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 도시-880화 (880/917)

#874

1.

가챠 몹 호문쿨루스가 주는 전리품 중 하나 정보가 담긴 묘안석

메모리얼 스톤이라고도 불리는 이것은 가장 기댓값이 낮은 물건에 속했다.

어떤 내용이 기재되어 있을지도 모르며 정보라는 건 대개 유통기한이 존재하는 까닭에 발굴해봐야 의미 없는 경우가 많은 까닭이다.

가령 이 묘안석엔 괴수 고릴라의 시점에서 바라본 ‘기억’이 단락적으로 잘린 채 나열되어 있었다.

어떤가?

전지적 호문쿨루스 시점으로 보는 POV 다큐멘터리라니.

목숨을 걸고 싸운 대가치고는 달갑지 않을 만한 상품이다.

급수를 매기자면 5등 상쯤 되려나?

그러나 아주 운이 좋았다.

도로시가 얻어낸 다큐멘터리는 아주 유의미한 샘플러가 되어 주었으니 말이다.

“이면 결계 내부지만 얼핏 보이는 별자리의 위치로 위치를 가늠해 봤어.”

“어디지?”

“콜롬비아 인근인 것 같아.”

린네와 엘로아는 숨을 죽인 채 도로시가 보여주는 영상을 예의주시했다.

드넓게 펼쳐진 밤하늘과 그만큼이나 드넓은 황무지.

광야라는 평가가 아쉽지 않은 험지 위에 각기 다른 괴형의 이생물들이 저마다의 동체를 꿈틀거리며 존재감을 과시한다.

외형도, 특징도, 형체도 어느 것 하나 조화되는 것이 없는 괴수들.

그러나 그것들은 마치 초개체라도 된 것처럼 저마다의 자리를 지킨 채 유유히 자리를 지켰다.

“괴이하다.”

“나도 봐도~ 봐도~ 적응이 안 되더라니까? 저만한 호문쿨루스가 뭉쳐있다니 이상하잖아? 공작님 생각은 어때?”

“…예삿일이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네. 그러니 자네에게 해석을 부탁한 것이지.”

호문쿨루스에 대한 연구는 아직도 미진하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껏 관측된 패턴에 의하면 호문쿨루스는 무리를 이루지 않는다.

활동기가 아닐 때는 아공간에 몸을 감추며 상주형이건 배회형이건 저마다의 구역을 지킨다.

“일단 좀 더 봐봐.”

도로시는 팔짱 위에 가슴을 얹은 채 영상을 향해 턱짓했다.

후욱후욱 귓가에 들리는 괴수 고릴라의 숨소리.

족히 십수 마리는 되어 보이는 괴수 무리 중 다소 외곽에 있었기에 그 시야는 무리에 속한 개체를 찬찬히 비추었다.

“유명한 놈이나 면식 있는 놈이 있어?”

엘로아의 눈썹이 일그러지는 걸 본 도로시가 물었다.

“하나둘이 아닐세.”

일단 차분하게 말을 꺼냈으나 엘로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군집하였으되 정렬되지 않아 어중이떠중이처럼 보이는 괴수 떼는 위치포인트의 DB에 기록된 소위 ‘네임드’들의 향연이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자면 키가 3M에 달하는 반인반수 ‘웨어울프’.

너무 많은 매체에서 다뤄져 두려움보다는 식상함으로 다가오는 전설 속 형태 그대로이다.

하지만 웨어울프의 육체 능력과 재생력은 원전의 그것을 능가한다.

조그마한 살 조각 하나라도 남아있다면 어느새 재생해버리는 굶주린 살육귀.

눈알의 개수는 22개.

예를 들자면 낡아빠진 헝겊을 인형처럼 기워 칼날 위에 세워 둔, ‘허수아비’.

놈은 소멸과 현현을 반복하는 괴이한 속성의 호문쿨루스이다.

이러한 특성 탓에 확정타를 맞추기는 어렵고 갑작스러운 기습은 위협적이다.

위험도의 척도가 되는 눈알의 개수는 24개.

예를 들자면 배경처럼 하늘을 부유하는 직경이 1km의 고깃덩어리 구체, ‘퀸’.

전투 상태에 들어선 퀸의 육편은 무한히 분열하며 지상에 포자를 뿌린다.

