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864화 (864/917)

#864

1.

“저도 쪽지를 받았어요….”

“그렇군요.”

아마도 진지한 대화의 장이 될 것 같아 무거운 마음으로 찾았는데, 짧게 대화해 본 결과 작은 장모님도 쌍둥이의 쪽지를 받고 이곳으로 향한 모양이다.

삼자 아니, 사자 대면이라.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모를 문제를 해결하기엔 적격인 방식이리라.

다만 의문스러운 건 현관부터 쭈욱 늘어진 이 꽃잎이다.

가뜩이나 화려한 별장 안의 장식은 어쩐지 이벤트, 혹은 프러포즈의 느낌을 물씬 풍겼으니 말이다.

-바스락

시우의 눈이 위를 향했다.

아주 작고 미세한 인기척이었지만 워낙에 고요한 탓에 시우의 인지 영역 안에 잡혔다.

“아무래도 위쪽으로 가야 할 것 같은데요.”

“쌍둥이가 위에 있나요?”

“아마도요.”

꽃잎은 1층에만 놓여 있는 게 아니었다.

2층 침실로 향하는 계단에까지 융단처럼 수북이 쌓여있다.

“어떻게 된 걸까요?”

“글쎄요….”

영문을 알 수 없어 당황하는 데네브와 시우.

침실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 시우는 기시감을 느꼈다.

“어, 조수님. 왔어?”

“오셨어요, 스승님?”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고 팔짱을 낀 오딜과 오데트.

어쩐지 타로 타운행 약속을 일방적으로 파투내었던 당시 둘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아마도 시우와 데네브가 들어오는 소리를 듣자마자 연출한 위압적인 자세겠지.

옆을 슬쩍 보자 작은 장모님은 곧장 슬픈 얼굴이 되어 있다.

“스승님.”

“…….”

“스승님은 조수님을 좋아하시죠?”

“애, 애들아….”

“솔직하게 답해주세요.”

“여기서도 거짓말하시면 화낼 거에요.”

쩔쩔 매는 데네브.

그 모습을 보다 못한 시우가 나섰다.

이 문제는 비단 작은 장모님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녀에게만 지탄의 화살이 쏟아지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오딜 님, 오데트 님 저도 책임이….”

“조수님은 빠져있어.”

“맞아요, 지금 작은 스승님이랑 대화하잖아요.”

서릿발 같은 기세에 시우도 찔끔했다.

지은 죄가 있다 보니 함부로 말도 꺼낼 수 없었다.

“말씀해주세요, 스승님.”

“조수님 계속 만나고 싶으시죠?”

“절대로, 절대로 거짓말하지 마세요.”

“저희도 그 정도는 다 아니까요.”

“…….”

잘못된 일이라는 걸 알아도.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는 걸 알아도.

멈출 수 없는 마음이 있다.

우물쭈물거리던 데네브는 끝내 구슬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답변을 대신했다.

“대답 잘 들었어요. 다음은 조수님.”

“조수님은 작은 스승님을 어떻게 보시나요.”

“어떻게 보냐뇨? 그야….”

“여자로서 어떠냐는 질문을 하는 거야.”

“매력적이냐고요.”

이번에는 조금 더 과감한 취조였다.

머릿속 모든 사고를 입 밖으로 내게 하는 ‘자백의 시’가 포함된 질문인 것이다.

마음 같아서는 풀어버리고 싶었고 그럴 능력도 있다.

하지만 그랬다간 쌍둥이가 노발대발할 것이 분명하다.

이렇게 따로 자리를 주선했다는 것부터가 대화로 풀어나갈 의향이 있다는 의미.

시우는 그렇게 해석했다.

“여자로서 어떠냐를 묻는다면 분명 매력적입니다.”

크게 뜬 눈으로 시우를 휙 바라보는 데네브.

“어떤 점이?”

“모, 모성이 느껴지는 점이나…. 목소리도 무척 고우시고…. 외모도 아름다우시니까요.”

“몸매는요?”

“캬아, 그냥 죽여줍니다.”

“…….”

시우가 자백의 시를 싫어하는 이유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쌍둥이가 도끼눈으로 시우를 노려봤으니 말이다.

“애들아, 시우 군은 잘못이 없어. 모두 내가….”

그러나 데네브는 이 자리가 대화의 장이 아니라, 책임 소재를 다투는 재판으로 인식한 모양이다.

