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824화 (824/917)

#824

1.

의식이 가라앉는다.

시야에 보이던 영혼의 마녀는 사라지고 실내 풍경도  어느덧 어두컴컴하고 무한한 공간에 이른다.

익숙한 느낌이다.

마녀에게 내재한 심상 풍경.

마법적 업적이 관념적 주조물의 구현된 현현하지 않은 삼계의 첫 관문.

아인(AIN)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연구 중에는 숱하게 드나드는 공간이니 말이다.

안에는 시우가 구축해낸 무수한 구조물이 보였다.

안개처럼 깔린 그림자의 일렁임.

방직기처럼 부지런히 움직이는 거대한 베틀.

기억의 궁전으로 향하는 문과 열쇠.

십자의 제단 위에 형형색색으로 빛나는 원소들.

손에 쥔 병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계약의 문자열.

역장과 함께 떠오른 커다란 만월.

쉴 새 없이 출렁이며 파동을 자아내는 마해의 바다.

입자가속기 만큼이나 거대하고 느릿하게 회전하는 성스러운 고리.

쉼 없이 아름다운 선율을 자아내는 두 조각난 하프.

승천까지 인도하려는 양 하늘로 높게 솟은 계단.

각기 다른 마녀로부터 얻어온 자성마법들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아름답게 서 있다.

그 소우주의 균형은 현묘하게 빛나는 금빛의 프렉탈로부터 나온다.

참 알뜰살뜰하게도 모았다 싶다.

과거와 비교한다면 개수도 개수지만 그 조화의 격이 다르다.

끊임없이 연구하고, 시련을 거치고, 죽을 고비를 넘기며 시우의 아인은 보유 중인 마법 간의 원활한 조화에 성공했다.

서로 다른 자성마법을 연계하여 더욱 높은 경지의 마법을 이끄는 지경까지 도달한 것이다.

분명 그렇게 생각했을진대….

막상 스승님과의 꿈에서 얻은 자신과 비교하니 이 모습도 어딘가 모자라 보인다.

눈이 높아진 것이겠지.

-쿠구구구구궁!

하지만 한가로이 생각에 잠길 여유는 없었다.

별안간의 굉음과 함께 아인의 밑바닥이 출렁이기 시작했다.

다시 말하지만 아인은 관념적, 개념적 공간이며 무한하다.

‘밑바닥’ 따위는 본디 존재하면 안 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시우는 알고 있었다.

자신의 안에 잠들어 있는 무의식, 편의상 흑기사라고 부르는 그놈이 잠들어 있다는 걸.

지난 번 시련에서 놈의 폭주를 잠재운 뒤에는 찾아보려 해도 찾을 수 없던 의식과 무의식의 경계가 밑바닥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

수심이 깊지 않은 해안가에 폭랑이 불어치듯 거칠게 움직이는 검은 공간.

괜히 다가가긴 무섭다.

멀찍이 떨어져 근처에 온 모든 걸 집어삼키려는 양 출렁이는 밑바닥을 바라보았다.

자세히 설명할 수 없지만 직감할 수 있다.

무의식은 끝없이 반전된 경계를 넘어서려 하고 있다.

‘이제 너는 필요 없다.’

‘널 죽이고 그 몸을 차지하겠다.’

시련에서 흑기사가 조우했던 당시 드러냈던 야욕.

그 야욕을 아직도 포기하지 못하고 있는….

-딱!

“정신 차려.”

눈 앞에서 큰 소리가 났다.

어리둥절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영혼의 마녀는 최면을 거는 최면사처럼 시우의 앞에 거듭 손가락을 튕기고 있었다.

“여긴….”

“검사 끝났어.”

“시간이 얼마나 지난 거죠?”

“4시간.”

“그렇게 나요?”

수면내시경을 하고 온 기분이다.

뭔가 얼떨떨하게 의식이 순식간에 흘러간 느낌.

다시 보니 영혼의 마녀는 땀을 뻘뻘 흘리고 있었다.

날카로운 기색이 엿보이던 눈가도 초췌한 기색이다.

