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화 〉10억을 받았습니다 (!)
19화 : 10억을 받았습니다.
10.
[통장 잔액]
-1,187,000,240원.
“와!”
통장 잔액을 본 최종택이 손바닥으로 이마를 탁 쳤다.
그리곤 믿기지 않는다는 듯 다시 잔액을 확인했다.
“씨발, 와…!”
이번에는 더욱 거친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조건 반사였다.
무릎을 치면 다리가 툭 차지는 것처럼, 잔액을보면 자기도 모르게 ‘와’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 정도로 미친 액수였다.
“와, 씨발…! 나 11억 있다!”
11억.
11,000원 뒤에 0이 5개나 더 있는 액수.
살면서 처음 보는 배부르다 못해터진 잔고를 보니 감개무량하다 못해 침대를 찢을 것만 같았다.
이게 다 마정석을 판값이었다.
‘와씨,10억이 넘게 나올 줄이야.’
지금껏 그가 사냥해서 모은 마정석을 판 것도 있었지만, A급 마정석의 덕이 컸다.
A급 마정석 하나만 해도 11억에 근접했으니까.
‘역시 호텔 오너 딸은 다르네. 10억을 그냥 줘? 씨발?’
이래서 사람들이 재벌 똥꼬를 그리 핥는가보다.
뭐라도 떨어지니까!
11억이 떨어지는데 발가락을 핥으라 해도 핥을 사람 천지일거다.
‘와씨… 이걸로 뭐하지? 빅맥 100개 시켜볼까?’
돈을 벌면 하고 싶은 게 많았는데, 막상 생각지도 못한 큰돈이 생기니 뭘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예 현실감각이 없다해야하나.
분명 내 통장 잔고인데 내꺼 같지가 않다.
니꺼인 듯 내꺼 아닌 내꺼 같은… 하여튼 그런 관계로 지금 당장 뭔가 지르지 않고서는 배길 수가 없었다.
그때.
지이이잉-
“어?”
때마침 문자가 울렸다.
전형적인 아싸였던 그답게 친구에게서 온 문자는 아니었다.
[곧 개강입니다. 몸 건강히…… 좋은 날 보내시고… 등록금이 밀렸으니 15일까지 등록금을 납부해주십시오.]
‘아 곧 개강일이구나.’
방학에 할 게 없어서 딸 치다가 각성했었지 참.
너무 정신없이 보내느라 잊고 있었는데 대학생이었다는 것마저 잊어버렸었다.
그래서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흠. 대학교라… 굳이 가야하나?’
헌터도 됐는데 별 의미가 없지 않나?
솔직히 취업 좋은 곳 하려고 대학교를 다니는 건데 그는 이미 좋은 직장을 얻었다.
벌써 11억이나 벌지 않았는가.
‘돈도 벌고 섹스도 하고, 최곤데?’
그렇게 생각하니 대학을 다니는 시간이 낭비처럼 느껴졌다.
그 시간에 차라리 섹스를 한 번 더 하고 말지.
잠시 생각하던 그가 무릎을 탁 쳤다.
‘그래! 이참에 자퇴하자.’
그의 지름신이 이상한 방향으로 강림하는 순간이었다.
1.
쇠뿔도 단 김에 빼라 했던가.
그 말을 좋아하는 최종택은 마음을 먹자마자 자퇴서류를 들고 학교를 찾았다.
‘이야, 내 인생에 자퇴가 있을 줄이야.’
고등학교 다닐 때 자퇴하는 얘들 보면신기했는데.
정작 자기가 자퇴한다 생각하니 묘하다.
회사에 사표 내러 가는 능력 있는 직장인이 된 기분이다.
이 맛에 자퇴를 하는 건가?
헛소리를 하며 과실로 가려는데 선객이 있었다.
“어라?”
최종택도 알고 있는 여자였다.
‘한지수?’
그녀는 학교의 유명한 퀸카였으니까.
웬만한 연예인도 뺨을 내줄 정도로 예쁜 얼굴과 몸매 때문에 여러 남자 울렸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고백이 들어올 정도였으니 말 다했지.
‘다 까였었지만… 대단했지.’
그야말로다른 세상 이야기였다.
그들만의 리그라고, 저런 여자는 과연 누구랑 결혼할까 궁금했었는데…
‘확실히 지금 봐도 예쁘긴 하다.’
그가 지금까지 봐온 여자 중 가장 예쁜 게 예나 교관이었는데 전혀 꿀리지 않는다.
일반인이 저렇게 예뻐도 되나 싶다.
아는 척을 할까 고민하던 그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에이, 내가 누군지도 모를 텐데 인사는 무슨. 좀 있다 찾아오자.’
