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 도시-911화 (917/917)

#911

1.

갑문이 잠든 주머니 차원의 등장 일자는 오늘 새벽.

위치는 유럽과 아메리카 대륙을 잇는 북대서양의 한복판이다.

인원 배분은 신중히, 상황을 고려해 이루어졌다.

범람이 한창이 가운데 시우 측에서 대동 가능한 인력은 일곱.

시우, 엘로아, 린네, 아멜리아, 르뤼에, 샤론, 수아 선생.

모두 한국 및 일본에 소속된 위치포인트를 오가며 대처 중인 인원이다.

하지만 그 인원 모두를 이끌고 갑문을 향해 갈 수 있다는 건 아니었다.

호문쿨루스는 위협적이며 마녀 이외에는 대처할 수 없다.

호문쿨루스가 도심 한가운데서 1분만 난장판을 쳐도 최소 세자릿수 단위의 인명피해가 발생한다는 의미다.

지금도 세계 각지에서는 초 단위로 사상자가 발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곱 명 모두가 갑문을 향한다면, 대체 전력을 찾을 수도 없는 시점에서, 더는 한국도 안전지대가 아니게 된다.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되겠지.

그런 점은 시우도, 엘로아도 그리고 다른 연인들도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리디아가 전하길 갑문을 손에 넣기 위해 움직일 강경파 측 인원은 우르쉬라와 프리실라 각기 22 위계인 둘 뿐.

거기에 맞춰 팀을 꾸리고 유사시 전력보강 할 수 있는 수준에서 인원을 추렸다.

만약 이번 거래가 함정이어서 도망쳐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많은 인원은 오히려 독이다.

어차피 철저하게 계획된 함정이라면 시우 측 전력에 대해 대체로 파악이 된 상태일 테지.

일곱 명 모두를 데려가도 충분히 감당 가능한 인원을 배치했을 것이다.

그 말인즉 적을수록 한 사람의 누락 없이 몸을 도망치는 게 가능할 것이라는 의미다.

그렇게 갖춰진 시우 이하의 인원은 다음과 같다.

대마녀전의 스페셜리스트이자 두말할 것 없이 최고 전력인 엘로아 스승님.

풍부한 전투경험은 물론이고 공적의 사고방식과 공적 그 자체에 대한 이해도가 충분한 린네.

공간이동식을 사용할 수 있는 시우와 더불어 각기 단독행동 및 유사시 도주에 최적화된 인원이었다.

샤론은 위계가 다소 뒤처진데다가 얼마 전 위계 상승을 이뤘기에 아직 보완할 부분이 많다는 점에서 열외.

르뤼에는 남해 뿐아니라 동중국해와 동해에 걸친 넓은 방위선을 구축하는 필수 인력이었기에 보류.

아멜리아는 지난 전투에서 소진한 마력을 전부 회복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빠졌다.

수아 선생은 단순히 한국 수호를 넘어 동아시아 위치포인트의 사령탑이나 다름없기에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다.

이것만으로도 23위계가 하나 22위계가 하나, 준21위계가 하나이다.

어지간한 전력으로는 건드려볼 엄두도 못낼 강력한 팀이었지만, 이러니저러니 해도 완벽에서는 거리가 멀다.

그만큼 급작스러운 상황이었고 휘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

전용기의 창문 너머로 보이는 구름과 검은 바다를 내려보며 시우는 침묵을 지켰다.

비행기에 오르기 전 아멜리아와 샤론은 시우를 걱정했다.

탈취 작전의 성공이 아니라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만큼 사실 팀에 시우가 있을 필요는 없었다.

21위계란 마녀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지만 시우보다 강한 마녀야 얼마든지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러한 사실을 입에 담지 않았다.

다들 알고 있는 것이다.

여기 중 누구 하나가 위험에 처하더라도 시우는 같은 선택을 했을 것임을.

그렇기에 불안한 마음을 애써 억누르며 시우의 의사를 존중해주었다.

그건 신뢰였다.

도로시가 인질로 잡혔다는 비보에 헐레벌떡 달려온 르뤼에는 답지 않은 침착한 눈으로 시우를 빤히 바라보며 부탁했다.

‘시우, 짐의 친우를 꼭 구해오도록 하거라.’

르뤼에가 도로시를 얼마나 좋아하고 따르는지는 알고 있다.

