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63
1.
아직 견습마녀인 오딜과 오데트지만 세상 일이라는 게 간단하지 않다는 건 안다.
살아간다는 건 무수한 갈림길을 마주하게 된다는 것이며, 때로는 어느 쪽을 고르기도 어려운 순간이 온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오딜, 오데트….”
아침 일찍 데네브를 찾은 쌍둥이는 놀랐다.
허름하기 짝이 없는 옷을 입은 작은 스승님을 보는 것도 처음이고, 화려하기 짝이 없는 제머나이 저택과 동떨어진 첨탑의 골방도 처음이다.
어린 시절부터 이곳저곳을 쏘다니던 쌍둥이조차 이런 장소가 있다는 걸 몰랐다.
그야말로 ‘징벌방’이라는 이름이 걸맞은 을씨년스러운 방이었기 때문이다.
“정말 미안해….”
우는 모습을 보일 염치도 없다는 듯 글썽이는 눈물을 억누르며 고개를 숙이는 데네브.
고개를 숙인 그녀의 등 뒤로는 딱 봐도 굉장히 아파 보이는 상처로 그윽했다.
작은 스승님을 뵙는 즉시 시원하게 불만을 토로할 예정이던 오딜도,
옆에서 거들다가 괜찮다는 말을 하려던 오데트도 입을 다물었다.
“내가 너희에게 정말 몹쓸 짓을 했어. 다시는 그런 실수 하지 않을 거란다.”
“당연히…. 그래야죠.”
“맞아요…. 그래도 저희에게까지 비밀로 하셨으면 안 됐어요….”
그래도 본래 목적을 잊진 않았다.
따질 것은 제대로 따지고 넘어가야 하지 않겠는가?
“그래, 전부 내 잘못이고, 부덕이야. 어떤 말을 들어도 변명할 수 없어.”
“…….”
“…….”
오딜과 오데트는 눈을 마주쳤다.
작은 스승님을 찾아오는 순간까지 억지로 닦아 세웠던 독기는 간데없고 당혹스러움만이 아른거린다.
“일단은 나, 나중에 다시 이야기할래요.”
“저, 저두요!”
대답조차 듣지 않고 문을 쾅 닫고 나온 쌍둥이는 도망치듯 나선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
“뭐야! 뭐야 이게…!”
1층에 도달한 오딜은 분통을 터뜨리듯 발을 굴렀다.
쓴소리 정도는 할 예정이었다.
아무리 상대가 작은 스승님이라지만 그렇게 마음고생을 했는데 그 정도 투정은 괜찮지 않은가?
하지만 막상 만나뵙게 된 작은 스승님은 오히려 쌍둥이보다도 상태가 좋아 보이지 않았다.
큰 스승님으로부터 고행에 들어갔다는 말은 얼핏 들었지만 저만큼 불쌍해 보일 줄이야.
애써 준비해 간 항의 사안은 입 밖으로 꺼내지도 못하고 도망치게 되었다.
“이러면 우리가 잘못한 것 같잖아!”
“진정해 언니, 스승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는걸….”
“짜증 나! 바보 같아! 이게 뭐냐고 대체….”
“언니….”
오딜도 진심으로 화가 난 건 아니다.
단지 너무 당혹스럽고 이 일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아 괜스레 땅바닥에 분풀이를 하고 있을 뿐.
“언니 기억나?”
“뭐가!”
그때 오데트가 오딜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말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스승님 공방에 가서 잔뜩 어질러 두었던 거.”
오딜과 오데트가 10살 무렵의 일이다.
원래도 시끌벅적 넘치는 에너지를 자랑하는 오딜과 오데트지만 어린 시절에는 감히 지금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활동량을 자랑했다.
평소 스승님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엄하게 일러두었던 공방을 오딜과 오데트는 기어이 비집고 들어갔다.
처음으로 발을 들인 마녀의 공방.
그 신비로움에 현혹된 오딜과 오데트는 대마녀 흉내를 마음껏 내며 실험장비들을 가지고 마녀놀이를 벌였다.
-펑!
섬세한 조절을 요구하는 실험장비는 쌍둥이의 폭거에 폭발로 응답했다.
천만다행으로 오딜과 오데트는 손등에 가벼운 화상을 입는 것으로 그쳤지만 연구자료들은 그러지 못했다.
데네브가 수년 넘게 독자적으로 준비하던 아티펙트 연구의 산물이 일순간의 폭압에 휘말려 사라져버린 것이다.
폭발한 잔해를 멍하니 바라보는 폭탄머리 오딜과 폭탄머리 오데트.
어리다고 한들, 마법적 지식이 부족하다 한들 영특한 견습마녀답게 사리분별은 가능하던 나이였다.
이번 사고가 화병을 깬 수준과는 비교할 수도 없다는 것 정도는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오데트 너 큰일이다.’
‘이, 이게 왜 내 잘못이야! 언니 잘못이야! 언니가 큰일이야! 나는 분명히 하지 말자고 했는데!’
‘오데트 진정하자. 어떻게든 원래대로 돌려놔야겠지?’
‘당연하지! 언니 그쪽 불부터 꺼!’
그러나 호들갑을 떤다 한들 열 살배기 견습마녀가 개박살나버린 연구 자료 및 표본을 돌이킬 능력이 생기진 않았다.
‘우린 죽었다.’
‘진짜 죽었다….’
쌍둥이는 파랗게 질린 얼굴로 무서운 얼굴로 뛰어들어올 작은 스승님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 당시만 해도 지금보다 5배는 엄격하셨지 않던가?
공방 문이 거칠게 열리며 하지만 헐레벌떡 달려들어 온 사람은 작은 스승님.
‘스승님! 죄송해요!’
‘저희가 이러려던 게 아니라!’
