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6
1.
선물 증여식이 끝났다.
엘로아는 타카쇼의 호빠에서 사온 제일 비싼 고급 위스키.
린네는 플로라 양장점에서 맞춘 예쁜 드레스였다.
이후엔 그간 게헨나에서 있던 일을 자랑하는 시간이 되었다.
아무래도 제일 연상 느낌 물씬 나는 삼인방이다 보니 어쩐지 친척 어른들 앞에서 재롱 잔치하는 기분이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인정을 받았지 말입니다. 논문 감사도 완벽하게 통과했고 잔뜩 번 돈으로 이렇게 선물도 마련했습니다.”
“역시 낭군이다.”
“장하네.”
표정에 거의 변화가 없지만 눈빛으로 축하하는 린네.
흐뭇하게 웃는 엘로아.
“두 분 그래도 사이가 많이 좋아진 것 같네요. 조금 걱정했는데.”
엘로아와 린네의 시선이 힐끗 마주친다.
솔직히 거짓말로도 사이가 좋다고 하긴 어렵다.
두 스승의 긴 신경전은 물밑으로 가라앉았을 뿐, 여전히 서로 인정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전처럼 검을 든 채 싸우지 않는 건 지난밤 침대에서 보였던 서로의 낯뜨거운 모습이 제동장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랄까.
그나마 활달한 도로시가 있기에 망정이지 만약 그녀마저 없었더라면 꽤 답답했을 것이다.
“…….”
“…….”
거짓말 못하는 점만큼은 손발이 척척 맞는 두 스승이 입술만 달짝이고 있자 보다 못한 도로시가 소파 뒤에서 둘의 어깨를 끌어안았다.
“그럼~ 그럼~ 공작님이랑 린네가 의외로 마음이 맞나 봐. 어찌나 둘이서만 얘기를 하는지 내가 질투가 다 난다니까?”
“정말요?”
“그럼~”
평소라면 삭막하게 ‘놔라’라고 말할 린네도, 어정쩡하게 있다가 진실을 간파당할 엘로아도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맞췄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시우를 걱정시키고 싶어하지 않은 마음만큼은 같았으니 말이다.
“그렇다. 티페레트에게 이것저것 배우는 중이다.”
휙 옆으로 손을 뻗으며 테이블 아래로는 엘로아의 종아리를 톡톡 건드리는 린네.
“보기보다 말이 잘 통한다네. 너무 걱정 말게나.”
신호를 받고 손을 꾹 마주 잡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엘로아.
그런 사실을 모르는 시우로서는 ‘진짜 침대 위에서 화합이 결실을 보았나?’ 같은 생각을 했다.
2.
거의 3주 만의 재회이니 다 같이 저녁 식사와 함께 근황 토크를 마친 네 사람은 둥글게 마주 앉아 술잔을 기울였다.
“호문쿨루스가 난동이라…. 제가 도움이 못되어서 죄송하네요.”
“낭군은 걱정할 필요 없다.”
“그대가 현세에 있다면 걱정할 일이 더 많아질 걸세.”
“하긴 그것도 그렇네요.”
호문쿨루스가 그렇게 난동이고 원인조차 짐작할 수 없다니.
마음이 썩 편치 않았다.
어쨌거나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걸 방관하고 있어야 한다니 말이다.
“네가 도움을 줄 방법은 있어.”
취기가 오른 도로시는 느슨하게 웃으며 속삭였다.
“마력충전.”
오감이 발달한 린네와 엘로아가 엿들을 수 있는 성량이었다.
시우는 멋쩍게 웃었다.
한 사람 한 사람과 따로따로 있다면 얼마든지 능글맞아질 수 있는 시우지만, 분위기도 제대로 타지 않은 상황에 세 사람이 동시에 있는 장소에선 듣기 멋쩍은 말이다.
“요고요고 음흉하게 웃는 거 봐라?”
“제가 언제요.”
“그치만 난 봐 버렸는걸? 아리따운 세 여인과 침대에서 질펀하게 난교하는 상상을 하는 신시우의 머릿속을.”
“…….”
“콜록, 쿨럭…!”
입술을 적시다시피 조금씩만 술을 마시던 린네가 우뚝 굳는다.
일전의 민망한 흑역사를 떠올린 엘로아는 아예 사레가 들려버렸다.