만약 르뤼에가 꼭 동참하겠다고 떼를 쓴다면 린네와 바꿔서라도 그녀를 팀에 합류시킬 작정이었다.

하지만 르뤼에는 그러지 않았다.

‘짐은 그대를 믿는다. 그러니까 도로시와 함께 손잡고 오는 날을 기다리며 연약해 빠진 인간들을 지키고 있겠노라.’

‘그게 그대가 짐에게 원하는 바일 테니까.’

‘최강인 짐의 국서는 또한 최강이어야 하느니라.’

‘무사히 돌아오거라.’

그저 부담스러울 만큼의 믿음과 빙 둘러 말한 조심하라는 배웅을 보였지.

그 또한 신뢰였다.

두 신뢰가 어깨 위로 무겁게 얹힌다.

위험한 일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실감은 만연한 데 심장은 무서울 정도로 고요하고 느린 심박을 보인다.

그 기저에 깔린 건 불안함과 초조함, 그리고 분노.

폭발할 준비를 기다리는 폭약처럼 지금 이 순간도 차곡차곡 분노가 쌓여간다.

“낭군.”

“네.”

검을 무릎에 얹혀 놓고 하얀 천으로 꼼꼼히 닦던 린네가 시우를 불렀다.

엘로아는 그 옆에서 계약의 대가를 이행하기 위해 수면을 취하는 중이다.

시우 홀로 근심 어린 침묵에 젖은 가운데도 린네는 여상했다.

아마도 전장이 될 장소로 발걸음을 옮기는 와중에도 그녀가 검을 닦는 동작은 향월루 안채에서의 모습과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워낙에 무표정하기도 하니 티가 안 나는 것도 한몫할 것이다.

“표정이 너무 어둡다.”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까요.”

쓴웃음을 흘리는 시우를 빤히 보던 린네는 검을 납도 했다.

담요를 덮고 잠이 든 엘로아를 은근슬쩍 훑어보더니 시우 옆에 바짝 붙어 앉은 린네.

“긴장은 독이다.”

“긴장한 건 아닙니다.”

“낭군, 어떤 상황에서도 평정심은 중요하다는 의미다.”

“…….”

린네의 묵빛 눈동자가 진지하게 시우를 바라본다.

언뜻 무표정해 보이는 그 안에 진심 어린 염려가 서려 있다는 건 시우도 알 수 있었다.

“목숨을 건 싸움일수록. 그 싸움에 걸린 무게가 무거울수록 명경지수의 마음을 유지하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하다.”

경험에서 비롯된 조언을 늘어놓으며 손을 꾸욱 잡는 린네.

살짝 차가운 그녀의 손이 마치 마사지를 해주듯 조물조물 시우의 손을 주물렀다.

“제 안전만 걸린 일이 아니니까요.”

“알고 있다. 낭군이 주변 사람을 소중하게 여긴다는 걸. 그렇기에 걱정된다.”

“…….”

“긴장을 풀려면 평소처럼 하는 게 좋다. 지금 낭군의 어깨엔 너무 힘이 들어가 있다.”

린네는 자연스럽게 시우의 허벅지 위에 앉았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술을 맞춘다.

“남녀 간의 입맞춤은 긴장을 완화하는 데 효과적이다.”

무뚝뚝한 말투로 키스를 끝내고 진지하게 말하는 린네.

하지만 두 뺨은 종이를 붙였다 떼면 물들일 정도로 발갛다.

여러모로 서툰 린네가 시우를 위해 최대한 노력하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린네 님.”

그제야 시우는 얼핏 미소를 띄울 수 있었다.

2.

‘문’이 봉쇄된 지금 게헨나 측 가장 효과적인 이동수단이 봉쇄되었다.

물론 마법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마녀라면 어지간한 장거리는 주파하는 것이 더욱 빠르나 중요한 건 효율이다.

최상의 컨디션으로 전장에 들어서야 하는 만큼 시우 일행은 초음속 여객기를 제공받았다.

2000년도 안전상의 문제로 운행 중지에 들어간 그 여객기의 소형화 버전이다.

나라타 공항에서 출발해 북대서양 한가운데까지 3시간 만에 도착한 여객기는 서서히 고도와 속력을 낮추며 ‘문’으로의 진입을 대기했다.

