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화 〉나와 교관과 여학생 (1)
12화
4.
“흐흐흠~ 흐흠~”
수업을 나가는 최종택에게서 연신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마치 데이트라도 나가는 남자처럼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그가 이리 즐거운 이유는 하나였다.
‘오늘도 교관이랑 하려나?’
예나 교관과 또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
‘하, 귀여웠지.’
평소의 도도한 모습과 전혀 다른 모습을 떠올리니 가슴이 다 두근거린다.
붉게 물든 얼굴, 활처럼 휜 허리, 야릇한 반응….
띠링-
[풀발이 발동되었습니다.]
‘앗.’
상상하다보니 밑에 힘이 들어가 버렸다.
혹시 몰라 주변을 둘러보니 다행히 근처에 사람이 없다.
‘그럼 들어 가볼까.’
교실 문 앞에서 심호흡을 한 그가 설레는 마음을 안고 문을 열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어?”
“앗.”
신서희와 눈이 마주쳤다.
놀란 듯 눈이 커졌다가 이내 새초롬하게 노려보는 그녀를 보며 최종택은 생각했다.
‘…교관이랑 못하는 건가?’
그리 생각하니 힘이 빠진다.
실망감을 어김없이 드러내던 그가 문득 든 생각에 고개를 들었다.
‘아니야. 이것도 나쁘지 않아. 오히려 좋아.’
그녀의 탐스러운 가슴이 떠오른 것이다.
만족스런 얼굴을 한 그가 자리에 앉자 신서희가 호다닥 달려왔다.
그리곤 옆자리에 앉더니 새침하게 물었다.
“왜 그 뒤로 연락 없었어요?”
“아… 깜빡했네요.”
“뭐라고요?”
못 들을 걸 들었다는 듯 신서희가 눈썹을 찌푸렸다.
‘깜빡했다고? 허, 이게 말이야 방귀야.’
한 번 했다고 단물 빠졌다 이건가?
아니, 설령 그렇다 해도 예의상이라도 다른 이유를 대는 게 맞지 않나.
너무도 당당한 그의 모습에 신서희의 주먹이 부르르 떨렸다.
그러다 이내 한숨을 내쉰다.
“후. 화 잔뜩 났지만 봐드릴게요.”
“아…”
“그런데 당신, 도대체 정체가 뭐에요?”
“예? 뭐가요?”
그러더니 갑자기 몰아세운다.
최종택의 입장에선 황당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정체가 뭐긴 뭐란 말인가.
같이 훈련 받는 훈련생이지.
‘저번에도 느끼긴 했지만… 좀 이상한 여자야.’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한 어벙한 얼굴에 신서희가 뭐라 말하려다 도로 입을 다물었다.
왜 당신이랑 하고나니까 능력치가 올라갔냐 물으려했는데…
‘본인은 모르나보네?’
반응을 보니 그도 모르는 듯했다.
그럼 그의 의지와는 딱히 상관없는 건가?
그와의 하룻밤을 떠올리던 그녀가 몸을 움찔 떨었다.
‘진짜 꼼짝도 못했어. 내가 아닌 것 같은 느낌….’
오죽하면 그날의 후유증으로 2일이나 결석했겠는가.
한 번만으로도 미칠 것 같았는데 10번이나 해버리니 도저히 몸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래놓고 깜빡했단 말이지…’
누구는 아파 죽는 줄 알았는데.
괘씸해서 찌릿 째려보자 그가 슬쩍 시선을 피한다.
마음 같아서는 한 대 쥐어박아주고 싶지만,
‘그래도 정말 최고였지.’
그날을 떠올리면 이상하게 그런 생각이 사라지고 몸이 흥분된다.
“흠흠.”
작게 헛기침을 한 그녀가 그의 옆에 딱 달라붙었다.
그러자 최종택이 흠칫 놀라더니 그녀를 바라봤다. 정확히는 그곳을 어루만지고 있는 그녀의 손을.
‘뭐, 뭐지?’
이게 뭐지 싶어서 쳐다보니 그녀가 씨익 웃으며 귓가에 속삭인다.
“어때요 오늘? 끝나고 시간 있으세요?”
“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전개지?
순간 당황한 그였지만, 이내 마음이 진정되었다.
‘상관없지.’
오히려 좋다.
콜, 이라고 외치려는데 드륵, 문이 열리며 한 여자가 들어왔다.
그 때문에 깜짝 놀란 신서희가 손을 뗐다.
“수업 시작하겠습니다.”
오자마자 본론부터 꺼낸 예나였다.
오늘은 이론 수업 위주이기에 이진혁 교관 대신에 1반을 맡게 된 것.
‘뭐야? 저런 교관이 있었어?’
2일간 결석한 신서희는 처음 보는 교관이었다.
한데 상당히 예쁘다.
단순히 예쁘다고 할 수 없는 매력도 느껴지고.
