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50
1.
마법이란 무엇인가?
만약 마법에 무지한 인간이 마법을 사용하는 모습을 본다면 문자 그대로 ‘마법 같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니까 뭔가 애매하고, 신기하고, 규명할 수 없고, 증명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힘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마법의 본질은 언제나 하나였다.
마력으로부터 현상을 이끌어내는 고도로 발달한 학문이자 기술이다.
여느 학문이 그렇듯 마법 역시 무수한 논쟁과 논의를 지식축적의 동력으로 삼는다.
기존 학설을 부정하고, 새로운 학설을 창조하고, 한 가지 학설에 여러 해석을 늘어놓는 와중.
틈만 나면 첨예하게 대립하곤 한다.
부정감사처럼 극단적인 사례가 아니더라도 학계에 몸담은 마녀라면 언제나 논문을 게재하고 코멘트나 비평 같은 동료평가 속에서 전쟁처럼 치열한 논박을 거친다.
그냥 그게 일상이다.
따라서 지금 리센느가 들고 있는 서류를 작성해 준 질문지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었다.
드메르 남작을 포함해 그녀의 측근에 속한 마녀들이 머리를 모아 작성한 것.
논리적 흐름을 지적하고, 궤변을 내뱉도록 유인하고, 보다 심층적인 답변을 유도한다.
조금이라도 어정쩡하게 이해한 부분이 있다면 적나라하게 파헤치기 위한 비장의 무기.
악의적인 수사학으로 포장된 독을 바른 비수와 같았다.
여러모로 위축되었던 리센느조차 서류의 첫 장을 넘길 땐 다시 자신감을 되찾을 정도였다.
그러나….
“…….”
자신만만하던 질문의 반절이 동났다.
날카롭게 날아간 비수는 철벽과도 같은 그의 논리에 흠집조차 내지 못했다.
검은 갑주를 단단히 갖춰 입은 그의 발밑에 무수한 단도가 나뒹구는 환상이 보였다.
“고발자 측, 질문하세요.”
리센느는 티가 나지 않게 어금니를 깨물며 다음 비수를 살폈다.
이번엔 비단 이해도를 판가름하기 위한 질문이 아니다.
실험윤리적 측면을 교묘하게 지탄하며 또 다른 의혹을 내세우기 위한 한 함정이다.
완곡하게 돌려 묻는 무례한 질문이자 발끈하여 맞불을 놓는다면 오히려 하책이 되는 함정.
신시우는 줄곧 ‘도용 의혹을 받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라는 언행을 내비치고 있다.
신경을 살살 긁는 기레기급 신경전이 오히려 먹힐지도 모른다.
“저자의 논문은 그노시스의 알에 대한 임상적 유용성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허나 임상 시험에 대한 데이터는 현저히 부족합니다. 실제 사례가 있다면 이 자리에서 공개할 수 있을까요?”
“제 졸고에 임상적 유용성에 관한 내용은 한 글자도 적혀있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상이한 자성마법 간 결합에 관해 논하고 있죠.”
“하지만 상이한 자성마법의 결합이라 함은 통상적으로 그노시스의 알에 관한 연구인 경향이 짙습니다. 그게 아니라면…. 공적의 예시 사례를 연구한 것은 아닌가요?”
“논지에서 벗어난 질문이네요. 중재를 요청합니다.”
하지만 콧방귀를 뀌며 유유히 올무를 빠져나가는 신시우.
“요청을 받아들입니다. 고발자는 감사 취지에 어긋나는 질문을 삼가주십시오.”
리센느는 한차례 입술을 깨물고 다음 비수를 던졌다.
“반발통제모형의 C 유형으로 제시되는 ‘상징 통제’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을 요구합니다.”
생략 되었던 그의 증명만큼이나 많은 관심이 쏠렸던 파트 중 하나다.
더불어 모호한 답변 탓에 이해할 듯 말듯 넘어가야만 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시우는 분필을 들어 빈 칠판 앞에 다시 섰다.
“많은 자성마법이 마법을 활용함에 ‘상징’을 채택합니다. 세계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전에 이미 성립되어 있는 상징체계를 이용함으로써 자성마법의 고유성과 능률을 강화하는 것이죠.”
칠판에 두 개의 원을 그렸다.
한 원에는 A, 다른 원에는 B를 적은 뒤 각기 다른 동심원을 하나씩 그린다.
