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832화 (832/917)

#832

1.

“뭔데.”

바람처럼 나타나 바람과 같이 사라진 데네브.

그 뒷모습을 망연히 살피던 시우는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녀가 이곳에 왔다는 걸 알려주는 건 두 개의 술잔과 막 개봉된 꼬냑,

그리고 테이블에 다소곳이 놓여있는 오나홀 뿐이다.

“…기분 탓인가?”

먼저 오나홀을 들어 올렸다.

보기보다 묵직한 중량감.

모솔아다 시절에도 자위는 손으로 해결했기에 시우와는 연이 없는 물건이다.

그런데 데네브에게서 막 받아들었을 당시엔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집중하지 않으면 금방 놓쳐버릴 것처럼 아주아주 미세한 도로시의 ‘계시’의 기척이랄까?

“쓰읍…. 분명 뭐가 느껴졌는데….”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냥 오나홀일 뿐이다.

“흐음.”

오나홀을 대충 내려놓은 시우는 골똘히 궁리했다.

사실 우선시해야 할 게 오나홀 관찰이 아니라는 건 짐작하고 있다.

야심한 밤 갑작스러운 작은 장모님의 출현.

뜬금없는 오나홀 선물과 더불어 보내오던 은근한 눈빛.

그녀가 갑자기 뛰쳐나간 이유까지.

하나하나 별개로 놓고 본다면 유의미한 사건들은 아니다.

그러나 데네브가 이제껏 보여주었던 모습과 하나로 엮어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오딜과 오데트를 연인으로 받아들였으면서 화려한 여성 편력을 자랑하는 시우.

더군다나 관계하는 모습을 현장 검거당한 이례 데네브는 시우를 잡아먹지 못해 안달 난 장모님으로 변했다.

하지만 그런 데네브와 시우의 관계는 모종의 사건을 계기로 완전히 뒤바뀌었다.

검증도 검증이지만 ‘어항’에 함께 갇혔던 일이 분기점이라 할 수 있겠다.

미지의 위협 속 등을 맞대고 고난을 넘겼다.

마력 충전을 위해 의무적인 꿀벌 섹스를 하다가 마지막엔 질펀한 성교도 나누었다.

그 이후로 시우를 대하는 데네브의 태도는 정말 180도 변했다.

잡아먹을 듯 노려보는 일도 없다.

사사건건 예법을 지적당하는 일도 없다.

마주할 때마다 정강이를 걷어차이는 일도 없다.

오히려 막 오딜과 오데트를 구했을 때보다 시우의 전폭적인 지지자가 되어주었다.

“그럴 수 있지.”

제 얼굴에 금칠 해보자면 견습마녀의 목숨을 두 번 넘게 구해준 사위다.

당시로선 무시무시했던 르뤼에에 맞서 작은 장모님 목숨을 걸고 탈출시켰다.

그러니까 더는 시우를 달달 볶지 않는 일도.

식사시간에 이것저것 먹을 것을 대신 덜어주는 일도.

가끔 산책과 술자리를 권유하는 일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 일은 어떨까?

데네브가 루시와 몸을 바꿔 시우와 관계를 나눴던 일.

작은 장모님이 말씀하시길 막역지우인 예소드 백작의 간곡한 청을 받아 연구에 도움이 되고자 제 한 몸 희생하셨다 한다.

그 과정에서 시우가 의심을 품자 온갖 유혹을 늘어놓으며 의혹을 무마시켰다.

“그럴 수 있나…?”

근데 돌이켜보면 의미심장한 점이 많다.

마녀 중에는 뻔질나게 창관을 들락날락하거나 아예 남총을 들이는 마녀도 있다.

돈도 많겠다, 얼굴도 예쁘겠다, 영원히 늙지도 않겠다 쾌락주의를 선택하는 마녀는 당장 이 게헨나에도 적잖다.

그런 마녀라면 예소드 백작의 부탁에 얼씨구나 하며 시우와 동침할 게 분명하다.

초 여초인 마녀 사회에서 신시우는 ‘앙게이트 조사, 꼭 동침하고 싶은 남자 1위’에 거뜬히 들 테니 말이다.

하지만 우리 작은 장모님이 누구인가.

한평생 정절을 지키던 고지식한 정통파 마녀, 게다가 프라이드 높은 백작님이다.

