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 도시-898화 (904/917)

Chapter 898 - #196_대격변

1.

국가란 무엇으로 유지되는가?

여러가지 답이 나올 수 있다.

주권, 법과 제도, 경제, 안보, 문화.

어느 것 하나 국가라는 거대한 기계장치를 돌아가게 하는 주요 부품이다.

허나 가장 원시적이고 간결한 답을 내리자면 ‘힘’이라는 한 단어를 꺼내 들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주권과 법과 제도와 경제와 안보와 문화는 힘에 의해 안정성을 보장받는다.

많은 이들이 국가라는 시스템을 신뢰하는 이유도.

마땅치 않게 생각하면서도 뜯어고칠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이유도.

개인 혹 단체 레벨에서 극복할 수 없는 힘이 국가에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인류가 쌓아온 지혜와 과학을 빚어 만든 정제된 폭력.

바로 군대다.

그러나 이 세계엔 그러한 격차를 비웃을 수 있는 초월적인 개인이 존재한다.

“우르쉬라 폰 힘멜스라우프. 중력을 다루는 자성마법을 사용하며 마녀로서의 이명은 ‘역천의 마녀’.

확인된 바로는 22 위계 헥센나흐트 강경파 공적입니다.

금일 04시 25분. 역천의 마녀는 비정상적인 호문쿨루스의 움직임에 본국으로 귀환 중이던 제7함대와 조우, 일방적인 선제공격을 가했습니다.”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처음부터 계획됐던 일인지는 모른다.

이번 군단의 상륙이 속삭임의 마녀와 연관되었다는 심증은 있지만,

속삭임의 마녀는 헥센나흐트에 소속되어있지 않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실로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군단의 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전 세계의 마녀가 모여들던 타이밍.

뽀송뽀송한 솜처럼 세계 각지에 퍼진 마녀를 빨아들인 까닭에 발생한 전력의 진공 상태를 날카롭게 찔렀다.

토벌 작전에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던 위치포인트 측은 태평양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습격에 대해 인지조차 하지 못했다.

“교전 초기. 7함대는 최대한 우르쉬라와의 교전을 회피하였습니다. 어떤 방식으로건 대마녀와의 마찰을 피하려 들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우르쉬라는 유럽적인 미인이었으나 붉은 치파오를 입고 있었다.

검은 안대로 왼눈을 가린 그녀는 무국적선의 갑판 위에 오연하게 선 채로 항모 전단을 오시했다.

사실 22위계의 마녀가 인간을 상대로 솜씨를 발휘한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지.

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영상은 예상보다도 훨씬 일방적인 유린을 담아내었다.

우르쉬라가 지휘하듯 손을 휘젓자 조그맣고 새까만 구슬이 셀 수 없이 생겨났다.

하나하나가 중력장의 방향과 세기를 조절하는 소자가 크레모아처럼 사방을 향해 쏘아진다.

인간에게는 외계의 기술이나 다를 것이 없는 소자는 거대한 구축함을 우습게 찢어발겼다.

적함의 어뢰나 항공공격에 대해서도 저항력을 갖춘 함선이지만 사방에서 다른 방향으로 작용하는 중력에는 저항하지 못했다.

안에 탑승했던 선원들이 어떤 결말을 맞이했는지는 물감을 탄 듯 새빨갛게 변한 바다가 답해준다.

“04시 42분. 집요하게 이어지는 공격에 결국 반격을 시행했습니다만….”

함대의 발악은 필사적이었다.

30mm기관포, 각종 다목적미사일과 어뢰, 상공을 배회하던 스텔스 폭격기로부터의 폭격, 함재기 출격을 통한 직접 타격까지.

개인을 향해 쏟아지기엔 과분할 만큼의 화력이 우르쉬라와 그녀의 낡은 화물선을 향해 쏟아졌다.

비현실적일만큼 화려한 불꽃과 물보라 사이에 모습을 드러낸 건 머리카락 한 올 그을리지 않는 마녀와 페인트도 벗겨지지 않은 화물선.

