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1
1.
사위가 불길한 예언을 들고 왔을 때부터 데네브는 심란한 마음을 와인에 털어내고 있었다.
좀처럼 마음을 가라앉힐 수 없던 까닭이다.
그 걱정의 크기는 단순히 사위가 죽을지도 모른다 수준이 아니었다.
데네브가 일생을 통틀어 처음으로 마음을 준 남자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그러나 오딜도 오데트도 옆에 있는 상황에서 울고불고 눈물을 짜낸다면 수상한 눈길을 받기 딱 좋겠지.
그를 안아주기는커녕 애타는 마음을 꾹 억누르고 그의 어깨나 두들겨 줄 수밖에 없었다.
평소라면 술동무를 하며 한숨을 받아줄 언니도 최근에는 서먹서먹했기에 혼자 술을 마시다 산책에 나섰다.
그러다 마주한 것이 얇은 유리창 너머의 풍경이다.
“조수님, 사랑해…. 하앙, 우움…. 움….”
안팎의 온도차로 성에가 내린 유리창 위로 두 딸아이와 사위가 사랑을 나누는 풍경이 걸려있다.
침대에 반쯤 파묻힌 오딜이 다리로 시우의 허리를 감고 있다.
마주 잡은 두 손은 애틋하게 깍지를 끼고 있었으며, 침대가 조금씩 출렁일 때마다 안타까운 신음이 흘러넘쳤다.
그 옆에는 반쯤 잠든 채 이불을 끌어안고 있는 오데트가 보인다.
예전이었다면 민망함에 금방 자리를 피했을 장면이다.
딸과 사위의 정사 장면을 엿보는 게 정상은 아니지 않은가?
그보다 더욱 예전이었다면 피가 머리끝까지 솟구쳐 역정을 내었을 장면이다.
금이야 옥이야 키워온 귀염둥이들을 웬 늑대 한 마리가 홀랑 물어가는 것이니.
하지만 지금의 데네브에겐 고작 유리창 하나가 갈라놓은 저곳이 절대 도달할 수 없는 꿈으로만 비쳤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 목소리, 손길 하나에 애정이 가득하다.
데네브에게 침대 위의 풍경은 관음적인 취향으로 도배된 야릇한 AV가 아니었다.
부러움과 동경 그리고 약간의 질투를 뭉쳐낸 점묘화 같은 것이었다.
“…….”
돌이켜 생각해보자면 그를 향한 마음이 처음부터 이토록 무거웠던 건 아니었다.
오히려 다시 들춰보고 싶지 않은 낯뜨거운 해프닝에 불과했다.
데네브가 그를 채근해 성교의 안정성을 검증하다가 못 볼 꼴을 보였으니 말이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쾌락에 잠시 마음이 흔들리긴 했어도 쌓아온 세월이 있다.
거기까지였더라면 데네브는 머지않아 마음을 정리하고 사위를 달달 볶는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와 함께 ‘어항’에 잡혀가고,
며칠 간 죽을 함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잘근잘근 씹어도 모자랄 사위가 아닌 사람 ‘신시우’를 보게 되었다.
선입견을 배제하고 처음으로 직시한 신시우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목숨이 위험에 달해도, 손이 떨려올 정도로 두려워도 데네브에게 관계를 보채지 않았다.
언제나 못살게 굴던 데네브를 위해 몇 번씩이나 대신 최전선에 섰다.
그리고 마력충전을 구실로 그와 몇 번이나 관계를 갖는 동안.
데네브는 그에게 스며들듯 빠져드는 자신을 발견했다.
물론 분명 다른 여건도 영향을 끼쳤으리라.
위기에 상황 속에 발현하는 유대감이라던가, 흔들다리 효과라던가, 처음으로 맺은 관계에 유달리 깊은 몸정이 들었다던가….
중요치 않았다.
설령 다른 이유가 있을 지래도 데네브에겐 첫사랑이었다.
개족보를 만들고 딸내미들과 처첩다툼을 벌이기로 마음먹지 않는 이상 대가를 바랄 수 없는 짝사랑이었지만 말이다.
더군다나 그는 올곧은 인물이다.
데네브가 섣부르게 다가서면 도리어 한참 물러날 것이 분명하다.
잠시 고민하던 데네브는 자신의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2.
“후우….”
봉사 섹스가 끝나고 시우는 대충 쌍둥이의 몸을 미지근한 물수건으로 꼼꼼히 닦아주었다.
