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800)화 (882/917)

#800

1.

키스의 효과 덕분인지 멀미에 시달리던 아멜리아가 침실에서 잠들었고.

샤워를 끝낸 샤론은 르뤼에와 나란히 안마 의자에서 앉아 두피 마사지 기계를 착용한 채 뻗었다.

따라서 라운지에 나선 시우를 반겨주는 건 영 생뚱맞은 차림의 도로시였다.

하얀 치마, 하늘색이 감도는 반소매 셔츠, 목에 리본처럼 감겨있는 스카프.

어디서 구해온 건지 스튜어디스 복장을 하고 있었다.

“신시우 고객님 저희 마녀 항공을 이용해주셔서 영광입니다.”

“뭔가요?”

“편안한 여행이 될 수 있도록 오늘도 최상의 서비스로 모시겠습니다~”

갑작스러운 코스프레에 당황하는 시우의 모습에도 사근사근한 눈웃음을 흘리며 배꼽 인사를 하는 도로시.

실로 당황스러웠다.

‘스튜어디스’하면 뭔가 환상을 품기 쉽지만, 사실 직무가 안전관리와 고객서비스인 만큼 복장 자체는 선정성과는 영영 거리가 멀었다.

애초에 시우는 스튜어디스라는 직업 자체에 딱히 환상을 지녀본 적도 없었다.

그러니 문제가 되는 건 도로시다.

그녀의 터질듯한 볼륨을 모두 감추기에 셔츠 한 장은 너무나도 부실했다.

한번 숨을 크게 들이쉬면 단추가 펑펑펑 터져나갈 것 같다.

정작 도로시는 그것마저 노렸다는 듯 싱글벙글 웃고 있었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거 아시나요? 영국 항공사의 스튜어디스를 상대로 한 설문조사 결과. 어머나~ 무려 17%나 되는 승무원이 비행 중 승객과 은밀한 관계를 맺은 경험이 있다네요?”

“유니폼은 어디서 구하셨어요?”

“어디서 구했는지 알려 드릴 테니, 저랑 조용한 곳으로 가실래요?”

갑작스런 코스프레 이후 상황극.

아무래도 도로시 누님은 이런 걸 좋아하시는 모양이다.

“그쯤 해라 도로시.”

하지만 유혹에 넘어갈지 말지 고민하기도 전에 차가운 목소리가 도로시의 추파를 잘라냈다.

린네였다.

시선을 그쪽으로 돌린 시우는 더한 당혹감에 젖을 수밖에 없었다.

“린네 님?”

기다렸다는 듯 도로시 옆에 가슴을 펴고 선 린네.

분명 10분 전만 해도 기모노를 입고 있던 그녀 역시 승무원 차림이었기 때문이다.

“낭군, 어떠한가.”

도로시가 입는 것을 보고 승부욕에 차올라 갈아입었음이 분명하다.

린네의 추진력과 방향성은 누구와도 비교불허할 정도로 일직선이니 말이다.

“고, 고우십니다.”

“다행이다.”

기장을 제외하면 다른 인원 없이 비행하던 기내에 갑자기 등장한 두 스튜어디스.

세상에 전용기는 많겠지만 그 어떤 갑부의 전용기를 뒤져봐도 이런 호화로운 미녀가 봉사하는 곳은 없을 것이다.

분명 이 두 사람이라면 어떠한 요구에도 순순히 극상의 기내 서비스를 제공하겠지.

아주 잠깐이지만 도로시 마망의 맘마통을 쭙쭙 빨며 린네의 현모양처 펠라치오를 받는 상상이 스쳐 지나갔다.

…몸이 너무 건강해도 탈이다.

“장난들 그만 치고 자리에 앉게나.”

설마 스승님까지? 라는 생각에 그쪽을 보았으나, 그건 아니었다.

그녀는 여전히 당장 사막에 던져놔도 문제없을 만큼 준비된 옷차림이다.

다만 굉장히 언짢은 표정으로 두 사람을 노려보고 있었다.

“알겠어~ 공작님은 화내지 마. 무섭단 말야.”

“낭군을 기쁘게 하는 일이 장난이라니. 첩으로서의 자각이 부족하다.”

“누가 첩이란 겐가? 시우, 그대도 이쪽으로 오게나.”

“넵.”

세 사람이 둘러앉은 테이블에는 뭔가 복잡한 기계 장비가 놓여있었다.

어쩐지 첩보 영화를 연상케 하는 장면에 시우는 또 감탄했다.

마녀가 되고 난 이후로는 정말이지 평생 한 번 경험하기도 힘든 일을 하루마다 하게 되는 것 같다.

“오, 이건 뭔가요?”

“이건 러기드 노트북이고, 이건 추적방지 모뎀이야. 그보다~ 이렇게 이쁘게 차려입었는데 이런 기계가 더 좋아?”

“그런 건 아니고 신기해서 말입니다.”

“그대도 앉게. 알아두면 좋을 정보들이네.”

엘로아, 린네, 도로시 세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있는 이유는 정보 교환을 위해서였다.

현재 도로시와 린네가 시우의 연인이라는 울타리에 들어서며 헥센나흐트를 등졌다.

두 사람 모두 구 클리포트의 중역이었으므로 엘로아조차 쉽게 얻을 수 없던 정보들을 가득 가지고 있었다.

특히 도로시는 거대 무기 밀매 조직을 이끌었던 만큼 정보 수집에 심혈을 기울이던 쪽이었다.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현세의 사업처는 언제든 쉽게 공격당할 수 있는 보급선이니 적의 숨통을 마주 쥐는 것 역시 중요한 까닭이다.