하지만 입가는 부드럽게 휘어 마치 재미있는 장난감을 발견한 느낌이었다.

“뭐, 어떻게 된 건가요?”

“놀라워, 너는 정말 놀라운 존재야.”

“무슨 문제가 있던가?”

벌컥 문이 열리며 들어오는 스승님.

4시간 내내 귀를 기울인 채 문밖에서 대기하고 계셨음이 틀림없다.

시우는 옷을 주섬주섬 입으며 이상할 정도로 빙글거리는 그레텔을 보았다.

뭔가 예감이 좋지 않은데….

“결론부터 말할게. 네 왼팔은 ‘침식’ 당했어. 이래서야 어떤 방법을 써도 감각이 돌아오지 않는 게 당연하지. 네 안의 무의식은 네 육체와 정신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어.

조용히 힘을 비축하면서 말이야.

그 결과가 네 왼팔이야. 감각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건 이미 자그마한 틈새를 허락해 버렸다는 것.”

불길한 예감이 스멀스멀 번진다.

영혼의 마녀의 발언에서 즉각 짚이는 부분이 있던 것이다.

“이렇게 거대한 무의식을 표층의식으로 억누를 수 있다니 난 그게 더 신기한걸?”

그레텔은 키득거렸지만 시우는 전혀 웃을 기분이 아니었다.

흑기사가 정신과 육체를 노린다는 사실이야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이 일부 성공을 거두었다는 건 불안함 밖에 낳지 않는다.

“아직 잘 이해가 안 되려나? 그래, 이렇게 설명해줄게.”

그레텔은 색이 다른 두 장의 종이를 꺼내들었다.

한 장은 검은색, 다른 건 흰색이다.

“이건 네 무의식이고, 이건 네 표층의식이야. 지금은 이런 식으로 겹쳐져 있지.

그레텔은 흰 종이가 위로 가도록 두 장의 종이를 포갰다.

흰 종이의 모서리만 살짝 잘라내자 뒤편에 놓인 검은 종이가 슬쩍 엿보인다.

“네 무의식은 강력하지만, 지금은 억눌려 있어. 힘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기껏 뺏어온 것도 왼팔의 감각뿐이야. 그 결과 네 육체의 주인은 지금 나와 대화하는 신시우지.”

“그렇죠. 거기까지는 이해했습니다.”

“그렇다면 무의식이 네 육체를 탈환하기 위해서는 뭐가 필요할까?”

“…흰 종이가 없어지면 되겠네요.”

“맞아, 또 찢어진 부분이 생기거나. 아니면 이런 방법도 있어.”

그레텔이 맞붙은 종이를 뒤집었다.

이번에는 아예 반대였다.

검은 종이가 흰 종이를 전부 가려버렸기에 흰 종이는 보이지도 않았다.

반전된 세계.

반적된 의식.

반전된 아인.

종이가 뒤집히는 그 모습은 무의식이 처음으로 존재를 드러냈던 비앙카 전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종이로 예시를 들어서 그렇지 이렇게 휙 뒤집는 건 쉽지 않아. 네 무의식은 이미 너보다 거대하지만 더더욱 거대한 힘을 쌓아야 할 거야.”

“그렇다면….”

“이건 개인적인 의견인데. 케테르는 널 견습마녀로 삼았어.”

“…짐작은 하고 있었습니다.”

“아니야, 케테르가 원한 건 네가 아니야. 넌 그저 껍데기지. 기이할 정도로 발달한 무의식이 스스로의 재능에 의해 붕괴하기 전까지 재능을 억눌러줄 방파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레텔이 무엇을 보았는지, 무엇을 알기에 저런 말을 하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마녀의 체취를 맡으면 일어나는 정욕.

그 욕망을 따르면 발생하는 낙인의 복제.

몸을 빼앗으려 드는 무의식.

기묘하게 맞아떨어지는 상황만큼은 머리에 들어온다.

“얼마 남지 않았어. 어디 보자…. 앞으로 고작해야 두 종류. 나는 그렇게 보고 있어.”

“두 종류라뇨?”

