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화 〉교관과 던전에서 (2) (9/124)



〈 9화 〉교관과 던전에서 (2)

9화.




9.
다음날.
 다시 수업을 받으러  최종택은 현재 던전 앞에 서 있었다.

“이번에는 실전 던전을 탐사한다. 등급은 E등급이다.”
“E등급이요? 좀 위험하지 않을까요…?”

한 훈련생이 불안한 얼굴로 말하자 교관이 예상했다는 듯 설명했다.


“이틀 동안 한 수업과 인스턴트 던전을 클리어한 경험이이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거다.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는 마라. 각 팀마다 교관을 한 명씩 붙여줄 테니.”
“아!”


그제야 훈련생들이 얼굴이 폈다.
엘리트 헌터인 교관이 붙는다는 건 쪼렙 사냥터에 만렙 유저가 지켜주러 온 거나 다름없는 것.
걱정이 들래야 들 수가 없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오늘도 신서희는 오지 않았다.


“최종택 훈련생은 예나 교관과 페어이기 때문에 교관이 붙지는 않을 거다.”


덕분에 최종택은 교관과 단 둘이 던전에 들어가야 했다.
평소라면 별다른 생각없을 그였지만, 오늘은 상태가  안 좋았다.


‘어제 너무했나? 기운이 없는 거 같기도 하고…’

체력훈련을 너무했는지 몸에 영 기운이 없었다.
서 있기만 해도 몸이 피곤할 정도로.

‘신서희랑은 10번 해도 쌩쌩했는데…  기운도 없는 거 같아.’


역시 혼자하면 피곤한 건가?
이건 큰 문제였다.
사실상 유용한 스킬이 풀발 밖에 없는 그로서는 풀발의 유무가 무척 컸으니까.
거의 크림 없는 크림빵이다.


‘실전이라니 괜히 더 긴장되네.’

게다가  실전 던전.
긴장되서 그런지 더  서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걱정하는 사이 교관의 설명이 끝났다.

“그럼 1반부터 들어가지.”

이번에는 교관이 붙기 때문에 반으로 나눠서 입장했는데 최종택의 반이 1반이었다.
가장 첫 빠따라는 소리다.
그렇게 최종택은 걱정을 안은 채 던전에 입장했다.



10.
던전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필드, 미궁, 동굴, 신전… 혹은 그 외의 무언가.
던전의 등급에 따라 다르지만, 가장 흔한 게 필드와 미궁이다.
저번 인스턴트 던전이 필드였기에 이번에도 필드 던전이라 짐작했는데 예상이 빗나갔다.


‘미궁 던전이네.’


칙칙한 분위기와 어두컴컴한 조명.
로마 시대의 감옥을 연상케 하는 던전이었다.
어쩐지 이번에는 반으로 나누기는 했어도 동시입장을 한다했더니….
미궁 던전이면 이해가 된다.


‘미궁 던전은 입구가 여러 개라 했지?’


이진혁 교관의 말로는 미궁 던전은 입구가 여러 개인 특이 던전이라 한다.
그만큼 내부가 넓기에 보통 여러 파티가 탐사하는 형식이다.
그래서 난이도가 쉬운 편이기도 했다.
워낙 넓은 탓에 탐사 자체는 까다로워도 보스는 하나였기 때문이다.

-보스를 잡는 팀에게 가산점을 주겠다.

‘쓰읍, 지금 상태로 잡을 수 있을까?’

E등급 던전의 보스면 최소 D등급 정도일 터.
아직 능력치가 E등급인 최종택으로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포기하기엔 보스 가산점이 아깝고.
그가 고민하느라 가만히 서있기만 하자 예나 교관이 무미건조한 얼굴로  내뱉었다.

“안 가는 겁니까?”
“아, 가야죠.”

그렇게 던전 탐사가 시작되었는데 이걸 운이 좋다 해야 하나.
얼마 가지 않아 몬스터를 마주쳤다.


키이익.
케륵, 케륵.

피부가 붉은 난쟁이, 레드 고블린이었다.
일반 고블린보다 더 성질이 흉폭하고 공격적이라 고블린보다 높게 쳐주는 놈이었다.
그래서인지 무기도 남다르다.
몽둥이에 가시들을 박아놓은 것이다.


‘저건 잘못 맞으면 큰일 나겠네.’

확실히 실전은 실전이었다.
인스턴트 던전과는 긴장감부터가 다르다.

‘그래도 4마리 정도면… 가능하겠지?’

마른침을 삼킨 최종택이 땅을 박찼다.
선수필승!
선빵을 때리면 승률이 50%는 증가한다는  그의 전투 미학이었다.
그렇게 빠르게 한 놈을 횡베기로 베자 놈들이 흥분해서 시끄럽게 소리친다.

“키에에엑! 키엑!”“끼에엑!!”

