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 도시-903화 (909/917)

Chapter 903 - #197_마녀는 존재한다

#897

1.

상징성을 모조리 소모하여 천사의 심판을 재현하는 일격.

도로시의 ‘심판’은 모든 것을 건 최후의 한 수였다.

심판의 날은 곧 하늘과 땅이 이어지는 날을 의미한다.

한동안은 예배당과 수녀복의 상징을 차용할 수도 없다.

물론 그런 게 가능하다 해도 한 줌도 남지 않은 마력으로 뭘 어떻게 해볼 수는 없을 테지만 말이다.

“쿨럭!”

어떻게 된 걸까?

기침을 하자 전신의 격통이 내달렸다.

인형의 속을 파낸 것처럼 껍데기만 남은 육신에 통각이라는 솜을 가득 채워넣은 것 같다.

고갈된 마력.

혹사 끝에 응답하지 않는 마력회로.

도로시는 초점이 풀린 눈동자를 느릿하게 움직였다.

새삼 눈동자를 움직이는 것도 나름의 체력을 소모하는 일이라는 걸 깨닫는다.

평소 자랑스러워하던 큰 가슴마저 지금은 호흡을 무겁게 짓누르는 짐덩이에 지나지 않는다.

몇 번 눈을 깜빡이자 새빨갛게 변했던 시야가 차분해지며 주위 풍경이 보인다.

예배당을 대신해 자리 잡은 건 정원이었다.

꽃과 나무 대신 금은과 보화가 수북이 쌓인 황금 정원의 한가운데는 아리따운 천칭이 놓여있다.

꽤 크다.

그리고 아마 리디아의 결계 내부겠지.

리디아 마그누스가 솔리두스 상단을 창설하기 전까지, 그녀의 마녀명이 ‘천칭자리의 마녀’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떠올린다.

한 쪽 접시에는 심장이, 반대쪽 접시에는 실시간으로 금화가 떨어지며 무게를 맞추고 있었다.

심장 쪽으로 기울여져 있던 접시는 금화가 쌓임에 따라 평행을 이뤄간다.

이 공간과 저울의 의미에 대해서는 알 수 없었지만 느릿한 두뇌 회전으로도 확신했다.

리디아의 마법이 멀쩡히 제 기능을 하고 있는 시점에서 패배다.

그녀의 판짜기에 넘어가 어쩔 수 없이 휘두른 도박 수는 실패했다.

“도로시, 안 죽었지?”

확신에 쐐기를 박듯 평온한 리디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

다시 힘겹게 눈동자를 돌린 도로시는 눈살을 찌푸렸다.

길게 담배 연기를 뿜고 있는 리디아의 몰골이 몹시 그로테스크했기 때문이다.

한쪽 팔은 비틀어 뽑아낸 양 흉측한 절단면을 들러내고 있다.

그나마 멀쩡한 팔로 파이프를 쥔 손은 뼈가 죄다 드러나 있다.

내장은 바닥까지 흐르고, 왼쪽 눈을 포함한 두개골이 날아가 버렸는지 아리따운 금발도 피투성이다.

찢어진 드레스 아래 갈비뼈 사이로는 숨을 들이쉴 때마다 꿈틀거리는 폐가 보였다.

네크로필리아 마녀가 사고에 휘말린 미녀의 시체에 강제로 생명을 불어넣은 것 같달까.

하지만 그것도 잠시.

-짤랑 짤랑 짤랑

끝 없이 접시 위로 쏟아지는 금화.

두 접시가 수평을 맞춰감에 따라 흡사 영상을 되돌리듯 리디아의 몸이 재생된다.

그만한 부상을 입고도 눈하나 까딱 않던 리디아는 저울이 완전한 수평을 맞추자 무슨 일 있었느냐는 듯 말끔하게 수복되었다.

-우웅

이면 결계가 걷히고 다시 돌아온 현실.

도로시는 피투성이인 채로 지하방에 꿈틀거렸다.

리디아는 그런 도로시를 보며 후우 연기를 내뿜었다.

“죽으면 곤란해. 살아 있는 쪽이 상품성이 좋거든. 내가 말했지? 난 이자까지 받아낸다고. 야! 야! 야!”

“푸훕….”

도로시의 입가 사이로 흐르는 짙고 붉은 피.

태연하기 짝이 없던 리디아가 눈을 찡그린 채 도로시에게 다가왔다.

온 힘을 쥐어짜네 스스로 혀를 깨문 것이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혀를 깨물어 죽는 건 불가능에 가깝고 하물며 영체라면 그냥 불가능하다고 단정해도 좋다.

하지만 이미 빈사 상태의 육체라면 쇼크사할 가능성이 있다.

