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9
1.
포근했다.
푹신푹신한 침대에 그보다 푹신말랑한 쌍둥이가 양팔에 매달려 있으니 이보다 좋을 수 없었다.
양손의 꽃만으로 호화스러울진대, 어디 그 꽃이 보통 꽃인가?
결이 좋고 치렁치렁 말린 컬이 아름다운 고운 흑발, 자수정처럼 오묘하게 빛나는 눈동자와 오뚝한 콧날, 페르시안 고양이처럼 우아한 입매를 지닌 아름다운 얼굴.
더군다나 둘은 쌍둥이 자매기까지 하니, X2이다.
둘을 동시에 안는다는 감회는 아직도 익숙해지지 않은 배덕감을 선사하는 것이다.
그런 감격을 느끼면서도 시우는 쌍둥이와 한참 이야기꽃을 피우는 중이었다.
살짝 선선한 공기가 벽난로의 열기로 적당히 더워지는 감각이 기분 좋다.
조명의 역할을 겸하는 벽난로인 만큼 은은한 불빛 역시 감성적인 분위기를 이끄는데 한몫했을 것이다.
“조수님 그때 정말 웃겼는데.”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타로 타운에 들렀을 때 시우에게 사기를 치던 마도구 상점의 주인 이야기였다.
때마침 등장한 오딜이 그 장면을 보았고 시우가 마법을 쓴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남 몰래 탈출 계획을 세우던 시우가 코를 단단히 꿰였던 사건이었다.
이후엔 곧장 전초기지로 끌려가서 오데트와 만났지.
그 이후엔 남녀 관계를 알아본다는 명목하에 처음으로 야한 장난을 했다.
옆에서 오데트도 뺨을 발그레 붉히며 동조했다.
“조수님 처음에는 빼시다가 저희 입에 쌌잖아요.”
“내가 알아봤다니까, 조수님 엄청 변태인 거.”
“아, 그건…. 변명은 않겠습니다.”
그때는 마녀의 미모에 대한 내성이 전혀 없던 시기도 했고.
참 충동적으로 행동했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와서야 이렇게 낄낄대며 이야기할 수 있지만, 만약 그때 장모님들에게 들켰더라면….
정말 간담이 서늘하다.
“솔직히 오딜 님이랑 오데트 님이 반칙 급으로 예뻤어요.”
“어휴어휴, 이런 낯간지러운 말도 할 줄 알고. 조수님 많이 컸어.”
“맞아, 예전에는 매일 안됩니다! 이러다가 큰일 나십니다! 이랬는데.”
“꼭 구운 밤이 팬티에 들어간 사람 같았지.”
“그때는 진짜 간 떨렸다니까요?”
다 지난 일이니 지금은 추억처럼 이야기하는 거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오딜과 오데트는 딱히 약점을 가지고 시우를 협박하지 않았다.
오히려 게헨나살이 5년 중 유일하게 사람 대 사람으로 봐주며 친밀하게 접근해주었다.
“그다음에 마차에서 했었죠 아마…?”
“후후, 그래도 조수님 처음은 우리가 받아갔다구?”
“그때는…. 진짜 놀랐죠.”
“놀라기만 했어요?”
“솔직히 좋았습니다.”
“뭐, 인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도 나름 좋았어.”
이후엔 사랑의 묘약으로 급발진한 쌍둥이와 질펀하게 첫 경험 완료.
시우도 당당한 남자가 되었다.
아마 이때까지만 해도 쌍둥이는 시우를 호기심으로 대했을 것이며, 시우 역시 생각보다 귀엽고 말도 잘 듣는…? 개구쟁이들 정도로 인지했을 것이다.
“에이, 그게 다야?”
“거짓말.”
조금 겸연쩍었지만, 시우의 분석에 대한 쌍둥이의 지적은 날카로웠다.
궂은 노예 생활.
타카쇼를 제외하곤 누구도 친밀하게 손을 뻗어주지 않던 마녀 사회.
이따금 시우를 위태롭게 하는 야한 장난을 시도하긴 해도 쌍둥이가 베푼 호의는 단순한 감사함 정도로만 끝나지 않았다.
편견 없이 다가와 준 둘의 행동이 얼마나 많은 위안을 주었던가?
이리저리 휘둘린 기억 투성이지만 그럼에도 참 좋은 추억이다.
“조수님 소풍은 기억나지?”
“그걸 어떻게 잊겠어요. 정말 예뻤죠.”
“그리고 살 떨렸어요. 다음에 또 같이 소풍 갈까요? 르뤼에랑 같이.”
