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화 〉같은 반 여헌터와... (1) (5/124)



〈 5화 〉같은 반 여헌터와... (1)

5화.


9.

띠링-

[꼼짝남 : 물론이죠..!  시에 볼까요? ^^]
[꼼짝남 : (새초롬한 표정의 라이언)]
[나 : 8시 어떠세요!?]
[꼼짝남 : 어우, 좋죠~ 그럼 8시에 봅시다 ㅎㅎ]

“으음…”


카톡을 끝낸 신서희가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연애세포 때문은 아니었다.
연애경험이 적지 않은 그녀가 생각하기에 그것과는 거리가 좀 있었다.
두근거림도 있기는 했지만, 그보다는 궁금한 게 더 컸다.


‘이 남자…, 이상해.’


말투가 이상하다는 게 아니다.
아니, 그것도 이상하긴 한데 그것보다는 던전에 들어갔을 때 느꼈던 느낌이 신경 쓰였다.


‘꼭 물속에 빠진 느낌이었어.’

사고회전이 느려지는 느낌.
물속에서 움직이는 것처럼 움직임도 굼뜨고, 생각도 느려졌었다.
그 당시에는 긴급한 상황이라 넘겼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분명 이상했다.


‘특히 그 남자가 고블린들을 제압하기 시작할 땐… 정말 꼼짝도 못했어.’

아무리 기습이었다곤 해도 평소의 그녀라면 분명 빠르게 정신을 차리고 도왔을 거다.
힐을 주던, 몽둥이를 휘두르든 말이다.
그녀도 나름 헌터인데 밀쳐서 넘어진 게 뭐 대수라고 하루종일 누워만 있겠는가.
한데 그 남자가 강해지자 이상하게도 숨이 탁 막혔다.
아나콘다가 몸을 옥죄고 있는 것처럼 미동도 할  없었다.
 대목에서 그녀는 확신할 수 있었다.


‘분명  남자와 연관이 있어.’

최종택, 그 남자한테 무언가가 있다고.
스킬인지 다른 무언가 인지는 모르지만, 그게 자신을 얽매인  틀림없다.
어찌됐든 평범한 사람은 아니었다.
일반적인 헌터 지망생이 그런 느낌을 줄 수는 없을 테니까.
그래서 처음에는 빌런  사람들이 쓰는 사술 같은 건가 했는데…

‘나쁜 사람 같진 않았는데.’


자신을 구해준 점이나 그 후 행동들을 보면 그건  아닌 것 같다.
하나부터 열까지 의문투성이인 남자.
평소라면 그냥 넘길 법도 하지만, 이상하게 이번만큼은 넘길 수가 없었다.
워낙 생소한 경험이기도 했고, 자신을 구해준 모습이 묘하게 잊히지가 않았던 것이다.

‘으음… 내일 만나보면 알겠지.’


상념을 떨쳐낸 그녀가 이불을  위로 올렸다.
왠지 내일이 조금 기대됐다.



10.
그렇게 시간이 흘러 다음날 저녁.
약속시간 2시간 전부터 샤워를 시작한 최종택은 1시간이 지나서야 화장실에서 나왔다.
꾸미는 것도 평소와 다르게 1시간이나 투자했다.
10분이면 모든 준비가 끝나던 평소와는 180도 다른 모습.
무슨 소개팅이라도 나가는 사람 같다.
한데.

[소개팅 맛집 추천]
[소개팅 어떻게 하나요?]
[소개팅 꿀팁 10가지……]


‘음. 이런 식이구나.’


놀랍게도 실제로 최종택은 소개팅으로 여기고 있었다.
여자와 소개팅이나 미팅을 해본 적이 없는 그에게 단 둘이 식사는 소개팅이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말도  되는 논리지만, 결과적으로 틀린 것만은 아니었다.
여자가 먼저 애프터를 요청한 거니까.
그렇게 장장 2시간을 걸쳐 준비를 끝낸 그가 거울을 확인했다.


“좀 괜찮은  같은데? 아니, 잘생겼어.”


흔히 남자들이 화장실 거울 볼 때마다 하는 자뻑이 아니라 진짜 괜찮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라 했던가.
꾸며본 적이 딱히 없다보니 흰색 반팔 티에 청바지 하나를 입었을 뿐인데 패션이 되어버렸다.
모델처럼 좋아진 비율과 키, 그리고 다부져진 몸도 한 몫 하는 것 같고.
새삼 자각된다.


‘헌터는 헌터구나.’

분명 거울을 보는 건데 자기 얼굴 같지가 않다.
대한민국 상위 50%의 흔한 남자였건만.
지금은 카페 알바라도 하면 번호 꽤나 따일 것처럼 생겼다.
거울 보면서 이러는 게 창피하긴 한데… 이게 자기 얼굴이라 생각하니 기분이 더 좋은 건 왜일까.


