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화 〉풀발을 넘어서 (1)
21화 : 풀발을 넘어서
4.
“아아악!”
비명과 함께 여자가 힘없이 쓰러졌다.
자연스레 하물이 빠져나오자 남자가 와락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곤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여자를 내팽개쳤다.
‘씨발, 이것도 못 버텨?’
겨우 3발 쌌을 뿐이다.
아직 제대로 만족하지 못했는데 지쳐서 쓰러지는 모습을 보니 현타가 찾아온다.
‘진짜 좆같다. 이래서 일반인은 안 돼.’
일반인과 각성자의 신체는 다른 종족이라 봐도 될 정도다.
사자나 호랑이보다 강한 몬스터들을 때려잡는 게 헌터이니까. 체력 또한 압도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게 문제였다.
‘씨발…, 기껏 헌터라고 꼬시면 뭐해.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넉 다운되는데.’
괜히 헌터들이 같은 헌터와 연애를 하는 게 아니다.
외모부터 속궁합까지 모든 게 차이가 난다.
‘쓰러지는 새끼를 데리고 해봤자 맛도 안 나는데… 그렇다고 아무나 먹을 수도 없고.’
마음 같아서는 여럿 데리고 놀고 싶은데 그러기엔 걸리는 게 많다.
기껏 서리 길드에 들어갔는데 찍히기라도 하면 안 되지 않은가.
‘길마가 그 사신이니까…’
특히 사신이라면 분명 처벌을 내릴 것이다.
이런 일 관련으론 질색하는 사람이니까.
결국 답은 하나다.
‘헌터를 먹어야하는데… 하아, 씨발.’
그게 말처럼 쉽냔 말이다.
어찌나 콧대가 높은지 헌터라는 여자들은 통 넘어오질 않는다.
‘좆같은 새끼들… 씨발, 기분만 잡쳤네.’
생각만 해도 좆같은지 그가 담배를 뻑뻑 피워댔다.
그리곤 휴대폰을 꺼내들었다.
화면에는 볼륨감 넘치는 갈색 웨이브머리의 미인이 친구들과 찍은 사진이 있었다.
댓글에 예쁘다는 칭찬이 넘쳐난다.
‘존나 꼴릿하네. 이년 한 번 먹어야하는데.’
그녀의 이름은 한지수.
그와 같은 파티멤버인데 심혈을 기울여 작업을 걸고 있는 여자였다.
‘저런 년이랑 하면 무슨 기분일까. 존나 좋겠지? 체력도 좋아서 잘 버틸 거 아냐.’
버틸 뿐이랴.
어쩌면 좋다고 위에서 움직일 수도 있을 거다.
헌터와 한 번도 한 적이 없는 그로서는 하나의 섹스 판타지이자 꿈이었다.
그녀와의 섹스를 상상하고 있을 때.
까톡- 까톡까톡-
까톡-
톡이 연달아 울려서 보니 파티 단톡 방이었다.
[한지수 : 다들 들었지? 선배 허락 받고 내 친구 데려오는데 여기 초대할게요!]
[김종우 : 알겠습니다.]
[유재희 : 알았어요 언니!]
[‘한지수’님이 ‘최종택’님을 방에 초대하셨습니다.]
[최종택 : 안녕하세요. 지수 친구 최종택입니다, 얼마 전에 각성했고 이번에 D급 헌터로 수료했습니다.]
[유재희 : 오오! 환영합니다! D급으로 수료한 거면 진짜 능력 좋으신가보다]
[최종택 : 뭐 운이 좋았죠.]
[한지수 : 얘 되게 능력자야. 선배가 이름 듣자마자 바로 허락했다니까? 다들 잘 보여야할 걸.]
[최종택: 아니, 야 그 정도는…]
“씨발, 이 새끼는 또 뭐야?”
남자, 김승현의 인상이 험악해졌다.
안 그래도 안 넘어와서 초조한데 친해 보이는 남자가 오니 불쾌한 것이다.