“네가 얻어온 마법을 얻어 온 방식을 말하는 거야. 두 개의 자성 마법이 추가될 때 쯤되면 검은 종이는 흰 종이를 뒤집을 힘이 생기겠지.”

소름이 돋았다.

고작 둘.

만약 시우가 마법을 강화한다는 목적하에 아무렇게나 마녀를 품었다면.

숱하게 많았던 유혹에 좋아라 하며 넘어갔다면.

하다못해 침대 위에서 리디아 마그누스, 키벨레 페리윙클의 마법을 복사했다면 이미 종이가 뒤집혔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하긴 어쩐지 이상하다 했다.

대가 없는 힘 따윈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저는 어떻게 되는 건가요.”

“나야 모르지.”

“무의식을 제거할 수는 없나요?”

“그게 되겠어?”

태연하게 답하는 그레텔, 앞으로 주의를 기울이게 되었으니 차라리 잘되었다 생각하는 시우.

그와 달리 잔뜩 겁에 질린 채 얼굴이 하얗게 변한 엘로아.

이윽고 새파랗게 질렸던 얼굴은 분노로 돌변했다.

“내 당장 케테르를 만나야겠네.”

“스승님, 진정하세요. 저도 여러 번 찾아가봤지만….”

“지금 진정하게 생겼는가!”

모든 건 케테르의 수작이었다.

사랑하는 제자가 어쩌면 전혀 다른 존재로 변할지도 모른다.

엘로아는 입술을 꾹 문 채 분노와 공포를 억눌렀다.

“티페레트 공작, 우선 진정해 간단한 처치는 해두었어. 신시우, 지금은 감각이 있지?”

그녀의 말을 듣고 나서야 시우는 왼팔에 감각이 돌아왔다는 걸 깨달았다.

손을 쥐었다 펴는 감각까지 확연히 전달된다.

“해결된 건가요?”

“해결이라니. 나한테 그런 용한 재주는 없어. 적어도 악화하지는 않게 했지.”

아리송해하는 시우에게 그레텔이 말했다.

“아인을 들여다봐.”

눈을 감고 아인에 진입하자 변한 점이 보였다.

우선 평상시 인지할 수 없던 밑바닥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가운데 거대한 문이 놓여있다.

그 문은 여러 겹의 사슬로 칭칭 감겨 있었다.

“종이처럼 맞닿은 형태라면 언제건 침식이 일어날지도 몰라. 네 왼팔처럼 말이지. 그래서 두 영혼의 접점을 최소화하고 ‘문’으로 봉쇄한 거야. 내가 해둔 건 임시 조치니까 네 마법을 이용해서 더욱 단단히 걸어 잠그도록 해.”

“감사합니다.”

“하지만 명심해. 문이 있다는 건 그만큼 단속이 편해지지만 반대로 통로가 될 수가 있다는 의미니까.”

그레텔이 얼마나 적당한 조처를 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코하브 백작도 예빈도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단박에 진단하고 치료까지 했다면 이 문제에서 그녀의 솜씨는 믿을 만할 것이다.

“아인의 문을 관리하는 법은 알려줄게. 어차피 게헨나에 들어가게 해준댔으니 얼굴을 자주 볼 수 있겠지.”

“그 약속은 지키겠습니다. 그리고 덕분에 살았네요. 많은 걸 알았습니다.”

진단과 임시 치료가 끝나고 연인들도 다시 모였다.

이곳에 오래 머무를 필요는 없기에 배웅도 없이 요양을 취하겠다는 그레텔을 남겨두고 저택을 나섰다.

아무래도 불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는다.

케테르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마녀.

그런 마녀가 자신에게 수작질했다.

보통의 일이 아니라는 건 직감하고 있다.

예언기관.

마녀의 미래를 보여주고 때때로는 예언을 내린다는 그곳.

묵시의 마녀가 굳이 찾아와 꿈의 계시를 주었다면 유의미한 미래를 보여주기 위함일 것이다.

시우와 엘로아는 아무렇지 않은 척 심란한 기색을 숨기며 두 번째 목적지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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