이후 우르쉬라는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표정으로 주변의 모든 것을 파괴했다.

상공을 날며 기관포와 미사일 세례를 퍼붓던 함재기들이 장난감처럼 분해되어 추락했다.

해저에 머물러야 하는 공격원잠이 상공 수백 m까지 떠올랐다가 맥없이 내팽개쳐졌다.

그녀가 마무리를 장식하기 위해 노린 건 제7함대의 심장이라 불릴 수 있는 항공모함.

배수량 10만 톤, 선체 길이가 300M, 대함미사일 12발도 거뜬히 버틸 수 있다는 니미츠급 항공모함을 문자 그대로 접어버렸다.

허리가 부러진 항모는 선두와 선미를 하늘 높이 쳐들고 물보라를 일으키며 가라앚았다.

“04시 59분. 우르쉬라는 항공모함을 격침한 뒤 유유히 자리를 떠났습니다. 이후 헥센나흐트는 전파재킹 및 기존 영향력을 행사했던 방송국과 인터넷을 통해 세계 곳곳에 해당 영상을 송출했습니다.”

“…….”

해산할 새도 없이 다시 모인 긴급대책본부는 브리핑 이후 긴 침묵에 잠겼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아연하다는 반응이었다.

사실 시우도 현실감이 없었다.

그냥 예산을 펑펑 써서 CG는 좋지만 스토리는 B급인 외계 침공 블록버스터 한 편을 감상한 기분이랄까.

케테르가 이면결계를 모든 마녀에게 보급한 이후 마녀란 신비 속에 있는 게 당연시되는 존재였다.

게헨나를 만든 이후에는 이러한 기조가 더욱 강화되었고 심지어 이를 어기는 이에겐 가차 없는 철퇴가 내려지기도 했다.

그런데 함대를 공격한 것도 모자라 그 영상을 무분별하게 뿌려대다니?

지금까지의 관습과 관성을 위배하는 현실에 좀처럼 파급력을 예상할 수 없는 것이다.

가장 먼저 입을 연 건 엘로아였다.

“은닉서약은?”

“여러 나라에서 협력하며 보도통제를 걸고 정보 확산을 막기 위해 힘쓰고 있지만….”

“시간문제겠군.”

“네, 그렇습니다.”

그나마 신문과 라디오가 주요 매체이던 과거라면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오지나 빈민국이 아닌 이상에야 어렵지 않게 인터넷에 접근할 수 있는 21세기.

아무리 마녀의 힘과 국가적 협조가 있다 해도 이만한 사건을 완전히 덮는 건 불가능하다.

“헥센나흐트는 도대체 뭘 노리고….”

“그럼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지?”

“케테르 공작은 이래도 안 움직이는 건가? 정말 죽은 거 아니야?”

전례 없는 영상에 인터넷은 활활 불타는 화로가 되어있었다.

기사가 쏟아지고, 세계 어디에나 있는 사이버렉카들이 올린 영상이 순식간에 수천만 뷰를 기록한다.

-누가 봐도 주작

-요즘 바이럴을 이렇게 하네

처음 영상이 공개했을 당시까지만 해도 주된 여론은 CG다, 영화 홍보를 위한 노이즈 마케팅이다, 조작된 영상이다가 주류였다.

-딥러닝 관련 연구자입니다. 영상 3:14초 보시면 화질 불일치 반응 일어나죠?

-세계 경찰 완장질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미국이 우스워보이나?

-911테러 당시 미국이 분노를 표할 때 전 세계가 숨을 죽였어. 이 영상이 사실이라면 벌써 핵 카드를 만지작거리고도 남았을 거야

-조작된 영상이 분명해. 7함대에 편성에 포함되지 않은 병기도 보이거든.

댓글에는 자칭 영상 판독 전문가와 군사 전문가들이 대거 등판하여 ‘이 영상이 어째서 CG인지’에 대한 열변을 토했고 가장 많은 좋아요를 받으며 상위 댓글에 자리 잡았다.