황급히 시우를 변호하며 나서는 데네브.

“작은 스승님, 지금 조수님이랑 대화 중이에요.”

“조수님, 그래도 스승님과 연인이 되고 싶다고 바란 적 있나요?”

데네브도 시우도 숨을 집어삼킨다.

시우가 망설인 건 자칫 이 질문이 데네브에게 상처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없습니다. 오딜 님과 오데트 님의 어머니나 다름없는 분인걸요. 매력적인 분인 건 확실하지만, 그 이상의 욕심을 품은 적은 없습니다.”

거짓을 말할 수 없는 상태에서 나온 단호한 대답이니 말이다.

데네브는 안도인지 상심인지 모를 감정에 입술을 깨물었다.

“그럼 꼭 해야 한다면 다시 할 건가요?”

“뭐를 말인가요?”

“작은 스승님과 성관계 말이야, 조수님.”

“…안건에 따라 다르겠지만 목숨이 걸린 일이라면 할 겁니다.”

“그럼, 그런 상황이 됐을 때 관계 자체에 거부감을 느낄 것 같아?”

“…두 분에게 죄책감을 느끼겠지만, 생리적인 거부감은 없을 것 같습니다 당연하죠. 이렇게 아름다운 분인걸요.”

자백의 시가 걷혔다.

최종 심문을 마친 시우와 그 옆의 데네브는 이제 눈을 감고 쌍둥이의 판결을 기다릴 일만 남았다.

“그 정도면 됐네.”

“맞아, 언니. 원래 거기부터 시작하는 거지.”

“……?”

“좋아, 결정했어요.”

“두 분 다 저희에게 잘못한 거 있는 거 맞죠?”

언제 무게를 잡았냐는 듯 발랄한 어조로 고개를 끄덕이는 오딜과 오데트.

부정의 여지가 없다.

무언의 긍정 속 쌍둥이를 말을 이었다.

“저희 지금부터 다 같이.”

“난교할 거에요.”

잠깐의 뇌 정지.

시우는 저번 전투 탓에 청력이 손실되었는지를 의심했다.

데네브는 쌍둥이의 발언 자체를 한참이나 이해하지 못했다.

“잠시만요. 방금….”

“제대로 들었어 조수님.”

“지란지교의 준말이 아니라, 어지러울 난에 교미할 때 교. 난교 맞아요.”

파격적인 전개에 말문을 잇지 못하는 시우.

“스승님, 저희는 조수님을 좋아해요.”

“하지만 그것만큼 스승님도 좋아해요.”

“스승님이 저희가 잘못했을 때 관대하게 넘어가 주셨던 것처럼.”

“저희도 스승님의 실수를 이해해 드리기로 했어요.”

아직 난교하자는 의미는 확 깨닫지 못했지만, 훨씬 누그러진, 부끄러운 듯한 쌍둥이의 발언에서 용서받았음을 알아차린 데네브.

“오딜…. 오데트….”

“그리고 사랑한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도 알고 있어요.”

“그 감정을 억지로 눌러야 한다는 게 얼마나 힘든지도 말이에요.”

오딜과 오데트가 데네브의 옷자락을 붙잡는다.

평상시 그녀가 입는 옷과 달리 거칠고 까슬한 재질의 싸구려 천옷.

“그러니까 이런 짓은 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 등 부분에는 터지고 다친 상처에서 흐른 핏기가 엿보였다.

데네브 스스로에게 내린 벌의 흔적이었다.

“오딜, 오데트 이건….”

그 채찍질은 오딜과 오데트가 알아주길 원했기에 행한 고행이 아니다.

데네브는 다시 어깨끈을 끌어올리며 상처를 감추었지만 시우는 그 상처를 똑똑히 보았다.

대마녀인데다가 백작인 데네브에게 저런 상처를 입힐 사람이 있을 리 없으니 당연히 자해의 흔적이라는 말.

시우가 어물쩍 고민하는 동안 데네브는 누구보다 크게 죄악감에 몸부림쳤다는 증거다.

“이렇게 괴로워하시는데, 저희가 모른 척할 수는 없잖아요?”

쌍둥이는 누구보다 소중한 스승님을 껴안았다.

둘의 손에서 흐른 따스한 마력이 상처를 회복했다.

“앞으로는 저희 눈치 보지 말고 조수님과 만나셔도 괜찮아요. 조수님도 마찬가지야.”

