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802)화 (884/917)

#802

1.

그 어떤 과학자, 역사학자 혹은 군사전문가도 이런 식으로 제3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니까 무리한 영토 확장으로 말미암은 불화나 이념 전쟁이 아닌.

인류 역사에 기록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초월자들에 의해 말이다.

지금껏 게헨나와 우호적인 관계를 맺던 국가는 대체로 친미, 친서방, 자유주의 국가.

반대로 반미, 반서방, 제2세계에 속하는 국가는 추방자 혹은 공적과 연결되어 있었다.

따라서 마녀의 존재를 세계에 공표하고 패권을 쥐겠노라 선언한 헥센나흐트의 선언은 게헨나와 대립구도를 그리게 되었으며, 그 파장은 전 세계적인 알력으로 불거졌다.

세계는 다시 두 조각으로 갈라졌다.

각기 다른 진영을 잡아먹고 새 시대의 패권자로 거듭나기 위해 마녀와 첨단 과학 기술을 앞세워 20여 년에 걸친 대규모 전쟁을 벌였다.

많은 마녀가 죽었고, 그보다 더욱 많은 인간이 죽었다.

유사이래 가장 많은 인간을 죽인 전쟁보다 수십 배는 더 되는 희생자를 나은 전쟁의 결말이 지금 이곳에서 결정지어질 것이다.

제3차 세계대전의 승패를 가를 전환점.

그 전장이 된 곳은 얄궂게도 태평양 전쟁의 중대한 분기점이 된 미드웨이 환초 인근.

승리를 거머쥐는 진영은 제해권을 탈취하게 될 것이며, 향후 이어질 전쟁에서도 압도적인 우위를 점할 것이 분명했다.

-콰앙! 콰아앙!

-쿵! 쿠구구궁!

사방에서 빗발치는 대(對)마녀 사양의 현대병기와 자성마법과 곳곳에서 빛을 발하다 사라지는 마력 반사광.

그것은 현대의 전쟁이라기보다는 스페이스 오페라 영화 속 우주 전함들의 대규모 회전을 연상케 했다.

수 시간마다 하나의 항모전단이 수장된다.

수 분마다 최신식 전투기 편대가 격추된다.

수 초마다 일개 대대가 차가운 바다 밑으로 가라앉는다.

투명하게 찰랑대던 해수면은 어느덧 기름과 피를 장작 삼은 불길로 뒤덮였다.

저 수평선 끝에서마저 하늘까지 높게 치솟은 검은 연기가 일렁인다.

이 치열한 전장에선 마녀의 목숨도 군인의 것보다 특별히 고귀하지 않았다.

어떤 마녀는 마력을 마력이 무리하게 소진된 상태에서 순항미사일에 탑재된 전술핵에 폭사했다.

어떤 마녀는 마법에 난도질을 당해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절명했다.

그럼에도 전장에서 게헨나 측 대마녀의 활약은 독보적인 것이었다.

검 한 자루를 쥐고 적진을 향해 내달려 적진의 항모를 일도양단한 마녀가 있다.

반경 수 킬로미터 미터에 꽃비를 흩뿌리며 적대 마녀를 궤멸시킨 마녀가 있다.

천사의 모습으로 변하여 아군 진영으로 쏟아지는 포격을 넓게 방어하는 마녀가 있다.

하지만 그건 헥센나흐트 측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규모 혼팅으로 인해 이성을 잃은 파일럿은 아군 함대를 향해 전투기를 몰아 수직으로 내리꽂혔다.

지독한 저주에 휩싸인 군인들이 배를 버리며 바다로 뛰어들었다.

하늘에서 빗발치듯 쏟아진 쇠말뚝이 갑판부터 하부까지 꿰뚫으며 수 척의 구축함을 침몰시켰다.

“으….”

길게 이어지는 이명.

반파된 순양함 위에 처박혀 있던 시우는 나지막한 신음을 토해내며 몸을 일으켰다.

그림자로 직조한 검은 갑주는 움푹 찌그러졌다.

잠시 정신을 잃은 와중에도 놓지 않은 붉은가지가 헐거워진 악력 속 손바닥에서 데구루루 구른다.

“쿨럭.”

기침에는 걸쭉한 혈액이 섞여 있었기에 투구를 잠시 해제하고 옆에 핏물을 내뱉었다.

뭘 맞았는지 제대로 기억나지도 않는다.

반사적으로 왜곡장을 펼쳐 충격파를 흘려보냈고 여분의 충격 역시 최대한 갑주로 흡수하려 들었지만….

