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4화 〉이것도 현질인가? (3) (4/124)



〈 4화 〉이것도 현질인가? (3)

4화.


7.
만화나 영화를 보면 악당이나 주인공이 변신하는 장면이 있다.
드X곤볼의 프X저라던가.
사이어인 멸종시킨 외계인이라던가.
그런 그들의 특징이 있는데 변신할 때마다 표정부터가 자신감으로 가득 찬 모습으로 변한다는 거다.
클리셰라고 해도 될 정도로 같은 반응.
그땐 별 생각 없이 봤었는데, 지금 최종택은 왜 그들이 그런 반응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빠악!
키에에엑!

“오우.”


손맛부터가 다르다.
한  때릴 때마다 휘청거리는  묵직함이 타이슨 저리가라다.
머리 붙잡고 니킥  번 하니까 코뼈가 주저앉았는지 안 그래도 못 생긴 얼굴이  못생겨졌다.
신명나게 패고 있는데 왠지 옆이 쎄하다.
슬쩍 곁눈질하니 다른 고블린이 그의 뚝배기를 향해 몽둥이를 휘두르는 게 보였다.
그런데…

“느려.”

중2병이라서 그러는 게 아니라 진짜 느리다.
복싱 선수는 일반인의 주먹을 쉽게 피할  있다고 한다.
어깨의 움직임을 보면 예측이 된다던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최종택의 경우도 비슷했다.
힘도 실려 있지 않고 속도도 전보다 느리게 느껴지는 게 어디로 휘둘러질지 어느 정도 예측이 된다.
역시 능력치가 깡패인가.
프X저가 왜 2단 변신하고 그리 자신만만했는지   같다.
세상이 이리 달라 보이니 자신감이 생길 수밖에 없지.

휙-

가볍게 상체를 틀며 옆으로 비키자 맨땅을 내려친 놈의 자세가 무너졌다.
그 상태로 발을 걸자 철푸덕 넘어진다.
자연스레 놓친 몽둥이를 빼앗은 최종택이 놈의 등을 향해 휘둘렀다.

빠악!
끼엑!

그걸로 게임 끝.
부르르 떨던 고블린이 몸을 축 늘어트린다.
정신없이싸운 지 얼마나 됐을까?

“후우. 너밖에 안 남았다 이제.”

슬슬 숨이 가빠졌을 때쯤 되니 그 많던 고블린도 한 놈밖에 안 남았다.
말이 한 놈이지 사실상 놈도 전투불능이나 다름없었다.
바들바들 떨며 뒷걸음질 치기 바빴으니까.
저대로 놔두면 도망칠 기세다.

‘동료라도 불러오면 큰일 나지.’


이 정도로 싸웠는데 안 온 걸 보면  없을 것 같긴 한데.
혹시 모르지 않은가.
빠르게 놈의 숨통을 끊어낸 최종택이 털썩, 땅 위에 주저앉았다.


“후우.”


다리가 후들거린 탓이었다.
싸울 땐 몰랐는데 막상 전투가 끝나니 긴장이 몰려온 듯했다.
숨을 정돈하며 주변을 둘러보니 처참하다.
고블린들의 피로 주변이 물들어있고, 손과 옷에도 조금 튀어있다.

‘으으…’

속이 울렁거린다.
아드레날린이 사라지자 현실감이 돌아온 곳이다.
시체들을 보고 있기 거북해서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옆까지 다가온 신서희가 시야에 들어왔다.

“괜찮아요?”
“아… 네.”

그러면서 손을 몸에 가져다대는데 초록색 기운이 흘러나온다.
뭔가 묘하게 몸이 따듯해지는 기분에 최종택이 눈을 지그시 감았다.


‘이게 힐인가.’


병을 치료해주진 못해도, 외상에 한에선 현대의 의료기술은 감히 넘볼 수 없다는 힐러의 힐.
E등급 판정을 받은 그녀의 위력은 그 정도는 아닌 듯했다.
그래도 멍이 들었던 곳이나, 고블린들에게 얇게 할퀴었던 곳들이 재생되는 걸 보면 신기했다.
새삼 몬스터를 잡았다는 게 실감되기도 하고.

“끝났어요.”
“아…”

힐을 끝내고 눈이 마주친 둘이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시선을 피했다.
전투의 여운 때문에 잊고 있었는데.
눈이 마주치니  전에 보았던 무언가가 계속 떠올랐다.


‘크흠. 상당히 컸지.’

무엇이 크다는 걸까.
뭔지는 몰라도 그가 얼굴을 붉혔고, 신서희도 민망한지 시선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렇게 또 어색한 기류가 흐르고 있을 때.


“여기입니다! 고블린 다섯 마리가 출몰한… 음?”
“어?”

멀리서 교관을 비롯한 남자  명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초조해보이던 그들은 쓰러진 고블린들을 보고 한참을 멍하니 서 있더니 최종택을 보며 물었다.

“8조, 최종택 씨. 신서희  맞습니까?”
“예. 맞습니다만.”
“…이건 모두  분이 하셨고요?”


맞다고 대답하려는데 옆에 앉아있던 신서희가 불쑥 끼어들었다.

