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화 〉야, 아가씨… 넣을게 (3)
18화.
7.
뭘 얻었다고?
몇 차례 눈을 끔뻑인 최종택이 다급히 스킬을 확인했다.
다행히 그가 생각한 스킬은 아니었다.
[엿보기 구멍]
-등급 : SS
-설명 : 상대의 상태창을 확인할 수 있다.
‘와씨, 놀래라.’
다행이라 생각하면서도 한 편으론 아쉬움이느껴지는 건 왜일까.
어쩔 수 없는 남자의 본능인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니 잊고 있던 게 떠올랐다.
“아 능력치!”
대폭 상승했다고 했다는 걸 떠올리고 상태창을 켠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름 : 최종택]
[레벨 : 10]
[능력치]
[근력 : C (10 / 100)], [민첩 : C (10 / 100)]
[체력 : D (80 / 100)], [마력 : C (10 / 100)]
‘미, 미친…!’
능력치 3개가 C등급이 됐다.
B등급 헌터인 교관과 쓰리썸을 했을 때보다 더한 상승폭이었다.
이게 믿을 수 없는 업적의 힘인가…!
‘와씨, 그럼 풀발 쓰면 거의 B급이라는 거잖아? 미쳤다, 미쳤어.’
체력이 옥의 티긴 한데 저 정도면 높은 수치다.
이 정도면 스킬 합산보상을 줘도 이해가 된다.
여기서 더 퍼주면 그게 좆망 겜이지.
순식간의 레벨업에 그가 싱글벙글 웃고 있을 때, 으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신을 차린 여자가 몸을 일으킨 것이다.
덕분에 정신이 든 최종택이 그녀의 옆으로 다가갔다.
“이제 좀 정신이 들어요?”
“아… 네.”
갑작스런 목소리에 놀랐는지 몸을 움츠린다.
그러면서도 최종택의 얼굴을 힐끔거리던 그녀가 몸에 걸쳐진 옷을 발견하고 물었다.
“어, 이건…”
“아, 한 번 호되게 당한 적이 있어서 혹시 몰라 챙겨온 건데… 챙겨오길잘했네요.
“…아? 가, 감사합니다.”
뭘 호되게 당했다는 걸까?
이해할 수 없었지만, 그가 해준 거라 생각하니 괜히 얼굴이 붉어졌다.
얼굴을 마주보니 좀전의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
‘그런 섹스… 아니…, 힐은 처음이었어.’
남자와의 섹스가 그렇게 좋을 수 있다니.
평소 남자를 혐오하는 측에 가깝던 그녀로선 신기한 일이었다.
하물며 강간당한 직후인데도 편안함을 느끼다니….
‘사실 내가 그쪽 취향인 건 아닐까?’
순간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바로 사라졌다.
처음 강간을 당했을 때만 해도 죽고 싶었으니까.
‘지금은 아무렇지 않아… 아니, 오히려 편안해.’
편안하다 못해 상쾌하다.
저 남자에게 무언가 있는 게 분명했다.
보통은 헌터의 능력을 떠올리지만, 스무 살 소녀의 감성은 달랐다.
‘이게 운명적인 만남…?’
어쩔 수 없었다.
그녀는 제대로 된 연애라는 걸 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당연히 좋아하던 사람조차 없었다.
연애를 글로 배웠어요를 실제로 실천한 게 그녀인 것이다.
하지만 그걸 표정으로 드러내진 않았다.
“음흠.”
애써 태연한 척 다른 곳을 보며 표정을 정돈한 것이다.
그런 그녀를 그녀를 바라보던 그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손뼉을 쳤다.
‘아, 맞다.엿보기 구멍.’
아까는 놀라서 제대로 확인을 못했었다.
‘분명 상태 창을 볼 수 있다 했지?’
그렇다면 그녀의상태창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 생각한 최종택이 엿보기 구멍을 사용했다.
그러자 정말 상태창이 나타났다.
[정연아]
[성별 : 여]
[나이 : 20]
[등급 : D]
[레벨 : 12]
[능력치]
[근력 : F (60 / 100)], [민첩 : F (40 / 100)]
[체력 : F (50 / 100)], [마력 : B (30 / 100)]
[상태 : 안정됨.]
[지금 상황에 은근 만족하고 있음.]
[특이사항]
[사성 호텔 오너의 딸.]
[B등급 스킬 ‘원천의 힘’ 보유.]
[B등급 스킬 ‘패스트 힐’ 보유.]
‘와우.’
그것도 상당히 긴 상태창이.
오히려 본인의 상태 창보다 더 자세하다.
‘SS급 할 만 하네.’
전투에 좋은 스킬은 아니었지만, 활용도를 생각하면 풀발보다 한 수 위였다.
싸우기도 전에 상대의 스킬과 수준을 알 수 있는 거니까.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고 하지 않는가.
딱 그걸 형상화시킨 듯한 스킬이었다.
‘정연아라… 응? 아가씨? 진짜 아가씨였어?’
천천히 상태창을 보던 최종택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슨 플레이를 하는 줄 알았는데 리얼이었다니.