그러며 자리를 피하려는 순간.
“최종택?”
최종택을 발견한 그녀가 먼저 아는 척을 했다.
그에 그가 진심으로 놀라 물었다.
“어라? 날 알아?”
“알지. 같은 과잖아!”
“아…”
최종택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묘하게 뿌듯했다.
퀸카였던 그녀와 달리 그는 흔한 아싸 1호였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사는 세계가 다르다보니 모르고 있을 거라 여겼는데 먼저 알아볼 줄이야.
“근데 넌 무슨 일… 응? 너도 자퇴해?”
자퇴서류를 보고 신기해하던 한지수가 순간 흠칫하더니 묻는다.
“너… 각성했구나.”
“어?”
그 반응에 최종택도 삘이 왔다.
“혹시 너도…?”
그러자 어쩔 수 없다는 듯 그녀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응. 사실 입학 때부터 각성했었어.”
“어? 진짜?”
이건 의외였다.
그녀가 헌터인 티를 낸 적은 한 번도 없었던 탓이다.
두루두루 잘 어울리는 그녀의 학교생활 상 한 번쯤은 헌터 얘기가 나왔을 법도 한데 말이다.
그러면서도 한 편으론 외모가 뛰어날 법하구나 싶기도 하다.
“그런데 왜 자퇴하는 거야?”
“아. 학교 다니면서 병행할까했었는데 역시 힘들더라구.”
“하긴…”
최종택이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본격적으로 헌터생활을 한 건 아니지만, 나름 헌터생활을 해보니 은근 시간을 많이 잡아먹던 탓이다.
오히려 지금까지 학교생활을 병행한 게 대단하다 봐야했다.
“아, 그런데 너 언제 각성한 거야? 얼마 전까지는 헌터 아니었지않았어?”
“얼마 전에 각성했어. 이번 기수야.”
“진짜? 무슨 등급인데? 아, 아직 자격증은 안 땄나?”
“아니, D급이야.”
별 대수롭지 않은 대답.
마치 오늘 점심 볶음밥 먹었어, 하는 것만 같은 어조였다.
하나 그걸 들은 그녀는눈이 휘둥그레졌다.
“헐, 대박. 각성한지 얼마 안 됐는데 벌써 D라고?”
“뭐 그렇지.”
“우와!나도 D인데 신기하다. 너 보기보다 능력자였구나? 그러고 보니 확실히 얼굴도 잘생겨지긴 했어.”
호들갑스런 그녀의 반응에 머쓱하면서도 뭔가 뿌듯하다.
그래, 이게 D등급이지!
자랑할 곳이 딱히 없어서 제대로 못 느껴서 그렇지, 이게 현실적인 반응이다.
D등급 정도면 같은 헌터들 사이에서도 인정받는 등급이니까.
‘그나저나 얘도 D등급이었구나… 응? 잠깐만.’
한지수도 헌터니까 상태 창 볼 수 있는 거 아닌가?
고민은 짧았다.
곧장 엿보기 구멍을 써서 상태 창을 살폈다.
[한지수]
[성별 : 여]
[나이 : 24]
[등급 : D]
[레벨 : 21]
[능력치]
[근력 : D (60 / 100)], [민첩 : E (80 / 100)]
[체력 : D (60 / 100)], [마력 : C (80 / 100)]
[상태 : 흥미로움]
[특이사항]
[낙성대 퀸카가 헌터를 숨김]
[A등급 스킬 ‘불의 지배자’ 보유.]
……
[C등급 스킬 ‘파이어 오라’ 보유.]
‘헐?’
한데 상태창이 생각보다 휘황찬란하다.
‘A등급 스킬이라고? 미친… 심지어 불의 지배자라니.’
척 봐도 원소를 다루는 능력이 분명하다.
이건 결코 흔한 게 아니었다.
A급 이상 헌터 중 원소를 다루는 능력자는 열 손가락에 꼽힐 정도이니까.
물론 파이어볼 같은 속성 스킬을 가진 자는 많다.
‘…하지만 원소 자체를 다루는 능력자는 매우 진귀하다했었지.’
원소 스킬과 속성 스킬의 효율과 위력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했다.
그 엄청난 능력자가 한지수였다니.
그녀가 자신에게 고백해도 이것보다 놀라지는 않을 것 같다.
…아니, 그건 아닌가?
‘아직 D등급인 걸 보면 경력이 부족한 건가?’
능력치가 부족하긴 해도 저 정도면 능히 C등급은 될 텐데.
아무래도 학교와 병행한 영향이 큰 듯했다.