-쿠궁! 콰과광!

비행기의 화물칸.

객실에 비해 소음 처리가 확실히 되지 않은 화물칸에선 바깥의 폭우와 폭뢰의 소리가 고스란히 들렸다.

이렇듯 커다란 구름과 뇌우는 ‘문’의 위치를 확실히 가려주었다.

위성 상으로도 위치를 파악할 수 없으니 예언이 아니라면 이곳을 찾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강하 준비하겠습니다. 강하 포인트 도달까지 30초.”

위치포인트에서 파견된 부기장은 긴장된 표정으로 한 명의 미남과 두 명의 절세 미녀에게 말했다.

지정된 시각에 여객기는 ‘문’의 위를 지나갈 것이며 세 사람은 타이밍에 맞춰 그 안으로 뛰어들 것이다.

“카운트 다운 10초, 9초, 8초,….”

-덜컥!

해치가 열리자 내부와 외부의 기압이 혼합되며 비바람이 안쪽까지 휘몰아쳤다.

부기장은 밖으로 빨려나가지 않기 위해 벨트를 꽉 붙잡은 채 카운트 다운을 이어갔다.

“3초! 2초! 1초!”

폭랑에 목소리가 묻히지 않기 위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고, 금방이라도 그를 기내 밖으로 던져버릴 것 같은 바람에 저항하기 위해 손잡이와 벨트를 꽉 붙잡은 부기장.

반면 낙하산은 물론이고 아무런 장비도 착용하지 않은 세 사람은 평온하기 짝이 없었다.

그저 낮은 창문을 넘어가듯 밖으로 뛰어내린다.

자유낙하.

빗물보다 빠르게 옷자락을 펄럭이며 떨어지는 세 사람.

두터운 비구름을 헤치고 낙하를 거듭하자 바다 한가운데 금빛으로 빛나는 공간의 균열이 보인다.

세 사람의 몸이 마치 허깨비처럼 사라졌다.

3.

“구웩.”

차원 이동의 울렁증은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무릎을 짚고 메슥거리는 속을 달래는 시우.

“괜찮은가?”

여기가 갑문이 위치한 주머니 공간.

이를테면 헥센나흐트나 르뤼에의 어항과 같은 곳이다.

창조의 마녀의 유물이 별도의 공간에 있는 건 드문 일이 아니었다.

당장 그녀가 만든 피조물인 호문쿨루스가 아공간을 만들어 동면하고 차원을 자유롭게 넘나드니 말이다.

세 사람이 도착한 장소는 황무지를 가로지르는 2차선 아스팔트 도로.

주위를 둘러봐도 나무 한 포기 자라지 않는 흉흉한 땅이었다.

한창 밤인데다가 변변한 조명도 없다 보니 사방이 어두컴컴했다.

“응?”

이 시점에서 시우는 위화감을 감지했다.

이 공간은 창조의 마녀가 갑문을 숨겨두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다는 건 최소 게헨나보다는 오래된 공간이라는 의미.

하지만 시우가 밟고 있는 도로를 포장한 자재는 관리가 좀 덜 되어있을지언정 아스팔트이다.

혹시 뭔가 오류가 발생해서 엄한 곳으로 잘못 온 건 아닐까?

“스승님, 좀 이상한데요?”

“…….”

“스승님, 린네 님?”

“…….”

엘로아와 린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멍하니 입을 벌리고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을 뿐.

그제야 시우도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이 바라보는 방향을 보았다.

거기엔 성벽이 있었다.

황야를 가로질러 도시를 감싼 아주아주 견고하고 높은 성벽.

시멘트와 철골로 만들어졌음이 분명한 그 성벽 너머로는 하늘까지 맞닿은 빌딩과 서치라이트에서 발광한 불빛이 하늘을 환하게 만들고 있었다.

멀리서 봐도 알 수 있었다.

저 빌딩은 절대로 현세의 기술력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높이가 아니라는 것을.

지구상 어떤 빌딩을 가져와도 저 마천루 중 하나와도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저게 뭐야….”

그리고 성벽 옆에 커다랗게 세워진 대형 전광판에 떠오른 문구에 시우는 재차 멍해질 수밖에 없었다.

[유흥과 환락의 도시 대전광역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일단 이곳은 현실에 존재하는 공간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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