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 도시-886화 (892/917)

Chapter 886 - #193_수아 선생(3)

#880

1.

일반적인 범주를 벗어난 시우의 여성편력에 크게 충격받은 수아 선생.

사자 무리를 방불케 하는 그의 하렘에 경악한 수아가 시우에 대한 평가에 감점을 내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영웅호색이라 한들 정도가 있는 법.

중용의 길을 한참 벗어난 그의 행적은 수아 선생이 받아들일 방종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의 연애관에 대해 일장연설을 늘어놓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우선 참았다.

연인 간 문제는 당사자들끼리 해결해야 할 문제.

그가 몰래 바람을 피우는 것도 아니고 엘로아 역시 이를 알고 있다 하니 구태여 나서 오지랖을 피우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러나 저러나 수아는 시우에게 은혜를 입은 처지이니 말이다.

“준비되셨사옵니까?”

“네, 물론입니다.”

한편 어젯밤 이후 수아 선생의 얼굴을 보기가 영 껄끄러운 시우다.

겉으로 보이는 태도에는 큰 변화가 없지만 열띤 호의로만 가득하던 수아 선생님의 눈빛에 살짝 벽이 생겼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좀 민망하게 되었다.

“호문쿨루스에 대해 전반적인 지식을 검토하고 넘어가고자 하옵니다. 실전은 올바른 이론을 닦은 이후 행해져야 하는 법이지요.”

어제 실력 검증을 끝냈던 공터에서 다시 만난 두 사람 수아 선생은 조곤조곤한 말씨로 첫 수업의 막을 열었다.

“시우 공께선 호문쿨루스를 몇 번이나 상대해보셨사옵니까?”

“호문쿨루스라면….”

라티푼티움에서 마주했던 그림자를 다루는 고양이.

샤론과 함께 토벌한 무수히 분열하는 검은 개.

자만심에 빠져있던 시우에게 무참한 패배를 안겨주었던 ‘익사한 마녀’.

사상 최악의 호문쿨루스라 명명된 적기사와 그 수하 격인 백기사.

디아나를 위기 빠뜨릴 뻔한 빙의형 호문쿨루스.

굳이 더한다면 어항에서 만났던 크라켄 정도이려나.

“여섯 번입니다.”

모아놓고 세어보니 숫자가 제법 된다.

살짝 놀랐다는 듯 눈을 치켜뜨는 걸 보니 수아 선생님도 같은 생각을 하신 모양이다.

잠시 입을 다물었던 그녀가 재차 물었다.

“하오면 마녀와 전투를 치른 횟수는 어느 정도이신지요?”

“마녀는…. 잠시만요.”

전투라고 부르기 민망한 에아 사달멜리크와의 전투는 제외하고 세어 보았다.

직접 적으로 대면하지 않은 파올라 소치틀도 제외했다.

샤론을 보쌈해 가려 하던 레즈 보빔마 델라 레드클리프.

온갖 아티펙트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시우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비앙카 벨릴리.

크라켄을 쓰러뜨리자 분노에 가득 찬 채 등장해 압도적인 무력을 선보였던 르뤼에.

위악을 가장해 르뤼에의 마음가짐을 고쳐주려 했던 절대 방어의 소유자 도로시.

미궁에서 시우를 납치하려 했다가 돈을 뜯긴(현재 매달 상환 중) 앨리스 이븐 하이얀.

무시무시한 검귀의 포스를 뿜으며 가볍게 대동맥을 따버렸던 린네.

잔혹한 공적이자 위치 보드 광, 시우의 손에 의해 목숨을 잃은 로지.

심상에서 벌어졌던 전투까지 포함한다면 무의식 속 흑기사와 엘로아 스승님도 있겠으나 이 역시 뺐다.

“일곱입니다.”

“일곱? 소녀는 실전 경험을 여쭌 것이온데 바르게 전해졌는지요?”

“네.”

수아는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듣기로는 시우가 마녀가 된 지는 채 5년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저만한 전투경험, 그 중 반수 이상은 대마녀전이다.

호전적인 공적이나 사명의식으로 똘똘 뭉친 엘로아조차 저런 빈도로 대마녀전을 치르지는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소년만화 따위에선 틈만 나면 생사결을 벌이지만 이 세상은 만화가 아니다.