꼴을 보아하니 간신히 목숨을 보전한 것에 그친 모양이다.

“어떻게…. 된 거지…?”

뇌가 쪼개지는 듯한 두통.

붉게 변한 시야 너머로 저 멀리 점이 보인다.

점에 불과했던 그것은 순식간에 또렷한 형태를 갖추었다.

그 정체는 러시아 측에서 개발에 성공한 대마녀 사양의 순항미사일.

마력원을 감지하는 센서를 탄두에 탑재한 추적미사일은 음속의 수배 넘기는 수평비행을 통해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온다.

어지간한 마녀라면 육안으로 식별한 순간 회피기동이 무의미하다는 걸 뜻한다.

난전 중 사방에서 이런 무기가 쏟아지니 제아무리 마녀라 해도 피해를 입을 수밖에.

“이런…!”

시우는 황급히 몸을 일으키려 했으나 충격이 가시질 않았는지 거동이 느리다.

급한 대로 리본을 활용해 중간에 요격하려 들었으나 그것마저도 느리다.

이렇게 무방비한 상태에서 콘크리트 벙커마저 일발에 붕괴시키는 미사일에 직격당했다간 끝이다. 

그 절체절명의 순간.

눈 한번 깜빡한 사이 시우가 나뒹굴던 순양함까지 도달한 순항미사일이 공중에 우뚝 멈춰 섰다.

——쾅!

코앞에서 굉음을 내며 폭발한 미사일을 감싼 것은 보랏빛이 감도는 투명한 장막.

시야를 새하얗게 만드는 광량이 망막을 태우는 듯하다.

-슈우우우욱!

바람이 빨려 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장막 안에서 극점을 향해 소멸된 폭발.

“오딜 님! 오데트 님!”

시우는 감격한 표정으로 오딜 제머나이와 오데트 제머나이를 바라보았다.

기묘한 조화로 시우에게 향하던 미사일을 막아낸 것은 다름 아닌 쌍둥이였던 것이다.

“조수님! 뭐하는 거야! 정신 차려!”

“언니! 내가 조수님을 살필 테니 엄호해 줘!”

전장에 어울리지 않는 드레스를 입은 쌍둥이의 표정은 앳된 기색 없이 늠름한 기품이 흘렀다.

마치 지금은 세상에 없는 알비레오와 데네브를 보는 것처럼 말이다.

그들은 더 이상 견습마녀가 아니었다.

백작의 명예에 걸맞게 게헨나 진영에 서서 무수한 전훈을 올리는 22 위계, ‘쌍둥이자리의 마녀’인 것이다.

눈을 감은 오데트가 시우의 몸에 일시적인 활력을 불어넣는 동안….

-쿠구구구궁!

“노래하라!”

오딜은 군용기가 투하한 집속탄 수만발을 공중에서 격발시킨다.

한 번의 위기는 넘겼으나, 그렇다고 해서 이 낭패한 순간이 완전히 해소되는 건 아니었다.

“하아…. 하아….”

오딜도 오데트도 소모가 극심하다.

심지어 오딜 쪽은 찢어진 이마의 출혈이 심한 탓에 얼굴 반쪽이 피투성이였다.

“전황은 어떻게 된 거죠? 무전은 되나요?”

“아니, 마법적으로나 기계적으로나 주위의 재밍이 너무 강해. 그래도 얼추 상황은 말해 줄 수 있어.”

시우는 애써 냉정을 찾으며 오딜에게 물었다.

기억나는 것은 게헨나 진영이 이번 전투에서 채택한 전술이 삼면 포위 전술이라는 것.

그리고 헥센나흐트 측이 이를 시간차 각개격파로 응대했다는 것까지다.

“솔직히 말해서 좋지 않아. 헥센나흐트 놈들이 예비전력까지 동원해서 기습적인 전면 공세를 펼치는 중이야.”

“티페레트 공작님도 아멜리아 부교수님도 분전 중이시긴 하지만…. 우측면을 파고든 적 5함대가 중앙돌파를 시도하고 있어요.”

“조수님, 더 싸울 수 있겠어?”

“언니, 그런 질문할 때가 아니야. 여기가 마지노선이야. 더 물러설 수 없어.”

“당연히 싸울 겁니다.”

오데트의 우려에 호기롭게 창을 쥔 시우였으나 이내 몸에 힘이 쭉 빠지는 것을 느꼈다.

정말 싸울 수 있을까?

무거운 침묵이 흐른다.

게헨나의 마녀들이 헥센나흐트의 성장을 좌시하지 않고 전쟁 초반부터 적극적인 교전에 나섰더라면.