“이 독한 년. 아프지도 않아?”

하지만 짐이 되고 싶지 않던 도로시의 자살 기도는 미수로 돌아갔다.

리디아는 금세 도로시의 상처를 치유 및 지혈했고, 겸사겸사 마력을 끌어올릴 수 없게 하는 특제 ‘목줄’까지 채웠다.

“가슴 엄청 크네. 대체 뭘 먹고 자란 거야?”

청결 마법으로 옷과 몸에 묻어난 핏자국을 지우더니 침대 위에 눕힌다.

겉으로 보이는 부상은 나았지만 도로시는 여전히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다.

겨우겨우 한마디를 꺼내는 게 고작이었다.

“…날, 어떻게 할 거야?”

“늘 그렇듯 비싼 값에 팔아치워야지.”

뭘 그런 걸 묻느냐는 듯 태연하게 머리맡에 앉은 리디아가 도로시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리디아의 눈은 이미 적을 보는 눈빛이 아니다.

가게 선반 중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진열한 귀한 상품을 소중히 닦는 상인의 시선이랄까.

“일단 이거부터 마셔.”

한동안 도로시의 머리를 쓰다듬던 리디아는 굉장히 고급스러운 유리병을 꺼내 들어 도로시의 입에 물렸다.

안에는 신묘한 빛을 뿜는 녹색 액체가 찰랑대고 있었다.

“웁! 우웁!”

리디아가 코를 막아버렸기에 저항할 수 없는 도로시로서는 질식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입안에 흘러들어온 액체를 꿀꺽꿀꺽 마실 수밖에 없었다.

정체불명의 약물에 경계했지만 마시자마자 엉망진창이 되었던 영체에 스며들어 가는 약효가 느껴진다.

이윽고 이마에 손을 얹어 치유마법까지 사용하는 리디아.

“치료할 테니까 버둥거리지 마. 귀찮게 굴면 팔다리 잘라버릴 거야.”

“이건 또 무슨~ 헛수작일까?”

“고가치 상품의 품질 관리는 상인의 기본 덕목이지.”

“나한테 반한 건 아니지?”

“혀는 괜히 회복했나 싶네.”

목줄도 채워지고 반항할 힘도 일절 없었기에 도로시는 순순히 치유 마법을 받아들였다.

비록 붙잡혔다 한들 아직 포기하긴 이르다.

훗날 생겨날 기회를 위해서라도 몸을 만전의 상태로 회복시켜두는 건 필요했다.

그것도 잠시 참을 수 없는 피로가 졸음으로 변해 몰려온다.

겨우겨우 눈꺼풀을 들어 올리는 건 최대한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는 의무감.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어떤 일이 벌어져 있을지에 대한 두려움이다.

“…….”

이내 인간의 정신력으로는 버틸 수 없는 나른함이 도로시를 덮쳤다.

영체가 누적된 데미지를 치유하기 위한 수면 모드에 돌입한 것이다.

기절하듯 잠에 빠진 도로시를 붙잡고 리디아는 한참이나 치유를 계속했다.

“흐으음.”

이걸 어디에 팔아야 가장 비싼 값을 받을 수 있을까?

지금 이 상황을 어떤 식으로 헤쳐나가야 극한의 이득을 볼 수 있을까?

호문쿨루스의 왕을 옹립하고 군단을 꾸려 동해로 보낸 릴리스의 진의는 무엇일까?

비록 좌석은 어떤 일등석보다 평온하고 속도는 어떤 특급열차보다 빠르겠지만, 릴리스를 맹신하는 건 지옥 직행 열차에 발을 들이는 것과 같다.

-I'm too sexy for my shirt Too sexy for my shirt So sexy it….

시간을 충분히 들여 도로시를 치료하던 리디아의 가방에서 벨소리가 울렸다.

“어, 나야. 뭐?”

비서로부터의 보고였다.

“일단 알겠어.”

현세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태를 보고받은 리디아는 헛웃음을 터뜨렸다.

릴리스가 주도한 호문쿨루스 군단의 상륙은 양동이였다.

실제로 대사건이 벌어진 쪽은 태평양 맞은 편.

역천의 마녀, 우르쉬라 폰 힘멜스라우프가 미 함대를 격침했다.

그 선전 영상을 전세계 각지 인터넷에 업로드했고 백악관은 이에 대해 시인했다.

게헨나 측 마녀와 세계 각국 수뇌부가 체결한 ‘은닉조약’이 깨지고 마녀의 존재가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리디아가 전혀 모르던 일이었으니, 아마도 헥센나흐트의 강경파 내부에서 진행된 기밀 사항이겠지.

