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5
1.
마법진으로 돌돌 감긴 수녀복을 입은 도로시는 뭉툭한 검을 든 채 느릿한 발걸음을 옮겼다.
위스키가 그려진 커다란 전광판과 네온사인이 빚어낸 도시의 일루미네이션.
광채가 하얀 뺨을 울긋불긋하게 물들인다.
도로시의 일본 여행 경력은 도쿄 정도.
그마저도 전쟁이 한창이던 80년 전이었지.
그 짧은 시간 만에 이만한 번화가를 이룩했다니 인간의 발전 속도는 나날이 혀를 내두르게 될 따름이다.
“어머나~ 오늘도 있네.”
-쾅쾅쾅쾅!
도로시의 반짝이는 은안이 호문쿨루스를 포착했다.
B급 괴수 영화에나 어울릴 법한 거대 고릴라 한 마리가 빌딩 옥상에 올라 가슴을 두들기며 포효하고 있었다.
이번에도 DB에 없던 호문쿨루스다.
멀찍이서 식별한바 눈알은 20개.
특이사항을 꼽자면 길쭉한 송곳니와 3쌍의 팔을 지녔다는 것.
일반적인 감각으로 바라봤을 때 제법 강적이다.
가슴을 두드리는 충격파만으로 빌딩 유리창을 눈가루처럼 뿌려대게 했으니 말이다.
“하아~ 이번에도 피곤하겠네.”
어지간한 마녀라도 꺼릴 법한 괴수를 눈앞에 두고, 도로시는 어울리지 않는 나른한 한숨을 내쉬었다.
긴장하지 않는 걸 넘어 무척이나 의욕 없어 보이는 모습이다.
“하지만, 우리 달링을 위한 일이니까.”
억누르던 마력을 방출하자 거미처럼 섬뜩한 눈을 지닌 거대 고릴라의 시선이 도로시를 향한다.
낙인을 먹어치우는 포식자의 본능을 자극한 것이다.
아니.
도로시가 자극한 건 비단 포식자의 본능만이 아님이 분명했다.
영장류와 닮은 호문쿨루스는 그 본성까지도 비슷한 걸까?
1M는 족히 될 법한 고릴라의 페니스가 뻣뻣이 하늘로 솟는다.
“으….”
도로시는 답잖게 눈살을 찌푸렸다.
“하여간~ 죄 많고 매력 넘치는 이 몸이 문제지.”
“쿠와아아아아!!!!”
-쿵! 쿵! 쿵!
고릴라는 도로시를 향해 거대한 굉음을 내지르더니 여섯 개의 팔과 두 개의 다리로 빌딩 사이를 오갔다.
더군다나 짐승다운 몸놀림으로 도시를 박살 내며 달려오는 고릴라의 위용은 가히 파괴적이다.
저만한 덩치로 아음속에 가까운 돌진을 구사하고 있으니 말이다.
“옳지~ 옳지~”
여자로선 제법 큰 키지만 상체를 숙인 상태로만 5M에 달하는 고릴라와의 정면충돌.
격돌의 결과는 일목요연해 보였다.
일반적인 인간이라면 내장과 살점으로 이뤄진 피떡이 되어 아스팔트 위에 길게 눌어붙은 껌딱지처럼 변했겠으나….
알다시피 마녀란 평범한 인간과는 거리가 먼 존재이다.
“두려워 말라.”
영창과 함께 도시의 광채를 지우며 도로시의 등 뒤로 주르륵 늘어서는 예배당의 기둥.
도로시의 몸에 절대적인 힘이 깃든다.
-쾅!!!!!
갑자기 부푼 존재감에 질겁하여 팔을 휘두른 괴수 고릴라.
마력강화마저 사용해 내지른 일격은 태산조차 무너뜨릴 만큼 흉맹했다.
풍압만으로 일대의 아스팔트가 쿠키처럼 바스러지며, 가로등과 표지판 따위가 태풍에 휩쓸린 갈대처럼 휘었다.
“키이익…! 쿠오오오!”
“흐음~ 신체 강화 계통 자성마법인가? 이거 영~ 꽝일 것 같은데.”
그러나 한쪽 팔을 들어 공격을 막아낸 도로시의 표정은 태연자약하기 그지없었다.
변변한 상처는커녕 생체기 조차 눈에 띄지 않는다.
도로시가 구사하는 힘은 절대력.
체급도, 완력도 무시하는 부조리한 힘이다.
고릴라는 마녀가 내보이던 마력의 파장이 자신을 끌어들이기 위한 기만책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고 재빨리 몸을 빼려 했지만.
원하는 바를 이루지 못했다.
“원래 괴수 고릴라를 죽이는 건 복엽기가 아니라 아름다운 미녀인 법이지.”
도로시가 발을 구름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힘이 고릴라의 몸을 짓누른다.
-으직!
괴수의 육체를 지탱하는 철골 같은 뼈와 교량용 와이어로프에 필적하는 강도의 근육이 파괴 직전의 단말마를 지른다.
