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화 〉이것도 현질인가? (2)
3화
5.
[스킬 ‘풀발’을 획득하셨습니다!]
[상대의 마력이 미약합니다.]
[낮은 능력치를 획득합니다.]
자박꼼을 통해 얻은 스킬과 능력치.
그 효과를 확인한 순간.
‘이건 진짜 미친 스킬이야.’
최종택은 역사상 둘도 없을 획기적인 스킬이라 확신할 수 있었다.
때문에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이 스킬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을지.
결론은 하나였다.
‘헌터랑 떡 치는 게 베스트네.’
기본적으로 마력이 강한 상대랑 할수록 능력치 상승폭이 커진다.
그리고 현대에 마력이 강한 건 헌터뿐.
일반인들이랑 해도 천천히 오르기야 하겠지만 그래서야 끝이 없다.
능력치가 오를수록 상승폭도 낮아질 게 분명하니.
‘결국 헌터랑 떡을 쳐야한다는 건데…’
낮게 침음을 흘린 그가 힐끗 옆을 바라봤다.
그러자 눈이 마주친 여자가 어색한 미소로 인사를 건넨다.
“아… 안녕하세요. 저번에 뵀었죠?”
“아, 예.”
그에 최종택도 짧은 대답으로 받아쳤다.
분위기가 싸하다.
버스 옆자리에 앉은 반 친구와 ‘덥지? 으, 응,’ 같은 대화를 나누었을 때 분위기가 이랬던 것 같은데.
그때를 떠올린 최종택이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존나 뻘쭘하다. 얼어붙는 것 같아.’
그라고 이런 분위기가 좋은 건 아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자신과 부딪혔던 존예녀.
저 여자랑 떡을 쳐야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아서 집중이 안 된다.
빨리 이걸 해결해야하는데…
‘대뜸 섹스하자고 할 수도 없고.’
그러면 최소 경찰서행이다.
헌터니까 협회 측으로 가려나?
‘헌팅하는 사람들 보면 어떻게 잘 대화해서 꼬시던데…’
결국 대화로 잘 풀어야한다는 건데….
평생을 모태솔로로 살아왔던 그로선 상상도 못할 일이다.
전처럼 이상한 소리나 하지 않음 다행이지.
그나마 옆자리에 배정받지 않았으면 이렇게 얼굴도 마주치고 있지도 못할 거다.
그러고 보니 처음 한 번은 우연이라도 두 번이면 인연이라는데.
그걸 빌미로 술이나 한 잔 하자고 할까 생각하던 최종택이 도로 고개를 저었다.
‘아냐, 내가 생각해도 구려.’
안 그래도 어색한 분위기 겨울왕국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본의 아니게 입을 닫고 있길 한창.
“음… 저기.”
놀랍게도 여자가 조심스레 말을 걸었지만,
드륵-
미친 타이밍에 들리는 소리에 묻혔다.
최종택도 목소리를 듣지 못하고 문 쪽을 바라보니 한눈에 봐도 몸 좋아 보이는 남자가 보였다.
스포츠머리에 딱 달라붙는 티, 그리고체육바지.
고등학교 체육 선생님 같은 비주얼이다.
외견처럼 화끈한 성격인지 선생님은 들어오자마자 교탁에 서더니 본론을 내뱉었다.
“A반 선생을 맡기로 한 이진혁이다. 다 온 것 같으니 바로 수업을 시작하겠다. 이의 없겠지?”
“네!”
“좋아. 일단 결론만 말하자면 오늘 인스턴트 던전에 들어간다.”
이진혁의 말에 웅성거림이 커졌다.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 첫날부터 던전을 간다는 건 그만큼 파격적이었던 것이다.
“진짜 바로 던전 간다고? 큰일 나는 거 아냐?”
“몬스터 잡는 거야? 뭔가 떨린다.”
“괜찮을까? 사고 나는 거 아냐?”
“근데 뭔가 기대된다.”
흥분과 기대를 드러내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존예녀의 경우도 후자였다.
“허으….”
손을 꼼지락거리는 게 언뜻 보아도 불안해 보인다.
짝짝.
그런 학생들의 반응에 이진혁이 가볍게 손뼉을 쳤다.
이목이 집중되자 그가 입을 열었다.
“던전에 들어간다 해서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인스턴트 던전이라 기껏해야 F등급 몬스터나 등급도 부여받지 못한 마물들이 나오니까.”
“아!”
“게다가 안전은 나를 비롯한 교관들이 책임지고 맡고 있으니 사고가 난다해도 큰 문제는 없을 거다.”
역시 숙련된 교관은 다른 걸까.
그가 몇 마디 말해주니 분위기가 싹변한다.
언제 불안해했냐는 듯 이제는 던전이 기대된다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다.
‘하긴, 교육을 위한 던전인데 사망자라도 나오면 문제가 커지겠지.’
