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5화 〉대학 퀸카와 병원에서 (2) (25/124)



〈 25화 〉대학 퀸카와 병원에서 (2)

25화

2.
하얀 방.
넓은 곳이었지만 아무런 장식도 없어서 허전한 느낌의 방이었다.
그나마 있는 거라곤 책상과 의자, 그리고 책장 하나.
그런  분위기처럼 무미건조한 얼굴을 한 여자가보고서를 읽고 있을 때였다.

똑똑.

“…들어오세요.”

보고서를 내린 여자가 고개를 들자 얼굴이 드러났다.
눈처럼 새하얀 머리카락.
마찬가지로 하얀 피부와 아름답지만 어딘가 차갑게 느껴지는 눈, 그리고오뚝한 코까지.
그림 속에서 튀어나온  비현실적인 외모였다.
동화 속 얼음마녀가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

그저 눈이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얼어붙는 듯한 아름다움에 문을 열고 들어온 남자가 흠칫 몸을 떨었다.
그러나 곧 상대가 누구인지를 자각하고 정신을 다잡았다.

‘볼 때마다 적응이 안 되는 얼굴이야. 큰일  뻔했네.’

사신 이설.
그녀의 정체였다.
유종현 팀장, 그가 몸을 담그고 있는 길드의 마스터이기도 했다.

‘왜 그리 혹독하게 당하고도 고백하는 남자들이 있는지  것 같기도 해.’

그녀의 별칭이 사신이 된 이유에는  가지 사연이 있다.
하나는 전장에서 가차 없이 목을 치는 모습이 꼭 사신 같아서.
다른 하나는…

‘끈질기게 달라붙었다가 호되게 당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지?’

길드를 만든 지 얼마 안 된 초창기에 어떻게든 해보려던 남자들의 소식 때문이었다.

고자가 되었다.
죽었다.
정신병원에 다닌다더라……

소문은 늘 과장되기 마련이지만, 유종현은 어느 정도 신빙성 있다 여겼다.
그녀를 대하는 사람들의 눈에 언뜻 공포가 서려있는  봤던 탓이다.

“이번 파주 D급 던전에 대한 보고입니다.”

그렇기에 유종현은 고개를 푹 숙인  본론부터 꺼냈다.

“이번 기수 수석으로 D등급을 수료한 헌터가 파주 던전에서 B급 보스를 잡았다고 합니다.”
“……”

대답이 없었지만 유종현은 재촉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썹이 살짝 찡그려진 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 짧은 침묵에 유종현이 식은땀을 흘렸다.

‘B등급이 왜 나온 건지 책임을 물으시려는 건가…?’

일부러 자극적인 부분만 말했는데 반응이 저러니 불안했다. 자신의 처분을 정하고 있는 건 아닐까하고.
지금이라도 사실대로 말해야하나?
혹시 괘씸죄가 붙는 건 아니겠지?
소문이 그래서인지 별  없는 반응에도 숨이 다 막혀온다.
무언가 불편해보이던 그녀가 이내 고개를 끄덕인 건 그때였다.

“알았어요. 나가세요.”
“…예.”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쉰 그가 잽싸게 허리를 숙이고 방을 나섰다.
문이 닫히자 이설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흠… 요즘 D등급 중에 괜찮은 애가 있나?”

혼잣말과도 같은 중얼거림에 옆에 있던 비서가 대답했다.

“제 직속 부하 한 놈이 있습니다. 이미 승급확정인 아이라 쓸 만할 겁니다.”
“한 번 알아보라하세요.”
“네.”

즉시 어딘가로 연락을 취하는 비서.
그것으로 이번 사건에 대한 이설의 관심은 끝이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녀는 다시 보고서를 읽어나갔다.

3.

“으음…”

잠에서  최종택이 머리를 긁적이며 몸을 일으켰다.
옆을 보니 한지수가 곤히 자고 있다.
알몸으로 자고 있는 탓에 이불을 덮어준 그가 휴대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7 : 24 PM]

‘벌써 이렇게 됐네.’

2시  넘어서 병원에 왔으니 벌써 5시간이 지난 거다.
어쩐지 어둡더라.
아직은 낮이 짧아서인지 7시인데도 10시처럼 어둡다.
문득 시선이 한지수에게 향했다.

‘내가 진짜 얘랑 했구나.’

새삼 깨달으니기분이 묘하다.
연예인하고 한 느낌이랄까.
동경하는 것까지는 아니어도 다른 세계 사람이라 생각했던 얘가 나신으로 옆에 자고 있다니.
진짜인가 싶어서 빤히 쳐다보는데 그녀가 뭐라 웅얼거리며 그에게 달라붙는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현실감이 든 걸까.

