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화 〉교관과 던전에서 (1)
8화.
6.
새로 온 여교관에 대한 소개는 짧았다.
이름 김예나. 나이 비밀.
헌터가 된지 2년 만에 교관이 된 엘리트 B급 헌터.
딱 초등학생 때 하는 자기소개만큼만 소개를 했는데, 그 소개마저 대부분이 이진혁 교관이 했다.
아마 그의 보충 설명이 없었다면 그저 이름만 듣지 않았을까.
보통 저러면 싸가지 없어 보일법도 한데 이상하게 김예나 교관이 하니까 하나의 매력으로 느껴진다.
‘음. 역시 차도녀가 최고지.’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랬나.
분위기의 완성도 얼굴이었다.
B급 헌터라 그런지 확실히 몸매나 외모가 차원이 다르다.
‘신서희도 진짜 예뻤는데 이건 뭐…’
그녀도 그녀만의 매력이 있긴 하지만, 차도녀 앞에선 한 수 접어줘야할 정도.
최종택이 그런 그녀를 힐끗 보고 있을 때.
“이론 수업은 이쯤에서 된 거 같고.”
넓은 수련장 위에 서 있던 교관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예정대로 대련을 시작하기에 앞서 룰을 설명해주겠다.”
올 게 온 것이다.
룰은 간단했다.
훈련생 2명이 한 조를 이뤄 교관과 대련을 한다.
다만, 교관은 힘을 다하지 않고 D급 정도의 움직임만을 보인다.
나름의 핸디캡이다.
이 정도로도 충분한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물론, 그렇다 해도 훈련생이 교관을 이길 수 있을 리는 없겠지.”
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교관들은 대부분 B급에서 A급 헌터들이다.
핸디캡을 안고 한다 해도 아직 헌터 자격증도 못 딴 훈련생들과는 짬이 다르다.
대부분 건드리지도 못하고 나자빠질 거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이건 단순한 대련이 아니니까. 이게 보이나?”
교관이 딸칵, 무언가를 누르자 그의 주위로 반투명한 막이 생겼다.
“우와.”
“와…”
그 비현실적인 현상에 사방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그중에는 최종택도 있었다.
‘오.’
확실히 신기한 광경이었다.
둥그런 투명거울을 얇게 펴서 몸에 씌운 것 같다.
‘꼭 게임 같네.’
RPG게임에서 보던 모 캐릭터의 방어막이 딱 저렇게 생겼던 것 같은데.
그리고 그건 정답이었다.
“이건 D급 아이템이다. 일정량의 타격을 막아주지.”
“오오…”
“그리고 이 베리어를 깨는 게 오늘의 미션이다. 물론 내가 먼저 공격하지는 않을 거고, 보급되는 무기나 능력 외의 도구 사용은 금지된다.”
“아, 그리고 최종택 훈련생은 예나 교관과 페어를 짠다. 당연히 훈련생의 수준에 맞춰줄 거고, 적극적으로 움직이진 않을 거다.”
“아, 예. 알겠습니다.”
대답한 최종택이 주변을 슥 훑었다.
다른 훈련생들도 딱히 불만이 있는 눈치는 아닌 듯했다.
오히려 그 점은 신경도 안 쓰는 듯 흥미로운 표정이었다.
기대하는 모습도 보이고.
‘하긴 2:1로 해야 하는 걸 훈련생 혼자 하는 게 더 이상한 거지.’
어찌 보면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훈련생 2명이 조를 짜는 것보다 더 힘들 수도 있으리라.
‘풀발 유지를 못하면 쉽게 끝나진 않겠네.’
D급 베리어면 지금 그의 능력만으론 힘들 터.
풀발을 얼마나 유지하느냐가 관건인데….
‘음.’
힐끔 여교관을 본 그가 그녀를 위아래로 스킨 했다.
포니테일로 묶은 머리와 활동하기 좋은 소재로 입은 옷차림, 그리고 등에 맨 거대한 활까지.
‘후방인가 보네.’
영략없는 궁수의 모습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페어를 짜기 위해 다가온 교관이 짧게 계획을 말했다.
“저는 후방을 맡겠습니다.”
“예.”
그 말에 최종택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치. 궁수면 후방이지.’
본래 어느 곳에서도 궁수는 후방이지 않은가.
후방이면 후방일수록 위력이 강해지는 게 바로 궁수였다.
후방에 선 그녀의 모습을 떠올리던 최종택의 뇌리에 무언가 빠르게 스쳐지나갔다.
‘…어? 후방?’
띠링-
[풀발이 발동되었습니다.]