왠지 모르게 신경 쓰여 쳐다보는데 눈이 마주친 예나가 덤덤하게 말했다.
“다들 자기 자리로 돌아가시죠.”
모두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시선은 신서희를 향해있었다.
그걸 눈치 채지 못할 그녀가 아니었다.
‘저 여자 뭐야?’
꼭 자기보고 최종택하고 떨어지라는 소리 같지 않은가.
어?
잠깐만, 설마…?
퍼뜩 든 생각에 신서희가 휙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어벙한 표정으로 교관을 바라보고 있는 최종택이 보였다.
‘틀림없어.’
그와 저 여자 사이에 뭔가 있다.
그걸 연인은 아니어도 관계를 맺은 사람 앞에서 대놓고 저런다는 게 이상하긴 하지만….
‘저 남자 원래 눈치 없는 건 알고 있었으니까.’
그라면 가능하다.
그렇게 어벙한 얼굴을 한 최종택과 그런 그를 째릿 노려보는 신서희, 그리고 그런 그녀를 신경 쓰는 예나 교관.
이 셋의 묘한 기류와 함께 수업이 시작되었다.
“던전에 등급이 나뉘어있듯 헌터에게도 등급이 있습니다. F등급부터 S등급까지. 명확한 기준으로 등급이 나뉘어져있죠.”
이번 수업은 이전과 달리 헌터와 자격증에 치중되어있었다.
“그리고 D등급이 훈련을 마친 헌터가 받을 수 있는 가장 높은 등급입니다.”
“질문 있습니다.”
“말하세요.”
허락을 받은 훈련생이 물었다.
“D등급이 가장 높은 거면 A등급 스킬을 각성하거나 A등급 능력치를 보유해도 D등급으로 판정받는다는 소리인가요?”
“맞습니다. 더 높은 스킬과 능력치를 보유해도 D등급이 최고 등급입니다. 달리 말하면 D등급을 받은 사람들이 유망주라는 거죠.”
“왜죠?”
질문한 훈련생을 비롯하여 다른 이들 모두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상식적으로 A등급 능력자면 최소 B는 받아야하지 않은가.
“실전경험의 유무입니다. 던전은 미지의 세계. 아무리 강자라도 한 번의 실수로 목숨을 잃을 수 있는 곳이죠.”
풀어서 설명하면 IQ 높다고 이제 막 구구단 뗀 주제 대학교 수업을 받게 할 수는 없다는 소리였다.
그건 목숨이라도 안 달려있지.
이건 자칫하면 아까운 인재를 허망하게 잃을 수도 있으니 그걸 방지하는 차원인 거다.
그럼 그 실전성을 증명하지 않는 이상 D등급에 머무른다는 건데.
“그럼 어떻게 등급을 올리나요?”
이건 최종택도 궁금했던 거였다.
그에 예나가 한 박자 쉰 후 말을 이었다.
“종합적인 평가도 평가지만 그동안 던전을 얼마나 클리어 했는지, 경력은 얼마나 되는지를 봅니다.”
“아하.”
“하지만, 결정적으로 가장 중요한 건 승급 시험입니다.”
“승급 시험이요?”
“6개월에 한 번 승급시험을 치르는데 거기서 높은 등급을 받으면 가산점이 붙고, 협회에서 따로 상품을 지급합니다.”
그리 말한 예나는 한 마디를 덧붙였다.
“물론 승급 시험에서 떨어져도 그동안의 경력이 높으면 승급을 할 수 있습니다만, 그 헌터의 가치는 조금 달라지겠죠. 마침 이번 시험은 한 달 남았네요.”
의미심장한 말이었지만,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한 훈련생은 없었다.
‘연봉 세지려면 승급 시험 보는 게 갑이라는 거네.’
승급 시험 수석.
이런 타이틀을 달면 그 해 최고의 유망주 취급을 받으며 대형 길드에서 컨펌이 들어올 테니까.
‘승급 시험이라… 생각해봐야겠네.’
꼭 길드에 들어가지 않더라도 몸값을 올려놓는 게 좋을 듯했다.
“참고로 D급 시험이 가장 치열합니다. 유망주들과 경력 있는 사람들이 한데 모이는 단계이기 때문이죠.”
그 말을 끝으로 예나는 몇가지 질문을 받은 후 다음 수업으로 넘어갔다.
다음 수업은 스킬 이론수업이었다.
저번에 한 ‘10레벨마다 스킬을 얻는다,’ ‘스킬 간의 연계나 활용성에 따라 낮은 등급이어도 더 귀한 취급을 받는다.’
그 이후 단계의 내용이었다.
“스킬과 스킬 간에는 상성이 존재하고 서로 영향을 끼칩니다. 일종의 시너지라고 하죠.”
최종택에게 있어 생각이 많아지기 충분한 내용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풀발이랑 자박꼼이 섞인 적이 있었지.’