누구도 자신이 주인공이라는 걸 보장해주지 않는다.

아주 찰나의 실수로 목숨을 잃는 전투에 뛰어든다는 건 초월자인 마녀에게도 두려운 일이다.

“전투를 치렀던 마녀의 위계를 일러주실 수 있사와요?”

“20위계가 셋, 22 위계가 셋, 23위계 하나입니다.”

“…….”

다음 답변을 들은 수아는 일반적인 잣대에서 그를 평가하는 것을 관두었다.

대마녀전인 것도 모자라 모든 마녀가 대마녀라니.

심지어 에아 사달멜리크가 21위계, 파올라 소치틀이 19 위계였던 것을 감안하면 그는 ‘전투’라 여길 수 없던 싸움은 아예 셈에 넣지도 않은 모양이다.

“…목숨이 붙어 있는 게 용한 수준이옵니다.”

“저도 말하면서 느꼈습니다. 오해하실까 봐 말씀드리지만, 저라고 좋아서 싸워댄 건 아닙니다.”

“이해했사옵니다. 왜 엘로아 공이 소녀에게 지도편달을 부탁했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사와요.”

쓴웃음을 짓는 시우를 보며 한숨짓던 수아는 어제 그가 보여주었던 무위를 떠올렸다.

그건 거저 얻어낸 힘이 아니었다.

최고의 연습은 실전이란 말이 있듯 번번이 목숨을 내던져가며 사지에서 굴러 온 경험이 그를 더욱 높은 경지로 이끌었겠지.

그의 성품을 보면 말마따나 좋아서 싸움에 뛰어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도 남자 마녀라는 특이성이 그를 투쟁의 소용돌이로 이끌었겠지.

그러면서도 삐뚤어지지 않은 바른 심성을 유지하고 있다.

역시 인간은 다면적이다.

여성편력은 두려울 만큼이나 난잡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수아가 존경을 표하고 싶을 만큼이나 범상치 않은 면모가 있었다.

속으로 평가를 실시간 수정해 나가던 도중 멈칫한 수아.

“…….”

그래도 8명은 너무 심했다.

“소녀가 상정하였던 것보다 풍부한 실전 경험이어요. 하오니 이론은 간략히 짚고 넘어가겠사옵니다.”

“경청하겠습니다.”

“먼저 호문쿨루스의 특성에 대해 알고 계시는지요?”

당연히 얼추 알고 있다.

긴 수면기와 짧은 활동기.

동체 주위로 상시 발동하는 이면결계.

인간을 잡아먹기 위해 재앙을 일으킨다는 점.

아공간에 은신하는 특성 탓에 비활동기엔 토벌이 불가능하다는 점.

‘눈’의 개수에 따라 위험도가 달라진다는 점.

“그렇사옵니다. 하오나 놓쳐서는 안 될 부분이 있지요.”

“뭔가요?”

“모든 호문쿨루스는 고유하다는 점이옵니다. 그들은 제각기 다른 특징을 지니거나 마법을 사용하지요.”

이것이 호문쿨루스를 까다롭게 만드는 원인 중 하나다.

아무런 능력이 없는 호문쿨루스를 제외한다면 그 괴물들은 마녀의 자성마법처럼 고유한 마법을 부린다.

“하오나 일련의 경향성을 파악한다면 대처를 찾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요. 여기 준비한 자료를 참고해 주시옵길.”

수아 선생이 건네준 건 그렇게 두껍지 않은 서류 뭉치였다.

“호문쿨루스는 크게 두 가지 종류로 나눌 수 있사옵니다. 인간형 개체와 괴수형 개체. 이들은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니지요.”

인간 형태의 호문쿨루스는 대체로 상대적으로 지능이 높다.

따라서 자성마법의 활용도 보다 능숙하며, 인간처럼 고차원적인 사고능력이 없을지라도 본능에 따라 전략적 움직임이나 기만책을 구사하기도 한다.

여러모로 대 마녀전과 크게 다를 점이 없다 봐도 무방하며 시우가 상대했던 적기사, 백기사, 익사한 마녀가 이에 속한다.

“인간형의 경우 그 마력량이 마녀와 비교하여 큰 차이가 나지 않사와요. 아무래도 체급이 인간 수준이다 보니 담아낼 수 있는 한계도 역력한 것이겠지요.”

