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847화 (847/917)

#847

1.

아멜리아와의 노출 산책이라.

참으로 추억이 떠오르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아멜리아가 시우를 위해 노출산책 이벤트를 해주었던 때도 이 말쿠트 갤러리였으니 말이다.

“으…. 으으….”

아멜리아는 걸음마를 시작한 아기 펭귄처럼 뒤뚱뒤뚱 걷고 있었다.

한 걸음 한 걸음을 떼는 게 두려운 듯하다.

이렇게 옆에 꼭 붙어있는데도 시우가 어디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자꾸만 위를 힐끗이는게 아주 자지가 터질 것 같다.

“시우, 절대로 떨어지면 안 돼요? 알겠죠?”

“걱정 마세요.”

“꼭이에요? 약속한 거예요?”

“네네.”

아멜리아의 반응이 이상한 건 아니다.

다들 태연하게 입고 다니기에 새삼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속바지가 없는 치마란 방어력이 아주 낮은 의복이다.

무려 속옷이 공기 중에 직접 노출된다.

허벅지를 간신히 가릴 수준의 플리츠 스커트라면 겨울 찬바람이 조금만 휭 스쳐도 팬티 전시회의 장식커튼이 되어 버린다.

하물며 지금 아멜리아의 하반신은 노팬티, 엉덩이엔 음란한 낙서까지 쓰여있다.

반질반질한 대리석 바닥이라면 걸을 엄두도 내면 안 되는 위험천만한 상태인 것이다.

“…읏!”

아멜리아를 곤혹스럽게 만드는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잔뜩 항진된 성감은 수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가라앉을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발걸음을 옮기는 소소한 충격에 아랫배가 움찔거린다.

더하여 이 부끄러운 모습이 다른 사람에게 들킬지도 모른다는 긴장감.

이런 부끄러운 행동을 강요받고 있는 걸 자각할 때마다 어째서인지 머리가 징징 울린다.

시우더러 변태라고 빽빽 소리를 지르긴 했지만….

정작 더 변태인 건 자신이 아닐까?

아멜리아와 시우가 느릿한 걸음으로 제머나이 백작가를 향하는 그 시각.

둘이 눈치채지 못한 미행이 붙어 있었다.

그것도 무려 셋이나.

“부교수님, 저런 짧은 치마도 입으시네.”

“그러게. 처음 봐.”

“뭘 볼거리라고 구경하는 것이냐?”

“쉿쉿, 가만히 좀 있어봐.”

“어차피 그 오르골인지 뭔지 하는 게 있지 않으냐? 너희나 그 커다란 모자를 벗도록 하여라.”

“아이참, 관찰 중이니까 정신 사납게 하지 말라니까!”

때마침 쇼핑을 나온 세쌍둥이 오딜, 오데트, 르뤼에였다.

아주 우연히 아멜리아와 시우를 발견하고 살금살금 뒤를 밟기 시작한 것이었다.

“굳이 숨어서 지켜볼 필요가 있겠느냐? 끼어들어 단둘이 있는 걸 방해해도 모자랄 판국에.”

“르뤼에, 사랑 전쟁에서 상대의 전략을 엿보는 건 중요한 거야.”

“부교수님의 전략은 베일에 감춰져 있다고. 야한 속옷 빼고.”

“그런 것이냐?”

그렇다.

샤론 언니의 경우 조수님과 응응을 하는 것까지 훔쳐봤다.

르뤼에와 도로시의 케이스는 서로 썰을 푸는 과정에서 확인했다.

린네는 최후반에 합류한데다가 물리적으로도 거리가 있는 만큼 다크호스라고 보기엔 어려웠다.

티페레트 공작님은….

솔직히 아무리 쌍둥이라도 감히 염탐할 엄두가 안 났다.

“전에도 말했잖아, 부교수님은 조수님이랑 지낸 시간이 가장 길다고.”

“항상 조용히 계셔서 안 그래 보여도 어마어마한 강자라니까?”

“흐음, 짐이 보아도 용모가 빼어난 계집이긴 하도다.”

솔직히 그냥 데이트인 것처럼 보이고, 딱히 뭘 캐낼 수나 있을지 의문인 르뤼에다.

하지만 재밌어 보이니까 순순히 쌍둥이의 지시를 따랐다.

오딜과 오데트가 재미난 일을 찾는 능력은 배고픈 곰이 벌집을 찾는 수준이니 말이다.

“어?”

“응?”

그리고 머지않아 오딜과 오데트는 의미심장한 단서를 찾아내었다.

“오데트, 저 걸음걸이는….”

“맞아, 확실해 언니.”

“뭐가 말이더냐?”

아멜리아 부교수님의 발걸음이 이상하다.

빙판 길을 걷듯 조심조심한 발끝, 발꿈치가 땅에 닿을 때마다 흠칫흠칫 떨리는 어깨.

“부교수님 했어.”

“그것도 조금 전에.”

