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841화 (841/917)

#841

1.

부교수와 관리인 관계.

주인님과 전속노예 관계.

보호자와 피보호자 관계.

아멜리아와는 이런저런 관계로 지내며 그녀에 관한 많은 사실을 알게 됐지만, 연인이 된 이후 아예 새로이 알게 된 사실도 있었다.

그 중 몇 가지 예시를 들어보자면….

아멜리아는 조금 엉뚱한 구석이 있다는 것이다.

누구보다 성실한 노력가이지만 가끔 진행경로가 틀어진다고 해야 하나?

가령 이 대본이 그렇다.

“…건방진 부교수를 저항불가 상태로 만들고 범하는 관리인이군요.”

“네, 맞아요.”

“흠.”

‘범한다’라는 것 정도가 다르지 평소랑 크게 다른가 싶다.

시우는 아멜리아가 의기소침해 하지 않게 조심스레 물었다.

“언제나 했던 거 아닌가요…?”

“달라요.”

아멜리아가 자신감 넘치는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기에 쭉 훑어 보았다.

상황극 대본 자체는 생각보다 자세한 묘사가 없었다.

체위나 행위, 대사는 애드립에 눈치껏 상황극에 어울려주던 때와 달리 약간의 가이드라인을 잡아주는 정도다.

실로 다행이었다.

만약 정해진 대사라도 주어졌다면 그건 숨이 턱턱 막히는 어색한 상황극이 될 게 뻔했으니까.

-부교수는 관리인에게 밤시중을 들라고 명한다

-하지만 그것은 기만이었고 실은 관리인을 괴롭히려 했을 뿐이다

-관리인은 그녀에게 복수하기 위해 마력을 사용할 수 없게 만드는 약물을 먹여두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부교수는 독살 맞게 관리인을 타박한다(30분)

-약효가 발휘되고 부교수는 관리인의 계략에 넘어가 무저항 상태가 된다

-언제나 음흉한 눈빛으로 부교수를 노리던 관리인은 저항하는 부교수를 마음껏 범한다(시간 무제한)

☆매우 중요☆

세이프 워드 ‘도토리’를 말하기 전까지는 저항해도 멈추지 말아 주세요.

울어도 놀라지 마세요.

시우라면 난폭하게 하는 것도 좋아요.

“…….”

여기서 되짚어보는 아멜리아 이해 포인트 하나 더.

아멜리아는 은근히 관계역전 플레이를 즐긴다.

처음엔 시우 좋아하라고 맞춰주는 줄 알았는데 평소보다 반응이 좋은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난폭하게 범하는 상황극이라니….

물론 시우 역시 짐승 같은 정복자 섹스를 싫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처럼의 재회 이후 첫 관계인데 몰랑몰랑한 분위기에서 끈적한 사랑을 나누는 것도 좋지 아니한가?

메리골드 향수점의 가장 위층 숙소에 올라오자마자 아멜리아는 시우에게 총총 다가왔다.

“시우, 일단 제 체취를 아주 깊게 들이쉬세요.”

“네? 아멜리아 님, 그거 조금 위험할 수도 있습니다.”

이러니저러니해도 아멜리아에겐 항상 수위 조절에 힘쓰던 시우다.

아멜리아는 겉보기와 달리 마음이 여렸고, 여러모로 서툰 점도 많았으니.

대뜸 풀악셀을 밟았다간 우리 아멜리아 님 시무룩하신다.

“괜찮아요. 시우 전 준비됐어요.”

결연한 기백마저 느껴지는 말투로 주먹을 불끈 쥔 채 말하는 아멜리아.

“그게 아니라, 수위가 있잖아요. 뭐랄까….”

“할 수 있어요!”

드물게 음량도 높인다.

이렇게까지 나온다면 일단 그녀의 요구대로 하고 최대한 참아보는 수밖에.

“알겠습니다.”

일단 시키는 대로 했다.

체모가 얇은 편임에도 숱이 무척 많아 부드러운 커튼처럼 느껴지는 아멜리아의 머리카락 사이로 코를 파묻고 숨을 쉬었다.

언제나 가슴을 뛰게 하는 플로럴한 향기 뒤에 호불호 갈리는 동물향을 억제한 화이트 머스크.

평소에는 맡아보지 못했던 향기다.

“뭔가 좀 다른데요?”

“시우의 솔직함을 증폭하는 향수를 뿌려두었어요.”

아닌게 아니라 심장이 평소보다 두근거린다.

뭔가 동물적인 충동이 솟구친다고 해야 하나.