‘사성 호텔 오너 딸이라고? 미친….’
심지어그냥 아가씨도 아니다.
세계 호텔 순위 탑 5위.
자산만 치면 웬만한 재벌도 한 수 접어주는 게 사성 호텔이다.
한데 저 아가씨가 그런 호텔 오너의 딸이란다.
‘잠시만…, 그럼 난 재벌녀랑 섹스한 건가? 오우야…’
띠링, 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했다.
이제는 너무 익숙한 소리였기에.
자연스레 다리로 가리자 그 모습이 이상했는지 그녀가 조심스레 물었다.
“저…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가요?”
“…아뇨. 일단 가실까요? 던전 밖까지 데려다드릴게요.”
“아, 감사합니다!”
그녀의 대답에 최종택이 휙 몸을 돌렸다.
…한데 자세가 조금 이상하다.
다리 사이를 살짝 벌리고 엉거주춤하게 걷는 폼이 누가 봐도 엉성했다.
누군가 본다면 슬쩍 자리를 피할 것 같은 모습.
하나 다행히도 정연아는 고개를 숙이느라 그 모습을 보지 못했다.
‘…왜 이렇게 커진 느낌이지? 창피하네.’
‘…부끄러워.’
서로 다른 의미로 부끄러운 동행이었다.
8.
던전 밖으로 나온 최종택은 깜짝 놀랐다.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다친 곳은 없어요!?”
정연아와 같이 나오자마자 웬 떡대들이 사람들을밀치며 달려왔기 때문이다.
기세가 어찌나 살벌한지 밀쳐진 헌터들이 찍소리도 못했다.
요란스런 모습에 자연스레 시선이 쏠렸다.
괜히 최종택이 민망할 정도였지만, 정연아는 이 상황이 익숙한지 담담히 대꾸할 뿐이었다.
“괜찮아요. 호들갑 떨지 마요.”
“아가씨…”
좀 전하고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역시 재벌집 아가씨는 다르네.’
망신창이가 된 몰골인데도 불구하고 특유의 고귀함과 뻔뻔함이 엿보인다.
저게 평상시 그녀의 모습이겠지.
흐트러졌던 그녀를 처음 봤던 그로서는 다소 어색할 정도였다.
그래서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자 비서가 죽는 소리를 했다.
“저희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십니까…아가씨 몰골을 보십시오. 그 예쁜 얼굴을… 후. 그런데 다른 일행 분들은…?”
“……”
정연아가 고개를 젓자 그녀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전멸.
그게 의미하는 바는 크다.
B등급 버프가 잇는 그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멸했다는 소리니까.
“…협회에 말하세요. 일처리 똑바로 안 하냐고. 저도 따로 약속을 잡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그녀가 경호원으로 보이는 남자에게 속삭이자 그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가 화를 내는 소리가 조금씩 멀어져간다.
그럼에도 기분이 풀리지 않는지 딱딱하게 굳어있던 그녀와 최종택이 눈이 마주쳤다.
“음?”
그제야 이상함을 느꼈는지 그녀가 조심스레 물었다.
“…이 분은.”
“아, 던전에서… 음.”
사실대로 말하려던 최종택이 입을 다물었다.
‘…뭐라 말하지?’
생각해보니 대답하기가 애매했던 탓이다.
사실대로 말하기엔 그 상황이 너무 적나라했다.
치료가 목적이기는 해도 거의 강간하듯 덮치기도 했고.
‘말하면 죽겠지?’
최소한 고문은 당하지 않을까.
그가 입을 다물고 있자 정연아가 대신 대답했다.
“저를 구해주신 분이에요. 전멸하고 저만 남아서 죽을뻔한 걸 구해주셨어요.”
“아!”
그 말에 바로 비서의 태도가 달라졌다.
그녀는 허리를 숙이며 진심으로 감사해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아가씨를 구해주셔서…”
“아… 괜찮습니다. 딱히 힘들지도 않았고.”
“아닙니다. 저희는 은인을 소홀히 대하지 않습니다. 충분히 사례하겠습니다.”
기어코 사례금을 주겠다는 그녀의 말에 최종택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로서도 굳이 거부할 이유는 없었다.
돈을 보고 구해준 건 아니지만, 꽁 돈인데 받아서 나쁠 건 없지 않은가.
‘개이득. 섹스도하고 돈도 받네… 응?’
속으로 중얼거리던 그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뭔가 어감이이상한데?
챙남이 된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에 멈칫하고 있는데 비서가 말을 덧붙였다.
“저희 쪽에서 먼저 연락을 드리겠습니다. 가시죠, 아가씨. 혹시 모르니 의사를 부르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그러며 정연아를 차로 데리고 간다.
워낙 빠른일처리라 정연아도 당황한 듯 급하게 감사인사를 건네며 뒤따라간다.
태풍이 몰아친 것만 같다.
순식간에 지나간 상황에 최종택이 머리를 긁적였다.
‘…뭐, 잘 됐네. 나도 돌아가자. 풀발 2단계가 뭔지도 알아봐야지.’