‘씨발 이년 친구라고? 지금 파티도 문제없는데 왜 한 명을 추가하고 지랄이야.’
마음 같아서는 한 마디 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선배가 허락했다는데 토를 다는 건 어불성설이었던 탓이다.
아주 속이 타들어간다.
누군 화딱지나 뒤지겠는데 아주 친근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니 다 엎어버리고 싶었다.
[나 : 닥쳐 이 씨발려ㄴ……]
탁탁탁.
흥분해서 적던 내용을 지운 그가 신경질적으로 담배를 껐다.
그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내가 어떻게든 저 년 먹는다.’
그리 다짐하며 김승현이 힘없이 엎어져있는 여자를 덮쳤다.
5.
서울 강남.
척 봐도 고급스러운 건물앞에 선 최종택이 고개를 들며 감탄했다.
‘와… 되게 크네. 이게 다 길드 건물이란 말이지?’
5대 길드 중 하나라더니 확실히 다르긴 다르다.
처음에 봤을 때 무슨 대기업 회사 건물인 줄 알았다.
길드도 사업의 일부니까 비슷한가?
‘대형 길드가 버는 수익이 웬만한 대기업보다 쎄다고 하니까…’
이런 걸 보면 확실히 시대가 변하긴 했다.
예전에는 삼성이 갑이었는데 이제는 5대 길드가 갑인 것처럼.
‘보안도 철저하네.’
보통 경비가 건물을 지키는데 여긴 헌터들이 대기하고 있다.
저 정도면 테러가 와도 멀쩡할 전력이다.
실제로 외국 기업에서 테러가 터졌을 때 경비를 서던 헌터가 처리한 사건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감탄하며 건물로 들어서자 대기하던 헌터들이 길을 막았다.
“혹시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최종택입니다.”
“출입허가 났습니다. 들어가시죠.”
이름을 대면 될 거라는 한지수의 말대로 헌터들이 곧장 길을 안내했다.
내부도 외부 못지않게 고급스럽다.
시설도 최신식이고 복지도 잘 되어있는 게 5대 길드라고 불릴 법했다.
‘확실히 거대길드가 좋긴 하다.’
이런 곳에 다니면 어디 가서 힘 좀 주고 다닐 수 있으리라.
‘그래도 이런데 들어오면 솔플은 절대 못하겠지?’
길드는 일종의 회사와 비슷해서 제멋대로 움직이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주먹구구식 길드면 모를까 대형길드라면 더더욱.
그리고 그건 최종택에게 중요했다.
‘팀에 여성이 있으면 아무래도 좀 그렇지.’
자박꼼 때문에 방해를 줄 확률이 컸으니까.
아무리 시설이 좋아도 솔플이 안 되면 의미가 없었다.
그렇게 길드의 장단점을 살펴보다보니 얼마 안 있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최종택이 마지막이었는지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중엔 한지수도 있었다.
“어, 여기야, 여기!”
“음.”
그를 발견한 한지수가 손을 흔들었다.
동시에 함께 흔들리는 미드를 보며 최종택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참을성을 키웠어. 이 정도론 어림도 없지.’
더 이상 예전의 최종택이 아니었다.
경쾌한 알림이 안 뜬 것에 그가 만족하고 있는데 일행들이 자기소개를 해왔다.
“제가 김종우입니다.”
“아 예. 그럼 이분이… 유재희 씨?”
“맞아요. 오늘 같이 파이팅해요!”
딱 단톡에서 봤던 모습이다.
얼굴이야 헌터들이니 다 어느 정도 생겼으니 그렇다 치고, 성격이 너무 똑같다.
김종우는 딱 사무적인 느낌이고, 유재희는 귀엽고 발랄한 느낌.
상상했던 것과 같아서 그런지 어색함도 적었다.
그 덕에 자연스레 대화에 참여했는데 문득 한 명이 눈에 띄었다.
“거참. 어차피 던전 한 번 가는 건데 뭐 거창한 인연이라고…”
갑분싸가 이런 걸 보고 하는 말일까.