실제로 경험한 적이 있었으니까.
자박꼼과 풀발이 섞이며 능력이 강화된 적이 있는 것도 일종의 시너지였다.
문득 그런 생각도 들었다.
‘힐이랑 샤프 아이도 그렇게 이어질 수 있을까?’
자박꼼으로 얻은 스킬이니 가능성 있지 않을까.
‘아닌가. 저번에 슬로우 힐 써볼 때는 그냥 써졌던 것 같은데….’
그런 그의 고민을 알기라도 한 걸까.
예나가 타이밍 좋게 설명했다.
“보통 그런 시너지를 확인할 땐 무의식적으로 알게 됩니다.본인이 가장 잘 아니 조급해할 필요 없습니다. 천천히 알아보면 자연스레 알게 되니까요.”
“아.”
“물론 던전에 들어가서 경험을 늘리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긴 합니다만, 그렇다고 자격증 없을 때 들어가면 불법이니 유의해주십시오.”
그러며 한동안 시선이 자신에게 머문 것 같은 건 착각일까.
어찌됐든 그녀의 조언에 그의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5.
“그럼 여기서 끝내겠습니다. 다들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하셨어요!”
수업은 평소보다 일찍 끝이 났다.
오늘은 이론 수업만 있던 날이기에 별 다른 내용이 없던 탓이다.
그렇다고 썩 의미 없는 하루는 아니었다.
‘덕분에 많은 걸 알게 됐어.’
시너지, 등급, 승급시험, 던전….
많은 걸 생각하게 된 하루였다.
무엇보다.
‘프로페셔널한 교관님 모습도 섹시했지.’
프로는 프로인 걸까.
전에는 보조 역할이라 몰랐는데, 직접 수업하는 모습을 보니 또 색다른 매력이 느껴졌다.
그런 여자가 자신과 던전에서……
‘오늘은 이거다.’
오늘 체력훈련 항목을 정한 최종택이 집으로 가려할 때.
“최종택 씨.”
“음?”
차가운 목소리가 그를 붙잡았다.
뒤를 돌아보니 예나 교관이 손을 내미는 게 보인다.
‘뭐지? 손잡자는 건가?’
뭔가 싶어서 손을 내미니 웬 명함 하나가 쥐어진다.
웬 명함?
“필요한 일 있으면 연락해주세요.”
의아하게 쳐다보니 그녀가 무미건조한 목소리로 담담하게 말한다.
한데 귀가 빨갛다.
‘역시 귀엽네.’
여전하다 생각하는데 그걸 본 신서희가 대놓고 비아냥댔다.
“어머, 뭐야. 교관이 이리 차별해도 되나요?”
번역하자면 ‘너희 뭐 있지?’ 이런 소리다.
찔리는 게 있는 입장에서 당황하지 않을 수 없는 질문.
하나 예나는 프로였다.
그녀는 하늘을 우러러 한 치 부끄러울 게 없다는 듯 당당한 태도로 말했다.
“유망주에게 먼저 명함을 건네는 건 당연한 일이죠.”
“……”
논리적인 그녀의 말에 신서희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도저히 반박할 수가 없었다.
헌터에서나 화술에서나 예나가 한 수 위였던 것.
여기서 이미 게임은 끝이었지만, 예나는 한 술 더 떠서 그녀를 내려다보며 지나가듯 말했다.
“당신 같은 초보는 모르겠지만.”
“이익!”
거짓말이 아니라 진짜 이익!소리가 나왔다.
흥분했는지 온몸을 바들바들 떨면서도 차마 반박은 하지 못한다.
그 모습을 보며 최종택은 머리를 긁적였다.
‘뭐지?’
왜 갑자기 이렇게 된 걸까?
자신은 그저 집에 가서 체력훈련을 하려했을 뿐인데 둘이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어, 잠깐만. 둘이 나를 가지고 싸우는 건가?’
눈치가 없는 최종택이 드디어 깨닫는 순간.
띠링-
[풀발이 발동되었습니다.]
몹쓸 상상도 깨어났다.
조용히 다리사이를 가리는데 신서희가 먼저 휙 고개를 돌린다.
“흥, 됐어요. 저흰 이만 가볼게요.”
“저희? 아.”
최종택이 생각났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저녁을 먹자했었지.
같이 가기 위해 몸을 트는 순간, 어림도 없다는 듯 예나가 단호하게 말했다.
“신서희 씨는 남으시죠. 이틀 결석한 거 보충 수업 해야죠.”
“…아.”
“그럼 가시죠.”
그렇게 순식간에 사라진 신서희와 교관.
그녀들의 뒷모습을 보며 최종택이 멋쩍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다 뭔가 깨달았다는 듯 멈칫했다.
‘잠시만. 이거 내가 손해 아닌가? 뭐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