‘지가 지 얼굴 보고 반하는 새끼들 이해 안 갔는데…’

흠흠, 헛기침을 한 그가 고개를 저으며 거울에서 시선을 뗐다.
더 이러고 있다간 나르시즘에 걸릴  같다.
상념을 떨쳐낸 그가 집을 나섰다.
집을 나오니  만난다는 생각에 가슴이 더 두근거렸다.

‘긴장된다. 약속이라니……’

띠링-


[풀발이 발동되었습니다.]

도대체 뭔 생각을 한 걸까.
어떻게 긴장하다가 풀발이 되는지 모르겠지만, 어찌됐든 경쾌한 알람에 최종택이 행복한 상상에서 깨어났다.
그러자 지금껏 못 본 알림창이 보였다.

[자박꼼 효과가 증가됩니다.]

풀발이 발동되었다는 메시지 밑에 뜬 문구가.
그에 최종택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런 게 있었네?’


전투 중엔 고블린 족치느라 바빠서 미처  봤는데 이런 게 있을 줄이야.
시너지 스킬이면 좋은 거긴 한데….


‘자박꼼, 이거 대체 정체가 뭐지?’

온전히 좋아하기엔 너무 의문투성이인 스킬이었다.
나중에 이것도 실험을 해봐야하나.
그런 고민을 하고 있는데 어느새 도착한 신서희가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최종택도 급히 손을 흔들며 다가가자,

흠칫.

그녀가 순간 한 차례 몸을 떨더니 최종택의 밑을 바라봤다.
그러다 스스로도 놀란 듯 당황하며 인사를 건넨다.


“아, 오, 오래 기다리셨어요?”
“아뇨. 오래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최종택의 태연한 반응에 그녀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갑자기 왜 거기에 시선이 갔지?’

이상한 일이었다.
성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리 발정난 사람처럼 군 적은 없었는데.
하물며 이런 자리라면 더더욱.
그녀가 심란해하고 있을 때 최종택이 웃으며 말했다.


“그럼 갈까요?”
“아, 네.”


덕분에 상념에서 벗어난 그녀가 넌지시 물었다.

“먹고 싶은 거 있나요?”
“아…”

그 말에 곰곰이 생각하던 그가 고개를 저었다.

‘이런… 몹쓸 생각을.’

만약 가라앉아있었다면 분명 스킬이 발동되었다는 메시지가 떴을 거다.
헛기침을 한 그가 얼버무리듯 말했다.


“크흠. 전 아무거나 괜찮습니다.”
“저, 저도 다 괜찮으니까 말씀하세요. 제가 보답으로 사드리는 건데… 종택 씨 드시고 싶은  드셔야죠.”
“으음….”


이번엔 진지하게 고민한 최종택이 떠올랐다는 듯 말했다.

“감자탕 어때요?”
“아… 감자탕이요?”

동시에 신서희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눈치 없는 최종택이 한 눈에 알아볼 정도로 극적인 변화였다.


“아, 싫어하세요?”
“아뇨, 좋아는 하는데……”

무언가 할 말이 많은 듯 보이던 그녀가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그리곤 작게 고개를 젓는다.


‘이 새끼… 모솔이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게 신서희의 결론이었다.
…무슨 낭중지추도 아니고.
천재는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드러난다는데 저 남자는 모솔인  눈에 저절로 드러난다.

‘그래, 알아내는 게 먼저였으니까….’

그렇게 정신을 차려보니 그녀는 감자탕 집이었다.
눈치 없는 최종택이 기어코 신서희를 감자탕 집으로 데려간 것이다.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최종택이 물었다.


“감자탕 소면 되겠죠?”
“…네.”
“아참. 저녁 먹는 거니까 술도 하실 건가요?”
“아, 네.  정신으로 있기엔  힘드네요.”

의미심장한 말.
누가 들어도 그게 긍정적인 의미는 아니었지만 최종택은 달랐다.

‘어. 이거  있는 거 아냐? 오늘 각인 거 아냐?’


띠링- 하는 소리와 함께 풀발이 발동됐다는 메시지가   같지만, 최종택은 신경도 안 썼다.
그보다는 설레는 마음으로 신서희의 얼굴을 뜯어봤다.
고민이 많은 듯 가라앉은 눈빛이 새하얀 얼굴에 들어가니 사연 있는 여주인공 같은 분위기다.

‘예쁘긴 진짜 예쁘다.’


E급 헌터로 알고 있는데.
헌터가 되기 전부터 예뻤던 걸까?
웬만한 연예인은 한 수 접어줄 만큼 예쁘다.  정도면 스카우트도 많이 들어왔을 것 같은데.


‘이런 여자가 나랑…’


거기까지 생각한 그가 흘핏 옆을 곁눈질했다.

[풀발이 유지중입니다.]

‘음.’


