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8
1.
새콤달콤한 쓰리썸도 끝났다.
정말 상상할 수 있는 별의별 짓을 다하는 황홀한 경험이었다.
아멜리아가 달콤하게 침으로 적신 물건을 샤론에게 넣기도 하고,
반대로 샤론이 열심히 젖가슴과 로션으로 수분 보급을 해준 자지를 아멜리아에게 넣기도 하고.
두 사람을 샌드위치처럼 포개 키스시키며 네 개의 구멍에 번갈아 박기도 하고.
침대 위의 승마 머신이 되어 두 공주님의 허리놀림을 감상하기도 했다.
폭풍 같은 섹스 이후엔 한껏 부푼 나름함을 쿠션 삼아 알몸으로 부대끼며 잠들었다.
요 근래 이런저런 고민 및 걱정거리가 많았는데 그런 근심을 흔적도 없이 녹여주는 좋은 시간이었다.
“쿠우우우.”
그렇게 샤론과 아멜리아에게 팔베개를 기워준 채 코까지 골아가며 대자로 뻗은 시우.
영체라도 사정에 체력이 소모되는 건 매한가지다.
“우음….”
두 사람을 동시에 상대한 시우는 평소보다 깊게 잠이 들었고 그 결과 아멜리아는 시우보다 먼저 일어났다.
아직 동이 완전히 트지 않은 이른 새벽이었다.
옆을 보자 시우가 있다.
아멜리아는 아직도 이따금 잠에서 깨어났을 때 시우가 옆에 있다는 걸 깨닫고 깜짝 놀라곤 한다.
혼자인 게 편했고 당연했던 아멜리아.
스스로의 감정에 서툴렀고 사랑에는 더욱 서툴렀던 아멜리아.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이렇게 모든 걸 내보일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우여곡절 끝에 맺어진 인연의 소중함은 바라보고만 있어도 행복한 미소가 실실 흐르게 한다.
울퉁불퉁한 근육질인 까닭에 쿠션으로 두기 부적절한 그의 몸에 꽉 달라붙고 싶어질 정도로 말이다.
“…….”
어쩜 이리 곤히 잘까?
밤일을 할 때는 그렇게 무시무시한 정복자가 없는데….
이렇게 푹 잘 때는 마치 천진난만한 아기 같다.
아멜리아는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를 지으며 시우의 입술을 슬며시 쓸었다.
“사랑해요, 시우.”
어차피 들리지 않을 걸 알면서도 괜스레 귓가에 속삭여 보던 아멜리아는 시우의 날카로운 턱선 너머에서 무언가를 발견했다.
어스름 속에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듯한 착각을 주는 민트빛의 눈동자.
샤론이었다.
“……!!!”
시우가 자고 있음을 상기하며 간신히 비명을 되삼킨 아멜리아.
그제야 잠들기 전의 일이 새록새록 떠오르기 시작한다.
성적 각성도, 정신적 흥분도 없는 상황에서 직면하게 된 전날 밤의 기억은 지나치게 적나라했다.
가령 시우에게 번갈아 박히는 와중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고 샤론과 농밀한 딥키스를 나눴던 기억이라던가….
아무튼 한마디로 정리할 수 없는 다양각색한 추태의 향연이었다.
마녀답게 그리고 귀족답게 살아가라는 스승님의 가르침에서 한참 어긋난 것이기도 했다.
“…….”
“…….”
다만 제정신을 차리고 패닉이 온 건 아멜리아뿐만이 아닌 모양이다.
샤론의 예쁘장한 눈동자도 흔들흔들 흔들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더욱 무서운 사실은 조만간 샤론과 아멜리아는 다시 시우의 고향을 지키기 위해 단둘이 움직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때가 되면 이 어색한 분위기를 어떻게 해야 할까?
도대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샤, 샤론 양….”
“네….”
“우리 잠깐, 이야기나 할까요?”
“좋아요….”
두 사람이 속삭이듯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화를 나눈 건 비단 시우를 깨우지 않기 위해서만이 아님은 확실했다.
2.
아멜리아와 샤론은 주섬주섬 가운을 걸치고 스위트 룸에 딸린 거실로 나왔다.
거실과 침실을 가로지르는 슬라이딩 도어를 조심스레 닫은 아멜리아는 스탠드를 켜고 자리에 앉았다.
어깨를 움츠린 샤론이 때마침 준비돼 있던 위스키를 졸졸 따르고 있었다.
확실히 주신의 도움 없이는 마주 보기도 힘든 지경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나누는 섹스는 정말 마법과 같다.
이성을 지워준다고 해야 하나?
지나치게 분위기를 타게 해준다고 해야 하나?
신데렐라에게 마법을 걸어준 마녀처럼 일상을 지우고 환락과 쾌락으로 가득 찬 무도회장으로 이끌어 준다.