동시에 떠오르는 익숙한 알림.
최종택이 조용히 시선을 피하며 양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난 쓰레기야’
설 때마다 저렇게 알림이 울리니 괜히 창피하다.
야동을 보다 걸린 느낌이랄까?
괜히 자기가 쓰레기 같고 변태 같이 느껴진다.
그렇게 그가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을 때 설명을 마친 교관이 짧게 호명했다.
“그럼 대련을 시작하지. 1조부터 나와라.”
“네!”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난 1조가 교관 앞으로 튀어나갔다.
그리고 금방 제자리도 돌아왔다.
자신있어하던 모습과 달리 순식간에 패배로 대련이 끝난 것이다.
정말 손끝하나 제대로 건드리지 못한 모습에 지켜보던 훈련생들은 놀란 모습이었다.
“아니, 이게 말이 돼?”
그중에서도 가장 놀란 건 단연 1조였다.
그중 후방을 맡았던 훈련생이 넋 빠진 얼굴로 투덜거렸다.
“아니 저걸 어떻게 때려… 무빙부터가 다른데.”
솔직히 베리어만 깨면 된대서 쉬울 줄 알았다.
능력 테스트 때 했던 움직이는 표적 맞추기 정도로 생각한 것이다.
한데 막상 대련을 시작하니 격이 다르다.
아무리 파이어 볼을 날려도 마치 다 보인다는 듯 슬쩍 피하는 게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다.
그때 옆에 있던 전방을 맡은 조원이 툭 내뱉었다.
“그렇긴 한데. 솔직히 네가 좀 잘 맞췄으면 이겼다. 내가 탱을 아무리 잘해주면 뭐해. 맞추질 못하는데.”
“지랄. 네가 맞춰보던가. 그리고 탱킹은 무슨, 그냥 일방적으로 두드려 맞다가 넉다운 됐으면서.”
“뭐? 이 새끼가…”
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최종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남 탓은 국룰이지.’
팀 게임에 남 탓이 빠지는 건 팥 없는 단팥빵이요, 소보루 없는 소보루 빵이다.
물론 남 탓이긴 하지만, 그 둘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확실히 고위 헌터는 다르네.’
움직임부터가 다르다.
분명 훈련생들과 비슷한 속도와 힘을 내는데, 그 효율이 하늘과 땅 차이였다.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공격을 피하며 빠르게 공격하고 빠진다.
체력관리부터가 남다른 것이다.
‘빠르게 승부를 내는 게 베스트겠는데.’
둘 이후로도 치러진 대련들을 지켜보던 최종택의 결론이었다.
전적은 6전 6승.
아, 방금 대련이 끝나서 이제 7전 7승이 되었다.
그동안 지켜본 바로는 처음에 교관이 상대의 힘을 측정하느라 좀 약하게 나온다는 거다.
그때가 기회였다.
그걸 다른 훈련생들도 모르진 않을 거다.
그게 마음대로 안 돼서 문제지.
“8조.”
“예.”
계획을 짜는 사이 자신의 조가 호명되자 최종택과 예나 교관이 앞으로 나갔다.
넓은 수련장 위에 선 최종택이 힐끗 예나 교관을 바라봤다.
그리고 이번엔 옆을 바라봤다.
[풀발이 유지중입니다.]
‘음. 가능!’
그러며 허리춤에 찬 검 집에서 검을 꺼내자 이진혁 교관이 손가락을 까딱였다.
늘 그랬듯 선공을 양보하겠단 소리였다.
배려를 마다하지 않은 최종택이 온힘을 다해 땅을 박찼다.
파앗!
이진혁 교관의 눈이 살짝 커졌다.
훈련생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속도였던 것이다.
‘이 정도면 최소 D급…!’
빠르게 측정을 마친 그가 D급에 맞춰 뒤로 물러났다.
물론 그걸 지켜만 볼 예나 교관이 아니었다.
대기하고 있던 활을 쏘려던 순간.
“어?”
갑자기 몸이 굳는 느낌에 멈칫한 그녀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화살을 쐈다.
다소 느렸지만, 효과는 있었다.
이진혁 교관이 완전히 거리를 벌리는 걸 저지한 것이다.
‘지금이다!’
그걸 파악한 최종택이 다시 한 번 땅을 박차서 대각선으로 빠지던 이진혁 교관을 쫒았다.
순식간에 거리가 좁혀졌다.
5m 이내로 파고든 그가 빠르게 검을 휘둘렀고, 거기서 대련은 끝이었다.
까앙- 콰직-
두터웠던 베리어가 한 방에 깨진 것이다.
