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825화 (825/917)

#825

1.

숲길을 벗어나 다시 운전대를 잡은 시우.

괜한 걱정은 시키고 싶지 않았기에 우선은 별일 없는 것으로 해두었다.

애초에 영혼의 마녀의 저택에 들른 것부터가 ‘혹시 모르니 건강검진’이었고, 예언기관을 찾는 게 본래 목적이었으니 말이다.

“시우.”

“네.”

뒷좌석에 앉아있던 아멜리아가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정말로 별일 없나요?”

주위에 별다른 관심이 없어 보이지만 시우가 관련되면 민감해지는 아멜리아.

뭔가 낌새를 눈치챈 모양이다.

“네, 정말요.”

“알겠어요.”

거짓말을 하는 게 양심에 찔리긴 해도 괜한 걱정을 안기는 것보다야 낫다.

하지만 당장 심각한 문제는 아니었다.

가만히 놔둔다고 했을 때 악화할 여지는 차단했으니 말이다.

오히려 왼팔에 감각이 사라졌기에 조기에 검진을 받을 수 있었고 주의를 기울일 수 있게 되었다.

아무 생각도 없이 살았다가 방도도 없이 무의식에게 몸을 빼앗길 뻔했다.

그런 의미에서 아멜리아가 시우를 다시 한 번 구해준 셈이다.

“흐음….”

어차피 연인을 더 늘리지 않을 거라는 선언도 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할 예정이었다.

현재로서도 마녀 사회 상위 1%에 해당하는 무력을 지니고 있으며, 더욱 발전시켜나갈 여지가 있다.

그러나 아직 걱정되는 부분이 많다.

루시 예소드로부터 디아나 예소드에게 시우를 이용한 계승 문제.

마찬가지로 아직 큰 장모님이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는 오딜과 오데트의 계승문제.

또 이상하게 마력 증폭 및 낙인 복제가 일어나지 않는 아멜리아 문제.

이것만 봐도 벌써 생각할 거리가 많아진다.

그레텔이 예견한 한계에 따르면 앞으로 가능한 낙인 복사 횟수는 단 1회.

뭘 골라도 문제다.

이미 작은 장모님께 마법을 받았으니 오딜 오데트가 정식 마녀가 되어도 마법 복사는 일어나지 않는 걸까?

아멜리아가 증폭과 복사가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선 아무래도 그레텔의 협력은 불가피할 듯싶었다.

“그나저나 스승님, 이쪽 길이 맞나요?”

“그렇다네.”

시우의 사정을 듣게 된 스승님은 시종일관 우울한 표정이시다.

일단 다른 연인들에게는 비밀을 지키기로 한 만큼 티를 내지 않으려 노력 중이지만 좀처럼 쉽지 않은 모양이다.

하긴 시우도 스승님이 조건부 시한부 상태라는 말을 듣는다면 억장이 와르르 무너지리라.

“예언기관은 근데 정확히 어떻게 가야 하나요?”

가볍게 분위기를 환기할 겸 물었다.

지프를 타고 이동한 지 3시간이나 지났다.

예언기관과 연결된 ‘회랑’ 중 하나가 이 국립공원에 있다고 들었지만 어디에 있는지는 짐작이 가질 않는다.

어디를 봐도 황량한 풍경과 눈 쌓인 민둥산만이 보였으니 말이다.

“거의 다 왔네, 도착일세.”

얼어붙은 뼈처럼 앙상한 산등성이를 넘자마자 산지에 둘러싸여 있던 풍경이 보인다.

넓은 호수가 자리 잡은 분지.

그 가운데 50채 남짓한 통나무집이 듬성듬성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예언을 연구하는 수비학파 마녀가 모인 마을. 노타리콘이네.”

2.

일행은 지프를 적당한 곳에 세워두고 마을로 걸어 들어갔다.

사실 마을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수준으로 규모가 작다.

제법 크게 지어진 통나무집도 저택이라고 부르기엔 오두막 수준.

군데군데 뻗은 길 역시 자주 밟고 지나간 통에 자연적으로 생긴 짐승의 길과 다름없었다.

다들 정도는 달라도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하는 게 마녀들인데.