“…….”
“…….”
그리고 12시가 지나버린 지금.
삭막하기까지한 어색함은 마녀의 마법이 끝나버렸음을 보여주었다.
빙빙 옆머리를 꼬는 아멜리아.
홀짝홀짝 술을 마시며 눈을 피하는 샤론.
숨소리가 들릴 정도로 버거운 적만만이 두 사람 사이를 가로질렀다.
“…아멜, 음…. 크흠…. 아아, 왜 이렇게 공기가 건조하지….”
먼저 화두를 던지려던 샤론은 아멜리아와 눈을 마주치자마자 아무것도 아니라는 양 애꿎은 가습기를 탓했다.
왜냐하면 불과 몇 시간 전 장면이 스르륵 스쳐 지나갔기 때문이다.
‘아멜리아 양…. 샤로니 거기 괴롭히면 안 돼요…! 하앙! 그렇게, 아기처럼 쪽쪽 빨면…!’
이하 생략.
왜 그랬을까.
왜 저 자신을 3인칭으로 칭하면서 칭얼거리는 애교를 부렸을까.
왜 그때는 섹스는 영원히 하는 게 아니고 언젠가 맨정신으로 대화를 나눠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
“…샤로, 음…. 조금 쌀쌀하네요….”
뒤늦게 말이라도 이어보려던 아멜리아 역시 애꿎은 시스템 에어컨을 탓했다.
마찬가지로 아까 전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샤론 양…! 히익! 그렇게…. 안까지 혀를 넣으면… 저, 저 또 가요…!’
이하 생략.
아멜리아는 손바닥으로 얼굴을 폭 가렸다.
고사리 같은 손이지만 얼굴이 워낙 작은 까닭에 폭 담기는 얼굴.
미처 가리지 못한 두 귀만이 새빨갛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결국 대화다운 대화란 한마디도 나누지 못한 채 하염없이 시간이 흘러가던 도중….
“어?”
샤론은 불현듯 무언가 떠올렸다.
두 사람 모두 쓰리썸은 처음이다.
하지만 이미 엘로아와 린네, 도로시와 르뤼에, 오딜과 오데트는 각각의 조합으로 뜨밤을 보냈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어색하게 굴지는 않는다.
여기서 추측할 수 있는 점 한가지.
혹시 다른 사람들은 이 정도로 격렬하고 적나라하게 하지 않은 게 아닐까?
적당히 관계 정도만 나누지 서로 키스를 하거나, 애무해주거나, 음란한 말을 늘어놓지 않는 게 아닐까?
샤론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이건 확인해 볼 필요가 있어 보였다.
3.
결국 어영부영 술자리를 끝낸 샤론.
그녀가 향한 곳은 같은 층 엘로아가 머물고 있는 객실이었다.
실례인 건 알지만 당장 상담할 사람은 엘로아 정도였기 때문이다.
“이, 이렇게 이른 시각에 무슨 일인가?”
“상담 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주무시고 계셨나요?”
“그건 아니네만….”
분홍 공작님은 때아닌 손님에 당황한 듯 보였다.
하지만 겨우 갑작스러운 방문 때문이라기엔 퍽 행동이 수상쩍다.
자꾸만 파자마의 윗자락을 쭉쭉 아래로 늘이는가 하면 힐끔힐끔 침실 쪽을 바라보신다.
슬며시 시선을 쫓아가자 베개가 침대 중앙에 놓여있다는 걸 제외하면 특이한 점은 없었다.
티페레트 공작님은 베개를 꼭 껴안고 주무시는 타입인가보다.
그런 샤론의 시선을 가로막듯 다가선 엘로아가 문을 열어주었다.
“일단 들어오게나.”
불쑥 찾아온 만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 않으며 발을 들인 샤론은 어쩐지 달콤새콤한 향기에 코를 킁킁댔다.
복숭아 향기에 살짝 짭조름한 소금 냄새가 섞였다고 해야 하나?
“공작님, 향수 뿌리셨나요?”
“햐, 향수라니?”
“이래 봬도 아멜리아 양에게 좀 배웠거든요. 제가 한번 맞춰볼까요? 시트러스 계열에 오셔닉 계열? 살짝 섞여 있는 것 같아요.”
입을 뻐끔거리던 엘로아는 휙 고개를 돌리더니 샤론의 손목을 이끌고 거실에 소파에 앉혔다.
“엄청 유니크하고 좋은 향기…. 어? 사향 같은 것도 섞여 있나요?”
“향수 얘기는 그만 함세.”
“네? 네, 뭐....”
질겁하며 샤론의 말을 자른 엘로아는 무릎을 찰싹 붙이고 앉아 눈치를 살폈다.