“그러기 위한 난교에요.”

물론 마음은 고맙다.

뜻하지 않았다고는 한들 어머니나 다름없는 데네브와 관계한 시우를 용서해주고 이런 자리까지 마련했다는 게.

그 넓은 관대함에 몇 번이나 감사를 표해도 모자랄 정도다.

근데 왜 그 해결책이 난교로 이어지는가?

그 부분은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시우.

“오딜, 오데트. 정말 고맙지만 그럴 수 없단다…. 알고 있잖니, 내가 품은 마음은 처음부터 품어서는 안 되는 마음이었던 거야.”

“아니요. 그렇지 않아요.”

오딜은 단언했다.

“스승님이 언제나 말씀하셨죠?”

“마녀는 인간과 달라야 한다고. 인간을 초월했다면 그 굴레도 벗어던져야 한다고.”

“스승님은 분명 어머니 같은 분이에요. 하지만 정말 어머니는 아니잖아요? 피가 섞인 것도 아니고. 역사적으로도 친인척과 성관계가 용인되던 때도 있었어요. 성서에도 나오고, 역사책에도 나와요.”

“그리고 친인척 간 관계를 금기시하는 건 망탈리떼에 따라 고무줄처럼 잣대가 뒤바뀌는 인간 문화의 산물이잖아요. 우리는 마녀인걸요?”

“티페레트 공작님도 조수님과 스승 제자 관계지만 엄연히 연인 관계이잖아요!”

“다 생각하기 나름인 거에요!”

굴레를 벗어던져라….

시우도 몇 번 정도 들어본 적 있는 말이다.

…근데 이게 이럴 때 쓰는 말이 맞나?

혼란스러움에 잠겨 옆을 보자 작은 장모님은 큰 깨달음을 얻은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아니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두 분 고견은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인 점이 있어서요.”

“뭔데?”

“다른 점은 다 이해했습니다만…. 그게 굳이 넷이서 함께 그걸 할 이유가 있나요?”

“난교의 필요성을 물으시는 거죠?”

“네, 그겁니다.”

그 질문이 날아올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는 오딜.

“조수님, 스승님은 분명 저희가 괜찮다고 한들 믿지 않으실 게 뻔해.”

“맞아요. 내키지 않고 마땅찮지만 어쩔 수 없이 허락한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잖아요.”

“그러니까 정말 그런 게 아니라는 걸 보이는 최선의 방법.”

“오딜과 오데트가 준비한 최고의 효도에요.”

그게 끝이 아니다.

“또 발치에서 괜히 걸리적거리는 ‘선’을 확실하게 넘는 것도 이게 제일이잖아?”

“확실하게 한번 굴레를 벗어던지면 작은 스승님이 마음고생 할 일도 없을 거라구요?”

쌍둥이가 터무니없는 짓을 많이 하기는 하지만 이번일 만큼은 충동이나 욕망에서 나온 결정이 아니다.

작은 스승님을 최대한 배려한 쌍둥이 식 불효.

즉, 화끈한 효도다.

“…그게 정말 맞나요?”

다시금 작은 장모님을 보자 그녀는 잔뜩한 감동한 표정으로 입을 막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쌍둥이의 과격한 이론에 묘하게 감화된 눈치이다.

하지만 시우는 뭔가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쌍둥이의 발언이 ‘더는 추위를 타지 않기 위해 얼음물 냉수마찰로 추위에 대한 면역력을 높이겠다!’쯤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럼요!”

“이 이상 좋은 방법이 있어?”

“…….”

그러나 공교롭게도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은 오직 네 사람.

데네브, 시우, 오딜, 오데트.

아직 견습마녀이며 나이 역시 어린 축에 속하는바, 유연한 성적 관념과 가끔 빗나가는 발상을 지닌 쌍둥이.

나이가 많은 마녀이긴 해도 사랑에 관해서는 견습마녀나 다름없는 데네브.

여기서 발생한 다수의 의견은 다소 온건한 해결책을 모사하던 시우조차 기묘한 흐름으로 끌어들였다.

“…알겠습니다.”

“원래부터 거부할 권리는 없었어 조수님.”

“스승님, 저희 같이 목욕해요.”

그리하여 오딜과 오데트가 준비한 모녀녀난교덮밥 ~화끈한 효도풍~ 의 진행이 결정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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