이 마을은 수도승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래도 믿을 만큼 수수했고, 고요했다.

주위를 둘러봐도 마녀의 모자 자락 하나 보이지 않는다.

인기척이 느껴지긴 하는데 외부에서 손님이 찾아왔음에도 창문도 열지 않고 집안에 틀어박혀 있는 모습이다.

그 모습에 대한 신기함도 신기함이지만 다른 궁금증도 생겨났다.

안전에 대한 궁금증이다.

조금 멀리 떨어져 사는 영혼의 마녀만 해도 나름대로 불청객에 대한 방비를 해두었다.

근데 노타리콘엔 그런 모습이 조금도 엿보이지 않는다.

이만한 마녀들이 우글우글 찾아왔다면 적잖은 존재감이 느껴질 텐데 얼굴을 내밀기는커녕 안에만 틀어박혀 있다니.

의아해하는 시우를 보고 설명해 준 것은 도로시였다.

“여긴 중립지대거든. 추방자도, 공적도, 게헨나 마녀도 전투가 금지되어 있어.”

“그게 되나요?”

추방자는 그렇다 쳐도 공적이 그런 규칙을 지킬까?

개중에는 마녀 사회에서 금기시하는 견습마녀조차 살해하는 무법자들도 있다.

“이 녀석들이 없으면 가~끔 쓸만한 예언이 떨어져도 해독할 수 없거든.”

“견습마녀에 대한 예언을 받지 못하게 되는 게 크네. 수비학파에 해를 끼친 마녀에겐 묵시의 마녀가 예언을 내려주지 않는다네.”

스승님이 덧붙였다.

말하자면 이 마을은 추방자 및 공적에게도 유용한 마을임과 동시에 어마어마한 패널티로 보호받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공적이라도 언젠가는 계승을 해야 하고 예언이 내려오지 않는다면 영원히 정체되어야 함을 의미하니 말이다.

“이쪽일세.”

이미 한번 견습마녀를 점지받은 엘로아를 제외하곤 다들 초행길.

자연스레 스승님이 앞장서게 되었다.

괜히 걱정된 시우가 손을 꾹 잡자 ‘괜찮네’라고 웃으며 작게 속삭이는 스승님.

거짓말 같지는 않다.

이번 여행에서 나름의 답을 찾으신 모양이라 퍽 다행이었다.

분지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던 호숫가 근처로 다가가자 커다란 신전이 보였다.

기원전 로마를 연상케하는 신전은 윤슬이 반짝이는 새파란 호수에 반쯤 잠겨있다.

이 날씨라면 깡깡 얼어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데 이 근처만 공기가 미적지근하다.

그 덕에 세월의 흔적은 녹색 물이끼로 변하여 굵직한 신전 기둥을 덩굴처럼 휘감고 있었다.

“여기가 회랑일세. 앞으로 나아가게나.”

“혼자요?”

“혼자서 밖에 갈 수 없네.”

스승님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고 호수에 발을 담갔다.

-첨벙!

순식간에 수면 아래로 빨려 들어가는 몸.

조금 당황했다.

워낙 물이 맑고 깨끗한 까닭에 그리 깊어 보이지 않았는데 막상 안에 들어오니 30M는 족히 되는 깊은 수심이었던 것이다.

“오.”

허나 막상 머리 아래까지 푹 잠기고 한참을 가라앉았음에도 호흡에 문제가 없다.

몸이 조금 무겁긴 하지만 혼잣말을 하고 귀로 들을 수 있을 정도다.

마법이 일으키는 조화는 언제나 신비롭기 마련이다.

수면 아래 잠긴 시우는 경외의 편린을 재차 느꼈다.

호수의 바닥에 닿자 신경망처럼 굽이굽이 흐르는 또 하나의 작은 물줄기가 시냇물처럼 졸졸 흐르고 있다.

금빛과 은빛으로 은은히 빛나는 물줄기는 깊어진 수심 속 부족한 광량을 보충해 주었다.

이정표처럼 신전의 가운데로 이어진 그것을 쫓아 어두컴컴한 입구에 한 발짝을 내디뎠다.

“어라?”