이거 진짜 위험한 거 아닌가? 하는 염려가 솟구쳤다.

“조금만 기다려요.”

그렇게 자리를 비운 아멜리아는 옷을 갈아입고 곧장 돌아왔다.

“…….”

시우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왜냐하면 돌아온 아멜리아의 복장이 전혀 상상치 못했던 종류였던 것이다.

살짝 광택이 도는 고급스러운 소재의 화이트 실크 블라우스.

골반 라인을 드러내며 허벅지를 절반가량 덮는 H라인 스커트와 하이힐.

옷과 어울리도록 자연스레 쪽진 시뇽 스타일까지.

바로 현세의 오피스룩이었다.

역시 옷은 옷걸이가 좋아야 한다고 아멜리아는 현세 복장이 무척 잘 어울렸다.

하지만 그녀의 오피스룩은 외적인 요소만 빼어난 게 아니다.

아름다울 뿐 아니라 이지적인 외모와 차가운 눈동자를 지닌 아멜리아는 오피스룩에 담겨야 할 심미적인 아름다움을 일깨운다.

거의 없다시피 한 노출.

색기보다는 청량한 지적 아름다움을 연출하는 복장.

이 두 가지는 역설적으로 ‘저 여자, 침대에선 어떨까?’를 떠올리게 하는 마성의 복장인 것이다.

“뭘 힐끔대는 거죠?”

얼음처럼 차가운 목소리가 감상 타임을 끊어냈다.

연기를 위해 감정까지 잡고 돌아온 것인지 아멜리아의 말투와 표정은 일변해 있었다.

꼭 얼음으로 조각한 미녀 같다.

여기서 또 아멜리아 이해도 포인트 하나.

그녀는 연기를 굉장히 잘한다.

일류 연기자는 흔히 자기 자신뿐 아니라 상대 배역까지 상황에 몰두하게 하는 힘이 있다고 한다.

분위기를 조성해 주위 사람마저 끌어들이는 것이다.

“죄송합니다.”

시우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연기에 동조하기 위함도 있지만 약발이 너무 세다.

30분은커녕 3분도 버티지 못하고 아멜리아를 덮칠 것 같았다.

“속옷까지 벗어요.”

“네.”

옷을 벗자마자 이미 끝까지 풀발기 상태인 자지가 드러난다.

“흐음.”

경멸이 서려 있는 싸늘한 코웃음.

옆으로 바짝 다가온 아멜리아가 도발하듯 입술을 달싹였다.

“하여간 수컷들이란.”

“…….”

“설마 방으로 찾아오라는 말에 기대하고 있던 건가요?”

“아닙니다.”

“그런 것치고는 아주 기대감에 넘치는 모습이네요.”

아멜리아의 차가운 손끝이 톡톡 귀두 끝을 건드린다.

“노예 주제에 진심으로 저와 동침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딴 물건은 손으로 만지는 것도 불결해요.”

오늘 아멜리아의 컨셉을 얼추 알 것 같았다.

실제 과거 아멜리아 부교수보다 훨씬 매운맛인 걸 보니 제대로 날잡고 참교육을 당하고 싶은 모양이다.

낮이밤져의 갭을 극대화해 일부러 시우의 정복욕을 끝까지 끌어올리려는 것이다.

-탁!

아멜리아의 손이 시우를 침대로 밀었다.

형편없이 드러누운 시우의 얼굴 위로 힐을 벗은 아멜리아가 발을 내밀었다.

말려 올라간 스커트 틈새로 어른스러운 팬티가 살짝 엿보였다.

“핥아요.”

“네?”

“정성껏 핥는다면 발로 문질러주는 정도는 할 수 있어요. 당신 같은 노예에겐 과분한 포상이죠?”

“…….”

다시봐도 훌륭한 여우주연상급 연기력.

시우가 욕망에 못 이겨 한심한 짓을 하는 걸 구경하는 게 즐겁다는 느낌을 고스란히 구현하고 있다.

심지어 평소에 애정 어린 시선은 어디 가고 차갑게 깔보는 듯한 눈빛 또한 일품이다.

시우는 꿀꺽 침을 삼켰다.

시우가 가장 이해 못 하는 패티시 중 하나가 풋패티시다.

그러나 한계까지 억제된 성욕에 작고 예쁜 아멜리아의 맨발이 더해지자 흉포한 충동이 날뛰었다.

말랑말랑해 보이는 그녀의 발이라면 충분히 기분 좋지 않을까?

그래도 자존심이 있다.