‘신기하네.’
어쨌든 특이한 인연임은 틀림없었다.
그녀도 그렇게 느낀 걸까?
“각성한 것도 신기한데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자퇴하러 오다니… 신기하다. 심지어 등급도 같아!”
“그러게. 신기하다.”
연신 신기해하던 그녀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맞다. 나 이참에 길드 들어갔는데 혹시 서리 길드 알아?”
“응, 알지.”
“나 거기 들어갔다?”
“어? 대박. 거기 우리나라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길드 아니야?”
그의 진심어린 감탄에 한지수가 쑥스럽다는 듯 웃었다.
“히히, 운이 좋았어.”
“와… 대단하다.”
진심이었다.
서리 길드에 들어가는 건 중졸이 대기업에 취직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거였으니까.
그만큼 기준이 까다롭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그럴 자격이 있는 곳이기도 했다.
‘사신이 있는 곳이었지 분명?’
무려 S급 능력자가 마스터로 있는 곳이니까.
그런 길드에 한지수가 들어갔다니.
경력도 부족한데 들어간 걸 보면 확실히 원소 능력자가 값지긴 하구나 싶다.
신기해하는데 그녀가 생각지도 못한 제안을 건넸다.
“그래서 말인데 혹시 괜찮으면 다 음에 던전 같이 갈래?”
“어? 그래도 돼?”
“내 친구도 D급 헌터라 하면 될 거야. 어때?”
“나야 좋지.”
그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돈이야 충분하긴 한데…’
그래도 대형 길드와 인맥을 쌓아서 나쁠 건 없었다.
경험도 될 테고.
이득이 되면 됐지 결코 손해는 아닐 것이다.
한데 한지수의 추진력이 보통이 아니다.
“그럼 다음에 연락 줄게. 번호 좀 줄래?”
“어… 알았어.”
“응, 전화 걸리네. 그럼 난 이만 가볼게. 자퇴하구 다음에 보자!”
“어, 그래.”
얼떨결에 번호까지 교환하고 떠난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최종택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혹시?’
그러다 이내 고개를 젓는다.
‘에이. 쟤가 나랑 왜 해.’
오늘도 망상 1스텍 쌓은 최종택이 피식 웃으며 과실로 들어갔다.
2.
‘걔가 D라니 되게 의외다.’
그리 생각하며 한지수가 최종택을 떠올렸다.
초창기에는 친구 몇 명과 같이 다니더니, 어느 순간부터 혼자 다녔던 것 같다.
아마 군대 순서가 꼬였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리 존재감이 있는 친구는 아니었다.
‘되게 잘생겨졌네.’
한데 오늘은 달랐다.
본판이 남아있기는 하는데 느낌만 남아있고 싹 변했다.
이목구비도 뚜렷하고 훈훈한 느낌이었다.
그가 최종택이라는 걸 알아본 자신이 스스로 대단하게 느껴질 정도로 달라진 모습.
‘왠지 반가워서 나도 모르게 말하긴 했는데… 실력 검증도 안 했는데 데리고 가도 되나?’
성격이야 듣기로 착했던 것 같기는 한데….
각성한 지 얼마 안 됐는데 D등급 헌터가 된 거면 상당한 능력자 아닐까?
‘으음… 뭐, 그놈보다는 훨씬 낫겠지.’
한 파티 멤버를 떠올린 그녀가 몸을 한 차례 떨었다.
공포가 아닌 혐오의 표현이었다.
생각만 해도 아주 온몸에 소름이 쫙 돋는다.
머리를 흔들어 상념에서 벗어난 그녀가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어. 왜?
귀찮음에 절여있는 중저음의 목소리.
빨리 말하고 끊으라는 듯한 투에 그녀가 바로 본론을 꺼냈다.
“혹시 이번 던전에 제 친구 데려가도 돼요?”
-친구? D등급이야?
“네.걔도 D에요. 각성한 지 얼마 안 됐대요.”
-유망주인가보군. 이름은?
“최종택이요.”
그녀의 대답에 남자의 목소리가 변했다.
귀찮아하던 목소리에 처음으로 흥미가 실렸다.
-호오? 이번 기수 수석이군. 그와 친구였나?
“어? 걔가 수석이에요? 올… 능력 있는데.”
-재밌겠네. 데려와도 좋아.
“알았어요.”
뚝.
끊긴 전화를 보는 그녀가 의외라는 듯한 얼굴을 했다.
‘수석이었구나… 걔도 나처럼 높은 등급 스킬이 있나?’
그렇다면 무슨 스킬일까?
자박꼼이라고는 상상도 못한 그녀가 상상의 나래를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