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853화 (853/917)

#853

1.

명예와 부의 상관관계가 언제나 정비례하는 건 아니지만 게헨나에선 대체로 예쁜 우상향 그래프를 그린다.

“캬….”

리센느로부터의 배상금이 도착한 다음 날 시우는 금고 은행에 들러 개인 명의 금고에 담긴 전액을 인출했다.

금화가 가득 담겨 영체가 아니라면 들기도 버거운 궤짝이 무려 하나, 둘, 셋.... 열 개.

이 안에 담긴 금액이 총 금화 1만 개 분 약 80억 원 가량.

나머지는 금본위제를 사용하는 금고은행 지침에 맞춰 24K 골드바로 준비되었다.

그렇게 받아온 개 1kg짜리 골드바 456개.

여기서 나머지 한화 365억가량이 채워진다.

-촤르르르륵!!!

“헤으으응….”

금괴를 차곡차곡 눕혀 침대 매트리스처럼 깔고 누워 금화로 목욕 중.

촌스러울 만큼이나 찬란히 빛나는 24k의 광채에 눈앞이 번쩍번쩍했다.

숫자로만 듣던 금액을 막상 눈앞에서 보니 기분이 정말 최고조다.

마녀가 된 이후 처음으로 어마어마한 목돈을 실물로 손에 쥔 것이다.

1년에 1억씩 펑펑 쓰면서 산다고 해도 무려 400년 노후가 탄탄히 대비되는 거액.

더 쩌는 건 이게 알비레오 장모님께 빚을 상환하고도 남은 돈이라는 거다.

오늘 오전.

시우는 턱을 꼿꼿이 치켜들고 옆구리에 커다란 궤짝을 꿴 채 알비레오의 집무실을 찾았다.

“알비레오 님, 못난 사위가 금의환향해서 돈 갚으러 왔습니다.”

“후후, 정말 간만에 이쁘네요. 어디 줘 보세요.”

사업가답달지 큰 장모님은 시우가 척 내민 금괴 상자를 스스럼없이 받아들였다.

물론 돈이 부족하신 건 아닐 테다.

시우에겐 거액이라도 그녀에겐 석 달 술값 정도 일 테니 말이다.

다만 언제나 속만 썩이던 사위가 떳떳이 자립 가능성을 증명해 보였다는 점에서 무척 뿌듯해하시는 듯했다.

그 덕에 칭찬을 듬뿍 받을 수 있었다.

“요새 시우 군 덕분에 어깨가 으쓱거려요. 살롱에서 다들 부러워한다니까요?”

“이제라도 도움이 되었으니 다행입니다. 아, 그리고 한가지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뭔가요?”

“앞으로는 달마다 제 생활비라도 내고 싶습니다.”

살짝 놀랐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는 장모님.

“빈털터리도 아닌 처지에 마냥 얹혀사는 것도 도리에 어긋난다 싶어서요.”

“우리 시우 군, 다 컸네요. 기특해요.”

“아닙니다. 이제야 좀 사람 구실 하는 거죠.”

“시우 군이 머무는 방과 연구동 월세만 제값에 받을게요. 한 달에 542파운드씩만 주세요. 숙박비, 시설 유지비, 봉사료, 연구 설비 관리비에 세금 포함이에요.”

“…예?”

“이것도 할인가랍니다? 식대와 연구 설비 대여료는 빼주었어요.”

알비레오가 제시한 금액은 정확했다.

심지어 매우 관대한 책정이었다.

시우가 머무는 객실 구조는 침실 하나, 거실 두 개, 응접실 하나, 집무실 겸 서고 하나.

바닥부터 벽지까지 사치로 도배된 초호화 스위트룸이다.

숙련된 기량을 지닌 메이드에 의해 테이블 위 생화 한 송이 시들지 않을 만큼 최상의 컨디션 유지를 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거기에 마녀의 연구장비는 고가며 제머나이 백작이 제공한 연구 장비는 그중에서도 하이엔드 클라스.

장비 대여료까지 따로 받는다면 금액은 족히 2배는 치솟겠지만, 그것을 제외해해도 시우의 예상을 아득히 초월하는 값이긴 했다.

“역시 좀 무리겠죠?”

“아, 아닙니다. 내겠습니다.”

동공이 지진을 일으키는 시우를 보며 씩 웃는 장모님.

겉치레로 한 말은 아니지만 절로 식은땀 나는 액수가 아닐 수 없었다.

“꾸짖는 건 아니니까 안심하고 들어요. 숙식을 제공하고 시우 군의 연인들에게도 편의를 보장하는 건 시우 군이 귀염둥이 오딜과 오데트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기 때문이에요. 그건 돈으로 책정할 수 없는 은혜죠. 새삼 시우 군에게 월세 같은 걸 받을 생각은 없답니다.”

“…그래도, 뭔가 죄송스러워서요.”