‘…어우, 병원에서   거야.’

문득 이곳이 병원이었다는 게 자각되었다.
자신이 온 목적도 병문안이었다는 것도.
절대안정을 취해야하는 탓에 의사가 들락거리지 않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민망하긴 한데 후회는 없었다.
그녀와의 섹스도 좋았지만, 얻은  그것만이 아니었으니까.

[이름 : 최종택]
[레벨 : 16]
[능력치]
[근력 : C (20 / 100)], [민첩 : C (10 / 100)]
[체력 : C (0 / 100)], [마력 : C (20 / 100)]

‘이제 전부 C등급 됐네.’

우선 능력치를 획득했다.
B등급 보스를 잡아서인지 레벨이 많이 올랐는데, 능력치의 변화는 썩 눈에 띄지 않았다.

‘확실히 레벨이랑 등급이 오르니까 능력치가 잘  오르기는 한다.’

D와 C에 경계라도 있는 걸까.
재벌녀와 했을 때 대폭 상승한 이후로 통 오르지를 않는다.
한지수 정도면 제법 오를 법도 하건만.
아쉽긴 한데 이해가 되긴 한다.
D등급과 C등급의 격차가 보통 큰 게 아닌데 수치가 똑같은 폭으로 오르는 게 더 이상하지.
오히려 이 정도면 나름 선방했다봐야한다.

‘그러고 보니 스킬도 얻었었지.’

첫 판이 끝나고 스킬을 하나 얻었었다.
그땐 너무 한지수와의 섹스에 열중해서 제대로 못 봤는데  기대가 된다.
그녀는 무려 A등급 스킬 보유자니까.

‘제발 A등급…!’

질끈 눈을 감은 그가 이윽고 스킬을 확인한 순간 아쉬움 가득한 탄성이 새어나왔다.

[파이어 오라]
-등급 : C
-설명 : 마나가 미약하게 불 속성을 띄게 된다.
불에 대한 내성이 생긴다.

“아…”

좋은 스킬이다.
C등급이면 무난한 편이고 속성계 스킬이니까.
불에 대한 내성도 쓸 만하고.

‘A등급 먹었으면 좋았을 텐데…’

다만, 기대한 게 너무 커서인지 기쁨보다는 아쉬움이 먼저 든다.
사람 마음이 간사하다는 게 참 이럴 때 느껴진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슬로우 힐 하나 얻고 사기라고 좋아했는데, 이젠 C등급을 얻고도 아쉬워하는 꼴이라니.

‘하긴… 그동안이 운이 좋았던 거지.’

랜덤으로 얻는 걸로 늘 유용한 스킬을 얻었으니까.
사실 그게 이상한  맞지.
지금 이게 정상적인 상황이고.

화륵.

‘뜨겁네.’

아쉬움을 털어내고 스킬을 써보니 썩 나쁘지 않다.
손가락으로 흘려보낸 마나에서 옅은 불이 피어올랐는데 제법 뜨겁다.

‘이 정도면 약한 화상 정도는 입히겠네.’

큰 데미지를  정도는 아니지만, 따로 마나가 드는 게 아니라는 점에서 합격이었다.

‘어? 그럼 불을 몸에 두를 수도 있나?’

마나만 유지된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혹시나 싶어서 침대에 불이  번지게 왼팔에만 보내보니 옅은 화염이 팔을 감싼다.
호오…?
이거제법 유용해 보인다.
상대 입장에서 신경 쓰일 수밖에 없을 테니까.

‘자박꼼하고의 시너지는…’

문득 떠오른 생각에 잠시 멈칫한 최종택이 고개를 끄덕였다.

‘흠. 화끈해지겠군.’

그러고 보니  판  후에 한지수가 더  느꼈던 것 같은데 불방망이 때문이었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옆에서 잠에 취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응… 먼저 일어났어?”

한지수가 눈을 부비며 몸을 일으킨다.
상념에서 벗어난 최종택이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응. 너 되게 잘 자더라.”
“…뭐야. 자는 거 본 거야? 민망하게…”

부끄러운지 시선을 돌리던 그녀가 뒤늦게 알몸인 걸 자각했는지 이불을 들어올린다.
은근 부끄러움이 많은 모습에 최종택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러자 그녀의 눈이 샐쭉해진다.

“그 웃음 뭐야.”
“아냐. 그냥 귀여워서.”
“…너 여자 많지.”