“공작님이랑 린네는 어떻게 생각해? 사랑하는 남자친구가 선물을 들고 왔는데~ 이벤트 정도는 해줘야 하지 않을까?”
“…싫다.”
“도로시 양, 시우가 나쁜 버릇 들면 어쩌려 그러나?”
평정을 잃은 린네와 엘로아 모두 귀여웠기에 조금 더 놀려주기로 한 도로시.
“그럼 달링 생각은 어때?”
“도로시!”
“셋 중에 누가 더 뜨겁게 사랑받나~ 소소한 미니게임을 하는 거지.”
역바니 의상을 걸친 엘로아와 메이드복 코스튬의 린네.
솔직히 둘의 콜라보가 황홀하긴 했다.
거기에 도로시까지 더해진다면 어떤 극락이 펼쳐질지 심히 기대되는 건 남자로서 당연한 마음이다.
하지만 엘로아와 린네의 모습을 보니 내숭이 아니라 정말 내키지 않아 한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스승님들이 싫어하는 일을 억지로 할 생각은 없는 시우다.
“자자, 빨리~ 스승님들이 사랑하는 제자를 위해 분발하는 모습 보여야지.”
“도로시 님, 잠시 와보시겠어요?”
“응? 응?”
“스승님, 두 분 모두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시우는 도로시의 손목을 붙잡고 방을 나왔다.
“무슨 일인데?”
엘로아, 린네, 도로시 사람이 위치포인트로부터 제공받은 객실은 국빈용 스위트룸.
거리를 두고 차음 마법을 펼친다면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을 수 있을 만큼 널찍하다.
시우는 도로시를 침실 한쪽에 밀어 넣고 슬쩍 문을 잠갔다.
이처럼 도로시를 끌고 나온 건 곤란해하는 스승님들을 위해서기도 했지만, 도로시의 성격 중에 한가지 깨달은 게 있기 때문이다.
타고난 성정인지, 갈고 닦아온 가면인지 알쏭달쏭 알 수 없는 의태를 지닌 도로시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어딘가 솔직하지 못한 구석이 있다는 것.
두 스승님과 4P를 끈덕지게 몰아붙이는 도로시라면 ‘혹시 단둘이 관계를 맺고 싶어하는 게 아닐까?’하는 억측에 가까운 생각에 일단 끌고 나온 것이다.
무엇보다 도로시와는 재회 후 제대로 된 관계를 맺지 않았기에 따로따로 한다 해도 그녀부터 순서가 도는 것이 형평에 맞고 말이다.
“도로시 님.”
“응?”
방금까지는 뭔가 열심히 말하더니 갑자기 조용해진 도로시.
살짝 나른한 눈매는 어쩐지 기대감에 살짝 부푼 것처럼도 보였다.
“갑자기 어리광부리는 거야?”
시우는 조용히 고개를 낮춰 그녀와 입을 맞추었다.
기다렸다는 듯 발꿈치를 들고 시우의 허리를 끌어안는 도로시.
매끄럽게 얽힌 혀가 뜨겁다.
타액은 달콤했고, 숨은 살짝 거칠었다.
간단한 진단이었지만 결과는 명백했다.
도로시 누님.
상당히 뜨거워지셨다.
“넷이서 다 같이 하는 건 말고 이건 어떨까요?”
“뭐가?”
“제가 도로시 님 잡아먹는 걸 스승님들이 지켜보는 거죠.”
“뭐?”
갑작스러운 제안에 도로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반사적으로 상상도가 머리에 떠오른다.
알몸으로 깨 벗고 헐떡이는 도로시.
양옆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는 린네와 엘로아.
처음에 애써 신음을 감추려고 하겠지만 그의 물건에 푹푹 당함에 따라 여유도, 체면도 잊은 채 암컷 같은 교성만을 울부짖게 되겠지.
“노, 농담이지?”
“아니요.”
이미 린네 앞에서 젖소 흉내라는 못볼꼴을 보인 전적이 있다.
그때는 최소한 장지문이라는 가림막이라도 있었다.
그런데 실컷 어른스러운 여성인 척 온갖 충고를 늘어놓은 공작님 앞에서 그런 꼴불견을 보이라고?
아무리 넉살맞은 도로시라도 감당할 수 없는 부끄러움이다.
“스승님들도 도로시 님이 실은 침대 위에서 엄청 약하다는 걸 알면 거부감이 좀 줄어드시지 않을까….”
“아, 아! 맞아!”