“마음은 받았어요. 오늘 또 다시 봤어요.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바른 청년이네요.”

어쩐지 머쓱했다.

알비레오는 잠깐 고민하다 한마디를 장난스레 덧붙였다.

“여성편력 고약한 건 빼고요.”

다시 현시점.

금화 목욕을 끝내고 일어난 시우는 주섬주섬 바닥에 너부러진 것들을 주워 모았다.

“…….”

처음으로 벌어들인 목돈이다.

물론 이대로 끌어안고 일신의 사리사욕을 위해 써도 좋겠지만 의미 있는 돈인 만큼 가치 있게 쓰고 싶었다.

“좋아, 선물이다.”

주변에 고마운 사람들.

특히 별 볼 일 없는 시우에게 아낌없는 사랑과 지원을 해준 연인들에게 선물을 주자.

그렇게 다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2.

기쁜 소식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깨달음을 얻고 며칠 간 폐관 수련하던 샤론이 방 밖으로 나왔다.

겹경사인 셈이다.

“시우야, 나 뭐 달라진 거 없어?”

만개한 화원 같은 미소로 깡총깡총 뛰어온 샤론은 뒷짐을 지고 물었다.

샤론과는 오랜 시간 함께했던만큼 단박에 차이를 짚어냈다.

주위에 흐르는 마력장의 기도가 달라졌다.

20 위계일 때와 달라졌다는 건 그녀가 하나의 벽을 뛰어넘었다는 말.

“레벨 업했어?”

설마 설마 했는데 정말 이렇게 될 줄이야.

샤론은 알통을 만드는 시늉을 하며 자신감 넘치게 웃었다.

“응! 이제부터 난 그냥 샤론이 아니야. 초절정고수 샤론이야.”

샤론이 원래부터 절정고수이긴 했지만 마법적으로 봤을 때 이는 꽤 놀라운 일이었다.

보통 연구를 통해 낙인의 위계 하나를 올리는 건 ‘한 대(代)’의 과업으로 삼는 일이다.

하지만 샤론은 견습마녀가 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위계를 올린 것이다.

심지어 불완전계승 상태였고, 마녀 생의 대부분은 빚을 갚느라 연구다운 연구도 못 해보던 처지를 벗어나 말이다.

불과 얼마 전 ‘도움이 안 되는 자신’의 모습에 절망하던 샤론인만큼 그 성과가 더욱 빛나 보였다.

“너 대단하다. 진짜 고생했어. 샤론 최고다! 멋지다! 자랑스럽다! 사랑스럽다!”

“우후후, 이게 다 네 덕분이야. 밤새 논문 보면서 골머리 앓고 있었는데 타악! 계시가 오더라고. 내 인생에서 제일 큰 행운은 시우인 것 같아.”

“에이, 누가 할 소리를.”

사람 손을 잘 타는 고양이처럼 뺨을 붙여오는 샤론은 정망정말 행복해 보였다.

사랑하는 사람의 기쁨은 자신의 기쁨인 만큼 시우도 입꼬리가 찢어졌다.

“샤론, 선물이 있어.”

“선물? 무슨 선물?”

“눈 감아봐.”

“뽀뽀할 거야?”

애교스러운 몸동작으로 입술을 내밀며 손을 내미는 샤론.

샤론의 입술에 부드럽게 입술이 맞닿았다가 떨어지더니 손에 종이 봉투 한 장이 얹혔다.

“음? 이게 뭐야?”

“열어봐.”

부스럭거리며 봉투를 뜯고 안의 내용물을 살피는 샤론.

사무적인 냄새 가득한 A4 용지, 녹색 여권, 신분증, 통장이다.

“으음?”

“이거 먼저 봐봐.”

시우는 그중에서 등기권리증을 먼저 골라내주었다.

샤론의 예쁜 민트빛 눈동자가 천천히 서류를 훑는다.

“뭐, 뭐야 이게? 이게 뭐야?”

“우리가 살던 오피스텔 너 명의로 해뒀어. 그리고 이건 너 이름으로 된 신분증, 여권, 통장.”

“…….”

샤론은 한동안 멍하니 입을 벌리고 멍하니 있었다.

장모님께 오피스텔을 사들이고 전에 높으신 정치인 할아버지에게 받았던 명함으로 연락해 샤론의 신원정보를 등록했다.

그리고 그 명의로 오피스텔을 달아두었다.

마냥 비싸다고 번지르르하다고 좋은 선물이 아니다.

…다시 생각해보니 1회 선물용으로는 비싸긴 한데 그게 중요하랴?

샤론에게 고마운 점이 얼마나 많은데 말이다.

아무튼 샤론에게 가장 가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한 끝에 준비한 선물이었다.

샤론이 큼지막한 눈이 더욱 커진다.

그리고 예쁜 이슬 같은 눈물이 방울방울 맺혔다.