오늘 목적은 어디까지나 ‘봉사’였기 때문에 달리 사정은 하지 않았다.
‘슬슬 쌀까?’ 싶었을 때쯤 오딜과 오데트 모두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새근새근 잠이 들었기도 하고 말이다.
감기에 걸리지 않게 이불을 턱 끝까지 덮어주자 콧소리를 내며 각기 언니와 여동생을 끌어안는 쌍둥이.
저도 모르게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매달린다.
“사이 좋네.”
기왕이면 옆에서 같이 잠들어주고 싶지만, 애석하게도 할 일이 많다.
당분간은 파워업을 위해 잠잘 시간도 줄여 마법 연구에 열중할 예정이니 말이다.
땀도 흘렸겠다.
침실 옆 작은 욕실에서 가볍게 샤워를 하고 시원한 얼음물 한 컵을 떠서 라운지로 나왔을 때.
시우는 사레에 들리고 말았다.
“쿨럭! 쿨럭! 데, 데네브 님?”
작은 장모님이 라운지 소파에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도대체 언제부터 계셨지?
“시우 군.”
쌍둥이네 방이 굉장히 넓다지만 침실과 라운지 사이에 있는 것이라곤 고작 나무문 하나다.
그 말인즉, 온갖 외설적인 소리가 밖으로 새어나갔을지도 모른다는 것.
근데 이 시간에 갑자기 작은 장모님이 왜?
알비레오 님이 허락해 준 걸 모르는 걸까?
온갖 사고가 소란을 피우는 가운데 데네브가 먼저 시우를 진정시켰다.
“시우 군, 혼내려고 온 건 아니에요. 우연히 들렸어요.”
“그, 그렇군요.”
“술 한잔할까요?”
“물론이죠.”
솔직히 이런 상황에서 얼굴을 마주하는 건 굉장히 뻘쭘했지만 거절할 구실이 없다.
결국 찬장에 놓여있던 꼬냑 한 병을 가지고 와 마주 앉았다.
오늘 작은 장모님의 코디는 우아한 귀부인 수면룩이다.
소매부가 반투명한 나시 원피스에 푹신한 숄을 두른 차림새인데, 실내복인 만큼 노출도가 높은 편이다.
특히나 굴곡진 몸매를 자랑하는 데네브이기에 움푹 파인 부드러운 가슴골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두 뺨에 장밋빛 색조가 발그레한 걸 보면 미리 술을 조금 드시고 온 모양이다.
“언제부터 계셨나요?”
“조금 전에 도착했어요. 귀염둥이들은 잘 자나요?”
“푹 잠드셨습니다.”
데네브에게 배운 주도에 따라 꼬냑을 마시며 조심스레 탐색을 시작했다.
최근에는 그녀도 시우에게 유한 태도를 보이고 있지만, 자연스레 긴장되는 건 죄 많은 사위의 숙명이렷다.
하지만 술자리는 앞선 염려가 무색하게 부드러운 분위기였다.
“수확제 준비도 이만저만 바쁜 게 아니에요.”
“그래도 예쁜 저택이라 꾸밀 맛이 날 것 같습니다.”
“안 그래도 이번엔 규모를 크게 해서 무도회도 열 예정이에요.”
“무도회요?”
“마녀와 시민을 초대하는 거죠.. 작년에는 이것저것 바빠서 저희끼리 조촐하게 치렀지만 5년에 한 번 정도는 이렇게 손님을 받아요.”
데네브는 시우가 왜 이 시간에 쌍둥이 침실에서 나온 건지 문제 삼지 않았고, 이유를 짐작함에도 모른 척 넘어가겠다는 뉘앙스를 풍겼다.
시우로선 이 술자리가 처형장이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는 한편.
데네브는 그와 소소하게 대화를 나누는 기쁨에 젖어 있었다.
이렇게 얼굴을 마주 보고 술잔만 기울여도 가슴이 두근거리며 얼굴이 뜨거워진다.
특히나 그의 옷차림이 문제였다.
가운을 걸치고 있긴 해도 헐렁하게 여며진 까닭에 눈에 들어오는 탄탄한 대흉근.
막 샤워를 하고 나온 까닭에 젖어있는 머리칼은 건강한 종마의 갈기처럼 윤기가 흘렀다.
여기가 쌍둥이네 방이 아니라 데네브의 침실이었다면 아마도 사고를 쳐도 단단히 쳤을 지도 모른다.
