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 도시-884화 (890/917)

Chapter 884 - #193_수아 선생

#878

1.

수아 아가사.

위치포인트 광화문 지부장, 올해로 557세.

마녀로서의 이명은 ‘금제(禁制)의 마녀’ 22 위계.

특기는 이명과 걸맞은 봉인술과 결계술.

더불어 티페레트 공작의 절친한 친우이기도 한 그녀는 귀가 아프도록 신시우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왔다.

‘수아 선생, 시우는 천재라네. 그건 하늘이 내린 재능이야.’

‘대견하지 않은가? 벌써 발경의 묘리를 구현하다니.’

‘무재? 글쎄…. 물론 일신의 무위도 빼어나나 마녀로서의 솜씨도 일품이라네.’

‘내 보장하지. 그는 분명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의 경지로 나아갈 걸세.’

악독한 공적 에아 사달멜리크에게 라피를 잃게 된 이래 웃음을 잃었던 엘로아였다.

남은 삶은 복수를 위해 불태웠으며, 복수 대상이던 물병자리의 마녀가 종적을 감춘 이후엔 삶의 동력을 잃은 모습마저 보였다.

그 모습을 안타까워하면서도 수아는 조용히 마음의 정리를 끝냈다.

엘로아는 머지않아 삶을 정리할 것이라고, 세상엔 아무리 막역한 친우여도 대신 짊어질 수 없는 짐이 있노라고 말이다.

하지만 신시우를 제자로 들이고 난 이후 그녀는 변했다.

전보다 훨씬 자주 웃게 되었고, 금방이라도 깨질 듯한 위태로움 대신 어느 때보다 굳건한 심지를 얻었다.

‘수아 선생. 나는 시우를 사랑한다네. 단순한 사제 관계 이상으로.’

‘뭘 그리 꼬치꼬치 캐묻는가? 여, 연인이라네. 관계?’

‘설왕설래?’

‘그만! 빙 돌아 떠보는 건 그만하게나! 선생에겐 나쁜 버릇이 있네!’

쑥스럽다는듯 볼을 붉히며 밝혔던 대화에서 수아는 엘로아가 새로이 얻게 된 힘의 근원을 짐작했다.

요컨대 신시우는 엘로아에겐 없어선 안 될 소중한 제자임과 동시에 파멸을 향해 달려가던 엘로아를 멈춰 세워 준 사랑하는 연인이라는 의미다.

‘이리 부탁함세.’

따라서 대괴수전의 수련을 엘로아가 부탁했을 때도.

그녀가 시우에 대해 전에 없는 칭찬을 늘어놓았을 때도 전후 사정을 적당히 감안하여 들었다.

수아가 아는 엘로아는 사폐에 구애받지 않고 정확한 평가를 내리는 인물이었지만 어디 그 평가가 언제나 엄격할까?

걸음마만 조금 일찍 떼도 자식을 천재로 여기는 부모처럼 애정 어린 과대평가가 첨부되었으리라 여겼다.

더군다나 마지막으로 수아가 확인한 그의 수행능력은 17 위계 수준에 그쳤다.

그것만으로도 ‘전례 없다’라는 말없이는 설명이 되지 않는 성장력이지만 그로부터 고작 2년이 지났을 뿐이다.

‘이렇게 나서주니 고맙네.’

그럼에도 기꺼이 엘로아의 부탁을 받아들인 건 수아 선생이 시우에게 깊은 감사를 느끼고 있기 때문이었다.

수준 점검을 위해 소환해 낸 건 수아의 사역마 중 하나 경강적룡의 환영체.

수아 선생의 특기는 봉인과 결계인만큼 사역마 역시 방어술에 치중해 있다.

그러나.

“자, 잠…!”

수아는 보았다.

자세를 취하고 마력을 끌어올리는 시우의 뒷모습과 예측할 수 없는 힘의 크기를.

-키이이이이잉!

금빛의 마력이 그녀의 예상을 아득히 웃돌며 증폭되더니 적기사를 사상 최악의 호문쿨루스로 만들어 주었던 붉은가지가 울음을 토한다.

반격이나 회피를 염두에 두지 않은 최대 출격이라지만 믿을 수 없는 위력.

-쿠우우우우우!!!!

1초를 수만 번으로 나눈 짧은 시간.

그의 디딤발과 함께 정면을 향해 뻗어 가는 붉은 맹공이 적룡을 집어삼킨다.

수아가 식별한 건 단 한 번의 찌르기에 불과했다.

그의 공격이 세 번에 걸친 연격임을 알아차린 건 뒤늦게 발생한 후폭풍의 충격파가 세 갈래였기 때문이다.

“…….”

이후 드러난 결과물은 수아조차 평정을 잃을 수준이었다.