“각기 작은 원이 자성마법이라면, 큰 원은 자성마법을 구축하기 위해 활용되는 상징이라고 칩시다. 보시다시피 이러한 상징이 존재하는 까닭에 상이한 자성마법을 결합할 경우 상징체계 간 충돌이 일어나게 됩니다.
동심원은 벤 다이어그램처럼 겹치게 되었고 시우는 겹친 부분을 분필을 눕혀 하얗게 칠했다.
“겹친 부분이 클수록 상징체계가 크게 충돌하며 막대한 전환 과부하가 발생하죠. 전환 과부하를 통제하기 위해 마력이 낭비되고, 최적화는 흐트러지며 이를 억지로 바로잡기 위해선 필연적으로 둘 중 하나의 상징을 크게 약화시켜야 했습니다.”
그 아래 빠르게 계산식을 적어 내려가는 시우.
“현실의 상징을 한 위상 위에 병치하려는 건 고리타분한 포맷입니다. 반발통제모형의 C형인 상징 통제는 ‘위상’의 분리를 통해 이를 해결하는 방식입니다.”
질문 자체는 꽤 예리하긴 했다.
구태여 추가하지 않았던 중요 요소 중 하나를 지적하고 있었으니.
하지만 시우에게는 그조차 1.5세대에 불과한, 아주 오래전에 걸어왔던 길일 뿐이다.
그리고 논문에 적어두지 않았던 새로운 정의가 칠판 위를 가로지른다.
“마녀가 차용하는 상징이란 결국 ‘악보’ 혹은 ‘숫자’와 같습니다. 자연계에 존재하는 요소를 그려내기 위해 임의로 창조한 관념이죠. 정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허수를 떠올려 보세요.”
리센느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가 준비한 자료에도 나오지 않았고, 드메르 남작과 함께 논의할 때도 대강 짚고 넘어갔던 부분이기 때문이다.
설마하니 이 이상 심층적인 내용을 다룰 줄은 상상조차 못했다.
“이해가 잘 안 가시나 보네요?”
눈살을 찌푸리는 건 리센느뿐만이 아니었다.
방청객으로 랜덤 선발된 마녀들은 물론 진리진명 학술회와 에메랄드 타블렛의 마녀들 역시 ‘갑자기 무슨 소리야?’라는 표정으로 시우를 바라보고 있었으니.
“상징을 ‘면’으로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또한, 하나의 위상에 놓여야 한다고 여길 필요도 없습니다. 앞서 설명했듯 그건 선입관입니다.”
그는 손가락을 튕겨 염동을 사용했다.
검은 칠판에 묻어나왔던 하얀 초크 가루들이 모양 그대로 허공으로 떠오른다.
“어떤가요?”
두둥실 떠오른 A와 B 두 개의 원은 방청객석에서 보자면 분명 겹쳐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는 앞뒤로 거리가 있기에 물리적으로 겹쳐지지 않았다.
평면상에 있던 걸 한 차원 높은 공간으로 끌어낸 것만으로 실제적인 접촉이 사라진 것이다.
불안감을 느낀 리센느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반문했다.
“그렇게 쉽게 될 리가 없잖아요? 애초에 같은 위상에 존재하지 않는 상태로 자성마법의 결합이 가능한가요?”
“가능합니다. 가령 불의 상징이 뭐가 있죠? 루비, 모닥불, 잿가루, 화산, 붉은색.
그럼 생명의 상징은 뭐가 있나요? 꽃, 심장, 호흡, 혈액…. 어떤가요? 많잖아요? 이처럼 상징체계는 느슨합니다. 융통성을 발휘할 수 있어요. 위에서 봤을 때 ‘겹쳐’만 있다면 실제 위상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거죠.
물론 너무 떨어져 버린다면 둘 중 하나의 영향력이 매우 감소할 테지만 말이죠.
이에 대한 관계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설명하는 내내 쉼 없이 채워져 나가는 판서.
말발굽처럼 울리는 분필 소리를 들으며 리센느는 깨달았다.
리센느 뿐 아니라 여기에 모인 모두가 깨달았다.
리센느의 손에 들린 나머지 질문, 도용 의혹을 제기하기 위한 종이 뭉텅이는 이제 이면지나 다름없다는 것을.
신시우는 너무도 여유롭고 능수능란하게 자신의 지식을 풀어 설명해 나갔다.
뿐만 아니라 적당한 비유와 쉬운 설명을 들어가며 이해를 돕기도 한다.