“아, 시우 군. 선물이 있어요.”
“선물이요? 아직 수확제도 아닌데요?”
바짝 긴장하던 초반과 달리 가벼운 농담도 던지는 시우.
데네브는 그런 시우에게 방에서 챙겨온 상자를 내밀었다.
“오, 뭔가 묵직한데요?”
“열어봐요.”
“그래도 되나요?”
“그럼요, 시우 군에게 주는 선물인데요.”
“실례하겠습니다.”
여기서부터가 본론이다.
데네브가 긴장하며 이 선물을 포장할 말을 정리할 때 시우는 상자를 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고급 위스키를 포장할 법한 상자 안에는 비단에 곱게 싸인 분홍빛 실리콘이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이게….”
“남성용 자위기구에요.”
그냥 자위기구가 아니다.
알비레오가 쌍둥이에게 압수한 ‘무선 연결 오나홀’이라는 것이다.
듣기로는 구도의 마녀의 ‘절대력’이 주입된 물건으로 마법 발현의 전조가 거의 없는 아티펙트라고 한다.
데네브가 몰래 빼돌려 연동 이후 실험해 본 결과 성능 하나는 확실했다.
“음.”
음흉한 속내를 들키지 않기 위해 포커페이스를 준비한 데네브와 달리 선물을 확인한 시우의 얼굴은 황망함으로 범벅이었다.
“조금 남사스럽지만…. 시우 군의 체액을 연구하고 싶어서요.”
“정액을요?”
“네, 물론 예소드 백작 말로는 문제없다고 하지만 쌍둥이의 안전이 걸린 일이니까요. 여러 방면에서 검토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비겁한 짓이다.
그러나 쌍둥이의 안전을 변명 삼으면 시우는 거절하지 않을 것이다.
“하루에 한 번씩만 이걸 사용하시면 될 거에요. 아, 윤활유는 이것만 사용해야 해요. 다른 체액이나 액체가 섞이면 곤란하니까요.”
데네브는 태연히, 그가 어떠한 의심도 품지 못하게끔 우다다 말을 쏟아냈다.
요새 푼수 같은 모습만 보였다 한들 거대 기업의 창립자이자 숨겨진 총수.
명성 높은 제머나이 백작인 데네브다.
은근슬쩍 사리사욕을 채우는 그녀에게선 그 어떤 미심쩍은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민망한 부탁이지만 잘 부탁할게요.”
이로서 데네브는 그와 하나가 되고 싶은 충동을 일시적으로나마 달랠 수 있을 것이다.
시우는 굳이 가책을 느끼지 않아도 되고, 데네브도 굳이 본심을 드러낸다는 위험을 무릅쓸 필요 없다.
당장 할 수 있는 온건한 해소책이 이 남성용 자위기구에 달려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데네브 님.”
그때 조심스레 데네브를 부르는 시우의 목소리.
눈을 감고 꼬냑의 향을 음미하는 척 민망함을 감추던 데네브는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리고 그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해있는 걸 본 데네브는 심장이 쿵 내려앉는 걸 느꼈다.
의미심장한 시선이 데네브와 분홍빛 실리콘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눈빛은 마치 오딜과 오데트를 보는 데네브와 닮았다.
쌍둥이가 사고를 치고 어영부영 거짓말을 할 때 모른 체 넘어가 주는 데네브의 눈빛 말이다.
“몹시 외람된 말씀이지만…. 이거 도로시 님께 받으셨나요?”
그렇다.
왜 이렇게 쉽게 생각했을까?
일반적인 외부인이라면 무나홀의 효과를 눈치채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구도의 마녀와 연인 관계다.
어쩌면 무나홀을 보자마자 알아차렸을지도 모른다.
데네브는 그런 그의 앞에서 정액을 채취하고 싶다느니, 하루에 한 번 꼭 사용해야 한다느니 말을 늘어놓았다.
체온이 훅 올라간다.
민망한 뒷수작을 당사자 앞에서 들켰다는 수치심에 몸 위로 지네가 기어가듯 간지럽다.
-덜컥!
“이런 시우 군 그러고 보니 급한 용무를 깜빡했어요! 가볼게요! 미안해요!”
“네? 네?”
데네브는 황급히 도망치듯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
“으아아아아! 으아아! 으아아아!”
제 방에 돌아온 데네브는 후회의 절규와 수치의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무너져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