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상이한 자성마법 간 결합: 위상 일치를 활용한 반발통제모형에 대한 논의.
이 길고 긴 제목을 지닌 연구자료는 말 그대로 서로 다른 자성마법을 융합하는 방법에 대한 이론이었다.
통상적인 경우 성질이 다른 자성마법을 섞으면 반발이 일어난다.
하지만 시우는 다양한 종류의 자성마법을 지니고 있었고 그것을 융합하는 방법에 대해 고뇌했다.
이 논문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공식을 활용해 반발통제모형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
소피아는 조용히 입을 다물고 논문을 들여보았다.
팔락 팔락 빠르게 넘어가는 종잇장.
속도가 굉장히 빠르다.
마녀 쯤되면 속독은 기본으로 지니는 소양이다.
더군다나 마법에 한해서 마녀가 지닌 정보처리 능력은 인간의 것이라기보단 컴퓨터에 가까웠다.
“어떤가요?”
하지만 금방 돌아올 것으로 생각했던 피드백 같은 게 없다.
전부 훑어보고야 말을 해줄 것 같다.
“잠시만.”
소피아는 시우의 말을 멈춰 세우고 끝없이 손가락을 움직였다.
사실 처음 그의 부탁을 들었을 때까지만 해도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가 단 한 편의 논문으로 비서고 열람 권한을 얻으리라고도 당연히 생각하지 않았다.
시우를 마녀로서 인정하지 않는 건 아니다.
그의 강함과 무수한 공훈은 일찍이 명성이 드높지 않던가?
하지만 아멜리아의 입 무거운 절친 소피아인만큼 시우의 특이체질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다.
그는 엄밀히 말하면 야매 마녀에 가깝다.
견습마녀시절부터 차근차근 토대를 쌓아온 게 아닌, 독특한 체질 덕분에 타인의 자성마법을 흡수해 온 돌연변이 말이다.
따라서 소피아는 적당한 구실을 붙여 반려한 이후, 자신이 작성하던 비장의 논문을 시우 이름으로 발표해 줄 생각이었다.
큰 빚을 졌으니 이 정도는 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지만 논문의 15페이지를 넘긴 시점에서 소피아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활자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게 집중하고 마법식을 차분하게 읽어내려갔다.
“…대단하네.”
그리고 소피아는 자신이 그를 과소평가했음을 깨달았다.
이건 어중이떠중이 마녀가 작성할 수 있는 논문이 아니다.
아직 10년도 되지 않은 어린 마녀임에도 그의 마법 지식은 놀라우리만치 폭넓고 깊었다.
노련한 대마녀처럼 예리한 관점에서 다각도로 분석하는가 하면, 아직 피가 펄펄 끓는 마녀처럼 기존의 이론의 틀을 탈피하기도 했다.
“마법은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배운 거야?”
“2년 정도 되었습니다. 샤론이랑 예소드 백작님으로부터요.”
“…그렇구나.”
짐작은 하고 있었다.
그가 우수한 마녀일 것이라고.
그러나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고작 2년 만에 이 정도로 기반을 다졌다고?
소피아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어쩔 도리 없는 거뭇한 질투가 가시를 드러내었다.
같은 길을 걸어가는 경쟁자에게 넘을 수 없는 찬란한 재능의 벽을 느꼈을 때 필연적으로 품게 되는 감상이었다.
“조금 더 볼게.”
하지만 시우는 소피아의 적이 아니다.
선의의 경쟁자로 삼기에도 이리저리 켕기는 게 많다.
그가 건넨 논문의 절반을 넘겼을 때 소피아는 더는 속독으로 글을 읽어내려갈 수 없었다.
고차원적이고 심오한 내용이 뇌에 과부하를 걸고 있었다.
“…….”
자성마법이 결합할 때 반발을 통제하는, 최적해를 찾는 방식을 써내려 간 파트다.
그는 새로운 연산자와 알고리즘을 만들어 아예 독자적인 최적화 이론을 제시하고 있었다.
소피아는 시우가 전투에 특화된 마녀라고 생각해왔다.
아무리 특별한 존재라도 짧은 시간에 그만한 무훈을 새기려면 그게 아니고서야 불가능하니까.