우연히 사용하게 된 풀발의 새로운 능력.
그 능력을 연구해볼 생각이었다.
9.
그날 이후 꽤나 바쁜 나날이 지나갔다.
풀발에 대한 연구와 체력훈련을 하다 보니 시간이 빠르게 흐른 것이다.
성과는 있었다.
풀발 2단계의 사용조건과 응용 법을 얼추 알게 된 것이다.
“극심한 분노, 혹은 풀발의 한계를 뛰어넘기.”
후자는 풀발의 한계를 넘어섰다는 문구를 보고 추측한 것이다.
그러니 사실상 확실한 조건은 하나였다.
극심한 분노.
여기서 중요한 건 분노라고 다 같은 분노가 아니라는 거다.
최소한 고블린 챔피언 때와 같은 분노가 아니면 어림도 없었다.
‘이건, 뭐 초사이어인 2도 아니고…’
이러다 나중에 3단계도 생기는 거 아닐까 싶다.
피식 웃으며 걷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예. 저희는 도착했습니다. 혹시 어디신가요?
“아, 저도 곧 도착해요. 얼른 갈게요.”
-천천히 오셔도 됩니다.
“아니에요. 진짜 바로 앞이에요.”
알겠다는 대답을 듣고 전화를 끊은 그가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익숙한 카페가 보였다.
-이비야 카페
‘여기였지?’
혹시 모르니 문자를 확인한 그가 이내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미리 앉아있던 비서가 손을 흔든다.
한데 그녀만 있는 게 아니라정연아도 같이 있다.
“금방 오셨네요.”
“진짜 바로 앞이었어서… 하하.”
그녀의 태연한 말에 최종택이 머쓱하게 웃었다.
눈이 마주친 그녀가 슬쩍 시선을 돌린다.
그에 의아하게 쳐다보는데 옆에 있던 비서가 본론을 꺼냈다.
“저번에는 감사했습니다. 아가씨가 꼭 같이 나오고 싶다하셔서… 아가씨의 몸 상태를 확인하느라 연락 늦은 점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몸이 우선이죠.”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비서의 말에 최종택이 슬쩍 정연아를살펴봤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없이 커피만 홀짝인다.
‘흠. 저 아가씨가 말이지.’
그날 느꼈던 교감만 보면 확실히 남다른 무언가가 있긴 한데.
지금 모습만 봐선 잘 모르겠다.
태연해 보이는 것도 그렇고, 귀티가 흐르는 게 저번과는 분위기부터가 다르다.
하기야 그땐 강간당한 직후였으니 꼴이 말이 아니긴 했지.
그런데도 예쁘기는 했다만….
‘꾸미니까 사람이 달라지긴하네.’
멍하니 바라보는데 힐끗 눈을 마주친 그녀가 담담하게 말했다.
“…그땐 고마웠어요. 덕분에 깨달은 게 커요.”
“아.”
“이건 약소하지만… 보상이에요.”
그러며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내는데 생각보다 크다.
넷 북보다 조금 더 큰 것 같다.
‘뭐지?’
한눈에 봐도 고급스러운 케이스에 담긴 게 예사롭지 않았다.
까르띠에, 구찌 등등 아는 명품들을 다 대입해보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그것들 모두 아니었다.
“A급 마정석입니다.”
“…예? 이게 다요?”
“네.”
최종택의 입이 떡 벌어졌다.
미쳤다.
이건 진짜 미쳤다고밖에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E급 마정석만 해도 수십만 원은 한다.
보스에서 나온 거라면 상태에 따라 몇 백까지 가기도 하고.
겨우 E급이 그 정도다.
그것도 주먹만 한 사이즈의 작은 마정석이.
그렇다면 넷 북 크기의 A급 마정석은?
‘…쌌다.’
못해도 억 단위다.
수억은 기본으로 찍고 들어가지 않을까?
그걸 아무렇지도 않게 사례금이라며 준 것이다.
‘…가슴은 작아도 마음은 넓으시네.’
어쩌면 마음이 너무 넓어서 가슴이 작아진 걸 수도 있다.
…아니, 이건 좀 선 넘은 것 같다.
하여튼 대박이다.
생각지도 못한 큰 선물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데 비서와 정연아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저희가 남은 일이 있어서… 이만 먼저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또 볼 수 있었음 좋겠어요.”
그제야 정신을 차린 최종택이 대답했다.
“아, 뭐… 저도요.”
“그럼 이만…”
꾸벅 고개를 숙인 비서와 정연아가 카페를 나선다.
만남부터퇴장까지 쿨한 모습이었다.
‘크…, 이게 재벌!’
그 간지에박수를 친 그가 마정석이 든 케이스를 소중히 안았다.
그렇게 그가 기뻐하고 있을 때.
차에 탄 정연아는 그가 있는 카페를 바라보고 있었다.
“신경 쓰이시나요?”
“……”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아는 비서는 싱긋 웃어보였다.
“조만간 만나시겠네요.”
의미심장한 말.
그에 정연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비서가 지나가듯 말했다.
“이번 승급 시험이 기대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