그 광경에 앞서 대련을 치뤘던 훈련생들이 깜짝 놀라 소리쳤다.
“!?”
“미친, 한 방이라고?”
그중에는 벌떡 일어난 놈도 있었다.
그 정도로 믿기지 않는 결과였다.
베리어를 한 방에 깬 것도 놀라운데 너무 빠른 승리가 아닌가.
너무 놀라면 말이 안 나온다했던가.
고요하게 흐르는 정적 속에서 이진혁 교관이 나지막이 말했다.
“…시험 통과다.”
“나이스.”
그 말에 최종택이 주먹을 불끈 쥐곤 자리로 돌아갔다.
수많은 시선이 그를 향했다.
경외하는 시선부터 질투, 감탄, 경계… 다양한 시선이 그를 향했지만, 최종택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보다는 다른 게 더 신경 쓰였다.
‘꼬툭튀 안 됐겠지?’
다들 자신을 쳐다보기에 설마 했는데, 반응을 보니 아닌 것 같다.
‘어휴, 이건 다 좋은데 사람들 많은데서 쓰면 신경 쓰인단 말이지.’
그게 유일한 흠이라면 흠일까.
그래도 풀발이 있어서 다행이지 없었으면 한참 걸렸을 거다.
운이 나빴으면 이기지 못했을 수도 있고.
뭐, 어찌됐든 이번에도 좋은 성적을 낸 것 같다.
7.
“8조, 24조. 이 두 조만이 통과했습니다.”
“24조엔 D급 판정 받은 훈련생들이 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과지.”
이진혁 교관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D급에 맞는 자질이 있는 헌터를 알아보는 시험이었으니까.
E급 이하의 헌터들이 통과할 수 있을 리 있나.
그래서 더 의문이었다.
“최종택… 이 사람 F급 능력자 아니었나? 생각보다 너무 센데? 능력치를 타고났나?”
한 남자 교관의 말에 이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능력치 평가 때도 F등급이었다.”
“뭐야, 그럼 F등급이 맞다는 건데… 한 번에 저렇게 성장했다고?”
“테스트 한지 일주일도 안 되지 않았어?”
“난 놈들은 역시……”
“예나 교관과 함께 했다곤 해도 믿기지 않긴 하군. 아니, 오히려 힘을 조절하니까 훈련생과 조를 짜는 것보다 더 많은 역할이 필요할 텐데…”
그 말에 대화를 묵묵히 듣고 있던 이진혁 교관이 이상하다는 듯 예나 교관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예나 교관.”
“……”
그녀가 대답 대신 시선을 맞추자 이진혁 교관이 말을 이었다.
“아무리 실력을 맞춰준다 해도 너무 느린 거 아닌가? 그 정도면 E급 이하였다.”
“……”
잠시 생각하는 듯 보이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확실히. 뭔가 있는 남자인 거 같습니다.”
“평가가 짠 예나 교관이 그리 말할 정도면 난 놈은 난 놈인 모양이군.”
그의 말에 그녀는 대답하지 않고 창문을 바라보았다.
마치 누군가를 바라보듯이.
8.
대련 수업이 끝난 후.
집으로 돌아온 최종택은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침대에 누워있었다.
“크, 2조 밖에 통과 못한 시험에 내가 통과했단 말이지….”
50개가 넘는 조 중 단 2조.
확률로 따지면 10%도 안 되는 극악의 확률이다.
괜히 어깨가 으쓱하는 게 썩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살면서 10%안에 드는 거라곤 RPG게임 아이템 강화 밖에 없었건만.
‘이게 다 자박꼼 덕이지.’
늘 느끼지만 참 유용한 스킬이었다.
아니, 유용하다 못해 사기적이지.
헌터랑 떡을 치면 그 헌터의 스킬을 얻을 수 있는데 이게 사기가 아니면 뭐가 사기란 말인가.
미래의 자신은 얼마나 더 강해져있을지 기대된다.
그러려면 많은 헌터, 그리고 강한 헌터와의 관계가 중요한데….
“음…”
마침 한 여자가 떠올랐다.
‘B급 교관이면 능력도 B급 얻으려나?’
랜덤으로 스킬을 얻는다하니 B급 헌터라 해서 무조건 B급 스킬을 얻는 건 아닐 거다.
B급 헌터들도 D급 스킬들을 보유한 경우가 많으니까.
그래도 B급 헌터이니만큼 확률이 낮지는 않을 터.
무엇보다 얼굴이…
“아…. 오늘은 체력 훈련해야겠다.”
그녀를 떠올린 그가 슬그머니 컴퓨터 앞에 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