아마 9시 뉴스에 뜨고 난리나지 않을까?
그리되면 못해도 그 반의 교관은 업계에서 사퇴해야할 테니 목숨 걸고 막을 거다.
그리 생각하니 안심되긴 한다.
분위기가 환기되자 이진혁이 마저 설명을 이어갔다.
“일단 던전과 헌터에 대해 설명하자면…”
내용은 이러했다.
지금 들어가는 던전은 인스턴트 던전으로 코볼트, 고블린 및 들개와 같은 야생동물이 나온다한다.
사실상 고블린을 제외한다면 크게 어렵지 않다는 소리였다.
2인 1조이기 때문에 고블린도 교육받은 대로만 한다면 큰 문제없다고 하고.
아, 여기서 배정된 조가 중요했다.
“조는 옆자리에 앉은 사람과 함께하면 된다. 성적과 능력을 비례해서 밸런스를 맞춘 것이니 가장 효율적일 거야.”
이를테면 1번과 2번이 한 조.
15번과 16번이 같은 조인 거다.
그리고 16번은 최종택이다.
“어… 같은 조네요?”
“그, 그러네요.”
옆자리에 앉은 15번, 존예녀가 슬쩍 말을 걸자 최종택도 짧게 대답했다.
왠지 분위기가 또 어색해진 기분이다.
그래서 수업에 더 집중했다.
어색하게 대화할 바엔 수업에 집중한 후에 던전에서 대화하는 게 낫다는 판단이었다.
“고블린의 약점은 인간과 비슷하다. 심장과 관자놀이…”
수업은 제법 흥미로웠다.
고블린을 비롯한 몬스터들의 급소와 상대법도 흥미로웠지만, 무엇보다 가장 흥미로운 건.
“헌터는 레벨이 10 오를 때마다 새로운 스킬을 얻을 수 있다. 등급은 랜덤이며 헌터의 능력치처럼 알파벳으로 되어있지.”
“그게 여러분들이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이유다. 지금 당장은 약해도 얼마든지 강해질 수 있다. 그러니 F등급이라 실망할 게 아니라 분발해야겠지?”
헌터에 대한 설명이었다.
‘레벨 10마다 새로운 스킬이라… 그땐 무슨 스킬을 얻으려나?’
교관의 말에 의하면 추가 스킬은 첫 각성 때 얻은 스킬과 관련된 것을 얻는다고 한다.
그게 각성 때 얻은 스킬이 헌터의 장래를 정하는 이유고.
‘음. 자박꼼과 관련된 스킬이라…’
왠지 썩 좋은 방향은 아닐 것 같은 건 착각일까.
어찌됐든 새로운 스킬을 얻을 수 있다는 건 설레는 일이었다.
무슨 스킬을 얻을지 궁금하기도 했고.
그렇게 수업을 시작한지 2시간가량이 지나자 스피커를 통해 종 치는 소리가 울렸다.
수업의 끝을 알리는 종소리였다.
“흠. 이 정도면 설명도 얼추 끝났고. 쉬는 시간동안 쉬었다가 인스턴트 던전에서 봅시다.”
“수고하셨습니다!”
들어왔을 때처럼 이진혁은 쿨하게 퇴장했고, 사람들은 자신의 조원과 대화를 나누었다.
던전 공략에 관한 회의를 하는 듯 했다.
최종택도 이런 분위기로 들어갈 수는 없으니 가볍게 말문을 텄다.
“최종택입니다.”
“아, 저는 신서희에요.”
“네.”
“어, 저는 힐러 계열인데 종택 씨는 어떻게 돼요?”
“아… 저요?”
큰일 났다.
말문을 연 지 5초 만에 도로 닫힐 것 같다.
이걸 뭐라 말하지?
섹스 계열이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인데.
한참을 고민하던 최종택이 문득 한 스킬을 떠올리고 머뭇거리며 말했다.
“어… 그쪽 같은 분 보면, 강해져요.”
“네?”
“아니, 그게…”
아무래도 잘못 말한 것 같다.
급하게 말을 정정하려는데 신서희가 깨달았다는 듯 손뼉을 친다.
“아! 기사 계열이신가요? 지켜줄 때 강해지는, 그런 건가?”
“어어… 그, 그쵸?”
“교관님 말대로 밸런스가 잘 맞네요.”
“그, 그러게요.”
왜 사람들은 대충 말해도 다 찰떡같이 해석해줄까?
모세의 기적만큼 신기한 일이었다.
섹스 관련 스킬을 가지는 게 그렇게 말이 안 되는 건가.
‘하긴 당사자인 나도 어이가 없는데…’
왠지 자괴감이 든다.
작게 한숨을 내쉬는데 마침 쉬는 시간을 끝내는 종이 울린다.
이제 던전에 들어갈 시간이었다.
6.
“허으으… 막상 들어가려니까 너무 떨리네요.”