그리고 전투에 특화된 마녀라면 응당 학자로서의 능력치에 부족함이 있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소피아의 정신은 아득한 경악의 구렁으로 빨려 들어갔다.
삐쭉삐쭉 등골을 따라 소름이 돋는다.
실로 전위적이며 자유로운 사고.
그 누구도 시도해 본 적도, 검증해 본 적도 없는 방식으로 마법을 장난감처럼 주무른다.
소피아의 기억이 바르다면 그는 몇 번이나 목숨이 위태로워지는 트러블에 휘말렸다.
제대로 연구를 할 수 없던 시간도 많았을 것이다.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만약 그가 온전히 마법 연구에 집중할 수 있었다면 과연 학자로서 어떤 결과를 꺼내 놓았을까?
“후우….”
“어떤가요?”
소피아는 논문에서 눈을 떼고 담배를 입에 물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묻는 시우.
무아지경으로 새로운 지식의 파도에 몸을 맡긴 소피아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벌써 2시간가량이 지나 있었다.
“얄밉네.”
소피아는 샐쭉하게 눈을 흘기고 시우의 뺨을 잡았다.
눈물이 찔끔 나올 정도로 아프게 말이다.
“뭐, 뭔가요?”
“어이가 없어. 어떻게 이런 게 가능한 거야? 하아….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부정당한 느낌이야.”
“에이, 그 정도는 아닙니다.”
소피아는 너스레를 떠는 시우에게 다시 한번 울컥함을 느끼고 담배를 깊게 빨았다.
“좋아, 내 평가를 말해줄게. 이 자체로 논문으로서의 가치가 있느냐고 묻는다면 아니야. 반드시 지켜야 할 형식도 전혀 지켜지지 않았고, 무엇보다 논리 도약이 너무 심해.”
“아, 확실히 그렇죠.”
“A는 B다. B는 C다. 그러므로 A는 C다. 라고 설명해야 할 부분이 A는 C다 그러므로…처럼 후루룩 지나가는 부분이 많아.”
“머릿속에 떠오른 대로 최대한 빨리 쓰다 보니 그렇게 된 것 같아요.”
“그런 것 같더라고. 그 점만 정리하면 될 것 같아.”
검증 없이 자체적인 공식을 사용하거나 중간마다 논리적 비약이 존재했다.
그럼에도 그가 제시한 이론은 허무맹랑한 게 아니었다.
얼토당토않은 헛소리를 뇌피셜로 써내려갔다면 소피아도 단박에 눈치챘을 것이다.
“아무튼 그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부분이야. 이걸 활용하면 기존 애물단지인 ‘그노시스의 알’이 아주 값지게 활용되겠네. 놀라워 정말.”
소피아는 살짝 들뜬 목소리로 말했지만 정작 시우는 무덤덤했다.
“아, 그것도 그렇겠네요. 근데 이거 하나로 비서고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이런 터무니 없는 짓을 해놓고도 고작 비서고에 들어갈 수 있냐는 질문이라….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일을 했는지도 알아차린 낌새가 없어서 김이 빠진다.
진짜 천재란 저런 부류의 사람인 거겠지.
그나마 남아있던 질투심도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한번 제대로 정리해보자.”
“네, 부탁하겠습니다.”
소피아는 단언할 수 있었다.
이 논문이 학술지에 등재되는 순간 당분간 게헨나가 떠들썩해지리라고 말이다.
2.
어딘가 설렁설렁한 구석이 있는 소피아 누님이지만 역시 대마녀고 수석 교수인 모양이다.
한번 스위치가 들어간 그녀는 무려 18시간 동안 일 분의 휴식도 없이 탈고라는 이름의 재조립 작업을 끝냈다.
시우는 소피아의 옆에서 부족한 검증식을 보충하고 가끔 그녀의 어깨를 주물러 주었다.
“고생 많았어.”
“제가 무슨 고생을 했나요.”
시우의 말대로 소피아는 기진맥진한 기색이 역력했다.
언제나 생글생글하던 미소가 흐릿하게 보일 지경이다.
“이제 다 된 건가요?”
“아니야, 검증만 보충한 수준이니까. 나머지는 형식에 맞춰서 다시 작성해야지. 하루 정도 더 걸릴 것 같아.”
“쉬엄쉬엄 하셔도 괜찮습니다. 급한 일도 아니어서요.”