지극히 상식적인 반응이었다.

군대를, 그것도 우주방위군이라고 불리는 미군의 가장 강력한 함대를 어린아이 손목 꺾듯 홀로 상대하는 영상이 아니던가?

그것도 야리야리한 여자가 초능력을 발휘하면서 말이다.

파워 인플레이션이 한창 진행 중인 히어로물에서도 이런 전개는 욕을 듬뿍 먹을 것이다.

이렇듯 모두가 혼란을 감추지 못하고 침음을 삼키고 있을 때 문이 열리며 한 마녀가 급히 보고했다.

“백악관 측에서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했습니다! 현시점에서 은닉서약을 준수하는 게 무의미하다 판단한듯합니다!”

미 공영방송국의 실시간 중계가 대형스크린을 통해 송출된다.

참담한 표정을 지은 미 대통령은 한참의 침묵을 지킨 끝에 입을 열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오늘, 미합중국의 자랑스러운 함대가 알 수 없는 적대세력으로부터 공격을 받았음을 알리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합니다.

오늘 새벽. 인류의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에 의해 많은 국민이 희생되었습니다.

당국은 이번 공격에 대해 대응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하고 있습니다. 또한 국가의 안전과 국민의 생명과 안녕을 도모하기 위해 모든 조치를 취할 것입니다. 우리는 연대를 통하여 결연하게 대처할 것입니다.

국제 사회와 함께 협력하여 이번 사건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책을 마련할 것임을 밝힙니다.

이번 사건의 희생자들과 그들의 가족들에게 깊은 애도의 뜻을 전합니다. 감사합니다.>

마녀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하지 않는데다가 선제공격을 당한 미국의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두루뭉술한 반응이었다.

주적이 누구인지 명확히 밝히지 않았으며 마녀의 존재에 대해서도 함구했다.

한 국가의 지도자가 사실관계를 확실히 한 이후로부터는 그야말로 다 함께 패닉이었다.

-wtf 그게 진짜라고? 정말 믿을 수가 없어!

-외계인의 존재는 이미 많은 과학자로부터 관측되어왔어. 인류는 그에 대한 준비를 철저하게 하지 못했고 이제는 Doomsday를 맞이하게 된 거지

-저 여자는 중국의 전통 의복을 입고 있었어. 에일리언이 아니라 중국에서 전쟁을 위해 만들어낸 생체병기가 아닐까?

-요한계시록에 쓰여 있는 대로입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또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라 했습니다. 이미 많은 징조가 나타났습니다. 지금이라도 회개를 촉구하며 야훼의 품으로 돌아가 당신께서 세우신 거룩한 천년왕국에서 함께 구원받은 성도들과 영원을 누립시다 아멘.

-욧시! 인류 리셋 왔다아아 wwwww(*´▽`)ノノ

-위대한 시진핑핑 주석의 비밀병기가 악독한 자본주의 돼지를 도축했다. 영상 속 여자는 푸른 눈의 금발을 지녔지만 중화인민공화국의 전통의복을 입고 있으니 명예 중국인이 분명하다.

-지금 무슨 주식 사면 될까요? 금을 사야 할까요?

-그나저나 저 여자 존나 예쁜 듯

여기까지만 해도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인데.

사태의 급변은 그치지 않았다.

“티페레트 공작님, 보고입니다.”

헝클어진 머리도 제대로 정돈하지 못한 그녀는 어딘가 멍한 목소리로 말했다.

“게헨나의 ‘문’이 폐쇄되었습니다. 현재 연락 또한 불가합니다. 또한 세계 각지에서 호문쿨루스에 대한 관측 보고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호문쿨루스는 이면결계를 사용하지 않고 인간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현재까지 피해 사항은 확인되지 않았지만 조속히 대처를 마련해달라는 부탁이....”

모든 것이 불분명한 지금 이것만큼은 확실했다.

인류도 마녀 사회도.

유례없는 전환점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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