논문에 대한 질문을 완벽하게 답변한 것도 모자라, 한층 확장한 지식에 대해서도 막힘없이 서술하고 있다.
그가 심층 논증에서 보이는 모습은 결코 누군가 알려주어 가능한 수준이 아니다.
온전히 제힘으로 쌓아올린 지식과 능력이 있어야만 구사 가능한 퍼포먼스다.
“질문에 대한 답변은 이상입니다.”
자리몽땅하게 변한 분필을 새것으로 바꿔 들며 선언하는 시우.
장내엔 침묵이 감돈다.
그레모리 사서장이 입을 열었다.
“고발자, 더 남은 질문이 있나요?”
리센느의 손에 들려있던 서류뭉치가 힘 없이 미끄러져 내렸다.
드메르 남작이 틀렸다.
그가 도용했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벼려진 비수를 던져봐야 패자의 추한 발버둥밖에 되지 않는다.
“…없습니다.”
뒷감당이야 드메르 남작이 하겠지만 리센느의 명예가 더럽혀지는 건 예정된 수순.
어지간한 철면피로 단련되기 전까진 산책조차 힘들어질 것이 뻔했다.
유일한 희망이라면 방청객 질문이 리센느의 것보다 날카로워 신시우가 실수하길 빌어야 하는데, 리센느는 그 정도로 세상 물정 모르고 순진하지 않았다.
실패는 실패다.
“저자 측 이어서 진행해도 괜찮나요? 원한다면 30분간 휴게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괜찮습니다.”
“그렇다면 방청객 측에서 질문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그레모리 사서장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수십 명의 마녀가 일제히 거수한다.
옷깃이 흔들리는 소리가 커다란 깃발을 휘두르는 것처럼 웅장했다.
채 손을 들지 않은 마녀도 종이와 펜을 붙잡은 채 새로이 떠올린 사유에 열중 중이다.
지목된 마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시우를 향해 고개를 숙이고 예를 표했다.
“저는 ‘영위의 마녀’ 타르바 헤카테입니다. 위상일치 증명부에 관한 추가적인 질문이 있습니다. 저자가 설정한 위상의 정의가 마법 구현 준위와 비슷한 것이라면….”
“그거라면 간단합니다.”
시우는 그녀의 설명을 듣고 잠시 고민하더니 조금 전과 같이 막힘 없는 대답을 칠판과 함께 해내었다.
“이어 다음 질문받도록 하겠습니다.”
새우깡을 조르는 갈매기처럼 힘차게 하늘로 솟는 팔들.
“전 ‘진위의 마녀’입니다. 저자의 논문에 대해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이어….”
방청객이 많고 시간 사정상 길게 최대한 짧게 축약해야 했으나 대다수의 마녀가 납득한 듯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았다.
이 자리는 더는 도용 의혹을 밝히기 위한 부정연구감사가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더 가르침을 얻기 위해 체면도 불고하고 어린아이처럼 손을 흔드는 열의 가득한 강연장이었다.
“시간 관계상 이상으로 심층 논증을 위한 방청객 질의응답을 마칩니다. 신시우 씨 저자 석으로 돌아가 착석하세요.”
그 증거는 시우가 30번째 질문에 답변하고 단상에서 내려오는 순간 확연히 드러났다.
-짝 짝
질의 응답이 끝나고 고요하게 변한 강당.
아직 뭉근히 남아있는 학구열의 잔재 사이로 외로이 울려 퍼지는 박수.
방청객석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짝 짝 짝 짝 짝
처음엔 한 명에 불과했던 박수가 마른 벌판의 들불처럼, 소나기처럼 번져간다.
———!!
이내 피부가 따끔거릴 만큼 쏟아지는 손뼉 소리가 의미하는 것은 하나였다.
이곳에 모인 방청객은 배심원이 아니다.
그들에겐 감사를 판결할 권리가 없으며 도용 의혹을 판가름하는 건 오직 감사위원회의 몫이다.
하지만 마법에 한해서는 누구보다 자존심이 강하고 아집으로 똘똘 뭉친 마녀들.
오만불손하고, 요령 없고, 고리타분하고, 융통성 없고, 마법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는 천생의 학자들.
그런 그들이 이번 감사에 대한 의견을 환호 없는 박수로 묵묵히 전하고 있었다.
신시우는 명예욕에 눈이 먼 어린 마녀가 아니라.
마녀 학계에 새로이 등장한 초신성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