“아뇨, 저는 한  없고 거의 종택 씨가 했어요.”
“예? 고블린 다섯 마리를 전부요?”
“네.”“하지만 이 분은…”


아차 싶었는지 말끝을 흐린 남자였지만, 그의 말뜻을 이해 못하는 사람은 없었다.
눈치 없는 최종택도 알아들을 정도였으니까.


‘능력치, 스킬 다 F등급 판정을 받았는데 어떻게 혼자 잡을 수가 있냐… 이거겠지.’

타당한 의문이었다.
당장 자신이 관계자였어도 개소리로 치부할 테니.
실제로 그 쿨한 교관마저 납득할 수 없는지 턱을 집고 고민하고 있다.
뭐라도 말해야겠다 싶어서 입을 열려는데.

“저…”
“아, 예. 말씀하세요.”

이번에도 선수  신서희가 대신 입을 열었다.

“듣기로 기사 타입이신 것 같아요. 평상시엔 약하다가 누군가를 지킬  강해지는? 실제로 제가 위험에 빠지니까 갑자기 강해지셨거든요.”
“아!”“호오?”


그녀의 말에 교관과 관계자가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인다.

‘하긴, 수호자 타입이라면 일반적인 테스트로는 제대로 된 판정을 받기 어렵겠어.’
‘F등급 판정을 받았던 것도 이해가 되네요.  정도면 못해도 E등급은  것 같죠?’
‘그런 것 같군.’

그러더니 저들끼리 대화를 나누는데 더 이상 의문스러워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한시름 놓은 최종택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이게 이렇게 되네.’

스킬을 설명하기가 힘들어서 대충 무마하려고 말한 게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이야.
그녀가 아니었다면,  이상한 헛소리를 할 뻔했다.
그래서 대화중이던 교관에게 말했다.


“서희 씨 덕분에 무사히 사냥할 수 있었습니다. 혼자였으면 절대 못 잡았을 거예요.”
“네? 전  게 아무 것도 없는데…”

그리 말하는 그녀를 보며 최종택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녀는 분명히 제 몫을 했다.


‘고마워요. 덕분에 발기를 오래 유지할  있었어요.’


잠깐  것만으로도 10분이 넘게 풀발 시키는 여자는 흔치 않았으니까.
그 속사정을 모르는 교관과 관계자는 그런 둘을 흐뭇하게 바라볼 뿐이었다.



8.
교관과 함께 던전을 나오니 많은 조가 나와 있다.
아니, 많은 정도가 아니라 모든 조가  있는 것 같다.
나름 선방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그런 의문을 품고 있는 게 표정에 드러났는지 교관이 툭 내뱉듯 말했다.

“다른 조는 너희 조처럼 고블린들이 기습하지 않고 빠르게 전투를 치뤘다. 그 수도 평균적으로 3마리 정도였고.”
“아하.”


고블린들이 기습한 건 던전을 나오기 전 말했었다.
애초에 둘이 급하게 던전에 들어온  자체가 미처 처치 못한 고블린들이 숨어있단  알게 되어서였다고 하고.
이게 지금은 이리 가볍게 넘겨도 하마터면 대형사고 터질 뻔한 거다.


‘F등급 근딜, E등급 힐러 하나였으니까. 보통이라면 못해도 중상자는 나왔겠지.’

혹여나 사망자라도 나왔다면….
이번 관계자들은 싹 다 시말서를 써야하지 않았을까.
꽤나 곤란했을 거다.
그래서인지 최종택을 바라보는 그들의 시선에 호의가 가득했다.
어쨌거나 이로서 첫 던전 체험이 끝났다.
아, 그리고 나와서야 알게 됐는데 합격 기준은 고블린 사냥이었다.
그래서 몬스터를 고블린만 남겨둔 건데.

“고블린 다섯 마리. E급 헌터라 해도 첫 전투에선 쉽지 않은 성적인데… 이 정도면 최소 E급, 잘하면 D급도 기대해도 되겠어.”


그 시험에서 최종택은 유망주라는 결과가 나왔다.
첫 전투라는 요소 때문에 웬만한 E급 판정을 받은 헌터 지망생들도 쉬이 사냥을 하지 못한다는데.
무려 다섯 마리나 잡은 그의 점수가 높은 건 당연한 거였다.
그의 입장에선 프X저 2단 변신마냥 스킬의 뽕 맛에 취해서 호기로울 수 있었던 것뿐이지만.


‘크… 이대로만 가면 등급도 기대해볼만해.’


첫날부터 긍정적인 반응을 얻었다.
이대로 강해지기만 하면 교관의 말대로 D급, 혹은 그 이상을 노릴 법도 하리라.


‘하. 눈물겹다 진짜.’


처음 각성했을 때만해도 막막하기만 했는데….
지금은 D급 이상을 노리고 있는 게 새삼 감탄스러웠다.
희소식은 하나  있었다.


[이름 : 최종택]
[레벨 : 3]
[능력치]
[근력 : F (20 / 100)], [민첩 : F (10 / 100)]
[체력 : F (0 / 100)], [마력 : F (0 / 100)]

레벨이 2단계나 올랐다.
그 덕에 능력치가 조금씩 올랐는데 아무래도 1이 오를 때마다 (10)씩 오르는 듯했다.