저건 오딜과 오데트가 시우와 뜨밤을 보낸 뒤 다음날 걸음새와 정확히 일치했다.

뜨거운 열락의 잔열이 남아버린 나머지 걷기만 해도 움찔움찔 대는 경험은 그의 연인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있는 일이다.

“그래서 저렇게 옷자락을 꼭 쥔 채 찰싹 달라붙어 걷는 거였구나.”

“부교수님도 우리랑 똑같네.”

“금발의 향수가게가 근처이니 당연한 일 아니더냐?”

날카로운 안목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고개를 끄덕이던 쌍둥이는 이내 입을 떡 벌리게 되었다.

예상외로 재밌는 이벤트가 없자 슬슬 하품하던 르뤼에도 마찬가지였다.

“엑?”

“어?”

“음?”

시기는 두 사람이 갤러리 출구 쪽 짧은 계단을 올라갈 때였다.

오르골의 가호를 받아 느긋하게 미행하던 세쌍둥이는 각 도상 아멜리아의 치마 안쪽을 볼 수 있었다.

충격적인 모습에 미행하고 있었다는 사실도 잊고 우뚝 멈춰선 세 사람.

한동안 망연자실하게 서 있던 세 사람 중 르뤼에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너, 너희 꼬맹이들의 말이 맞았도다. 실로 어마어마한 강적이었느니라….”

“소, 소, 속옷을 안 입었어…?”

“저렇게 짧은 치마였는데…?”

사랑하는 조수님을 만나 다른 마녀보다 일찍 어른의 계단을 밟게 된 쌍둥이지만 패션에 대한 사고는 그다지 개방적이지 못하다.

이는 게헨나 특유의 패션 문화 탓이기도 한데, 교양 있고 단정한 옷차림이 선호되는 게헨나에선 다리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복장만 해도 과감한 노출에 속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노팬티라니.

길거리에서 노팬티 데이트라니.

상식개변을 당한 듯한 퇴폐 행위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언니, 방금 부교수님 엉덩이에…. 글자 봤어?”

“잘은 못 봤는데….”

“군함조와 같이 빼어난 시력으로 짐이 보았느니라…. 나머지 부분은 가려져 있었지만 ‘애널절정 10회 달성 하’라고 쓰여 있었도다.”

새삼 말하고 보니 다시금 옆 통수를 쇠망치로 두들긴 양 멍하다.

아무래도 믿기지가 않았다.

그도 그럴게. 이미지가 너무 다르지 않은가?

아멜리아 메리골드라 하면 눈빛만으로 심장을 얼릴 수 있는 냉혹한 교수자.

스승님만큼이나 모범이 되는 언행과 예법의 (전) 귀족.

아카데미 재학 시절 쌍둥이가 찍소리도 못하게 했던 카리스마 넘치는 대마녀이다.

그런데 엉덩이에 그런 천박한 글귀를 적어놓게 하고, 심지어 그대로 속옷도 입지 않고 짧은 치마 차림으로 길거리를 활보하다니.

갭이 너무 커서 뇌에 오류창이 계속계속 뜨는 것 같다.

“부교수님도 뒤로 했어….”

“절정 10번이나….”

“짐의 국서는 때로 제정신이 아닐 때가 있는 것 같느니라.”

하지만 현실을 부정해도 눈으로 본 증거를 없던 일로 할 수는 없다.

쌍둥이는 또다시 그나마 우위에 서 있던 점을 하나 잃어버렸다.

맨 처음 부교수님과 다툴 땐 그걸 필살기 삼아 승리를 거머쥐었는데 말이다.

“…저 정도의 각오는 있어야 한다는 건가?”

“언니 저거 할 수 있겠어?”

“절대 못해! 어떻게 해!”

그나마 위안 삼을 수 있는 건 고작 10회라는 것.

쌍둥이가 뒤로 갈 때면 조수님도 좋아한다.

그말인 즉….

“고작 10번으로 저렇게 할 정도라면야 뭐.”

“부교수님도 그 방면으론 아직 풋내기라는 말 아니겠어?”

부산떠는 쌍둥이 옆에서 입술을 매만지던 골똘히 궁리하던 르뤼에가 입을 열었다.

“뭔가 이상하도다.”

“뭐가?”

“여기서 이상할 게 더 있어?”

“방금 그 글귀, 1과 0 사이가 제법 멀리 떨어져 있었도다. 다른 글자와 달리 글자 하나 분 만큼 말이다.”

“그게 뭐 어쨌다고? 엉덩이 골이 있으니까 그런 거 아니야?”

“왜 하필 그런 애매한 위치에 적었겠느냐?”

오데트의 입이 먼저 벌어졌다.

“그런 일이 가능할 리 없어….”

“뭔데 오데트? 뭐길래?”

“아이참, 언니 눈치가 왜 이렇게 없어!”

속닥속닥.

언니의 귀를 붙잡고 자신이 깨달은 바를 말해준 오데트.