가만히 팔짱을 끼고 있던 남자의 말에 분위기가 싸해졌다.
서로눈치를 보던 중 유재희가 얼버무리듯 말했다.
“어어… 이것도 인연이죠! 안 그래 종우야?”
“예. 그렇죠.”
“쯧….”
그러자 띠겁게 말하던 남자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혀를 찬다.
말만 안 했지 표정에 ‘지랄한다’라고 적혀있다.
그 모습을 보며 최종택은 고개를 갸웃했다.
‘저런 사람이 있었나? 아, 계속 말 없건 그 사람인가?’
그러고 보니 단톡 방에서 한 마디도 안 하던 남자가 있긴 했다.
시크한 사람인가보다 했는데.
만나보니 생긴 거나 성격이 생각했던 거랑 정반대였다.
‘세상 불만이 많네. 양아치인가? 뭐, 상관없지.’
어차피 한 번 보고 말 사이 같은데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나머지 사람과는 친해지기도 했으니까.
다소 찝찝한 기분을 넘기자 김종우가 이때다 싶어서 말했다.
“그럼 이제 던전으로 가볼까요?”
“네.”
그렇게 던전으로 향하는 길에 김종우가 간략한 브리핑을 했다.
“저희가 가는 던전은 파주에 있는 C급 던전입니다. 동굴 형으로 추측되고 아직 보스가 리젠되지 않은곳입니다.”
경험이 부족한 최종택 파티에게 좋은 던전이었다.
하기야 그러니 길드에서도 안심하고 보내주는 거겠지.
“탱커인 재희가 최전방에 서고 나랑 지수가 후방에 설 겁니다. 그리고 종택 씨와 승현 씨는 전방에 서는데 후방과 최전방을 보조한다는 느낌입니다.”
‘포지션 나쁘지 않네.’
탱커 하나, 힐러 하나, 원거리 딜러 하나.
근접딜러 둘.
전형적인 포지션인 만큼 효율적인 구색이었다.
다만, 한 가지가 아쉬웠다.
‘음… 내가 딜러라고 해야 하나?’
자신의 포지션이 애매했던 것이다.
탱커와도 같은 맷집, 근접 딜러다운 공격력, 그리고 무려 B급의 힐까지.
이걸 단순히 딜러라고 봐야할까.
전방에 서는 것보다는 좀 더 자유롭게 움직이는 게 편하지 않을까 싶은데.
‘뭐야. 지금 보니 나 완전 올라운더인데?’
언제 이리 강해진 거지?
이 정도면 굳이 파티를 안 해도 될 거 같다.
그냥 이대로 탈주해?
‘뭐… C급 던전은 D급 혼자 못 들어가니까. 길드 경험도 해보고 좋은 거지.’
잠깐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번 던전이 좋은 기회긴 했다.
C급 던전의 수준이 궁금하기도하고.
그래야 나중에 솔플을 돌더라도 더 안전하지 않겠는가.
그때.
“아, 이제 도착했네요.”
김종우의 말에 다들 창밖을 바라봤다.
그러자 도심 위에 덩그러니 놓인 게이트가 보였다.
‘저게 C등급 던전이구나.’
D급 던전보다 더 크고 짙다.
신기함 반 긴장 반의 심정으로 보는데 한지수가 옆에서 툭 건드린다.
“C등급은 처음이지? 긴장돼?”
“뭐 그렇지. 궁금하기도 하고.”
“보스도 없는 던전이라니까 걱정 마. 그리고 뭐 보스 나와도 이 누나가 다 잡아줄게!”
가느다란 팔을 치켜세우는 그녀를 보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한 때는 우러러봤었는데 막상 친해지니 생각보다 장난기가 많다.
이 정도면 허세가 거의 김두형 급인데.
‘음. 아닌가?’
생각해보니 허세가 아닌 거 같기도 하다.
무려 A급 스킬을 가지고 있는데 고작 일반 몬스터에게 애먹지는 않을 테니까.
