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839화 (839/917)

#839

1.

아침부터 시작한 모이어티 남작과의 일대일 과외는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끝났다.

값비싼 선물도 받았겠다, 날먹할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그래도 예상보다 지체되긴 한 셈이다.

모이어티 남작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채 정중히 악수를 권해왔다.

“정말 꿈 같… 아니, 만족스러운 시간이었어요.”

“저도 큰 깨달음을 안고 가네요. 모이어티 남작님의 깊은 식견에 감탄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시우에게도 만족스러운 시간이었다.

이 과외 수업은 일방적인 기술이전의 시간이 아니었다.

오전까지만 해도 이해하지 못하는 남작을 시우가 가르쳐주었다.

하지만 과연 대마녀라고 할까?

논문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핵심 골자를 학습한 모이어티 남작은 오후부터 날카로운 질문을 던져대기 시작했다.

그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선 시우도 나름대로 머리를 써야 했고, 그전까지는 전혀 떠올리지 못했던 새로운 관점에서 접근해보기도 했다.

그녀의 의문 자체는 술술 해소해주었지만 꿩 먹고 알 먹기인 기술 교류의 시간이 되었던 것이다.

“마차까지 배웅해 드리겠습니다.”

전부터 틈틈이 받아왔던 예법 수업을 떠올리며 모이어티 남작을 바래다주려 했으나 어쩐지 꾸물대는 남작.

그러더니 어색한 침묵에 쫓기듯이 말을 꺼냈다.

“저기, 저녁 식사 같이 하시지 않을래요?”

“네? 아, 아직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있으신 건가요?”

“아니요, 그건 아니에요. 하지만 신시우 씨와 좀 더 대화를 나눠보고 싶어서요. 마도에 대한 가치관이라던가…. 아, 참고로 저희 저택의 조리장이 솜씨가 아주 뛰어나답니다.”

타카쇼의 호스트바에서 아르바이트 경험에 비추어보자 대충 견적이 나왔다.

출장 요청인 것이다.

한 100번은 정중히 거절해 보았기에 익숙했다.

오히려 주눅 들어 미안하다는 식으로 말하면 마녀들은 ‘날 우습게 보나?’로 생각한다.

따라서 소매를 걷고 시계를 보는 시늉을 하며 소탈하게 웃었다.

“초대해주셔서 영광입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저녁 이후로 일정이 모두 잡혀 있어서요.”

24시간 깨어있는 마녀도 많은지라 옹색한 변명도 아니다.

적당히 거절을 받아들인 모이어티는 아쉽다는 듯이 눈썹을 모았다.

“여기 제 명함이에요. 나중에라도 연락해주면 고맙겠어요. 기회가 닿는다면 공동 연구도 진행해 보고 싶고요.”

“물론이죠. 필요할 때가 있으면 가장 먼저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녀를 마차까지 데려다 준 이후.

시우는 모이어티가 건넸던 보석상자를 열어 보았다.

루비의 붉은 광채를 쉽게 식별할 수 있는 하얀 완충재 위로 새빨갛게 빛나는 알맹이.

과장 좀 보태어 좁쌀만 한 그것을 등불에 비추어 보았다.

“이게 경매가로 금화 1,000개라고?”

아직도 얼떨떨했다.

지식을 독점적으로 전수해 준 것도 아니다.

예상보다 길어졌다고는 한들 고작 12시간 내외 수업의 대가가 약 8억이라는 말이다.

시급으로 환산하자면 6,666만 원 짜리 알바였다.

“이렇게 개꿀일 줄 알았더라면 진작에 할걸.”

물론 모이어티 남작에게 들은바 시우의 이번 논문이 이토록 폭발적으로 주목받는 데는 마땅한 이유가 있었다.

이론 단계부터 임상적 유용성이 높았고 많은 마녀가 필요로 하는 마법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선물’의 가치 역시 일반적인 경우보다 훨씬 높게 책정되었다.

즉, 다른 논문을 쓴다고 해서 이번처럼 펑펑 벌 수 있는 보장도 없다는 말.

그래도 기회가 온 게 어딘가?

이번 기회에 지갑을 두둑하게 만들기로 한 시우였다.

