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 도시-891화 (897/917)

Chapter 891 - #194_태풍(4)

#885

1.

엘로아와 린네를 필두로 한 게릴라 부대의 대활약.

네임드 중 두 마리를 순살하고 나머지 5마리를 다른 마녀와 협력하여 죽였다.

이때까지만 해도 계획은 순조로운 듯 보였다.

거리낌 없이 나아가던 군단의 진행이 주춤했으니 말이다.

이대로라면 충분히 시간을 끈 이후 집결 중인 본대와 합류해 상륙을 저지할 수 있으리라 낙관했다.

“아우우우!”

상황이 일변한 건 흰자밖에 없는 한 쌍의 눈으로 전장을 살피던 수사슴이 긴 울음소리를 토해내면서부터였다.

좌측면으로 쏠려 마녀들과 전투채비를 갖추던 호문쿨루스들이 퇴각의 뿔피리라도 들은 양 물러난다.

빈 전선을 채우는 건 원근감을 이상하게 만드는 초대형 호문쿨로스 ‘퀸’.

내장과 살덩어리로 반죽된 그로테스크한 구체이다.

조금 움직이는 것만으로 하늘을 완전히 가려버리는 위용을 자랑하는 퀸의 표면이 울룩불룩 움직이기 시작한다.

구체 위로 빼곡히 돋아나는 건 수백에 달하는 거대한 입술과 입.

“으엑! 저게 뭐야….”

“징그러워….”

그로테스크한 생김새에 걸맞은 그로테스크한 음색이 일제히 합창을 시작했다.

“아아아아!!!”

“아아아아!!!”

“아아아아!!!”

뱃고동 소리 같은 거대한 합창은 그 자체로 충격량이 되어 바다 위에 커다란 파문을 그린다.

평범한 인간이라면 음파에 노출된 것만으로 피를 토하고 절명할 커다란 포효였다.

“윽…!”

“꺄아아악!”

마녀들조차 마력으로 귀를 감싼 채 눈을 찡그리며 퀸을 바라보았다.

거대한 굉음이 마비시킨 청각 탓에 찾아온 적막.

“구에에에엑!”

“구에에에엑!”

모두의 시선이 퀸을 향한 순간 고함을 멈추고 다 물렸던 퀸의 입술들이 활짝 벌어지더니 무수한 자식을 토해낸다.

퀸이 자신의 몸을 분해해 생성해낸 키메라였다.

전함의 어뢰 사출을 연상케 하는 전투 방식.

다른 점이 있다면 출격하는 게 매끈한 어뢰가 아닌 살과 내장으로 빚어낸 짐승을 으깨 뭉쳐놓은 끔찍한 생김새라는 것이다.

“모두 조심하게!”

엘로아의 주의와 함께 거칠게 일렁이는 수면.

잠영을 통해 돌고래처럼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키메라 떼가 일제히 떠오른다.

물 위로 떠오른 키메라 떼의 등이 터지듯 찢어지며 피막을 지닌 날개가 돋쳤다.

신의 실패한 피조물을 떠올리게 하는 흉측한 외형에 혼비백산하는 마녀들.

“어딜 만질라고!”

“마녀빔!!!”

그러나 키메라 하나하나가 그렇게 강하지는 않기에 어렵지 않은 대응이 가능했다.

한 마녀가 터뜨린 불똥에 직격당해 잿가루도 남기지 못한 채 바닷물째 증발하고,

한 마녀가 휘두른 뇌광에 관통당해 스프레이를 맞은 날벌레처럼 우수수 바다로 떨어진다.

세기말적인 괴이에 당황하던 마녀들도 이내 자신감을 회복하고 마음껏 키메라를 학살하고 있었다.

“…….”

그러나 엘로아의 굳게 닫힌 입매는 좀처럼 부드러워지지 않았다.

당장 마녀들은 초 단위로 수십 마리의 키메라를 죽이고 있었지만 여전히 수가 많다.

육안에 관측되는 것만 수백.

아직 수면 아래 가라앉아 있는 놈이나 포위를 위해 뒤쪽까지 자리 잡은 놈들은 더 많을 것이다.

게다가 퀸은 아직도 입을 벌리며 제 자식을 바다 밑으로 내던지고 있었다.

“귀찮아 죽겠네! 놔둬 봐! 내가 한 번에 처리할 테니까!”

뇌광을 다루는 한 마녀가 성가신 듯 완드를 휘둘렀다.

“천둥이여!!”

두텁게 하늘을 덮던 적란운 사이로 전류가 번쩍인다.

사선을 그리며 지그재그로 내리꽂힌 뇌광 줄기에 얻어맞은 어두컴컴한 수면이 일순 환하게 점멸했다.