뭔가 미안할 정도로 도와준다.
하지만 소피아는 고개를 저으며 제 의지를 관철했다.
모처럼 빚을 갚을 기회인데 게으름이나 피우고 있을 수는 없다.
“이틀 뒤에 트리니티 아카데미의 학술지가 나오거든. 그때까지 시간을 맞춰볼게.”
트리니티 아카데미는 견습마녀 양성소이기도 하지만 교수들이 모인 대학이기도 하다.
석 달에 한 번씩은 학술지를 발행하는데 시우는 따로 학회에 속한 게 아니니 이 방법이 가장 빠를 터이다.
“맞네, 그런 것도 있었죠? 풀 페이퍼로 나가는 건가요?”
“그건 무리지. 너무 무거워질걸? 레터로 나갈 거니까 축약까지 해줄게.”
“아이고…. 이거 너무 감사한 데요.”
“어깨 좀 더 시원하게 주물러 보련?”
시시한 농담까지 주고받은 시우는 소피아의 어깨를 15분가량 더 주물러 주고 연구동을 나서 숙소로 돌아왔다.
“후우, 오늘도 다사다난했다.”
숙소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달리 없다.
아마 부쩍 바빠진 시우를 배려하며 시간을 내어준 거겠지.
“아, 맞다.”
시우는 서랍으로 다가가 오나홀을 꺼내 들었다.
그 옆에는 작은 공병에 담긴 허여멀건 액체가 있다.
어제 오나홀을 사용해 갓 뽑은 싱싱한 햇 정액이었다.
“…뭔가 더럽네.”
심각한 수준의 성도착증을 지닌 환자가 된 기분이다.
물론 좋아서 이걸 간직하고 있는 건 아니다.
오늘 작은 장모님께 건네줄 요량이었는데 만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얼굴도 보지 않고 선물로 보내기엔 정액이라는 점이 꺼림칙하다.
작은 장모님에게 정액을 보내는 사위.
아무리 부탁을 받았다거니와 그림이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어차피 보존도 잘 되겠다 괜찮겠지.”
괜히 마법 윤활유가 아니다.
시우는 오나홀을 쥐고 대충 윤활유를 왈칵왈칵 부었다.
바지를 내리고 도킹했다.
-탁탁탁탁!
옛날이라면 몰라도 호화로운 침대 생활을 영위해 온 시우에게 시판용 오나홀은 특별한 감동을 주지 않는다.
“흐음. 사무적이군.”
그 말대로 사무적인 딸딸이다.
그래서 그런지 잘 나올 것 같지도 않고 별로 재미도 없다.
차라리 따뜻하게 덥혀서 사용한다면 좀 나으려나.
“후딱 끝내자.”
후딱 끝내는 데 필요한 건 하나, 자극이 가해지는 빈도를 높이는 것이다.
손목 스냅에 화려함을 더해 초당 3회에 가까운 왕복으로 빠르게 해결하면 오케이다.
-탁탁탁탁탁탁탁탁탁
“오 좀 낫네.”
3.
그 시각 데네브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신호’를 받고 후들후들 떨고 있었다.
“흐읍…! 후으으읍…!”
초당 3회에 가까운 왕복 운동.
게다가 인정사정없이 안까지 꽂아넣는 깊숙한 삽입감.
불현듯 소파에 구겨지듯 파묻혀 물건처럼 그의 물건을 받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흐으으읍! 우우웁…!”
데네브는 한껏 입을 틀어막았다.
언니에게 쾌감이 연동된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쾌감 연동 작용을 끊어냈다.
하지만 입을 틀어막지 않는다면 언니의 공방까지 들릴 정도로 쩌렁쩌렁하나 교성을 내뱉을 것이 분명하다.
“시우 군…. 이렇게 격렬하게…. 하응…!”
오늘도 어제와 같다.
무나홀의 정체를 알면서도 사용하는 시우.
그 이유를 확신할 수 없는 데네브.
하지만 확실하게도 정신이 아득해 질 커다란 쾌감.
“역시…. 시우 군은 저를…. 아니야, 그럴 리가 없지…. 아아아…. 으읏! 흣!”
고뇌와 환희가 섞인 긴긴 밤.
데네브의 우아한 정원은 소나기가 지나간 양 흠뻑 젖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