심지어 베였던 놈조차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발악한다.
그 모습에 그가 눈썹을 찌푸렸다.


‘풀발이었으면 한 방이었을 텐데…’


확실히 풀발이 없으니 데미지가 약한 게 느껴진다.
그런 그를 보던 예나 교관도 이상하다는 듯 살짝 침음을 냈다.

‘착각이었나?’


혼자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거라 판단해서 가만히 있었는데… 저번에 봤던 거랑 달리 너무 약하다.
D등급이 아니라 E등급이라 해야 할 정도로.

‘아니, 분명 베리어를 깼었어.’

순간 착각이라 생각하던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D급 베리어를   사실이었다.
별 다른 묘수도 없었고 꼼수도 없는 오로지 힘으로만 말이다.


‘…그러고 보니, 저번과 달리 몸이 제어되는 느낌도 덜해졌다.’


저번엔 그의 근처에 있기만 해도 움직임이 제어되는 느낌이었다.
한데 지금은 달랐다.
살짝 이질감이 들기는 하는데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그날 컨디션이  좋았던 건가?


‘흠.’


그녀가 조금 더 지켜봐야할지 아닐지 고민하는 사이 최종택도 결정을 내렸다.

‘확실히 스기가 힘들다. 도움을 좀 받아볼까?’

그녀에게 도움을 받기로.
이대로 가다가는 레드 고블린 다섯 마리 잡는 것도 애먹을 판이었다.
슬쩍 그녀를 돌아본 그가 침울하게 고개를 저었다.

‘음…. 오늘은 불가능.’

혹시나 했는데 역시 안 선다.


‘이대로라면 보스 만나도 힘들겠는데…’

평가 절하 되도 어쩔 수 없을 듯했다.
무리하게 보스를 잡다가 크게 다치기라도 하면 문제였기에.
다음부터는 체력훈련을 조금 줄여야겠다고 다짐하며 사냥을 이어갈 때였다.
꾸역꾸역 사냥하며 마지막 한 마리만을 남겼을 때쯤.

끼이이익.

“응?”


어디선가 기이한 소리가 들렸다.
칠판을 긁는 소리 같기도 하고 쇠가 맞닿는 소리 같기도 했다.
정체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좋은 상황은 아닌 것 같다는 거였다.


‘뭔가 있어.’

이상조짐을 느낀 그가 빠르게 레드 고블린을 마무리하고 앞서나가려던 찰나.


“조심하세요!”

여자가 급히 소리치는 것과 동시에 활을 꺼내들었다.
숙련된 헌터에 걸맞게 빠른 속도.
하나 그보다는 놈이 최종택을 향해 쇠몽둥이를 휘두르는 게 더 빨랐다.

휙- 촤악!

급히 뒤로 물러나 치명상은 피한 그가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위, 위험했다.’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공격을 피할 땐  느꼈는데 볼품없게 찢어진 옷과 쇠가시가 박힌 몽둥이를 보니 세삼 실감이 난다.


‘홉고블린? 미친, 보스잖아? 저게 여기서 왜 나와?’


일반 고블린보다 2배는 큰 몸집과 신장.
그리고 나무로 된 그들과 달리 쇠몽둥이를 들고 있는 모습이 꽤나 위협적이었다.
만약 못 피해서 저 몽둥이에 머리를 맞았다면…


‘좆 될 뻔했네.’


상상하니 심장이 다 벌렁거린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는 것에 맞춰 그의 물건도 덜렁거렸다.

‘응? 덜렁?’

그제야 밑을 바라본 최종택의 안색이 파래졌다.
옷 앞부분이 다 찢어져 가슴부터 꼬물이까지 모두 드러나 있던 것이다.
그 모습이 웃겼는지 놈이 께륵께륵, 듣기 싫은 웃음소리를 낸다.
하나 그는 그런 놈을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잠깐만. 이러면 다 보여지잖아.’

그보다는 교관이 더 신경 쓰였다.
혹시나 하고 교관을 슬쩍 보자 그녀가 그곳을 보고 얼굴이 빨개지는 모습이 보였다.
눈이 마주치자 깜짝 놀라 고개를 휙 돌린다.

띠링-


‘아.’


무슨 알림이 떴는지  봐도 알  있었다.
온몸에 힘이 넘쳤으니까.

“넌 뒤졌다.”


얼굴이 다소 붉어진 그가  고블린을 향해 뛰어들었다.
풀발을 해서인지 무척 빠른 속도.
단숨에 파고든 그가 당황한 홉 고블린의 몸을 베고 지나갔다.


“카아아악!!”

비명을 지르면서도 연신 최종택을 향해 쇠몽둥이를 휘둘렀지만 어림도 없었다.


‘느려.’