입술이 꾸물꾸물 움직이더니 손사래를 쳤다.

“나, 나는 이런 거 필요 없어. 여기 집값도 비싸잖아! 자주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난 이거 못 받아.”

힘들고 고된 나날도 있었지만 시우와 함께했던 소중한 추억이 담긴 장소.

기쁘지 않을 리 없다.

무엇보다 시우가 그런 샤론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이런 선물을 준비했다는 게 가장 기쁘다.

하지만 신촌의 신축 오피스텔이라면 그냥저냥 수준의 가격이 아닐 것이다.

방금 시우가 목돈을 만지게 되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이제껏 도움만 받아온 자신이 이런 값비싼 선물을 받아도 되는 걸까?

“너무 고마워 시우야. 근데 이건 절대 안 받을 거야. 다른 건 받을 게.”

샤론은 집문서를 시우 품에 밀어 넣었다.

“어허~ 넣어 둬 넣어 둬. 탈 나는 거 아니야.”

“못 받아! 진짜 못 받아 이런 걸 부담스러워서 어떻게 받아!”

“재산세도 내가 다 내 줄 거야.”

“안 돼! 못 해! 차라리 너 좋은 거 사 입어! 맛있는 거 사 먹어!”

옥신각신 승강이를 벌이는 샤론과 시우.

차이가 있다면 샤론은 진심으로 허둥지둥한다는 것이고, 시우는 능글맞은 웃음으로 대한다는 것이다.

샤론의 반응은 너무나 예상대로여서 절로 웃음이 나왔다.

“…정말 받아도 돼…?”

한참의 사랑싸움 이후 반쯤 억지로 서류를 떠맡게 된 샤론이 울먹이는 말투로 물었다.

“당연하지.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너인데.”

간만에 멋진 남자친구 노릇을 한 기분이었다.

입술을 꾹 깨물던 샤론이 와락 시우의 목을 안더니 격렬하게 키스해왔다.

여기서 다시금 되짚어보는 상식.

여성에게 있어 최고의 성감대는 뇌이며, 최고의 최음제는 사랑이다.

크나큰 감동을 안겨 준 선물과 거기서 물씬 느껴지는 시우의 사랑은 조신한 샤론을 음란 고양이 모드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츄우웁, 하아…. 시우야, 나 벗겨줘….”

“그래그래, 방으로 가자.”

“아냐, 지금 여기서 벗겨 줘.”

여기는 복도다.

물론 계단 근처 코너라 인기척이 들려오면 잽싸게 몸을 숨길 수 있기 하지만 ‘바깥’이다.

옷가게 탈의실에서 몰래 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위험한 장소인 것이다.

“누구 오면 어쩌려고?”

부드러운 가슴을 전력으로 밀어붙이며 뜨겁게 혀를 섞던 샤론.

관능이 맺힌 그녀의 눈동자는 성욕을 동하게 하기엔 차고도 넘쳤다.

“하아…. 샤론은 시우꺼니까. 시우하고 싶은 대로 해도 돼. 엄청 부끄러운 짓 시켜도 돼.”

샤론이 손을 꼬물거리더니 셔츠의 단추를 풀고 브래지어 손가락을 넣어 끌어내렸다.

하얗고 깨끗한 젖가슴과 빼꼼 고개를 내민 젖꼭지가 딸기케이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먹음직스럽고, 부드러우며, 달콤해 보인다.

“어떤 부끄러운 짓?”

숨을 거칠게 쉰 시우가 샤론의 엉덩이를 움켜쥐었다.

언제 잡아도 그립감이 죽인다.

“으, 으응…. 샤로니가 박히는 모습 보여주면서 자랑하거나아…. 알몸으로 산책시켜도 시우가 기뻐하면 할거야. 오늘은 시우가 주인님이고, 샤로니는 시우 주인님 장난감이야….”

애교 가득한 목소리와 새로이 정착한 1인칭 샤로니.

샤론이 본격적으로 분위기를 탔다는 증거다.

“하앙….”

시우는 샤론의 치마 버클을 내리고 팬티를 돌돌 말아 벗기며 귀를 깨물었다.

자지러지며 몸을 부르르 떠는 샤론에게 명령했다.

“옷 다 벗고 빨아.”

“네, 주인님….”

으슥한 복도 코너에서 입을 틀어막고 얼굴이 벌겋게 변한 샤론.

그리고 위계 상승을 기념해 그녀의 배안에 하얀 축포를 쏴 준 시우.

“에헤헤…. 진짜 변태짓했다 우리.”

“그러게….”

“나중에 또 하자, 응?”

부랴부랴 뒷정리를 끝내고 옷을 입은 채 머리를 기대며 부끄러워하는 샤론을 보며 시우는 떠올렸다.

어째 선물할 때마다 비슷한 일이 반복될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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