“빚도 갚고, 곧 다가올 수확제 선물도 풍족하게 준비해 둬야지. 계 탔네, 계 탔어.”

2.

남자 마녀의 논문에 대한 반응은 마녀마다 제각각이었다.

첫번째 부류는 곧장 신시우를 찾아가 선물을 주고 가르침을 구하는 부류.

이미 연구하던 분야가 있어 다른 연구에 할애할 시간이 아깝다 여기거나.

재산이 넉넉하고 그 정도 지출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부자거나.

당장 그노시스의 알을 완벽하게 활용하고 싶어서 몸이 달은 마녀가 여기에 속했다.

그 덕에 시우는 마법 연구만 하는 개백수에서 하루를 꽉 채워 수업하는 1타 마법 강사로 임시 취직했다.

학술지에 좋은 논문을 싣게 된 트리니티 아카데미는 기꺼이 강의실과 실험자재를 빌려주었다.

마법을 향한 마녀의 열의를 물질적 지표로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레노먼드 타운의 상가 사업권이에요.’

‘이 아티팩트야, 골동품이긴 하지만 역사적 가치가 충분해.’

‘제 이름 앞으로 쓰인 백지 수표랍니다. 원하시는 액수만큼 적어 금고 은행에 제출하시면 됩니다.’

‘아도나이 백작이 발행한 채권이에요.’

‘타로 타운 인근 벌판의 토지 증서, 딜?’

‘오다가 골드바를 주웠어요.’

모이어티 남작이 돌아간 이후로 아름아름 소문이 돌았기 때문인지 다들 약 금화 700에서 1,000개 사이의 자산을 선물로 가져왔다.

고작 일주일도 안 되는 새에 큰 장모님께 갚을 돈을 절반 넘게 모았으니 실로 현실감 없는 수익이라 할 수 있겠다.

마녀가 돈이 얼마나 많길래 이게 되냐고 큰 장모님께 묻자….

‘그럴 일은 없겠지만 모든 마녀의 재산이 투명하게 공개된다면…. 적어도 세계 최고 부자 100순위 중 절반은 여자로 바뀔 걸요?’

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리고 두 번째 부류는 시우의 논문을 잡고 끝끝내 매달리는 마녀였다.

사실 절대적인 숫자나 비율은 이쪽이 압도적이었다.

‘해결할 때까지 잠 안 잔다.’

‘이거 승부욕에 불을 붙이네.’

‘끼에에엑!!!’

순전히 금전적 문제는 아니었다.

마녀라는 생물은 마법에 대한 자부심과 집착이 어마무지하다.

남이 떠먹여 주는 걸 거부하고 무한하게 주어진 시간을 활용해 1년 정도는 매달릴 심산인 것이다.

어느 쪽이건 이것만큼은 확실했다.

가뜩이나 유명하던 신시우는 이제 게헨나에선 이름을 들어본 적 없는 마녀가 없을 정도로 더더욱 유명해졌다.

연구 및 소장 가치가 있는 이레귤러로서가 아니라 ‘학자’로서의 명성이었다.

비단 붉은 지붕 살롱뿐 여타 소규모 살롱, 카페, 바, 연구동, 소규모 연구회 등지에서도 그의 연구성과에 관한 이야기에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혹자는 그의 논문이 게헨나 평균 위계를 0.1가량 상승시킬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고,

혹자는 예소드 백작의 역장 이론과 비교될 성과라며 추켜세웠다.

하지만 빛이 있으면 그림자도 있는 법.

타인의 위업에 대한 질시와 아니꼬운 시선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존재하는 법이다.

하물며 마녀가 된 지 10년도 되지 않은 인간이 그만한 업적을 달성한 것에 대해 적잖은 수의 마녀가 의구심을 표했다.

인간을 마녀의 아래로 보는 마녀 우월주의적 시각도 한몫했으리라.

드메르 남작의 프라이빗 살롱.

여기 모인 마녀들도 하나같이 불만에 찬 표정들이었다.

“이거 진짜 그놈이 한 게 맞어?”

“아무리 봐도 뭔가 이상한데….”

“애초에 증명할 수 없는 허구의 이론이라니까?”

“그건 아니더라도, 그렇게 많은 후견인이 있으니까요. 드메르 남작님?”