수 없이 쏟아지는 물량공세와 거대한 동체와 마력량에서 기인한 강력한 배리어 성능 탓에 저만한 덩치로도 100년 가까이 토벌을 면해왔다.

눈알의 개수는 26개.

그 외에도 하나하나 정예병을 꼽은 것처럼 상대하기 까다로운 호문쿨루스들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새삼 호문쿨루스에게 지성이라도 생겼다는 겐가?”

심지어 각기 활동주기가 겹치지 않는 개체도 많았다.

가령 웨어울프는 약 50년마다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데 놈이 마지막으로 자취를 감춘 것이 겨우 4년 전이다.

“아니야 공작님, 더 봐줬으면 하는 게 있어.”

혼란스러워하는 엘로아를 보며 톡톡 빨리 감기를 누르는 도로시.

“공작님, 이런 거 본 적 있어?”

마침내 도로시가 보여주고 싶었던 장면 중 하나가 등장했다.

화면의 한가운데, 더불어 무리의 한가운데를 고고하게 거니는 건 한 마리의 거대한 사슴이었다.

호문쿨루스 답게 네 발로 우아하게 걷고 있으면서도 3층 높이는 될 법한 동체.

고목의 가지처럼 세차게 뻗은 뿔은 정말 가지라도 된 양 야생화가 탐스럽게 매달려 있었으며, 짐승 특유의 날렵한 근육이 도드라진 가죽 위로는 털 대신 잔디와 이끼 따위가 치렁치렁 늘어졌다.

검은 자위가 없는 하얀 눈과 숨결마다 푸르스름하게 번지는 안개는 괴수보다는 영물(靈物)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했다.

“없네, 하지만….”

액정 너머일 뿐이다.

그마저도 지능이 낮은 괴수의 시점을 복원한 조악한 영상.

그러나 무수한 호문쿨루스를 토벌해 온 사냥꾼 엘로아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무척이나 위험한 놈이군.”

저 사슴에게서는 일반적인 호문쿨루스와는 궤를 달리한다.

전설 속 요르문간드나 사상 최악의 호문쿨루스였던 적기사에 필적한 위험도를 감지했다.

실제로 계속된 영상에서 이 수사슴은 무리를 통솔한다는 느낌마저 풍겼다.

도도한 발걸음으로 나아갈 때마다 물결이 갈라지듯 주위에서 배회하던 괴수들이 자리를 비켜주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모든 의혹에 확신을 더해줄 한가지 장면.

——!!!

무리를 헤집던 사슴이 별안간 하늘로 고개를 올린 채 길게 울었다.

영묘한 외견만큼이나 요사스러우리만치 서글프게 울리는 울음이 밤하늘에 퍼지자.

“쿠오오오!”

“삐이이익!”

“빼애애액!”

“끼룩끼룩끼룩!”

그 많은 수의 호문쿨루스가 하울링에 화답하듯 울음을 내뱉는다.

단, 이 영상의 주인공인 고릴라는 재빨리 몸을 돌리며 도망치듯 자리를 벗어난다.

아마도 이 영상이 일행의 손에 들어오게 된 이유일 것이다.

“내가 해석해 낸 건 여기까지야. 나머지 사본은 수비학파 쪽으로 보내놨어.”

도로시의 프레젠테이션이 끝났지만 다들 할 말을 잇지 못했다.

각기 머릿속이 복잡한 것이다.

세상은 넓고 예상외로 흘러가는 곳이니 새삼 예기치 못한 광경이 나왔다 당황할 것 없다.

수백 년을 살아도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게 세계 아니던가?

하지만 일련의 뒤틀린 흐름.

지나치게 빈번한 호문쿨루스의 등장, 기록에 없던 호문쿨루스의 등장에 이어 호문쿨루스를 통솔하는 수사슴의 등장이라.

“공작님 저거 토벌할 수 있을까?”

“무리네.”

“우리 셋이라면?”

“그래도 무리일 걸세.”

이번엔 도로시가 살짝 충격을 받은 듯했다.

린네와 도로시만 해도 22 위계이다.

유유자적 현세를 살아도 어지간한 위험엔 눈하나 깜짝할 필요 없는 강자 반열에 든 마녀다.