이리저리 눈동자를 굴리던 도로시가 엉겁결에 화제를 돌렸다.
“나, 나…. 사업 접었어.”
“네?”
진득한 분위기가 한순간에 날아간다.
용기를 내어 앞을 보니 깜짝 놀란 시우의 얼굴이 보였다.
“그…. 무기 밀매업 이제 안 해.”
“정말요?”
“응, 정말.”
부끄러운 걸 피하고자 입을 열었는데, 어째 더 부끄러운 부분을 들킨 느낌.
행여나 그가 도로시의 행동을 보고 ‘그렇게 칭찬받고 싶으셨어요?’라고 말할 것 같아 벌써 귀가 뜨겁다.
시우의 눈치가 그렇게 빠를 리가 없는데도 말이다.
“언제부터요?”
“음, 얼마 안 됐어.”
“괜찮으세요?”
“뭐~ 수백 년 동안 하면서 질리기도 했고, 돈은 충분히 벌었으니까. 손 씻은 거지 뭐. 앞으로는 뭐…. 장난감 사업이라도 해볼까?”
부산스레 손을 꼼지락거리던 도로시가 곁눈질로 시우를 보았다.
그는 정말로 안도했다는 듯 기쁜 미소를 짓고 있었다.
“감사해요.”
“뭐라니~ 너 때문에 접은 거 아니거든?”
“그래도요.”
흥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돌리는 도로시지만 드디어 말했다는 성취감에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이거, 칭찬해 드리지 않을 수가 없는데요?”
“어떻게 칭찬할 건데?”
그의 손이 하나씩 단추를 풀어가기 시작하자 좀처럼 얌전히 있을 수 없었다.
톡톡 단추가 끌러져 벌어진 앞섶과 그 사이로 드러난 검은 브래지어.
풍만한 가슴골 사이로 예쁘게 늘어진 목걸이가 섹슈얼 포인트를 더한다.
시우가 브래지어의 프런트 후크마저 톡 풀자 갑갑하게 갇혀있던 묵직한 가슴이 출렁 아래로 살짝 쳐졌다.
매혹스러운 흔들림이 남자를 정신 못 차리게 한다.
“다정하게요.”
그의 말대로 그날의 시우는 어느 때보다도 다정했다.
남자가 먼저 침대 위에 걸터앉고 그 위에 여자가 마주 보고 앉은 대면좌위.
처음 섹스부터 끝날 때까지 계속계속 키스하며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톡톡히 받을 수 있는 체위였다.
3.
도로시는 조금 전, 감질 날 정도로 짧았지만 충만했던 성교를 떠올리며 담배를 물었다.
여자를 노곤노곤하게 만드는 건 역시 사랑임이 틀림없다.
평소보다 거칠게 움직인 것도, 오래 한 것도 아닌데 아직도 아랫배가 징징거리며 여운을 토해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시우는 이후 엘로아, 린네 순으로 마력을 충전하고 게헨나로 돌아갔다.
“아쉽지만 별수 있나?”
온갖 마녀의 이목을 끄는 남자 마녀인 만큼 최대한 주의를 기울이는 수밖에.
난간에 기댄 도로시는 목걸이를 들어 올려 달빛에 비추어보았다.
새파란 블루 다이아몬드가 퍼렇게 빛나며 눈을 즐겁게 했다.
“예쁘네.”
사실 도로시에게 이 정도 수준의 보석 세공품은 그다지 높은 급이 못 된다.
직업과 신분의 특성상 도로시가 여태 받아온 ‘선물’은 죄다 어마어마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 어떤 선물도 이 목걸이만큼 도로시를 기쁘게 하진 못했다.
시우가 처음으로 마련해 준 선물이라는 것에 의의가 있는 것이다.
목걸이만 차고 있어도 그가 옆에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 이걸 깜빡했네.”
도로시는 주머니에 넣고 방치해 두었던 묘안석을 꺼내 들었다.
시우를 만나는 바람에 보고도, 확인도 하지 못하고 내버려두고 있었다.
암호가 걸려있지만 마력을 조금만 활용하면 겉핥기식으로 정보를 엿보는 정도는 가능하다.
“…뭐?”
대수롭지 않게 묘안석을 바라보았던 도로시의 안색이 변했다.
도로시의 예측이 틀렸다.
이번 호문쿨루스의 전리품은 ‘꽝’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