먼저 결례를 한 건 샤론인데 꼭 엘로아가 잘못이라도 한 모습이다.
“그나저나 무슨 일인가?”
하지만 본격적으로 대화가 시작될 낌새가 보이자 샤론은 머뭇거렸다.
시우의 일거수 일투족을 신경쓰는 엘로아라면 전부 짐작했을 것이라도 그녀의 앞에서 미주알고주알 털어놓기엔 조금 쑥스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엘로아와 샤론 관계가 어디 하루 이틀인가?
크리스마스 이벤트로 엘로아의 의상까지 선물해 준 샤론이다.
“제가 오늘…. 이미 아시겠지만 아멜리아 양과 함께 시우랑 잤는데요….”
이런 종류의 대화도 종종 나누곤 했었다.
결국 상담을 요청하게 된 진상을 전부 털어놓은 샤론.
요점은 두 가지 ‘쓰리썸한 뒤 아멜리아 양과 너무 어색해요’와 ‘보통 쓰리썸할 때는 수위를 조절하나요?’였다.
“우선 어떤 상담인지는 알겠네….”
“죄송해요, 부탁할만한 분이 공작님 밖에 안 계셔서.”
“아닐세, 항상 그대의 도움을 받아온 처지거늘. 이럴 때라도 보답할 수 있으면 좋은 일이지….”
한참이나 눈을 깜빡이던 엘로아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난감한 듯 말꼬리를 흐렸다.
“그럼, 공작님은 그 어떻게 하셨나요? 어색함 같은 부분이요. 린네 님이랑은 잘 지내시나요?”
“기탄없이 말하자면 아직도 조금 남사스럽긴 하네. 시간이 해결해 주겠다고 믿을 뿐이지. 하지만 모르던 구석을 알게 되었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결국 같은 남자를 사랑하는 여인이란 걸 깨달았다고 해야 하나. 결론만 말하자면 오히려 갈등은 줄어든 편일세.”
“그건 기쁜 소식이네요.”
“말하다 보니 느꼈네만, 샤론 양과 아멜리아의 경우엔 대입하기 어려울 수도 있겠군. 원래 둘이 사이가 좋지 않은가?”
꼼꼼히 곱씹듯 엘로아의 조언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는 샤론.
결국 대부분 문제에 있어 그렇듯 시간이 약이라는 것이다.
그럼 다음 질문.
“그렇다면요 공작님, 혹시 수위라던가 평소와 달리 조절하신 편이었나요?”
“수위라면….”
“그러니까, 사실 시우가 조금 야하잖아요. 그런 야한 부분을 조금 자제하셨는지 여쭙고 싶어요.”
“그건 말일세.”
앞서 말했듯 샤론에게 보답할 기회.
경험을 바탕으로 최대한 지혜로운 조언을 해주려던 엘로아는 말이 목 끝에서 턱 막히는 걸 느꼈다.
“…….”
묘묘대전.
린네와 침대에서 함께 뒹굴며 뭘 했더라?
린네 앞에서 시우에게 존댓말을 쓰며 아양을 부렸다.
그의 품에 안긴 채 린네에게 매도당하며 더욱 느꼈다.
반대로 시우에게 혼쭐나는 린네의 약점을 마구마구 괴롭혔다.
어느 쪽이건 솔직히 말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이건 위신이나 체면 이전의 문제다.
자칫 목숨이 걸릴 지도 모르는 일이다.
사랑하는 제자를 남겨두고 수치사라는 수치스러운 사인으로 세상을 뜨고 싶진 않았다.
“공작님?”
“…당연히 조절했다네.”
따라서 엘로아는 시선을 피하며 아주아주 드물게 거짓말을 입에 담았다.
“하아…. 역시 그렇죠…?”
“무, 물론일세. 정상위 체위로만 했고…. 이상한 옷도 안 입었다네. 또 존댓말 같은 것도 안했네! 정말일세!”
“으으, 진짜 어떡하지 그럼….”
엘로아의 어설픈 거짓말을 눈치 못 채고 샤론이 한숨을 푹푹 쉬던 그때.
-삐리리리리
돌연 건조한 비프음이 울렸다.
그와 동시에 사랑과 곤경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엘로아의 얼굴에 위엄과 긴장이 깃든다.
왜냐하면 이 수신음은 도로시와 직통으로 연결된 위성전화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잠시 기다리게.”
“네?”
엘로아는 전화를 받았다.
“도로시? 그대인가?”
그리고 수화기 너머에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발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날이면 날마다 오는 게 아닙니다! 리디아 마그누스의 전화 판매 이벤트! 그 상품은 바로바로… 구도의 마녀. 도로시!]
상품판매원처럼 높고 빠른 어조로 말을 이어가는 공적의 목소리엔 희미한 웃음이 서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