“대체로 그랬던 것 같네요.”

“시우 공께 대마녀 전에 대해 설파하는 건 무의미하다 사료되오니 다음 이야기로 넘어가겠사와요.”

호문쿨루스의 괴수형 개체.

사실 개체 수는 이쪽이 압도적으로 많으며 대체로 인간 사이즈인 인간형에 비해 체급 역시 천차만별이다.

검은 고양이 같은 소형부터 크라켄, 적룡같은 초대형까지 말이다.

“역시 문제가 되는 건 초대형종이겠지요.”

“네, 아마 그 부분 때문에 스승님이 부탁하셨을 것 같습니다.”

초대형 괴수형 개체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생명체라기보단 지형지물에 가까운 압도적인 체급.

거기에서 기인한 막대한 마력과 위력적인 마법, 힘.

뛰어난 방어력과 회복력에서 보증되는 맷집.

지나치게 커다란 몸체만큼 힘을 다루는 정밀성은 현저히 떨어진다는 게 다행일 따름이다.

“수아 선생님. 질문이 있습니다.”

“모쪼록 편히 물어보시와요.”

“커다란 호문쿨루스를 상대할 때와 대 마녀전에 사용하는 마법은 종류가 다르겠죠? 그래서 이렇게 따로 훈련하려는 것이고요.”

“그렇사와요.”

기민하고 민첩한 회피기동이 가능한 마녀와 깡맷집과 방어력으로 공격을 버티는 초대형 호문쿨루스의 상대법이 같을 리 없다.

섬세하고 정밀하며 민첩한 마법을 사용하느냐, 다소 시전까지 딜레이가 있어도 파괴력에 주안점을 두느냐가 갈리겠지.

하지만 여기서 드는 의문점이 있다.

“그러면 스승님도 마법이나 기술의 종류를 달리하시나요?”

두 방면 모두 뛰어난 사냥꾼인 스승님도 다를까?

하지만 적어도 시우의 기억에서 엘로아는 어떤 적을 상대하건 동일해 보이는 방식을 활용했다.

수아 선생은 어쩐지 칭찬하는 기색으로 싱긋 웃었다.

“엘로아 공께서는 기술에 분별을 두지 않으시지요. 이유를 짐작해 보시겠사옵니까?”

“…음, 잘 모르겠습니다.”

“극의에 달한 마법은 사용처를 가리지 않고 결을 함께 하지요.”

“아, 그렇군요.”

“방금 설명으로 벌써 이해하셨사와요?”

“네, 그러니까…. 얼핏 서로 달라 보이는 두 방식이지만 극한까지 끌어올리게 된다면 어느 쪽에도 사용할 수 있다…. 대충 이런 의미로요.”

“훌륭하옵니다. 소녀, 몇 번이고 감탄을 금치 못하겠사와요.”

사실 어지간하면 앞으로도 게헨나에 쭉 머물 시우다.

새삼 왜 대 괴수전에 관한 수련을 명령하셨는지 의문이었는데 완전히 의문이 풀렸다.

지금 시우는 마치 스킬 트리의 세팅을 바꾸듯 상대에 따라 마법의 종류를 달리해야 한다.

가령 적룡에게 보였던 세 번 찌르기를 대 마녀전에서 사용한다면 모션이 빤히 보이는 빈틈투성이 패턴 역할이나 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시전 시간을 줄이고, 위력을 더욱 극점으로 모으고, 마력 낭비에 가까운 소모 값을 개선한다면?

즉시 대 마녀전에서도 활용이 가능하다.

당장 그게 무리더라도 어찌 됐건 대 괴수전의 능력을 배양한다는 점에서 즉시 효력이 있다.

실로 스승님다운 지혜로운 안배였다는 것.

“마법을 다듬는 작업부터 시작해도 좋으신지요?”

“좋습니다.”

갑옷을 만들고 창을 꼬나쥐는 시우와 다시 한번 적룡의 환영체를 소환하는 수아 선생.

실로 알찬 파워업 이벤트였다.

그리고 조금 시간이 지난 이후의 일이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이렇게나 빨리 배운 것들을 써먹을 날이 오리라곤 생각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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