“배, 배, 백번….”

비하인드 스토리를 깨닫고 기절초풍하는 오딜.

“조수님도 참…. 진짜진짜 변태셔….”

시우의 상상력에 얼굴을 붉히는 오데트.

“실로 무서운 마녀였느니라….”

가뜩이나 무서워하던 아멜리아가 더욱 무서워진 르뤼에였다.

2.

정기적으로 있는 제머나이 만찬엔 제머나이 백작과 시우, 그리고 가문의 손님인 시우의 연인들이 참석한다.

시우와 아멜리아가 가장 먼저 도착했으며, 그 뒤에는 알비레오가, 그 뒤로는 세쌍둥이가 눈치를 보며 착석했다.

불참인원이 둘이나 있다.

스승님이야 그렇다 치고, 샤론과 작은 장모님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나저나 요즘 작은 장모님 얼굴 뵙기 참 힘들다.

열심히 뽑아낸 정액 샘플도 건네주어야 하는데 일부러 피해 다니기라도 하는 건지 그날 이후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다.

“백작님, 데네브 님은 어디 계신가요?”

“데네브는 요새 연구가 바쁜지 통 얼굴을 비추질 않네요.”

“샤론도 늦는 것 같습니다.”

“샤론 양은 어제부터 폐관에 들어갔어요. 큰 깨달음을 얻은 모양이라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저택을 관리해주던 사용인도 물렸고요.”

하루 사이에 그런 일이 있었던 건가?

“그렇군요, 배려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뭘 이 정도로요.”

모든 사람이 자리에 앉고 사용인들이 부지런히 요리를 나르기 시작하자 알비레오가 냅킨을 무릎에 펼쳤다.

식사 시작이라는 의미다.

“시우 군이 들어야 할 얘기가 있어요.”

“네, 뭔가요?”

얼마전이었더라면 큰 장모님의 부름만으로 등골이 싸늘해질 시우였으나 요즘은 아니다.

논문 게재 이후 알비레오의 태도가 놀랍도록 사근사근해졌으니 말이다.

“오늘 오전, 비서고에서 편지가 왔어요.”

“아, 그런가요?”

내심 쾌재를 불렀다.

시우를 문전박대했던 그레모리 사서장이 논문을 읽었음이 틀림없다.

아마도 학자가 지녀야 할 능력을 입증해 보였으니 적당한 조건으로 열람권을 주겠다는 제안일 터.

더는 샤론과 아멜리아에게 비서고 조사를 일방적으로 맡기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가볍다.

“연구부정감사에 대한 참고인 출석요구서예요.”

“네?”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시우 군의 논문이 타인의 연구를 도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어요. 단박에 이만한 성과를 올렸으니 어떻게든 깎아내리고 싶다는 거죠.

부정의혹을 제시한 쪽도 물증이 없으니 거부해도 상관없어요. 하지만 이 김에 부정감사에 응하여 서기장의 공인을 받아 입지를 다지는 것도 현명한 선택이에요. 더는 뒷말이 나오지 않을 테니까요.”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심, 아주 조오오오금은 걱정되는 알비레오였다.

그의 대단한 능력은 알고 있다.

하지만 혹시 시우의 많은 연인 중 하나가 그의 능력 이상으로 도움을 주었다면, 자칫 부정감사에서 들통 날 염려가 있기 때문이다.

마녀끼리 연구에 도움을 주고 받는 게 드문건 아니지만 시우는 조금 경우가 다르다.

그는 전례 없던 남자 마녀이고 게헨나를 떠들썩하게 만들 논문을 냈다.

문제는 그 논문이 지나치게 빼어나다는 것이다.

가령 9를 스스로의 힘으로 하고 1의 도움을 받았더라도 감사에서 완벽히 소명하지 못한다면, 멋모르는 이들이 그에 대해 좋을 대로 떠들어 댈 것이 뻔했다.

‘유력 가문의 도움으로 조작된 천재’ 쯤으로 말이다.

그렇기에 그를 믿는다는 말투를 슬며시 내비치며 시우를 떠보려 했던 알비레오는 잠시 숨을 멈추었다.

“…….”

-기이이익!

처음봤다.

언제나 속없이 웃고 다니던 사위가 화내는 모습을.

그의 손에 들린 은제 포크가 구부러지더니 아예 동강 난 채 접시 위로 떨어진다.

격해진 감정을 따라 마력이 흐트러진 까닭에 머리카락이 위협적으로 넘실거린다.

“도용?”

적의로 충만한 으르렁거림이 비속어와 함께 잇새로 흘러나왔다.

“어떤 썅년이 그딴 개소리를 해요?”

시우는 마녀가 되기 전부터 학자의 길을 걷던 사람.

연구자로서의 프라이드 또한 드높을 수밖에 없다.

다른 건 몰라도 남의 연구 결과를 도용 운운하며 시비를 거는 건 용납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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