쓸데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 동안 준비를 마친 김종우가 입을 열었다.
“그럼 들어갈게요. 다들 포지션 지켜주세요.”
“알았어!”
그렇게 최종택과 일행들이 던전에 발을 들였다.
6.
던전은 평범한 동굴형 던전이었다.
다만, 고블린 챔피언이 있던 곳처럼 그리 밝지는 않았다.
한 치 앞도 안 보일 정도는 아니지만, 일정 거리 이상 확인이 힘든 정도.
파앗!
“아, 됐다.”
“오오… 역시 종우. 좋아좋아.”
환해진 주변을 보며 유재희가 호들갑을 떨었다.
최종택도 말만 안 했지 감탄하긴 했다.
‘후레쉬 계열 스킬인가보네. 아니면 힐러라고 했으니 신성력 관련 스킬인가?’
어찌됐든 덕분에 몬스터를 잡는데 불편하진 않을 것 같다.
포지션을 유지한 채 앞으로 향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쿠어어어!
굵직한 포효와 함께 몬스터가 나타났다.
커다란 몸집과 날카로운 발톱.
붉은 털과 매서운 눈이 인상적인 곰을 보며 김종우가 말했다.
“레드 베어군요.”
“곰탱이 소굴이었나.”
“전투 준비하죠.”
그 말에 다들 빠르게 준비를 마쳤다.
그중에서도 가장 빨랐던 건 유재희였다.
발랄하던 평소 모습과는 반대로 전투가 시작되자 다른 사람처럼 진중하게 변한 것이다.
척.
제 몸집보다큰 방패를 들고 앞에 선 뒷모습이 그리 든든할 수가 없다.
레드 베어도 같은 심정이었을까.
방패를 든 유재희를 보자 호승심이라도 든 것처럼 우직하게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앞까지 돌진한 곰이 냅다 앞발을 내려찍었다.
쿵!
방패와 발이 맞닿으며 묵직한 진동이 전해진다.
그 진동에 한지수가 소리쳤다.
“버틸 만해?”
“끄떡없어요.”
그러며 오히려 곰을 밀어붙인다.
방패와 밀착한 그녀의 풍만한 무언가가 짓눌리자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띠링-
[풀발이 발동되었습니다.]
‘오우야…’
오늘도 줏대 없이 선 물건을 보며 최종택이 슬쩍 시선을 돌렸다.
‘방심했다.’
마음의 준비없이 너무 선정적인 걸 봐버렸다.
교관과 비교해도 제법 큰 크기였다.
애써 시선을 돌리며 전투 자세를 취하는데 갑자기 유재희의 기세가 줄어들었다.
쿵! 쾅-!
“으윽…”
굳건해보이던 방패가 서서히 밀린다.
눈에 띄게 굼떠진 게레드 베어의 움직임을 따라잡는 것도 벅차 보인다.
이상 현상은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퍼엉!
묵직한 파이어볼이 애꿎은 바위를 강타했다.
그 모습에 김종우와 김승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뭐야, 어디다 날리는 거야?”
“재희 누님도 그렇고 오늘 상태 왜 그래요!”
한지수와 유재희도 이상하다는 듯 답답한 얼굴이었다.
“모, 모르겠어. 갑자기 이상하네…”
“나, 나도… 몸이 갑자기 마음대로 안 따라주네. 버퍼링 걸린 것 같은 느낌이야.”
“그게 무슨… 레드 베어한테 디버프가 있었나?”
난처해하는 그들을 보며 최종택도 난감한 얼굴이 되었다.
‘이거 어떻게든 억제하긴 해야겠다…’
다행히 능력 있는 헌터들이라 그런지 무난히 잡아내기는 하는데 다소 애먹은 건 사실이었다.
5분이면 끝날 걸 10분 넘게 걸렸으니….
앞으로도 쭉 이러면 문제가 생긴다.
‘어쩔 수 없지.’
작게 한숨을 내쉰 최종택이 속으로 마법의 주문을 외웠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가슴이 웅장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