당연히 성악가 뺨치는 성량의 고함이 들려오리라 예상하고 눈을 질끈 감았던 오딜과 오데트.
하지만 돌아온 건 염려와 걱정 가득한 포옹이었다.
‘애들아, 괜찮니? 다친 데는 없고?’
마녀와 견습마녀는 모녀관계와 유사하다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오딜과 오데트는 두 스승님이 어려웠다.
‘어쩜 좋니…. 이리 오렴. 많이 아프니? 흉지면 어쩌려고 이런 위험한 일을 했어.’
하지만 처참히 무너진 공방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쌍둥이의 손등에 화상만을 신경 쓰는 작은 스승님을 보며 쌍둥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으아아아앙!’
‘잘못했어요…!’
‘괜찮단다. 요 말썽꾸러기들…. 너희만 무사하면 됐지.’
그날 이후로 쌍둥이는 무섭게만 보이던 스승님이 진짜 가족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 얘기를 갑자기 왜 하는데?”
“우리가 잘못했을 때, 스승님은 우리를 용서해 주셨잖아.”
“그래서?”
“만약에 있잖아 언니. 순서가 바뀌어서 작은 스승님이 먼저 조수님이랑 연인 관계였고, 나중에 우리가 조수님을 좋아하게 됐다는 걸 알게 됐다면 스승님이 화내셨을까?”
고민할 것도 없는 질문이다.
“당연히 화내셨지.”
“그럼 용서 못 하셨을까?”
“…그건 아니지, 우리도 용서 못 하는 건 아니잖아?”
“내 생각에는 우리가 지금 스승님처럼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셨다면 분명 용서보다 더한 걸 해주셨을 거야.”
오딜도 알고 있다.
그래서 이렇게 마음이 불편한 것이다.
“작은 스승님은 마음껏 행복해할 시간도 부족하시잖아.”
“…오데트!”
“화내지 마, 사실인걸.”
“…….”
드물게 오데트가 오딜을 말싸움으로 이기는 광경이었다.
오딜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좋아, 그래서 뭐가 하고 싶은 건데?”
“아마도 언니가 하고 싶은 거.”
2.
날이 깊어가는 그 순간까지도 데네브는 한층 깊은 죄악감에 몸부림쳤다.
언니는 이 문제의 해결을 도와주겠다고 말했지만 거절했다.
아무리 대단한 언니라도 이 깊은 죄악을, 욕망에 지고 천륜을 등진 행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이른 아침부터 찾아온 쌍둥이는 데네브를 더욱 부끄럽게 만들기 충분했다.
첨탑에 무릎을 꿇고 고행을 하는 행위마저 가증스럽게 내비쳐지진 않을까.
보여주기식 사과로 보이는 건 아닐까.
자신이 이런 방식의 속죄를 선택한 것부터가 자기만족에 불과하며 무의식중에 쌍둥이에게 반성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기 때문은 아닐까.
-찰싹! 찰싹!
데네브는 잡념을 털어내는 방법으로 채찍질을 택했다.
울긋불긋한 상처 위로 후끈한 통증이 피어날 때면 그나마 마음 가득하던 죄악감에서 잠시 눈을 돌릴 수 있다.
-똑똑
그러던 중 들려온 노크소리.
데네브는 무릎을 일으켜 허름한 나무문을 열었다.
팔락 발치에 떨어지는 건 두 번 접혀 틈새에 꽂혀있던 쪽지였다.
“이건….”
데네브는 쪽지를 챙겨 든 채 타로타운으로 향했다.
쪽지의 발신처는 오딜과 오데트.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니 타로 타운의 별장으로 찾아오라는 전언이 담겨있었다.
다소 의미를 알 수 없는 호출이었으나 그 이유까지 궁금해할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정말 가도 괜찮은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남아있을 뿐이다.
하지만 조금의 위로라도 될 수 있다면 쌍둥이 앞에서 기꺼이 무릎이라도 꿇을 심산이 데네브이다.
최소한의 옷가지만 걸쳐입은 그녀는 재판소의 문을 여는 죄인의 발걸음으로 타로 타운의 별장, 쌍둥이의 전초기지 문을 열었다.
촛대 위에서 하늘거리며 빛나는 촛불.
벽난로가 데워낸 훈훈한 공기가 데네브를 반겨주었다.
하지만 예상과는 달리 인기척이 없었다.
라운지 쪽에 있다면 소리가 들릴 테니 아마도 위층 침실에 있는 걸까?
무심코 발을 들이려던 데네브는 멈칫했다.
바닥에 빨간 장미 꽃잎이 틈틈히 흩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엔 근처 꽃병에서 떨어졌겠거니 하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현관을 지나자 그 숫자가 안으로 향할 수록
“이건…?”
동화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것처럼 점점 이어진 꽃잎은 1층 욕실까지 데네브를 이끌었다.
혼란스러움을 감추지 못한 데네브가 조용히 욕실 문을 비틀어 열자 수증기가 뭉게뭉게 번졌다.
두 사람이 몸을 담기 딱 좋아 보이는 이동식 욕조에 찰랑찰랑대는 뜨거운 온수.
그 안에는 이정표 역할을 하던 장미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제법 널찍했기 때문에 두 사람이 충분히 목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애들아?”
이건 도대체 무슨 상황인 걸까?
혹시 장소를 잘못 연락받았나?
혹시나 싶어 쪽지를 다시 펼쳐보았지만, 착오는 없다.
-덜컹!
현관 쪽에서 들려오는 문소리.
뒤를 돌아본 데네브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어라….”
당연히 조금 늦게 도착한 쌍둥이 일 것이라 예상했던 데네브.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온 건 우중충한 표정을 짓고 있는 데네브의 사위.
“데네브 님?”
신시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