몽환적인 꿈의 풍경을 헤매던 것처럼 어느새 새로운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끝을 눈으로 좇을 수 없는 넓은 호수.

그 한가운데 우뚝 솟은 탑.

수평선과 맞닿은 별의 바다.

두꺼운 안개.

금화의 마녀에게 잡혀갔던 당시 보았던 예언기관의 모습 그대로다.

너무 똑같아서 도리어 기분이 나빴다.

“여기가 예언기관….”

그때는 호수 한가운데서 껑충껑충 춤을 추던 묵시의 마녀가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어디 출장이라도 나갔는지 모습에 보이지 않는다.

‘꿈의 계시’까지 줬다면 나름 특별한 손님이라는 거 아니었나?

한참 기다려도 나타날 기색이 없었기에 별수 없었다.

“이제 호수에 들어가면 되나?”

물결치는 호수 아래.

기이한 빛 무리가 긴 실을 자아내며 춤사위를 선보이고 있다.

스승님의 말씀으로는 이 실낱이 암호화된 운명.

허락된 이에게만 인과와 운명을 보여주는 예언 그 자체일 것이다.

-첨벙

쪼그려 앉아 가볍게 손을 담그는 그 순간이었다.

또 한번 시계가 완전히 변했다.

어딘가 눈에 익은 장소는 아르스 마그나 타운의 중심이자 게헨나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

케테르 공작이 머무는 상아탑.

그 주위엔 마녀들이 있다.

평소 케테르의 가르침 한마디를 얻기 위해 숙식하는 수준이 아니다.

게헨나의 모든 마녀를 모아놓은 양 ‘군중’이 되어있는 숫자의 마녀가 모두 상아탑을 바라보고 있다.

숨 죽인 대화 소리가 겹쳐서 피어나는 소란.

그 웅성거림 속엔 환희와 절망, 기대와 긴장이 현기증이 날 것 같은 긴박함을 만들어낸다.

그들은 모두 기다리고 있다.

새로운 왕의 탄생을 기다리고 있다.

곧이어 상아탑의 테라스를 둘러싸고 있던 휘장이 걷힌다.

안대를 벗고 나선 이는 다름 아닌 신시우.

붉은가지를 꼬나쥐고 마녀를 굽어보는 그의 모습에 파도가 일듯 하나둘 무릎을 꿇는다.

“마녀의 왕이시여.”

오만하기로는 이를 데가 없는 마녀들이 고개를 숙이며 제각기 나지막이 내뱉은 말이 하나의 구호처럼 변하였다.

이 예언이 기분 나쁘고 소름 끼치는 예언인 까닭은 하나다.

저 테라스에 선 신시우가 자신이 아닐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다.

이것이 언제 일어날 일이라는 확증은 없다.

하지만 결국 영혼의 마녀의 도움을 받았음에도 무의식을 이겨내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숨이 턱 막히려던 찰나 뒤엉킨 필름을 재생하는 영사기처럼 또 한번 풍경이 뒤바뀌었다.

산들바람이 부는 목가적인 초원.

그림 같은 풍경 안에 포대에 감싸인 아기를 안은 신시우가 있었다.

눈을 제대로 뜨지도 못하고 꼬물거리는 조그마한 생명을 내려보는 시우.

모든 감정이 사라졌던 무의식 속 신시우의 모습이 아니다.

사랑스러워 마지 않다는 듯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었으니 말이다.

아기에겐 이미 ‘그릇’이 내려져 있었다.

그렇다는 건….

“견습마녀?”

어디가 앞이고, 어디가 뒤인지 모를.

언제 일어날 일인지도 알려주지 않는 불친절한 예언은 거기까지였다.

눈을 뜨자 어느새 가까운 거리까지 다가온 한 마녀가 보인다.

고작 10살 남짓한 여자아이의 외형.

꿈에서 시우에게 인사를 올렸던 묵시의 마녀다.

이건 어디까지나 억측이다.

그러나 시우는 그녀가 ‘견습마녀’라는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을 때부터 살아온 존재임을 직감했다.

“기다리고 있었어요.”

묵시의 마녀는 말했다.

웃음소리 같기도, 울음소리 같기도 한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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