그 결과 각종 공적의 자금 기반이 되는 사업처, 헥센나흐트의 보안상 취약점, 각국 정·재계 인사의 약점과 로비리스트에 관한 자료를 수 테라바이트씩 지니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을 엘로아에게 넘겨주었으며 이에 엘로아 역시 위치포인트로부터 받은 정보를 함께 공유했다.

개별로 존재할 때는 별다른 의미도 신빙성도 없는 정보라도 두 개의 다른 시선에서 비교 분석한다면 유의미한 성과를 낼 수 있으니 말이다.

“미국 역시 독자적으로 호문쿨루스에 대적할 연구를 진행 중. 이건 기정사실 같군.”

“맞아~ 밖으로는 신무기 개발이니 노후장비교체이니 하지만, 지난 5년간 2조 달러에 달하는 극비 예산이 정체불명의 연구지원비로 투입됐어. 아니라고 보는 게 더 힘들지.

서유럽도 사정이 비슷해 가뜩이나 가시방석에 앉은 군 예산을 무리해서라도 쥐어짜는 게 보이잖아?”

“제2세계 쪽은 어떠한가?”

“러시아나 동유럽 쪽은 서방진영과 크게 다를 것 없어. 하지만 제일 중요한 중국이 마녀사회와 교류가 워~낙에 없는지라 원체 정보가 불투명해서 말이지. 린네 너는 뭐 짚이는 거 없어?”

“…헥센나흐트가 중국 국가안전부와 접촉 중이라는 사실을 금화의 마녀에게서 들었다. 헥센나흐트에 공급되는 사형수 역시 절반 이상이 그쪽에서 온 것이다.”

“통상적인 토벌 의뢰는 아니라는 거지?”

“기술이전과 연구협력에 가깝겠지.”

대충 이런 대화를 통해 말이다.

지금까지는 대화의 절반 정도밖에 이해하지 못한 까닭에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있었지만 모처럼 관심이 가는 주제였다.

“스승님, 각 국가가 호문쿨루스에 대한 자구책 마련을 시도한다는 건가요?”

“그렇다네.”

창조의 마녀가 만들어 낸 호문쿨루스는 본래 유물을 지키기 위한 파수꾼이었다.

일설에 따르면 마녀의 개체 수를 조절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마녀에 대한 공격성을 지닌 채 창조했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해마다 휴면기에서 깨어나는 개체가 늘어나고, 이에 대처할 마녀는 줄어들고, 모종의 기능고장이라도 일어났는지 인간까지 먹잇감으로 삼게 된 호문쿨루스는 인간 사회에선 대책 불가능한 재앙 그 자체이다.

사냥시 이면결계를 펼치며 활동하는 까닭에 현존하는 기술로는 대처가 어렵고, 인명을 해치는 것뿐만이 아니라 ‘연’까지도 먹어치우는 바람에 정확한 피해규모를 산출하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이제껏 국가 정부는 마녀와 협약을 맺음으로써 이에 대처해왔다.

이러한 사실을 미루어봤을 때 ‘자구책 마련’이라는 발상 자체는 당연하였다.

국제사회의 질서 유지를 오롯이 변덕스러운 개인에게 맡기는 건 미봉책일 뿐이니 말이다.

그러니 시우가 의문으로 삼은 건 이것이었다.

“그게 되나요?”

“안될 건 없지. 과학도 마법도 결국엔 세계의 ‘설정’을 마이닝 해서 응용하는 학문인걸.”

마녀이며, 동시에 과거 수학자였던 시우인 만큼 도로시의 말을 단박에 이해했다.

학문.

특히 과학이란 정확히 말하자면 유에서 무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존재했던 설정.

중력이라는 힘이 물체를 빨아들인다는 설정.

빛보다 빠른 물체는 존재할 수 없다는 설정.

복수의 화합 원소가 결합하면 특정 성질을 지닌 새로운 원소가 등장한다는 설정.

마법도 크게 다르지 않다.

결국 모든 마법에는 규칙이 있고 인과가 있다.

마법이건 과학이건 모두 기존 세계에 존재하던 ‘설정’을 공식화 및 활용하는 것에 불과하다면 인류의 지성은 언젠가 마법에까지 닿을 것이다.

“헥센나흐트 일도 있고, 케테르 공작도 사라지고. 굉장히 혼란스러워지겠네요…. 사람들이 호문쿨루스에 대처할 방법을 찾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좋은 일인 것 같기도 한데…. 마냥 좋다고 말하기도 어렵겠네요.”

호문쿨루스에게 대적할 방법이 생긴다면 전 세계에서 이유 없이 죽어나가는 사람도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호문쿨루스와 대적할 수 있다는 건 곧, 마녀에게 대적할 방법을 찾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리고 적어도 시우가 알기로 인간의 본성은 지배와 정복에 있었다.

만약 마녀의 존재와 권력을 암묵적으로 묵인해 줄 필요가 없어진다면.

그때는 또 어떤 혼란이 일어날지....

“벌써 그렇게 걱정할 것은 없다네.”

그런 걱정을 엘로아는 일축했다.

“인간이 호문쿨루스를 대적할만한 능력을 쌓는 데는 앞으로 수백 년은 족히 더 필요할 걸세.”

“만약 수백년 뒤에 그 능력을 얻는다면요?”

“지금과 다를 것 없네. 올바른 일을 행해야지.”

세상이 어떻게 바뀌건 자신에게 떳떳한 일을 할 수 있다면 된다는 스승님의 명쾌한 답변.

시우도 괜히 번져오던 심란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어차피 그때 가서 생각할 일이다.

스승님의 말마따나 그때까지 잘 살아있을지도 알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는 동안 시우와 일행을 태운 전용기는 울란바토르 칭기즈칸 국제공항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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