이미 ‘창술’로 왈가왈부할 영역이 아니다.

실제로 그의 창끝은 적룡 근처에도 닿지 않았다.

그 여파만으로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증발해버린 환영체.

거대한 건설장비를 동원한 것처럼 지평선까지 길게 파인 세 개의 파괴흔.

피부가 어릿거릴 만큼 농후하게 번진 왜곡장이 스파크를 일으키며 흩어진다.

눈을 끔뻑이던 수아는 황급히 시우를 보았다.

붉은가지는 위험한 예장이다.

이만한 힘을 끌어냈다면 자칫 회복 불가능한 자상을 동반했을 가능성이 있다.

“시우 공.”

실수였다.

애초에 너무 무리할 필요 없다는 언질을 줘야 했다.

어린 마녀인 신시우라면 자기승인 욕구에 취해 과도한 힘을 쏟아냈을 가능성이….

“아, 허리 삐끗했네….”

하지만 수아의 예상과 달리 그는 대단히 멀쩡했다.

콧잔등을 찡그린 채 허리를 두들기고 있었지만 붉은가지의 반동에 부상을 입은 모습은 아니다.

“아….”

수아는 산산이 부서져 흩어진 갑옷의 잔해를 보며 그 이유를 깨달았다.

만약 그가 아무 대책 없이 붉은가지를 휘둘렀다면 저 흩어진 잔해 사이에 팔다리가 하나씩 껴 있어도 어색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은 것은 그가 처음부터 반동까지 고려해 준비한 까닭이다.

갑주에 오롯이 부담을 전가할 준비를 말이다.

“시우 공.”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고르고 고르던 수아 선생이 시우에게 다가섰다.

“겸손이 과하셨사와요.”

“겸손…. 은 아닌 것 같습니다. 실전에서는 이런 상황은 잘 나오지 않으니까요.”

엘로아는 거짓말이나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냉정한 시각에서 제자이자 애인의 잠재력을 측정해 내었다.

“이런 상황이라 하옴은?”

“이만한 대규모 마법의 준비시간을 기다려주고, 견제도 없고, 피하지도 않는 상황이요. 그래도 우선 최대 화력을 보고 싶어하시는 것 같아 시연해 봤습니다.”

하지만 짧은 대화 이후 수아는 재차 감탄했다.

이만한 능력을 선보였다면 뽐내고 싶고 자랑하고 싶고 칭찬받고 싶은 게 어린 것들의 인지상정이다.

얼마나 많은 어린 마녀가 힘에 취한 나머지 신중함을 잃고 안타까운 결말을 맞이했던가?

“참으로 대단하시어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부족한 부분투성이에요.”

그러나 그에게는 일만의 자만이나 방종 따위가 엿보이지 않는다.

겉치레가 아니라 진실로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 믿는 듯하다.

“이거 실전에서는 사용할만할까요? 대 괴수전에서요. 저는 솔직히 확신이 서질 않네요…”

그럴 만도 했다.

시우는 언제나 눈부신 성장을 거듭했지만 그럴 때마다 더욱 강력한 강적들과 매칭됐으니.

자신감보다는 신중함이 자리 잡은 것이다.

“후후.”

그를 빤히 지켜보던 수아 선생은 입을 열었다.

엘로아에게 처음 부탁받았을 때까지만 해도 수아 선생은 그렇게 진지해질 생각이 없었다.

호문쿨루스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이나 전술 교리 정도만 알려줄 생각이었달까.

“말씀하신 대로이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 보였다.

그렇다면 수아 역시 더욱 깐깐한 잣대를 들이밀며 그를 교육해야 한다.

정말로 어떤 호문쿨루스도 대적할 수 있는 인재로 말이다.

“사전동작이 커지면 괴수라 한들 대처법을 찾기 마련이지요. 마법의 정밀함 또한 완성형이라 보기엔 어렵사옵니다. 극점에 힘을 모으기 어렵다 판단되어 3 분할로 위력을 증폭시킨 것은 이해하겠사오나 결국 하나로 이어지지 못한 채 중구난방이지요.”

세 갈래로 뻗은 파괴흔을 가리키며 콕콕 아픈 부분을 짚은 수아 선생.

“역시 그렇군요….”

“염려 마시와요. 소녀가 돕겠사와요.”

“감사합니다. 그럼 어디서부터….”

“학습일정을 작성할 테니 오늘 수업은 이만하면 될 듯하옵니다.”

수아 선생의 붓꽃처럼 청초한 미소를 보며 든든함을 느끼며 저택으로 돌아가는 길.

시우가 처음부터 염려하던 일이 벌어졌다.

“음? 시우, 이 여자는 누구인가?!”