“좋아요.”
거기서는 무시무시한 호문쿨루스를 만났더랬지.
지금이야 한주먹감이지만 잔재주를 조금 부리는 수준이었던 노예와 견습마녀가 함께 놀기엔 위험천만한 상대였다.
“긴 추격전 끝에 더는 도망갈 곳이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
“여기서 빛나는 조수님의 대 활약상!”
시우는 온갖 상상력을 총동원해 멋지게 호문쿨루스를 격파했다.
호문쿨루스에서 그노시스의 알을 얻었고, 그 마법은 아직도 알차게 사용 중이다.
“이쯤에서 나 오딜 제머나이의 소신 발언. 솔직히 말할게. 나 그때 조수님한테 본격적으로 반했어.”
“오데트 제머나이도 소신발언. 진짜 진짜 진짜 멋지셨어요.”
제 활약상을 남의 입으로 듣는 건 낯간지러운 일이다.
하지만 그만큼 뿌듯한 일이다.
그런 일들이 있었기에 지금 시우와 쌍둥이의 특별한 관계가 있는 것이니 자랑스러운 훈장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 나쁜 물병자리의 마녀….”
아멜리아를 찾아왔다가 시우와 맞닥뜨린 에아.
시우를 찾아왔다 덩달아 에아의 표적이 된 쌍둥이.
시우는 빈약한 마력수만을 활용해 공적과 맞섰다.
실력 차이는 어마어마했을지언정 시우는 에아의 방심과 의표를 찔러 쌍둥이를 긴급 탈출시키는데 성공했다.
그 대가로 뇌를 파괴당해 굉장히 긴 시간 동안 혼수상태에 들었지만 말이다.
“…조수님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맞아요, 정말 대단해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던 쌍둥이의 텐션이 훅 내려간다.
사실 시우도 눈치채고 있었다.
가장 궁금한 부분과 염려되는 부분이 따로 있을 현시점에서 괜히 과거 이야기를 꺼내던 이유.
쌍둥이는 추억으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얼버무리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시우가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던 때를 떠올리니 더는 의뭉 떨 수 없게 된 것이겠지.
오딜도 오데트도 몸이 들썩인다.
조용히 울고 있는 거라는 건 시우도 알 수 있었다.
“오딜 님, 오데트 님.”
그 당차던 오딜이 불안해하고 있다.
싹싹한 미소가 특기인 오데트도 잔뜩 걱정하고 있다.
“저 정말 대단한 사람 맞습니다.”
“으, 응?”
“갑자기요?”
“솔직히 엄청나지 않나요? 남자 마녀이면서 이렇게까지 강해지고, 매번 위기가 닥칠 때마다 정면 돌파해내잖아요. 21 위계까지는 이제 충분히 해볼 만해요. 이번에 깨달음을 얻어서 더욱 강해질 예정이고요.”
쌍둥이가 아무리 대단하다 말해도 으쓱해 하기는 커녕 언제나 점잖게 쓴웃음을 짓던 시우가 늘어놓는 자화자찬.
그럴 분위기도 아니었다.
“그게 갑자기 왜…?”
오딜은 눈물이 어른거리는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조수님 위험할 때마다 우리가 얼마나 마음 졸였는지 아시면서….”
오데트는 심통마저 난 모양이다.
“그러니까요 아무리 위험이 찾아와도. 설령 예언이라 해도 전 여느 때 같이 이겨낼 겁니다. 절대로 오딜 님과 오데트 님을 남겨둔 채 떠나지 않아요.”
장모님처럼 마법의 초월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숭고한 향상심은 없다.
아멜리아처럼 특별히 우수한 집중력을 지녔다고도 생각지 않는다.
샤론처럼 주변 모두와 어울려 지내는 것도 서툴다.
스승님과 달리 타인을 위해 목숨을 걸고 헌신할 사명도 없다.
도로시처럼 특유의 관록과 카리스마도 없으며, 린네와 달리 생사가 걸린 전투가 끝날 때마다 느끼는 건 몸이 덜덜 떨려오는 두려움이었다
그러므로 시우는 여전히 자신이 소시민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남들보다 조금 운이 좋았을 뿐이다.
“반드시 약속드리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소시민이 영웅이 될 수 있는 순간이 있다면.
그건 사랑하는 연인을 위할 때겠지.
자신조차 믿지 않는 말을 확고히 단언하는 이 순간 말이다.
“전 절대로 죽지 않아요. 예언 따위 아무것도 아닙니다.”