순간 입이 안 벌어졌다.
한 치의 고민 없이 대답할 수 있던 질문인데 지금은 선뜻 대답이  나온다.
왠지 모르게 찔려서 머뭇거리자 그녀의 눈이 더욱 가늘어진다.

“뭐야.  대답이 없…”

그녀의 전화벨이 울린 것은 그때였다.
듣기 좋은 발라드 노래가 맴돌자 분위기가 깨졌는지 한지수가 웃음을 터트린다.

“너 왜 이렇게 당황해?”
“아니… 내가 언제. 전화 빨리 받아야하는 거 아냐?”
“말 돌리는 거 봐라?”

머쓱해하는 최종택을 뒤로한 그녀가 발신인을 보더니 빠르게 전화를 받는다.
그리곤몇 마디 하더니 끊고 그를힐끔 본다.
한데 뭔가 조심스러운 눈치다.
그러면서도 정작 말을 못 꺼내는  답답했던 최종택이 먼저 물었다.

“왜? 누군데?”
“아니… 선배인데. 그 전에 던전에서 나올 때 봤던 사람.”
“아… 응. 그런데?”

누군지 기억났다.
다음에  일이 생길 거라던 남자.
다소 마른 몸과 달리 강한 기운을 풍기던  인상적이었던 남자였다.

“…다음 주에도 던전에 갈 거라는데. 괜찮으면 같이 갈래? 너랑 가면 안심될 거 같아.”
“아?”

볼 일 있을 거라던 게 이거였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한지수의 눈빛이 심상치 않다.
뭔가 짝사랑 끝에 고백하고 대답을 기다리는 소녀 같다.  퀸카가 저런 표정을 짓는다 생각하니 왠지 웃음이 나온다.

“알았어. 나도 던전 가면 좋지.”
“진짜? 고마워!”

진심으로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뿌듯하다.
사실 파티는 더 이상 하지 않으려했는데 저 모습을 보니  번쯤은  가도 괜찮을 것 같다.
그렇다고 꼭 그녀 때문만은 아니었다.

‘경력 쌓이면 나도 좋으니까. 서리 길드면 나야 땡큐지.’

대형 길드와의 파티나 높은 등급의 던전이 제법 큰 경력으로 쳐준다.
이번 던전이 특수했던 거지, 실력자들이라 그런지 풀발의 영향이 있어도 잘하기도 하고.
여러모로 가서 나쁠 건 없었다.
그건 그거고 밤이 늦었다.

“난 이만 가볼게.”
“벌써? 아, 벌써가 아니구나. 벌써 8시 되어가네? 얼른 들어가.”

그가 일어나자 아쉬워하던 그녀가 시간을 보더니 수긍한다.
확실히 오래 있었긴 했지.

“그럼 다음에 봐!”
“응. 너도 푹 쉬어.”

그렇게 인사를 나누고 최종택이 병실로 나갔을 때였다.
혼자 남은 병실이 허전해서 폰을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다시 전화가 울렸다.

“어? 선배 왜요?”

다시 전화를 건 게 이상해서 묻자 선배가 본론부터 뱉는다.

-너 다음  일정 캔슬 됐다.
“…네? 아까는 잊은  아니냐고 뭐라 하더니 갑자기요?”
-그렇게 됐다.
“어… 이번에 종택이랑 같이가기로 했는데.”
-그 친구는 들어갈 거야.
“그게 무슨…”

갑자기 이렇게 된다고?
황당해서 따지려는 순간 그의 말이 이어졌다.

-길드장님 명령이야.

그  마디에 그녀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곤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신중한 그 ‘길드장’님이 명령할 정도면 확정된 거라 봐야한다.
그보다는 다른 점에 시선이 갔다.

“그럼 길드장님이 종택이에게 관심 보인 거예요?”
-그런 것 같다.
“그럼 종택이도 우리 길드 들어오겠네요?”
-그건 지켜봐야 알겠지…. 개인적으론 아마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어두워졌던 한지수의 표정이 밝아졌다.
같이 가는 건 아쉽지만, 같은 길드에 들어오게 되면  같이 다니지 않겠는가.
기대감에 가슴을 꼭 안고 있을 때.

-친구한테는말하지 마라.

김수민이 예고 없이 폭탄을 던졌다.

“…네? 왜요?”
-길드장님 명령이다. 그럼 그렇게 알고 끊는다.
“……”

멍하니 끊긴 전화를 붙잡고 있던 그녀가 울상을 지었다.
본의 아니게 말없이 약속 재낀 여자가 될 판이었다.

“…종택이가  싫어하면 어쩌지?”

다음 주가 걱정되는 그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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