한편 마녀와 마법을 ‘신비’로 규정짓던 기존 세계의 설정이 수정된 ‘문’이 동작을 정지한다는 사실,

그리고 호문쿨루스가 이면결계 외부에서 활동을 시작한다는 사실은 강경파 측도 예측하지 못한 게 분명하다.

이러한 변화 속 서로 다른 두 세력이 잠잠한 것도 그 탓이다.

하지만 대마녀들이 바글바글한 두 도시 마녀들이 고작 문이 닫혔다고 영원히 갇혀 있을 리는 없다.

아무리 케테르의 마법이라지만 자그마치 600년이나 지난 마법 아닌가?

곧 문을 박차고 나오는 순간 전례 없는 혼란이 도래하겠지.

강경파가 주도권을 잡은 헥센나흐트는 전쟁과 세계 정복을 준비할 거고.

게헨나는 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받은 빚이 있으면. 갚아줘야지.”

리디아는 도로시를 염동으로 들어 올린 채 골방을 나섰다.

2.

인터넷에 동영상이 올라왔다.

장소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비싸고 맛없는 음식을 팔며 현지인에게는 불친절한 명동 길거리 한복판.

[제가 오늘 무식 씨랑 합방 예정이라 명동 스튜디오 쪽으로 나와 있었거든요? 그런데 진짜 대박 사건입니다!]

새된 비명과 사방으로 흩어지는 사람들 사이 한 남자는 꿋꿋이 촬영용 거치대를 들이밀며 인파를 거스르고 있다.

[저거 보여요? 형님들 저거 보이죠? 와, 진짜 미쳤습니다! 주작 아니고요 실제 상황입니다!]

얼굴과 현장을 번갈아 촬영하는 어설픈 촬영기법.

기술의 발전으로 스마트폰 카메라는 열악한 촬영조건 속에서도 유튜버가 담아내고자 하는 영상을 찍어내었다.

[괴물! 괴물입니다! 한강도 아닌데 괴물이 나왔어요!]

그 말대로였다.

길거리 한복판에 괴물이 서 있었다.

키는 약 2M.

외관상 싸구려 헝겁으로 만든 봉제인형 같다.

군데군데 튀어나온 지푸라기나 흐느적거리는 움직임이 꼭 바람에 움직이는 허수아비 같기도 하다.

그 괴물은 얼굴뿐 아니라 몸통 곳곳에서 빼곡하게 돋은 검은 눈알을 껌뻑이며 흐느적흐느적 노점 사이를 누볐다.

[후우…. 후우…. 아, 미치겠네. 진짜 개무섭거든요? 조금만 더 가까이 가보겠습니다. 제가 또 상남자 질곰이 아닙니까? 하 씨발 진짜 존나 후달리네]

한껏 목소리를 낮추고 욕설을 뇌까리며 조심조심 접근하던 유튜버는 숨을 집어삼켰다.

왜 사람들이 언뜻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괴물을 보고 부리나케 도망쳤는지 이해했기 때문이다.

허수아비의 팔과 다리는 척 봐도 위험해 보이는 날이 선 칼날이었다.

게다가 이미 한두 명을 썰어낸 건지 질척한 핏물이 녹처럼 스며있다.

[저 안 되겠습니다. 더 가면 진짜 죽을 것 같아요. 일단 경찰에 신고했거든요? 진짜 바지에 지릴 것 같아서 조심조심 나오겠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주작 아니고요, 실제 사건입니다.]

그러나 모기처럼 목소리를 낮춰 말하던 유튜버 앞에 처음부터 거기 있었다는 듯 등장한 허수아비.

[아악! 아아아악! 아아아악!]

비명에 지르며 혼비백산 등을 돌려 도주하는 유튜버.

-큐르큐르

하지만 도주는 무의미했다.

허수아비는 끽긱 거리는 웃음소리 같은 걸 내뱉으며 손쉽게 유튜버를 따라잡았다.

[으아아아! 시발! 살려줘! 아아악! 사람 살려!]

마이크가 깨질 정도로 고래 고래 비명을 지르면서도 카메라 거치대를 놓지 않은 건 직업의식의 발로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퀴르르르!

[히엑! 히에에엑!]

그리고 허수아비의 칼날이 희뿌옇게 목을 그으려는 그 순간.

-캉!

허공에서 불똥이 튀었다.

카메라에 잡힌 건 어느샌가 나타나 괴물과 유튜버 사이를 가로막은 기사.

검은 갑주를 입고 붉은 창을 쥔 흑기사였다.

“거 그만 찍고 도망칩시다.”

뒤를 힐끗 돌아본 흑기사는 긴장감이라곤 느껴지지 않는 맥빠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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