추방자들을 조금 더 많이 회유해 게헨나 진영의 일원으로 삼았더라면.

이런 뒤늦은 후회를 곱씹는 중.

-쿠구구궁! 쾅!

선체 측면을 얻어맞은 아군 측 항모 한 척이 검은 불길에 휘감겨 침몰하는 것이 보인다.

“아아….”

패배.

오데트의 탄식과 함께 애써 외면하려 했던 선명한 두 글자가 뇌리를 스친다.

이를 악물고 마지막까지 항전을 다짐하던 오딜도 절망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가라앉은 건 군함뿐만이 아니다.

전세의 판도를 좌우할 대마녀의 숫자 역시 턱없이 부족해져 있었다.

그에 비해 점점 헥센나흐트 측 마녀의 기척이 가까워진다.

“여기까지인가 보네….”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도 포기를 모르던 오딜이 탄식처럼 한숨을 내쉰다.

“이럴 줄 알았다면 전쟁이고 뭐고 다 내팽개치고 조수님이랑 꽁냥꽁냥이나 할걸.”

“맞아, 전쟁에서 져도 구석에 잘 숨어 살았으면 한동안 괜찮았을 텐데.”

시우는 더는 움직일 수 없을 것 같던 몸을 강제로 일으켰다.

찌릿거리는 통증이 척추를 관통한다.

어쩐지 몸이 좀처럼 움직이질 않더니 아마도 등뼈가 박살 난 모양이다.

“마음에 없는 말씀 마세요. 어차피 오딜 님도 오데트 님도, 그런 성격 아니시잖아요.”

“말이 그렇다는 거지. 하여튼 조수님, 노예 시절에 비해 너무 건방져졌다니까?”

“맞아요, 저희 처음 만났을 때는 울먹거리면서 위험한 실험은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었는데.”

“제가 언제 그랬습니까?”

“그랬거든?”

“그랬거든요?”

상황에 전혀 어울리지 않은 농담.

세 사람 사이에 작은 웃음이 번졌다.

아마도 마지막 순간이라고 생각하기에 억지로 이어가는 낙천적인 대화였다.

“이럴 때…. 르뤼에가 있었더라면….”

“오데트, 허튼 소리하지 마. 르뤼에가 없었으면 이 전쟁은 진작에 졌던 거였어. 언제까지고 기댈 수는 없는 거였잖아.”

실없는 대화를 이어가던 세 사람은 동시에 피부에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락온을 감지하는 RWR처럼 원거리 마법의 저격 대상이 되었을 때 느낄 수 있는 전조.

하나둘도 아닌 십수 개의 마법 세례가 모든 기력을 소진한 세 사람을 향해 조준되고 있었다.

“도망치세요! 제가 어떻게든 막을 테니까!”

“여기서 어떻게 도망치겠어.”

“저흰 제머나이 백작이라구요.”

-피유우우우

유성우처럼 하늘을 수놓는 형형색색의 마포와 천변만화한 자성마법.

그 앞으로 무모한 방어를 펼치기 위해 한 걸음을 내딛는 세 사람.

그때.

“깊게 잠겨라.”

들릴 리가 없는 이의 영창이 들린다.

고대부터 두려움을 사던 옛 마녀이자, 바다 위에서는 최강을 자부할 수 있는 ‘심해의 마녀’의 영창이.

수백 미터씩 몇 겹이나 솟아난 파도가 적성 세력의 융단포격을 막아낸다.

하얀 물보라가 일질지언정 파도의 방패는 깨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폭력적인 힘으로 포격을 모래성처럼 쓸어버리며 다시 해상의 일부로 돌아갔다.

시우와 쌍둥이는 떨리는 눈으로 바다를 보았다.

“짐의 영토를 흙발로 짓밟고, 짐의 친우와 국서를 핍박하는 역적들아.”

절반 쯤 수면으로 모습을 드러낸 채 바다를 가르는 개조원잠 ’아쿨라’.

선수에서 팔짱을 끼고 해군 제독의 하얀 망토를 펄럭이는 르뤼에가 오만한 표정으로 적을 굽어본다.

비밀리에 적의 배후를 쳐 헥센나흐트의 중앙 함대를 궤멸시킨다는 작전을 성공하고, 허물어지는 게헨나 진영 우익을 보조하기 위해 합류한 르뤼에 누켈라비.

“네놈들의 너절한 목숨으로 죗값을 치르려거든 몇이나 필요할지, 지금부터 헤아려보도록 하거라.”

그 모습은 실로 패배를 모르는 바다의 여왕이자 진정한 지배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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