몸을 길쭉하게 누운 채 담뱃대를 담백하게 빨아들인 드메르 남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도움받을 여지가 너무 많잖아요?”

“하지만 소문으로는 가정방문을 한 마녀가 몇 있다는데…. 본인이 만든 이론이 아니라면 제대로 설명해 줄 수 있을까요?”

그 옆에 나란히 누워 있던 마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다.

“그럼요, 생각이 있다면 메뉴얼을 준비해 달달 외우게 했겠죠. 제머나이 백작가의 눈치가 보여서 쉬쉬하지만 다들 별 소득 없는 가정 방문에 마땅찮아 하고 있다는 소문도 돌아요.”

“역시나네요.”

단언하는 드메르 남작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하는 마녀들.

불현듯 등장한 불세출의 천재보다 제머나이의 권력이 조작한 가짜 천재라는 쪽이 더 현실적이니 말이다.

당장은 놀라운 성과에 감탄하느라 정신이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점점 의혹의 싹이 트겠지.

“…….”

드메르 남작은 곰곰이 생각하다 좋은 재밌는 발상을 떠올렸다.

콧대 높은 제머나이 백작을 엿먹일 수 있는 아이디어였다.

“리센느, 잠깐 단둘이 대화를 하고 싶어요.”

“네, 남작님.”

대놓고 알비레오 백작과 척을 지는 건 불편하다.

그렇다면 많은 마녀가 관심을 둘만 한 이슈를 만들고, 공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공공기관의 힘을 휘두른다면?

“리센느는 비서고의 사서였죠?”

“맞습니다.”

비서고는 논문의 수집 및 보관 뿐 아니라 각종 학술자료의 심사기관을 겸한다.

논문 발행에 직접 관여하지는 않지만, 부정행위를 감시한다.

실험 데이터를 얼렁뚱땅 ‘가라’로 치는 위조.

실험값을 원하는 값으로 바꾸는 변조.

타인의 연구자료를 도용하거나 표절하는 등의 문제가 제기되면 ‘연구부정감사’를 연다.

절차를 거쳐 문제를 확인하면 발행 기관에 게재 철회를 권고한다.

말이 권고지 이를 따르지 않는 기관은 없었다.

높이 나는 새는 추락도 긴 법이다.

이만한 센세이션을 일으킨 논문이 실은 연구윤리를 훼손했다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알비레오 백작도 한동안은 얼굴이 후끈거려서 살롱엔 얼씬도 못하겠지.

신시우가 앞으로 내놓는 논문이 죄다 리젝 당하게 될 건 따로 말할 필요도 없다.

“설마….”

“리센느, 그 남자 마녀의 부정은 지적 진실성을 훼손하는 행위에요. 누군가는 바로 잡아야 하지 않을까요?”

“아직 확실하지는 않잖아요…. 아시겠지만 사서장님은 타협이 없는 분이에요.”

리센느는 곤혹을 표했다.

비서고의 사서인만큼 연구부정감사 요청 자체는 어렵지 않다.

하지만 메티스 사서장은 어떠한 압박과 회유도 통하지 않는 인물이다.

‘그래요? 한번 보죠’라고 단조로운 목소리로 답한 뒤 억척 같이 진실을 밝혀낼 것이다.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판명될 경우 리센느는 신시우를 모함한 허위고발자가 될 여지가 크다.

명확한 증거도 없이 ‘이거 진짜 님이 쓴 거 맞음?’이라고 걸고 넘어진 거니 말이다.

“리센느 설마 내 판단력을 의심하는 건가요?”

“그건 아니지만….”

“문제없을 거에요. 대신 여태까지 밀린 이자를 전부 탕감해 줄게요.”

하지만 연구비 문제로 드메르 남작에게 거액의 빚을 진 리센느로선 부탁을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밀린 이자를 전부 탕감해 준다는 말은 거부할 경우 미뤄주던 이자를 전부 받아가겠다는 말이었으니까.

그랬다간 파산이다.

중앙 시청 세금도 납부하지 못하고 쫓겨날 것이다.

“좋은 일을 하는 거에요. 분명히 잘 될 거고요.”

어깨를 두드리는 드메르 남작의 손길에 리센느는 울며 겨자 먹기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감사 요청을 해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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