“안전하다니까 걱정하지 마요.”
시공에 빠져들 것처럼 생긴 던전 입구를 보며 신서희가 작게 몸을 떨었다.
태연한 척 했지만 최종택도 긴장되는 건 매한가지였다.
‘실제로 보니 불길하게 생겼네.’
던전의 묘사야 많이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실제로 보니 느낌이 달랐다.
저 안에 빨려 들어갈 것 같달까.
진짜 다른 세계로 간다고 생각하니 근본적인 공포감이 든다.
다른 일행도 별반 다를 게 없어보이고.
다들 불안해하는 듯하자 교관이 다시 말문을 열었다.
“말했다시피 여기는 인스턴트 던전이라 높은 등급의 몬스터는 나오지 않는다. 기껏해야 F등급인데 여러분의 힘으로도 충분하니 걱정하지 말고 차근차근 하길 바란다.”
“네!”
“자, 그럼 1조부터 들어가도록 한다.”
교관의 지도에 따라 각 조가 던전으로 들어갔다.
인스턴트 던전은 하나가 아니었기에 금방 최종택의 조인 8조 차례가 되었다.
“그럼 건투를 빈다.”
교관의 말을 끝으로 던전에 들어가자 시야가 반전되었다.
칙칙하던 건물 안에서 울창한 숲으로.
도시의 냄새가 아닌 은은한 풀내음이 바람을 타고 전해졌다.
“여기가 던전….”
생각보다 이질적이지 않다.
흔히 가는 산보다 울창하고 더 깨끗한 거 말곤 현대의 산과 다를 거 없었다.
그 때문인지 던전에 왔다는 불안함보단 신기함이 더 컸다.
“왠지 등산 온 것 같은 친근함이네요.”
신서희도 그리 느꼈는지 조심스레 말했다.
동감하는 바다.
자신도 방금까지 그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일단 가볼까요?”
“네.”
길이야 지도를 보면 알 수 있으리라.
그리 판단한 최종택과 신서희가 조심스레 앞으로 향했다.
그러면서도 주변을 둘러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고블린이나 들개 같은 몬스터들이 수풀에 자주 숨어있다는 말을 잊지 않은 것이다.
얼마나 걸었을까?
“몬스터가 안 보이네요?”
“그러게요. 슬슬 나올 때가 된 것 같은데…”
벌써 1시간은 걸은 것 같다.
지도에 나온 대로면 곧 던전 탐사도 끝날 것 같은데.
아무리 인스턴트 던전이라고 해도 이렇게 쉬워도 되는 건가?
‘뭔가 이상한데…’
느낌이 싸했다.
불안함에 주변을 슥 둘러보던 그가 이번엔 고개를 위로 들어봤다.
“어?”
그러자 보였다.
나뭇잎 사이에 가려진 초록색 피부를 가진 무언가가.
동시에 그 무언가가 빠르게 밑으로 떨어졌고,
“안 돼!”
“꺄악!”
최종택이 급하게 신서희를 밀쳤다.
덕분에 그녀는 바닥에 털썩 엎어졌을지언정 머리가 깨지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문제는 최종택이었다.
빠악!
“으윽!”
그녀를 밀치느라 어정쩡한 자세에서 몽둥이에 등을 얻어맞은 것이다.
덕분에 볼품없이 나가 떨어졌다.
그 과정에서 팔다리가 쓸렸지만, 그보다는 등이 화끈거리는 게 더 아팠다.
‘어우, 뒤지겠네.’
그래도헌터가 된 덕분일까.
일반인이었으면 기절했거나 뼈에 금이 갔을 법한 타격에도 타박상 정도로 그칠 수 있었다.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것도 그 이유였다.
‘고블린 다섯 마리… 무슨 정모라도 하다 왔나, 뭐 이리 많아?’
한 마리도 상대해본 적 없는데 한 번에 다섯 마리라니.
파워 레인저도 아니고 이건 너무하지 않은가.
예로부터 다구리 앞에 장사 없다고 했는데 고블린이 약하다 해도 이길 수 있을지 걱정이다.
‘내가 진짜 기사 종류였으면 괜찮을 것도 같은데…’
안타깝게도 최종택은 탱킹도, 딜링도 제대로 안 된다.
그때.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신서희가 그를 향해 달려오며 외쳤다.
“꺄악, 어떡해! 괜찮으세요? 안 다쳤어요? 제가 얼른 힐 해드릴게요.”“어…”
너무 세게 밀친 탓일까.
긴 생머리를 휘날리며 달려오는 그녀의 옷이 조금 찢어져있다.
“아!”
그런 그녀에게서 무언가를 본 그의 눈이 커졌다.
동시에 다른 것도 커졌다.
[스킬 ‘풀발’이 발동됩니다!]
[모든 능력치가 상승했습니다.]
단단해진 몸을 확인한 최종택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