-콰지지지지직!

이온을 듬뿍 함유한 해수는 훌륭한 전도체였다.

뇌광을 품은 적란운처럼 점멸을 반복하는 해수면 아래로는 통째로 구워지는 키메라의 그림자가 얼핏얼핏 엿보였다.

“후후, 어떤가요 티페레트 공작님? 이 정도면 제법이죠?”

인근 수중 수천 마리에 달하는 키메라가 겉과 속이 바삭해져 물 위로 둥둥 떠오른 것도 잠시.

또다시 그만한 숫자가 물밑으로 모여든다.

“방심하지 말게나.”

“방심은 무슨…. 몇 번만 더 하면 박멸이겠는데요? 천둥이여!”

티페레트에게 보란 듯이 무용을 자랑했던 마녀는 이번에도 세찬 전류를 바다로 쏘아 보냈다.

과정은 같았으나, 이번에는 결과가 다르다.

“끼에에엑!”

“쿠웨게겍!”

조금 전과 달리 이번엔 절반 정도의 키메라가 살아남았다.

군데군데 화상을 입거나 반숙이 된 놈들은 더 흉측하게 변한 아가리를 쩍 벌리며 창살 같은 이빨을 들이민다.

“뭐, 뭐야…!”

-콰아앙!

엘로아의 손등이 번개를 부리던 마녀에게 달려든 키메라를 곤죽으로 만들어버렸다.

“이놈들은 마법에 적응하네. 같은 수법이 몇 번이고 통하지 않네.”

“그, 그런….”

이것이 퀸의 무서움이다.

키메라는 전장과 마법에 놀라운 적응력을 지니고 있어 같은 종류의 마법에 서서히 면역을 갖춘다.

가뜩이나 체력 소모를 강요하는 물량 공세에 주위 환경과 마법에 순식간에 적응하는 키메라는 사냥감을 체력 소진이라는 깊은 늪에 빠지게 한다.

설령 수많은 키메라를 상대하며 본체에 이르렀다 한들 일이 쉽게 풀리는 건 아니다.

거대한 체급에서 나오는 맷집.

전투력을 배제하고 오직 방어력에 모든 스탯을 몰빵한 퀸의 본체는 어지간한 대규모 마법으로도 격침할 수 없다.

실로 움직이는 성채라는 표현이 걸맞은 호문쿨루스인 것이다.

“꺄아아악!”

기어이 키메라에게 부상을 입은 마녀가 나왔다.

대기하고 있던 구조대에 의해 황급히 구출되었지만 억센 손아귀에 다리 한쪽이 통째로 찢어진 채였다.

엘로아는 어금니를 꽉 깨물며 군단 쪽을 바라보았다.

시간 벌이에 어울려 주는 것이 아니라 퀸 하나를 던져주고 다시 행군을 시작했다.

이래서야 요격을 나온 의미가 퇴색된다.

일대다수 전에 약세를 보이는 엘로아의 약점을 간파하고 까다로운 차륜전술을 구사했던 적기사처럼 확실한 의도와 논리를 지닌 채 움직이고 있다.

“린네, 본체를 죽일 수 있겠나?”

엘로아 이상으로 대마녀전에 특화된 린네다.

생명체라기보단 ‘지형’에 가까운 퀸을 상대로 얼마나 효과적인 참격을 가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돌아온 건 예상대로의 답변.

“…확답할 수 없다. 넌?”

“가능은 하네. 하지만 마력 대부분을 소모해야겠지.”

반면 엘로아는 호문쿨루스 역시 사냥해왔다.

퀸보다 커다랗고 두터운 방어력을 지닌 초거대형 호문쿨루스를 일도양단했던 전적도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이 있다면 역시 코스트.

퀸을 확실히 무력화할 수 있어도 대응본부의 주축인 엘로아가 전장에서 리타이어하는 건 악수 중의 악수다.

비단 마력뿐만이 아니라 ‘계약’이 모두 소모되어 버리는 것이 문제다.

“그럼 이곳은 내가 맡겠다.”

“부탁하네.”

어쩔 수 없는 린네의 이탈.

엘로아는 남은 마녀를 이끌고 다시 진군을 시작한 군단의 발목을 잡고 늘어질 심산이었으나.

-카아아아아악!!!

까다롭기 짝이 없는 상황을 더욱 까다롭게 만드는 요소가 등장했다.

육중하나 날갯짓과 함께 나선을 그리며 먹구름 사이로 등장한 건 온몸을 잿빛 비늘로 휘감은 거대한 용.