“왜 벌써 가려고? 가까이서 보니 별로야?”
“끄르르르륵…!”
보이지 않은 거대한 프레스기가 전신을 짓누르는 듯한 힘.
고릴라는 머리를 땅에 처박은 채 두려움이 깃든 눈으로 머리에 도로시를 올려보았다.
“자존심이 조~금 상하는걸?”
천사의 고리를 머리에 띄운 도로시가 재차 발을 굴렀다.
도로시가 하고 있는 건 자성마법의 간단한 응용이다.
절대력을 중력에 적용한 이후 강화한 것.
사방팔방 날뛸 게 뻔한 호문쿨루스를 기동력 없는 도로시가 사냥하기엔 이만한 방법이 없는 것이다.
-퍼석!
건조한 굉음과 함께 도로시의 발밑을 제외한 일대 지면이 10M가 넘게 푹 꺼졌다.
가슴 큰 마녀를 개구리처럼 사용하려던 괴수의 사인은 타이어에 밟힌 개구리처럼 죽어버렸다.
변변한 비명 한번 남기지 못하고 말이다.
“…휴우, 힘드네.”
천사의 고리를 활용한 까닭에 마력이 쭉 빠져버렸다.
그래도 마음은 약간의 기대감으로 부푼다.
도로시는 염력을 활용해 재가 되어 바스러지는 시체로부터 전리품을 건져내었다.
별 쓸데없는 호문쿨루스의 ‘핵’.
그리고 요상한 묘안석이었다.
호문쿨루스를 사냥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전리품은 크게 셋.
창조의 마녀가 남긴 연구자료, 아티펙트, 그노시스의 알이다.
그리고 지금 도로시의 손에 들린 검은 묘안석은 이따금 등장하는 ‘정보’가 기록된 것이었다.
안에 다른 유물이 감춰진 보물지도라든가, 아주 옛날에 기록된 예언이라든가, 또 다른 호문쿨루스에 대한 정보가 암호화된 채 기록된 물건이었다.
“…꽝이네.”
굳이 말하자면 꽝에 가깝다.
보물지도에 적힌 곳을 어렵게 찾아가도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난 까닭에 다 털려 있기 다반사고,
예언은 해석구조가 지금과 상이하기에 골머리 앓는 것에 비해 소득이 없다.
다른 호문쿨루스에 대한 정보라 봐야 그리 중요하지도 않고 말이다.
도로시의 얼굴이 어두컴컴해진다.
시우는 괜찮다고 했지만 아직 그의 몸을 치료할 방법도, 예언을 빗겨가게 할 기책도 없는 상태.
어쩌면 정말로 그를 잃게 되는 게 아닐까?
“도로시님.”
처음엔 상사병이 일으킨 환청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에 그가 있을 리 없으니 말이다.
“주책이야~ 주책.”
“도로시 님, 많이 힘드세요?”
도로시는 재차 들려온 부름에야 퍼득 돌아보았다.
거기엔 멋진 정장에 붉은가지를 어깨에 들쳐 맨 도로시의 달링, 신시우가 있었다.
“뭐, 뭐야? 어떻게 왔어?”
“잠깐 들렀습니다.”
“이렇게 혼자와도 돼?”
“알비레오 백작님께 말씀드리고 왔어요. 위치포인트까지 최단거리로 달려가다가 마주친 거에요.”
“얼마나 있으려고?”
“오래는 못 있고, 오늘 안에 다시 돌아가겠다고 말을 해둬서요.”
금방까지 우울하던 기분이 어디로 증발한 걸까?
도로시는 날아갈 듯 가벼워지는 발걸음을 느끼며 시우의 품에 안겼다.
그의 냄새를 킁킁 맡자 조금은 마음이 진정된다.
셔츠 가슴팍에서부터 시작한 도로시는 그의 목덜미까지 올라가 연신 코를 찡긋거렸다.
“흠흠흠, 좋~은 냄새네.”
“뭐에요, 강아지도 아니고.”
“강아지 아니지. 난 귀여운 젖소 아가씨인걸? 음머~”
도로시의 농담을 보며 쓴 웃음을 짓던 시우가 품을 뒤적거렸다.
“아, 도로시 님. 선물이 있습니다.”
“선물?”
“네, 제가 이번에 돈을 막 벌었거든요. 자세한 얘기는 스승님들 있는 곳에서 할게요. 그 전에 선물.”
애교넘치게 들러붙는 도로시를 잠깐 밀어낸 시우는 그녀의 손바닥 위에 무엇인가 올려주었다.
하얀 손수건에 놓인 예쁜 목걸이였다.
은으로 된 사슬에 파란 다이아몬드가 박힌 물건이었는데 전체적으로 하얀 색감을 지닌 도로시에게 무척 잘 어울릴 것 같아 초이스했다.
“마음에 드세요?”
눈을 깜빡이며 한참이나 손바닥 위에 목걸이를 보던 도로시.
“…….”
“어때요?”
“괜찮네. 보기보다 안목이 좋은데?”