시선이 이번엔 밑을 향한다.
조용히 밑을 바라보던 최종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청바지 입고 와서 다행이다.’


1시간이나 고민한 보람이 있었다.
어쩐지 청바지가 끌리더라니 이걸 예견한 선견지명이었나 보다.


‘술 마시면  수그러들겠지?’

헛기침을 한 그가 어느새 채워진 잔을 들었다


“짠할까요?”
“아, 네.”


짤랑-

술잔이 부딪히며 듣기 좋은 소리를 냈다.
단숨에 들이켠 둘은 그 후로도 연달아 몇 잔을 더 마셨다.
그렇게 각  병 정도 마셨을 쯤.


“하아…”


여자가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손부채질을 하더니 살짝 풀린 눈으로 물을 마신다.
그런 그녀의 턱을 타고 물 한 방울이 천천히 흘러내린다.
그걸 본 최종택의 밑에 힘이 빡 들어갔다.

‘오우야… 이건 못 참지.’


어떻게든 티를 안 내려고 다리를 재정비하는데 그녀가 입을 열었다.


“좀 덥네요.”
“그, 그러게요.”


그녀의 말대로 최종택도 더웠다.
에어컨도 빵빵하고 술에 취한 것도 아닌데 그냥 분위기가 뜨겁게 느껴진다.
오늘 어쩌면 거사를 치룰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 후로 뜨거운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그 반대.


“사실 서희 씨가 정말 저랑 약속 잡을 줄 몰랐어요. 으레 하는 말인 줄 알았거든요.”
“아… 설마요.”
“보통 다들 저녁 사겠다, 다음에 꼭 보자 말은 해도 진짜로 실행하지는 않잖아요. 하하. 조금 감동이었어요.”
“아아…”


최종택이 분위기를 띄우려고 아무 말이나 내뱉으면 그녀는 짧게 대답할 뿐이었다.
차갑기 그지없는 반응.
소주도 어느덧 둘이서 4병째를 까고 있는데 분위기는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이쯤 되니 최종택도 기분이 나빴다.


‘이럴 거면  부른 거야?’


거사는 둘째 치고 사람 예의가 있지.
꼭 자기가 싫다는 사람 불러다가 밥 먹는  같지 않은가.
언짢아서인지 밑이 조금씩 가라앉았다.

[풀발이 해제되었습니다.]

그러자 풀려있던 신서희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정신을 차린 그녀가 고개를 흔들었다.

‘또 정신을  차렸었어. 2~3병은 마시는데 원래…’

그녀의 주량은 소주 3병이다.
친구들 사시에서도 술고래로 유명한 그녀가 2병도 못 깐 지금 취한다는 건 말도 안 됐다.
설령 취했다해도 갑자기 정신이 드는 것도 말도  되고.
그리고…

‘왜 자꾸 이 남자 앞에만 있으면 몸이 뜨겁지?’

시선이 자꾸만 밑을 향한다.
몸이 뜨겁고 사고가 통제가 되질 않는다.
약을  것 같지도 않고, 스킬을 사용한 것 같지도 않건만….
대체 어찌 된 일인지 고민하는데 최종택이 다소 언짢은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일어날까요?”
“아, 네.”

당황한 그녀가 저도 모르게 대답했다.
그 모습이 꼭 그 말만을 기다렸다는 듯 보여서 최종택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기대는 개뿔이. 내가 그럼 그렇지.’

오늘도 최종택이 최종택 했다.
그렇게 자리에서 일어난 둘은 카운터로 향했고, 신서희는 계산을 하며 고민했다.

‘아직 능력이 뭔지도 모르는데… 좀  알아봐야하나?’

이대로 헤어지긴 아쉽다.
판단을 내린 그녀가 최종택을 올려보며 조심스레 물었다.

“저희…, 2차 가실래요?”
“어…?”

그 순간.


띠링-

[풀발이 발동되었습니다.]
[자박꼼의 효과가 증가됩니다.]

이제는 친숙한 메시지가 나타나자 신서희의 정신이 혼미해졌다.

“아아…”

사고가 느려지는 수준이 아닌 주체할 수 없는 수준이  것이다.
눈이 완전히 풀린 그녀가 대놓고 그의 밑을 바라봤다.
이번에는 그 시선을 눈치 챈 최종택이 급히 몸을 틀었다.


‘아, 이런… 보셨나? 청바지 입어도 티가 난 건가?’

하필 이런 타이밍에….
급격히 조용해진 그녀의 모습에 최종택이 눈을 질끈 감았다.
이대로 두면 갑분싸다.
그럴  없었던 그가 말을 돌렸다.

“그, 그럼 어디 갈까요?”
“……”

그러자 신서희가 말없이 어딘가를 바라보더니 손가락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곳은 최종택도 익히 아는 곳이었다.

[HOTEL CT]

‘…텔?’

가슴이 두근거리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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