갈 생각이긴 했는데…’
막상얘기를 들어보니 생각보다 더 괜찮다.
새로운 스킬을 실험해보려던 목적과 딱 들어맞는 조건이었던 탓이다.
경력으로 인정되기도 하고.
‘이건 거절할 이유가 없지.’
예나 교관과던전에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그나저나 그녀와의 던전이라…
문득 그녀의 정확한 능력치나 스킬이 궁금해졌다.
대강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형상화된 정보를 눈으로 보는 거랑은 다르지 않겠는가.
‘엿보기 구멍.’
속으로 외치자 그녀의 정보가 나타났다.
[김예나]
[성별 : 여]
[나이 : 25]
[등급 : B]
[레벨 : 42]
[능력치]
[근력 : B (60 / 100)], [민첩 : A (40 / 100)]
[체력 : B (20 / 100)], [마력 : B (70 / 100)]
[상태 : 부끄러움, 설렘]
[특이사항]
[그때 그 던전을 잊지 못함]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음]
[B등급 스킬 ‘샤프 아이’ 보유]
[B등급 스킬 ‘속사’ 보유]
……
[C등급 스킬 ‘윈드 워크’ 보유.]
‘오…’
생각보다 능력치가 화려하다.
민첩이 A나 되고, 다른 능력치도 모두 B등급이다.
B등급 스킬도 2개나 가지고 있다.
그 외에도 궁수에 적합한 스킬과 기동에 좋은 스킬이 많았다.
‘엘리트라더니… 그럴 만하네.’
레벨 42에 저 정도 스펙이면 상당했다.
자박꼼이 있는 그가 비정상적인 거지, 일반적인 42레벨 헌터들은 스텟 하나를 B등급까지 올리기도 힘들다.
새로 알게 된 건 하나 더 있었다.
‘25살이셨구나. 연상이었네.’
비밀로 감춰졌던 그녀의 나이였다.
누나인 건 알고 있었는데 생각보다나이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다.
왠지 신기해서 상태 창을 살펴보는데 한 정보가 눈에 띄었다.
[그때 그 던전을 잊지 못함]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음]
‘어? 이것 봐라?’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오른다더니.
예나 교관이 딱 그 꼴이었다.
정작 신서희보다 그녀가 더 안달이 나있으니 말이다.
‘하긴, 그날 장난 없긴 했지.’
그간 했던 섹스 중에서도 손에 꼽는 날이긴 했다.
그날을 떠올리며 피식 웃는데 그녀의 초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랑 같이 던전에 가면 C등급 던전에도 갈 수 있습니다. D등급 헌터인 종택 씨에겐 무척 큰 경력이 될 겁니다.”
“아.”
그제야 상태창에서 시선을 뗀 그가 그녀를 쳐다봤다.
겉으로 보기엔 태연해보이지만 동공이 미미하게 떨리고 있다.
초조함과 불안함이 담겨있다.
상태창을 본다고 대답을 안 하고 있었더니 거절하는 분위기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귀엽네.’
놀이동산에 가자고 조르는 아이같이 느껴진다.
씨익 웃은 그가 짓궂게 물었다.
“그건 핑계고 나랑 같이 던전 가고싶은 거죠?”
“…에? 종택 씨에게도 충분히 좋은 조건이라 생각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얼버무리는데 이미 보였다.
순간, 그녀의 표정에 금이 간 게.
당황한 기색을 애써 숨기려는 모습에 최종택도 적당히 넘어가주었다.
“그쵸. 언제 갈까요?”
“언제든 가능합니다. 원하시는 날짜에 맞출게요.”
“흐음… 그럼 내일 갈까요?”
“…오늘이 아니라요?”
그녀의 의외라는 듯한 물음에 최종택이 어깨를 으쓱였다.
“오늘은 조금 피곤해서요.”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뵙죠.”
“그래요. 그럼 쉬세요.”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그녀가 카페 밖까지 배웅해준다.
적당히 인사를 나누고 헤어진 최종택이 힐끔 그녀를 엿보기 구멍으로 확인했다.
[상태 : 상당히 아쉬워하는 중]
[살짝 울적함]
‘역시 귀엽네.’
마음 같아선 지금 당장 던전으로 유턴하고 싶지만 참았다.
열매는 익을수록 맛있는 법이니까.
‘오늘은 체력훈련 쉬어도 되겠다.’
그리고 그날 새벽.
그녀는 축축하게 젖은 속옷을 갈아입어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