‘오르는 능력치도 랜덤인  같고. 이래서 등급 올리기가 빡세다고 하는 거구나.’

지금이야 초반이니까 고블린 좀 잡았다고 레벨이 팍팍 오르지, 후반으로 갈수록 힘들 거다.
경험치 통 자체가 커질 테니까.
B등급 정도 되면 수천 마리는 잡아야하지 않을까?
S등급 헌터들의 경우 잡몹으로는 아예 경험치에 기별도 안 간다고 했으니 그럴  같다.


‘흠. S등급이라…’


S등급.
단순히 A등급 위라는 뜻이 아니다.
상식선에서 허용할 수 없어서, 일반적인 헌터랑은 격이 달라서 규격 외로 둔 등급.
그게 S등급이었다.

‘그야말로 괴물들이지.’

그래서 더 이상했다.


‘나도 그런 헌터가 될  있을까?’

그 전설 속 동물과도 같은 취급을 하고 살아가던 자신이,  전설을 꿈꾼다는 것이.
며칠 전이었다면 허황된 꿈꾸지 말라고 꾸짖었을 텐데.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 생각의 근본은 자박꼼이었다.
‘풀발’도 S등급 스킬인데 그 스킬을 준 자박꼼은 최소 그것보다 대단한 스킬일 테니.


‘내가 알기로 이런 식으로 강해지는 스킬을 가진 헌터는 없어.’

성장형 스킬이야 많지만, 그건 스킬에 한해서다.
능력치가 강해진다 해도 그에 준하는  리스크가 따르거나 일시적인 현상일 뿐.
사냥해서 레벨을 올리고, 스킬을 얻는 게 최선이다.
그게 일반적인 헌터는 아무리 노력해도 S등급이 될 수 없는 이유고.
하지만 자신은?

‘이 스킬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더럽지만, 최초의 성장헌터 아닌가.
그의 마음  켠에 작은 꿈과 희망이 싹을 틔우고 있을 때, 학생 수를 모두 확인한 교관이 큰소리로 외쳤다.


“다들 나온  같군.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다. 다들 수고했다.”
“수고하셨습니다!”

교관이 떠나자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성적이 괜찮았던 이들은 밝은 얼굴로 떠들고 있고, 죽을 쑨 이들은 표정에 고스란히 적혀있었다.
친해진 사람들이나 친구들과 술을 마시러 가는 이도 있고.
그쯤 되자 최종택도 상념에서 벗어났다.

‘에휴. S등급이고 뭐고 일단 집이나 가자.’

그에겐 자랑할 만한 사람도, 같이 술을 마실 사람도 딱히 없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집으로 가려는데.


“자, 잠시 만요.”
“예?”

맑고 청아한 목소리가 그를 붙잡았다.
익숙한 목소리에 반사적으로 뒤돌아보자 신서희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이고 있다.

“저…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종택  아니었으면 정말 큰일 났을 거예요.”
“아.”


구해준 것에 대한 감사인사였다.
기대 이상의 성적과 자신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 때문에 잠시 잊고 있었는데.
괜히 무안하다.
뭐라 반응할지 모르겠어서 머리를 긁적이고 있자 그녀가 조심스럽게 휴대폰을 내밀었다.

“혹시 번호 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예??”

응?
지금, 뭘 알려달라고?
난생 처음 겪는 상황에 반사적으로 되묻자 신서희가 급히 말을 잇는다.

“아, 그, 같은 조니까 연락처를 알아두는  편할 거 같아서요.”
“아아…”

그럼 그렇지.


‘뭔 기대를  거야,  병신아.’


모솔 특징 중 하나가 여자의 친절을 호감으로 착각하는 거라던데.
 그 꼴이 날 뻔했다.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번호를 적어주자  전화가 걸려왔다.
전화기를 바라보니 앞에 있던 신서희가 수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건 제 번호에요. 다시 한 번, 오늘 정말 고마웠어요…! 다음에 저녁이라도 사드릴게요!”


저녁을 사준다고는 하지만, 당연히 예의상 하는 소리일 거다.
지금까지 뭔가 도와줘서 나중에 밥 산다고 한 여자 중, 실제로 밥을 사준 여자는 한 명도 없었으니까.
SNS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다음에 꼭 보자 ㅠㅠ’와도 같은 것이다.

“예. 오늘 고생하셨어요. 다음에 연락 주세요, 하하.”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때문에 최종택은 대답하면서도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보다는 집에 들어가면 무슨 치킨 시켜먹을지가 더 기대됐다.
그래서일까.
집에 들어왔을 땐 이미 그녀에 대한 생각이 말끔히 지워진 후였다.
24년차 모솔인만큼 포기도 빨랐던 거다.
그런데 이게 웬 걸?
그날 밤.

[존예녀 : 내일 저녁 괜찮으세요?]
[존예녀 : (수줍어하는 동그리 이모티콘)]

“어?”

놀랍게도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그리고 그날, 최종택은 화장실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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