겉보기처럼 굴강의 내구도를 지녔으며, 석화의 브레스를 사용하는 또 다른 네임드 ‘철갑룡’.

뿐만 아니다.

-촤아아아악!

바다를 헤집으며 몸을 뒤집은 대형 갈치가 거대한 포말을 일으키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유수를 조작하여 초고압수류를 만들어내거나 특수 연금한 용해액을 흩뿌려 적을 녹여내는 ‘왕갈치’.

즉, 군단 측의 지원병력이었다.

“너무 머뭇거렸나 보네.”

“어지간히 얕보였군.”

아무래도 쉽사리 퀸을 조리하지 못하는 요격부대를 보며 조금 더 승부수를 던지기로 한 모양이다.

그리고 그것은 분하지만 아주 적절한 대처였다.

“가라.”

다시 말하지만 호문쿨루스는 ‘사냥’해야 한다.

마법과 지혜와 계획을 도구 삼아 선사시대의 인간이 그랬듯 마녀만의 우위를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아무리 린네라도 저 셋을 동시에, 그것도 정면에서 상대해야 하는 건 무모하고도 위험한 행위였다.

그럼에도 칼을 뽑아들고 묵묵히 적을 오시하며 린네는 말했다.

“낭군의 고향을 지키는 일이다.”

목숨을 걸 이유는 그걸로 충분하다는 듯이.

“무운을 비네.”

검을 뽑아들고 풍랑을 헤치며 바다를 달리는 검사와 검사를 노려보는 세 마리의 괴수.

“베어라.”

소모를 두려워 않고 아낌없이 마력을 뽑아내기 시작한 린네의 주위가 마력으로 물든다.

검은 밤하늘을 더욱 검게, 시리게 빛나는 검광은 더욱 하얗게, 세계를 덧칠하는 질주.

위기를 감지하고 고도를 높인 철갑룡과 해저 깊은 곳까지 잠수해버린 왕갈치와 달리 퀸에게는 그만한 기동력이 없었다.

“구웨에에에엑!!!”

대신 더욱 열심히 자식을 토해내며 살점의 벽을 쌓는다.

그렇기에 알아차리지 못했다.

피부가 따갑도록 빗겨 내리는 빗발 사이로 맞아서는 안 되는 빗줄기가 섞여 있으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퀸의 본체를 대기권처럼 둘린 베리어.

총 세 겹으로 이루어진 방호 마법은 핵폭발조차 정면에서 받아낼 만큼 강력하다.

그런데 그런 베리어가 산성물질에 맞닿은 얇은 판금처럼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분명 아무런 마법적 반응이 없음에도 순식간에 마모되고 무너져내린 것이다.

“…구에에엑?!”

키메라를 토해낼 입 외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퀸의 몸체에 울룩불룩 눈알이 돋아난다.

의문과 두려움을 담은 눈알이 원인을 찾기 위해 뒤룩뒤룩 사방을 훑는다.

그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건 금색 마녀.

퀸의 덩치에 비하면 티끌보다도 못한 작은 크기의 마녀다.

아마도 이 현상을 일으킨 주범.

그럼에도 퀸은 대형종 특유의 낮은 지능으로도 직감할 수 있는 위기를 느꼈다.

“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

“아아아아아!!!”

어미의 외침을 따라 일제히 공중으로 날아오르는 키메라.

그러나 본체를 둘러싼 베리어가 죄다 마모되고 온몸 가득 입자를 품은 이상.

향수의 마녀, 아멜리아 메리골드에게 도망칠 방법 따위는 없었다.

“울어라.”

아멜리아가 손끝을 튕김과 동시에 퍼져 나가는 파장.

육편 사이사이에 자리 잡았던 자그마한 입자가 파장을 만나 일제히 개화한다.

“아아아….”

“아아아….”

“아아아….”

단말마를 내지를 시간조차 주지 않고 폭발하듯 피어나는 이름 모를 야생화 군락.

작은 섬 하나를 꽃으로 뒤덮듯 무서운 속도로 성장한 들꽃은 퀸의 마력을 아낌없이 흡수하며 그 몸을 내부부터 파괴했다.

풍화되어 바스러지는 퀸의 동체와 산산이 부서지며 흩날리는 낙화(落花).

“와.”

“예쁘네….”

“저 마녀 누구지?”

암울한 전황에 도주를 생각하던 마녀들조차 넋을 잃은 채 그 아리따운 광경을 올려보았다.

이 장면이 시사하는 바는 비단 마법의 아름다움뿐만이 아니었다.

“왔다!”

“지원이다!!!”

게헨나로부터 지원군이 도착했다.

그것도 아주 강력한 원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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