그리고 엘로아는 그런 강자들이 두려움에 떨며 도망치게 만드는 그 ‘분홍 공작’이다.

그런 셋이 힘을 합치는데 불가능하다니.

“하나. 수사슴이 호문쿨루스 무리를 통솔하고 있다는 걸 전제로 이야기하겠네. 난 다수 전에는 적합하지 않네.”

“그건~ 알지만….”

“둘, 호문쿨루스의 지능은 그다지 높지 않네. 서로의 활동 영역이 겹쳤을 때 먼저 물러서는 것도 보다 약한 쪽이지. 저들의 복종이 그러한 ‘힘의 논리’에 의한 것이라면 놈의 위험도는 적기사와 비교해도 모자라지 않을 걸세.”

“…….”

“셋, 만약 놈들이 연계하여 무리사냥을 시도한다면 당장은 도주 이외의 대처법을 떠올릴 수 없네. 마지막으로, 놈들이 어디 있는지도 확실치 않지 않은가?”

“그건 그래.”

도로시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소파에 등을 눕혔다.

“하아~ 요즘 다시 좀 마음에 평온이 찾아오나 했더니…. 이젠 웬 잡것들까지 난리네.”

“최대한 빠르게 조사에 돌입해 대처를 마련하는 게 중요할 것 같네. 먼저 공문을 작성해 각 지부에 해당 사실을 알리도록 하지.”

헥센나흐트며 시우에게 내려진 예언이며 아무리 담대히 있으려해도 한숨이 나오는 건 별 수 없었다.

“조사는 내가 가면 되겠는데?”

“조사는 내가 가겠다.”

도로시는 발랄한 어조로 린네는 담백한 어조로.

동시의 말을 꺼낸 두 사람의 눈이 잠시 마주친다.

그것만으로 서로의 생각을 이해한다.

린네도 도로시도 같은 세계에 몸을 담았던 마녀들인 것이다.

비록 공적의 길을 걸었지만 남은 삶은 한 남자를 위해 바치기로 마음먹은 두 사람이다.

하지만 그건 단순히 마음만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지금은 에렐림 공작과 티페레트 공작의 협약으로 형벌 부대의 부대원이라는 대접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도로시와 린네는 공적의 꼬리표가 따라다닐 것이다.

그건 마녀의 운명만큼이나 벗어날 수 없는 낙인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만큼 격변하는 세상이다.

그리고 격변하는 세상이 어떤 변화를 낳는지 린네도 도로시도 알고 있다.

과거 노예, 가축, 상품 쯤으로 분류되던 흑인이 미국의 대통령이 되기도 하지 않는가?

헥센나흐트를 배반하며 큰 피해를 줬고 많은 정보를 제공했다, 라는 게 정상 참작 사유가 된 것만 해도 마녀사회가 불과 몇 년 전과 다르다는 걸 의미한다.

언젠가 지은바 죄에 대해 속죄하고 시우의 옆에 나란히 서겠다는 야심을 저마다 품고 있는 것이다.

“물론~ 맨입으로는 조금 곤란해. 적어도 한 달 독점권 정도는 포상으로 걸어줘야겠어.”

“…….”

라는 듯한 분위기를 팍팍 풍기는 두 사람을 보고도 엘로아는 마음이 개운치 않았다.

“너무 위험한 일일세.”

두 사람 모두 솔직하지 못한 구석이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

제각기 다른 이유로 위험한 일을 도맡으려 한다는 걸 말이다.

그리고 아마도 그 이유의 중심에는 시우가 있겠지.

“그렇다고~ 공작님이 콜롬비아를 갈 수는 없잖아?”

어찌됐건 린네도 도로시도 시우의 연인.

그런 둘을 자칫 사지가 될지 모르는 곳에 밀어 넣는 것이 옳은 일 일까?

잠시 고민하던 엘로아지만 숙고의 시간은 짧았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조차 대처를 마련하기 위한 기회가 흘러가고 있을지 모른다.

결국 누군가는 위험을 부담해야 한다는 것.

“이곳 지부도 아직 자리를 잡지 않은 상황일세. 둘 다 자리를 비울 수는 없네. 둘 중 한 명이 가야 하겠군.”

린네와 도로시의 시선이 재차 부딪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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