뭔가 리액션이 심심하다.
차라리 원래 구상했던 시가 세트가 맞았으려나?
“마음에 안 드시면 바꿔올까요? 뭘 좋아하실지 잘 몰라서….”
“그런 게 어딨니? 한 번 줬잖아 이건 내 거야.”
시우가 목걸이를 다시 가져가려 하자 도로시는 먹이를 빼앗기는 햄스터처럼 휙 몸을 돌렸다.
“요령 없긴~ 이런 건 손에 쥐여주는 게 아니라 직접 걸어주는 거야. 지금이라도 해줘.”
“제가 그건 몰랐네요.”
도로시는 긴 장발을 묶어 올리고 시우 앞에 목을 드러냈다.
뭔가 이번 선물은 실수인 것 같아 내심 한숨 쉬며 목걸이를 걸어주는 시우.
“보기보다 어렵네요. 이거.”
“천천히 해.”
“네네.”
아무래도 철없이 히죽대는 모습을 보이는 건 부끄럽단 말이지.
그에게 등을 보인 도로시는 그제야 마음껏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자꾸 쿡쿡 소리 내 웃을 것 같아 야단이었다.
2.
본디 창조의 마녀는 제 위업을 지키고자 호문쿨루스를 사역마로 삼았다.
허나 호문쿨루스가 그저 가디언이냐를 묻는가 하면 그렇지 않다.
창조의 마녀의 의도는 알 수 없으나 괴수의 동력원은 마녀의 낙인이었다.
동족상잔에 의해 마녀의 개체 수가 감소한 이후엔 인간마저 먹잇감으로 삼았다.
마법에 무지하여 호문쿨루스를 눈으로 식별조차 할 수 없는 인간은 이 비극에 대한 대항력이 전무했다.
견습마녀를 잃은 한 공작이 위치포인트라는 토벌 기관을 설립함에 따라 비로소 일방적이었던 비극은 그나마 통제 안에 들어왔다.
우여곡절 끝에 정착한 상생 시스템은 100년의 세월이 지나며 나름의 안정을 찾았고, 이제 와 호문쿨루스 탓에 대규모 사고나 학살이 벌어지는 일은 좀처럼 없게 되었다.
위치포인트 DB에 토벌 관련 데이터가 누적되니 마녀들 역시 일정한 패턴에 적응할 수 있었고 이는 효과적인 토벌로 이어졌던 것이다.
하지만 헥센나흐트의 발족 이후 안정되었던 시스템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첫번째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이유, 현세에 머무는 추방자의 감소 탓이다.
마녀의 평균 위계가 꾸준히 상향 평준화 되어 온 현시점.
극도로 위험한 몇몇 ‘네임드’를 제외하곤 마녀에게 호문쿨루스는 위협이 되는 상대가 아니다.
따라서 이제껏 추방자들은 연구 목적, 혹은 자금 마련을 위해 호문쿨루스를 토벌해왔다.
하지만 추방자가 헥센나흐트로 흡수되거나, 불안정한 현세 정세에 몸을 숨기거나 하며 알기 쉬운 인력 부족에 봉착한 것이다.
다만 두 번째는 엘로아조차도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이유였다.
바로 급작스러운 호문쿨루스의 생태 변화였다.
“원인이 짐작 가는가?”
“…전혀 모르겠다.”
두 스승님 린네와 엘로아는 마주 앉은 채 서류를 들여보고 있었다.
전 세계 위치포인트 지부의 자료를 취합해 만든 호문쿨루스 동향보고서다.
“동면에서 깨어나는 호문쿨루스의 수가 비정상적이군.”
“이제껏 기록된바 없는 새로운 개체의 출현도 폭증했다네.”
서로 굉장히 민망한 모습을 보였기에 아직은 데면데면한 감이 있는 두 사람이지만, 그래도 홋카이도 지부에서 함께하며 어느 정도는 자연스레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물론 업무 관련 화제가 없어지는 순간 둘 다 입을 꾹 다물지만 말이다.
아무튼 일반적으로 호문쿨루스는 차원의 틈새에서 동면하다가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에 한 번씩 활동하는 게 보통이다.
이 빈도와 개체 수는 대체로 일정히 유지되는데 최근엔 기존 네임드 호문쿨루스와 예비 네임드들이 대거 출현하고 있었다.
일본만해도 그렇다.
이러한 경향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이대로라면…. 재해에 휘말린 인간이 훨씬 늘겠군.”
“…….”
엘로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린네는 여전히 무색무취의 낯빛이나 속이 편치 않다.
낭군인 시우는 인간에게 피해가 가는 걸 꺼릴 테니 말이다.
심각한 분위기로 공기의 침체마저 느껴지는 그때.
호텔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도로시가 들어왔다.
“모두 안녕! 나 열심히 일하는 동안 잘 지냈어?”
“오랜만이에요. 제가 너무 심각할 때 왔나요?”
“낭군.”
“시우!”
그리고 양 손에 선물을 든 시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