오딜과 오데트에게 그 말은 불안감을 단숨에 날려주는 마법과 같았다.
조수님이라면 정말 그럴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긴 조수님은 약속을 잘 지키니까.”
오딜이 씩 웃었다.
여느 때처럼 자신만만한 미소였다.
“그거 기억나? 내가 오르골 주는 대가로 약속했던 거.”
“물론이죠, 소풍 가는 거랑 그…. 엉덩이에 손가락 넣는 거랑.”
“에잇! 그거 말고! 사랑을 알려달라고 했잖아!”
새삼 부끄러운지 투닥투닥 가슴을 때리는 오딜.
옆에서 오데트가 키득키득 숨죽여 웃었다.
“아무튼 그 약속도 지켰잖아.”
“…….”
“난 조수님 덕에 사랑에 빠진 레이디가 됐는걸.”
갑자기 주위가 확 밝아지는 듯했다.
오딜이 새초롬하게 입가를 손바닥으로 가렸을 뿐인데 말이다.
“그러니까 이번 약속도 지켜 줄 거라고, 난 믿어.”
이마가 거의 부딪칠 정도로 가까워진 오딜과 시우의 얼굴.
시우는 숨을 삼켰다.
정말 예쁘다.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귀여우면서도 예쁠 수 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이미 많은 입맞춤을 나눴음에도 키스 거리에서 눈을 바라볼 때면 두근두근 뛰는 심장.
눈을 감으며 서서히 가까워지는 두 사람의 호흡.
입술 위에 마시멜로처럼 푹신한 입술이 포개졌다.
“얘! 오데트!”
“츄우웁…!”
하지만 입술을 맞댄 상대는 언니의 키스를 멋지게 인터셉트한 오데트였다.
그새 나랜 고양이처럼 몸을 날래서 시우와 오딜 사이에 끼어든 것이다.
난폭하게 혀까지 넣어서 빙빙 돌린 오데트는 언니를 바라보며 으르렁거렸다.
“언니! 둘이서만 추억 이야기 금지야!”
“우리는 둘이서 하나잖아! 네 추억이기도 한 거야!”
“아무튼 금지야!”
“그렇다고 감히 키스를 훔쳐가?”
“오데트 님이 질투하셨나 봐요.”
“조수님도 오데트가 버릇없게 굴면 따끔하게 말 좀 해!”
“언니야말로 혼자 조수님 독점하려고 들지 마!”
잠깐 한눈팔았더니 둘이서 티격태격이다.
그간 연인들 사이에선 똘똘 뭉쳐 공동전선을 펼치는 모습만 봤는데 원래 둘이 참 아웅다웅을 많이 했었지 싶었다.
하지만 문제없다.
“오딜 님, 오데트 님. 그만 싸우고 이리 오셔요.”
팔을 벌리자 쌍둥이는 어미 새의 품을 파고드는 것처럼 시우의 품 안에 쏙 안겼다.
더 좋은 자리를 찾기 위해서인지 싸우는 걸 그만두는 것도 순식간이다.
아무것도 없던 시우를 믿어주고 잘 대해주었던 쌍둥이.
그런 둘을 위해서 오늘 밤 이제껏 갈고 닦았던 모든 테크닉을 발휘하기로 마음먹었다.
“오늘은 제가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푹 재워 드릴게요. 여태 매번 고생해 주셨잖아요.”
“뭐, 그거야 환영인데. 이럴 때는 오늘 밤은 재우지 않겠어, 라고 하는 게 맞지 않아?”
“조수님 저희는 꼭 안 자도 괜찮은데요.”
“두고 보세요.”
보기만해도 푹신푹신해지는 양털 파자마, 원피스 형식으로 이뤄진 잠옷의 단추를 하나하나 끌렀다.
첫눈처럼 뽀얀 살결.
양털 잠옷에 갇혀있던 체온이 멀리서도 뜨끈뜨끈하게 느껴진다.
쌍둥이와의 관계는 언제나 배덕감 넘치는 요소가 많았다.
얼굴이 똑 닮은 쌍둥이 자매를 한 침대에서 품는 것도, 아직 견습마녀라 뒤로만 관계해야 한다는 것도 어쩐지 남자를 흥분시키는 구석이 있다.
하지만 그 흥분을 잠시 내려놓는다.
오늘은 시우를 위한 날이 아니다.
장모님의 말마따나 이건 섹스가 아닌 테라피니 말이다.
키스를 뺏긴 오딜의 뒷목을 부드럽게 움켜쥔 시우는 아주 나긋한 움직임으로 오딜의 목덜미에 고개를 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