비록 시우와 앞뒤로 관계를 나눈 적이 있다지만 타인의 부탁을 듣고 또다시 시우를 유혹한다?

그것도 사위 장모 지간인데?

게다가 입에 담을 수 없는 농밀한 음행을 앞세워서?

“…….”

시우는 더 이상 옛날 모솔아다 신시우가 아니다.

데네브가 보이는 행동 하나하나가 어딘가 이상하다는 건 짐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의문을 애써 무시해왔다.

그건 데네브가 시우의 작은 장모님이었으며, 데네브 본인 역시 그 점을 자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마녀와 견습마녀가 피가 섞이지 않았다지만 사위는 사위고, 장모는 장모다.

둘이 눈 맞아서 배꼽 맞추면 패륜 한 그릇 뚝딱 되는 거다.

분별력 있는 모습을 보여준 그녀라면 ‘어항에서 있던 일은 어항에 묻어둔다’라고 말했던 때처럼 처신할 줄 알았다.

사심도 당연히 없을 거라고 믿었다.

시우는 다시 오나홀을 보았다.

그리고 오나홀을 건네주던 당시 데네브의 눈빛을 떠올렸다.

관능이 이슬처럼 맺혀 촉촉하게 젖은 그 눈빛은 흡사 유혹을 던지는 듯했다.

정액을 채취하기 위함이라고 변명을 붙이긴 했지만 사실 이건 구실에 불과하고, 어쩌면 정말 그녀가 기다리고 있던 건….

“에이, 설마.”

결국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의혹을 불식시키며 휘적휘적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과대망상이다.

요즘 좀 인기 많다고 도끼병 환자라도 되는 양 말도 안 되는 억측을 하고 말았다.

작은 장모님이 알았더라면 코웃음 정도로는 안 끝났을 거다.

어찌됐건 부탁을 받았으니 마땅히 응해야 한다.

“정액 채취라고 했나?”

시우는 그녀가 주고 간 특제 윤활유를 보았다.

단순한 기름은 아니고 보아하니 연금술에 종종 쓰이는 중성 소재 마력유다.

더불어 연금의 기본인 ‘고정’이 걸려 있어 정액의 신선도 유지에도 도움이 될 듯싶었다.

“그럼 그렇지.”

만약 유혹하려는 구실에 불과했다면 이렇게 꼼꼼히 준비해 주었을까?

역시 단순히 착각인 게 분명하다.

“잘 쓰겠습니다.”

때마침 타이밍 좋은 선물이다.

오딜과 오데트에게 정성껏 봉사하느라 정작 사정도 못했으니까.

오나홀을 써보는 것도 처음이니 호기심도 동했다.

-탁탁탁탁

“…생각보다 별로네.”

시우는 곧장 데네브가 선물해준 오나홀로 간만에 해피타임을 가졌다.

2.

그 무렵 데네브는 거하게 차버린 똥볼을 자책하며 베개에 코를 파묻고 있었다.

그렇게나 티 내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데네브의 연심은 관계의 파멸을 일으킬 달콤한 극독이었다.

특히 그녀가 아는 시우라면 데네브의 마음을 깨달은 즉시 그녀를 멀리할 게 분명하다.

지금처럼 이따금 술자리를 갖거나, 함께 산책하며 에스코트 받는 일도 요원해지겠지.

하지만 이제 그런 걱정을 할 필요도 없다.

다 들키고 말았다.

그것도 가장 최악의 방식으로.

오나홀을 보자마자 도로시를 거론한 시우의 태도를 보아 그는 이미 무나홀에 대해 알고 있었다.

데네브는 그걸 선물로 주면서 ‘하루에 한 번씩 나라고 생각하고 써줘요’라고 말한 것이나 다름없다.

애틋한 연심이 아니라 쾌감에 정신 못 차리고 사위한테 음흉한 수작을 부리는 장모로 인식되어도 할 말 없다.

“어쩌지…. 어쩌지…. 그게 아닌데….”

데네브가 쌍둥이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그렇듯,

시우에게 품는 마음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다.

하지만 어설픈 변명이 발각된 이후, 뒤늦은 해명이 의미가 있을까?

백 마디 속으로 품은 마음보다 한가지 행동이 더욱 진실성을 띄는 법이다.