한동안 시우가 선물해 준 프라모델을 조립하느라 두문불출하던 르뤼에가 커다란 배 모형을 들고 달려오다 수아와 마주한 것이다.

“아 르뤼에 님. 이 분은….”

“또 새로운 경쟁자인가? 그대도 참 어지간하구나.”

“아니, 그런 건 아니고요….”

르뤼에는 착하고 귀엽지만 한 가지 단점이랄 부분이 있다.

지나치게 분위기를 읽지 못하는 안하무인의 성격이라는 점이다.

즉, 시우가 실은 일부다처제를 꿈꾸는 영웅호색의 대명사라는 걸 안전장치 없이 폭로해버릴 위험분자라는 것이다.

영원히 감출 생각은 없었고 그럴 수 있다고 여기지도 않았다지만 마음의 준비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변명은 되었다. 짐이 직접 살펴보겠다. 어디 보자….”

“안녕하시와요.”

도발적인 발걸음으로 쿵쿵 다가서는 르뤼에와 조금의 위축 없이 교양 넘치는 인사를 건네는 수아 선생.

대놓고 수아 선생을 이모저모 뜯어보던 르뤼에가 시건방진 말투로 입을 열었다.

“짐은 위대한 누켈라비 왕조의 적통 계승자. 르뤼에 누켈라비라고 한다.”

“르뤼에 님, 아이고…! 죄송합니다, 수아 선생님 아직 뭘 모르시는 분이라…. 르뤼에 님 잠시 이리 와보세요.”

“놔라! 그대는 참 뻔뻔하기 그지없구나!”

예의 밥 말아 먹은 위태위태한 대화를 만류하려 했지만, 꿋꿋이 버티는 르뤼에.

아마도 이미 수아 선생을 ‘연적’쯤으로 인식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수아 선생이 시우에게 괜찮다는 눈짓을 하며 앞으로 나섰다.

“명성이 자자한 심해의 마녀이시지요? 소녀는 수아 아가사라 하옵니다. 현재 위치포인트의 지부장직을 수행하고 있사와요.”

“호오, 말투는 웃긴데 그나마 보는 눈은 있구나.”

르뤼에 본인의 말투도 만만찮게 이상하지만 그런 걸 신경 써가며 지적할 그녀가 아니다.

“르뤼에 공.”

“여왕 폐하라 불러라.”

“한가지 여쭈옵고 싶은 점이 있사옵니다.”

“윤허한다.”

수아 선생의 숙여 들어가는 태도에 르뤼에는 조금 더 우쭐해졌다.

이놈의 도시는 여왕에 대한 존중과 경외란 눈꼽만큼도 찾아볼 수 촌뜨기 들의 도시.

그런 와중 정중하게 르뤼에를 대하는 수아 선생의 태도가 마음에 든 것이다.

하지만 르뤼에도 시우도 모르고 있었다.

수아 선생은 화를 내지 않지만 웃는 얼굴로 상대를 주눅들게 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걸 말이다.

“옛말에 이르길 군자란 섬기기는 쉬워도 기쁘게 하기는 어려우며, 소인은 섬기기는 어려워도 기쁘게 하기는 쉽다 하였사옵니다.

군자의 마음은 평온하고도 인자하니 섬기기 쉬운 것이고, 그 태도가 크고 바르니 기쁘게 하기는 어려운 것이지요.

반면 소인의 마음은 모질고 각박하오니 섬기기 어려운 것이고, 그 태도가 치우치고 사사로우니 기쁘게하기는 쉬운 것이라 하였사옵니다.

아울러 군주란 곧 군자의 덕목을 함양하여 만민을 아울러야 하옵니다.”

“그게 무슨 야밤에 미역 따는 소리냐?”

“타인의 언행을 멋대로 품평하거나 목소리를 먼저 높이는 이. 품행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오만과 교만을 보이는 이. 이러한 행동을 보이는 이는 소인과 군자 중 어느 쪽 인지요?”

고개를 갸웃하던 르뤼에는 수아 선생의 말이 ‘너 태도가 참 아니꼽다? 여왕이면 다야?’쯤이라는 걸 깨달았다.

“흥, 짐은 여왕이다. 군자니 소인이니 그런 쓰잘데기 없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쥐었기에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하며 성품과 덕목으로 뭇 섬기는 자를 품는 이가 군주요 곧 여왕이지요. 권위를 앞세워 이끈 복종에 흡족한 군주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존경과 공경을 받지 못하기 마련이옵니다.”

“…….”

“르뤼에 공께서는 어떤 여왕이 되길 원하시온가요?”

르뤼에의 입이 일자로 다 물렸다.

시우가 아는 한 가장 빠른 르뤼에 호 격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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