성욕과 더불어 부푸는 수컷의 정복욕은 아멜리아의 발을 핥는 걸 단호히 거부하게 하고 있다.

“못하겠습니다.”

“꼴에 자존심은 지키고 싶은가 보죠?”

아멜리아의 눈썹이 불쾌하다는 듯 휜다.

“표정이 굉장히 반항적이네요. 좋아요, 자비로운 제가 인심 쓰죠.”

아멜리아의 발끝이 살며시 풀발기한 자지를 밟는다.

자극을 갈구하던 고추는 절조 없이 껄떡이며 그 발길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쓰윽쓰윽

아멜리아는 적당히 발을 놀리면서 얄밉게도 입도 함께 놀렸다.

“어떤가요? 이렇게 껄떡이는 주제에 아직도 자존심을 세울 힘이 남아 있나요?”

분하지만 자괴감을 느낄 만큼 기분 좋다.

발끝까지 관리받는 귀족처럼 그녀의 몸은 어느 곳 하나 부드럽지 않은 곳이 없던 것이다.

-스윽 스윽

“한심하긴. 그렇게 분하면 목숨이라도 걸고 덮쳐보는 거 어때요?”

“…….”

“역시 못 하겠죠? 당신 같은 겁쟁이는.”

“…….”

“하긴 당신 정도는 설령 마법이 없더라도 제 상대가 되지 못 할 테지만요.”

이미 이 상황이 상황극이라는 자각조차 희미해져 간다.

건방지게 구는 아멜리아를 혼쭐내주고 싶다는 충동만이 그윽할 뿐.

다분히 아멜리아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것이다.

“고분고분하게 굴지도 않았는데 이만한 포상을 받았으니 그에 적합한 처벌도 필요하겠죠.”

아멜리아는 다시 구두를 신으며 비릿하게 웃었다.

“제가 보는 앞에서는 분하다는 듯이 굴지만 혼자가 되면 오늘 밤 일을 떠올리며 열심히 자위행위를 하겠죠?”

“아닙니다.”

어느덧 시우의 목소리에도 슬며시 거친 기색이 깃든다.

“아니기는요. 저는 당신의 저급한 상상 속에서 놀아나 줄 의향이 없어요. 그러니 당신의 성기에 감각차단 마법을 걸어두겠어요.”

“…….”

“풀고 싶다면 발을 핥는 법이나 연습해오세요.”

-탁!

아멜리아가 손끝을 튕겼다.

그리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

실제로 아멜리아는 자신이 만든 묘약을 마셔 모든 마법적 기능을 제한하고 있었다.

자율방어는커녕 간단한 염동 마법조차 활용 못 할 무방비 상태인 것이다.

이 또한 완벽한 ‘상황극’을 위한 준비물.

“어, 어째서?”

연거푸 손가락을 튕겨도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에 경악한 아멜리아.

시우는 득의양양한 미소를 지으며 일어났다.

그의 미소 또한 더 이상 연기라도 보기 어렵다.

당연하다.

아멜리아는 이번 이벤트를 위해 또 하나의 안배를 깔아두었다.

바로 아멜리아를 배려하느라 억제한 시우의 야수성을 마음껏 발휘하게 하는 향수.

‘과몰입의 향수’다.

인간의 감정 폭을 극대화해 평소보다 훨씬 강렬한 몰입이 가능하다.

거기에 원체 체취를 마시면 거칠어지는 시우의 성욕과 각종 연극을 통해 감정의 부스러미를 긁어낸다면 실로 최면에 걸맞은 효능을 낸다.

“다, 당신 저에게 무슨 짓을 한 거죠?”

그리고 그건 아멜리아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런 방비 없이 향수에 노출된 아멜리아의 반응은 그녀의 탁월한 연기 실력이 더해져 극한 현실감을 추구하고 있었다.

이것이 배역에 몰입하는 상황극의 극의.

메소드 상황극이다.

“당, 당장 나가요. 사람을 부르겠어…. 꺅!”

알몸으로 성큼성큼 다가온 시우는 아멜리아를 거칠게 침대로 던져넣었다.

문자 그대로 붕 날아서 침대 위에 나동그라지는 아멜리아.

“마법이 없어도 저 정도는 가뿐하다고요?”

아멜리아의 떨리는 눈동자가 체격 차로 인한 그림자에 갇힌다.

“어디 해 보세요.”

날렵한 근육과 별개로 극한으로 단련된 영체의 소유자 신시우의 3대는 3톤.

언더아머 6개를 껴입을 수 있는 극한의 헬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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