“시우 군이 날…. 헤픈 여자라고 생각할 텐데….”

고작 혼잣말일 뿐인데 왈칵 뜨거워지는 눈시울.

그렇게 마음고생을 했는데 고작 한 번의 실수로 모든 게 틀어지다니….

서러운 가슴이 미어진다.

오해를 바로잡기 위해 그에게 달려가고 싶지만 그럴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게 되었다.

그런 데네브의 낙담을 파고든 건….

-꾸욱!

아직 몇 번 밖에 사용해 본 적 없는 꽃잎을 살살 비벼대는 듯한 뭉툭한 압박감이었다.

이어 굵은 핏줄이 선사하는 압박감, 철골을 연상케 하는 강직도, 아름드리나무를 연상케하는 굵기가 뱃속을 한가득 채운다.

“아….”

이 감촉은.

데네브가 탄식을 내뱉기도 잠시.

-쑤욱!

“꺄흑!”

거칠게 욱여넣듯 아랫배 깊숙한 곳을 쿡 찌르는 감각이 이어진다.

단숨에 끝까지 삽입된 것이다.

최초의 감각은 통증에 가까웠다.

비록 데네브가 시우로부터 여자의 기쁨을 배웠다 한들, 본격적인 피스톤 행위를 받아본 건 고작 한번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쑤욱! 쑤욱! 쑤욱!

“흐윽! 윽! 흐윽!”

그런 데네브의 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엄청난 속도로 삽입을 강요하는 감각이 덮쳐왔다.

그도 그럴 것이 오나홀이란 손에 쥐고 흔들면 되는 콤팩트한 사이즈.

실제 섹스에선 무호흡 피스톤 운동을 해야 구사할 수 있는 연격을 손목 스냅만으로 실현 가능한 것이다.

감각 연동은 안정상의 문제로 80% 정도에 그쳤지만 생전 처음 맛보는 격렬한 삽입은 데네브를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아, 아아…. 아아아….”

눈앞에 환한 빛이 터진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어떤 자세로 몸을 비틀어도 용서 없이 약점을 공격하는 유려한 창술.

가차 없는 공격에 데네브는 하얗게 눈을 치켜뜬 채 침대 시트를 쥐어뜯으며 몸을 꿈틀거렸다.

데네브의 속옷이 흥건하게 젖어들고, 연거푸 이어진 절정에 데네브가 호흡곤란의 문턱까지 다다랐을 때.

-꿀럭! 꿀럭! 꿀럭!

강렬하고 뜨거운 물줄기가 뱃속을 때렸다.

“흐아아앙!!!!”

데네브가 칠칠치 못한 신음을 흘리며 멀티오르가즘의 피버 타임에 도달했음을 물론이다.

그리고 잠시 후.

데네브는 정신을 차렸다.

쾌락의 여운이 몽롱하게 머리를 잠식했지만, 필사적으로 작금의 상황에 대해 반추했다.

“왜…?”

방금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자명하다.

“아아아….”

시우가 무나홀을 사용했다.

심지어 그 정체를 눈치채고 있으면서.

후회와 자책 속에 찌그러져 가던 데네브의 가슴 속에 환희라는 이름의 폭죽이 터진다.

이건 신호가 아닐까?

엄한 아버지를 둔 귀족 영애의 창가에 돌멩이를 톡톡 던지는 양치기 소년처럼, 몰래 창문을 넘어 나오라는 모종의 호출이 아닐까?

모든 과오를 눈감아주고 데네브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게 아닐까?

“갈게요, 시우 군. 제가 가요, 저 데네브 제머나이가 가요…!”

재빨리 옷을 벗고, 마법으로 몸을 단정히 하고, 화장대 앞에 뛰쳐들어간 데네브가 톡톡 뺨에 분칠을 한다.

그렇게 꽃단장을 하고 그에게 달려가려는 순간.

데네브는 돌부리에 발가락을 찧기라도한양 멈춰 섰다.

“…….”

정말 그런 걸까?

뭔가의 오해, 혹은 데네브의 푼수 짓을 모른 체 해주겠다는 깊은 배려가 숨어있는 건 아닐까?

“으, 으으….”

데네브는 제자리에서 발만 동동 구르다가 결국 눈물을 글썽이며 방에 남길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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