눈에 훤히 다 보인다.
가볍게 피하며 역으로 카운터를 꽂자 놈이 좋아서 소리를 지른다. 그러더니 이젠 방법을 바꿔서 거대한 손으로 최종택을 잡으려한다.
아마 잡히는 순간 바로 바닥에 내리꽂히고 뚝배기가 깨질 터.
몬스터치고 제법 머리를 굴렸다.

휙- 덜렁.
휙, 덜렁-

악착같이 손을 피하던 그가 인상을 찡그렸다.


‘아씨, 진짜 존나 신경 쓰이네.’

속옷까지 찢어진 탓에 격하게 움직일 때마다 덜렁거리는 게 거슬렸다.
적당히 덜렁거리는 거면 모를까.
풀발한 그곳이 위아래로 트월킹을 하는데 신경이 안 쓰이고 배기겠는가.
그리고 그건 예나 교관도 마찬가지였다.

‘누, 눈을 어디에 둬야할지 모르겠어.’

예상치 못하게 보스가 나왔으니 도와줘야하는데…

덜렁-
덜렁덜렁-

자꾸만 흔들리는 그곳을 차마  수가 없었다.
자기가 찢은 것도 아닌데 괜히 자기가 더 민망하다.
빨갛게 물들은 얼굴로 시선을 피하던 그녀가 고개를 흔들었다.

‘정신 차리고 돕자.  절대 저걸 보려고 하는 게 아니야.’


어디까지나 교관으로서 도와주기 위해서다.
마음을 다잡은 그녀가 힐끗 최종택을 바라보더니 침을 꿀꺽 삼켰다.

‘도, 도와야하는데… 혼자서도 잘한다.’

아닌 말이 아니라 진짜 혼자서 압도하고 있다.
레드 고블린을 잡을 때와 같은 사람이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홉 고블린의 공격이  보이는지 치명타를 한 대도 허용하지 않고 급소가 드러날 때마다 가차 없이 찌른다.
훈련생치고 훌륭한 움직임.
훌륭한 건 그것만이 아니었다.

‘진짜 크다…’


사람이 저렇게 커도 되나?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크다.
저렇게 큰 물건은 태어나서 처음 봐서 그런지 계속 시선이 간다.
그때.


끼에에엑!!

“어우, 질긴 새끼.”


찢어지는 비명에 정신을 번뜩 들었다.
한눈에 봐도 상태가 안 좋아 보이는 홉고블린이 사방으로 몽둥이를 휘두르고 있는  보였다.
자칫 스치기라도 했다가는 위험할 수 있을 터.
한데 오히려 위험한  최종택이 아니라 놈처럼 보였다.
어른이 장난감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아이를 제압하는 것처럼.
침착하게 쇠몽둥이를 피하고 검을 휘두르는 최종택의 모습에서 누가 궁지에 몰린지 알 수 있던 것이다.

휙- 콰직.

이윽고 쇠몽둥이에 허공을 가르고 바닥에 박힌 순간.
기회를 엿보던 그의 눈이 빛났다.


서걱-

자세가 흐트러지길 기다렸다는 듯이 목을 베자 놈이 힘없이 쓰러진다.
깔끔한 마무리였다.

“후우.”

짧게 숨을 정돈한 최종택이 제  상태를 확인했다.
처참했다.
다친 곳은 없지만 조금씩 튄 피와 그리고 훤히 드러난 상체, 그리고 물건….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이거 어떻게 하지?’


일단 급한 불은 꺼야하니 잡았는데 그 후가 문제였다.
이대로 덜렁거리는 채 나갈 수는 없지 않은가.
이 상태로 던전 밖으로 나갔다가 무슨 오해를 받을지 오싹하다.

‘얼굴책에 올라가는 거 아냐?’

영등포 덜렁남,  그런 식으로 말이다.
어떻게든 가려야했다.


‘씨발, 옷도 안 가지고 왔는데.  됐네.’


다급히 주변을 둘러보던 그의 시선이 예나 교관을 향했다.
슬림한 티에 양복 자켓을 입고 있다. 하의도 치마가 아닌 긴바지.


‘저거라도 달라고 해볼까?’


옷차림이 야한 것도 아니니까 괜찮지 않을까?
…변태라 생각하면 어쩌지.
순간 걱정이 들었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이대로 가면 그게 더 변태다.
작게 헛기침을 한 그가 최대한 밑을 가리며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 혹시 자켓 좀 벗어줄  있을까요? 제가 보시다시피…”

그리 말하던 그가 순간 멈칫했다.

‘벗어?’


불끈.
마법의 단어라도 되는 것처럼 그곳이 더욱 커졌다.
덕분에 어떻게든 가리던 손을 뚫고 튀어나왔다.
그걸 눈앞에서 생생히 본 교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러더니 황급히 시선을 돌리며 부인한다.

“저, 저는 못 봤어요!”
“아…”


…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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