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820화 (820/917)

#820

1.

금빛 마법의 분류가 땅을 뒤흔든다.

응축되고 응축된 힘은 항거할 수 없는 힘의 격류나 다름없다.

시우가 팔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반박자 늦게 자취를 따르며 거대한 파괴를 이룩하고 있었다.

본디 이 정도의 마력을 다루려면 그만한 위험을 담보해야 한다.

마법이란 철저한 계산하에 성립하는 학문인 까닭이다.

큰 힘을 다루면 다룰수록 중간 절차를 생략하거나 뭉뚱그려 넘어갈 경우, 그 대가가 불발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운이 좋다면 마력 회로에 영구적인 장애를 입을 것이고, 보통의 경우라면 죽겠지.

그러나 꿈의 효과는 탁월했다.

완벽한 계산이 없어도, 과부하가 걸려도, 마법식의 구조에 모순점이 생겨도 그럭저럭 어떻게든 된다.

10 위계는 마력에 색이 부여되는 경지.

15 위계는 본능과 자성마법이 합일되는 경지.

20 위계는 세계에 흐르는 섭리를 비틀어 자연법칙과 당위성을 무시하는 경지.

그리고 시우는 그것을 초월한 힘이 손에 들려있음을 깨달았다.

경이와 신비를 제한 없이 구현하는 경지.

세계의 법칙을 수정해 활용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새로운 법칙으로 거듭나는 경지.

25위계에 도달한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자유롭다.

무아지경에 도달한 사고는 더는 규칙과 공식에 얽매이지 않았다.

마법은 현상을 이끄는 수단에 불과하다.

지금껏 사용해오던 마법은 수레를 말 앞에 묶어두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런 당연한 사실을 어째서 떠올리지 못했던 걸까?

끝없이 뻗은 지평 위로 한계를 규정짓던 건 자신이다.

마법의 가능성은 이토록 무한하고 드넓은 것을.

뇌리를 관통하는 백색의 전율이, 지혜의 승화가 입꼬리를 들어 올린다.

“하압!”

하지만 엘로아는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쉴 새 없이 넘실거리는 금빛 마력의 파도 사이를 교묘한 보법으로 피해낸다.

연이어 휘둘러지는 거력의 창을 검날 위로 미끄러뜨리듯 받아낸다.

그러면서도 좌우로 번들거리는 눈동자는 사방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놓치지 않고 감지한다.

이 힘은 분명 비현실적이다.

적어도 기존 엘로아가 알던 신시우와는 격이 달랐다.

처음엔 속삭임의 마녀가 넘겨준 힘이라고 단정 지었다.

릴리스의 수완은 그 악명을 덮고도 남을 만큼 빼어나 접촉한 마녀의 경지를 한참 앞으로 이끌어주니 말이다.

이 힘이 과연 릴리스가 건네준 것일까?

릴리스는 악이다.

악마가 건네는 사과처럼 겉은 번지르르하나 속은 벌레가 파먹은 비틀림의 덩어리다.

그러나 시우가 시전 중인 마법엔 그런 뒤틀림이 없었다.

사방으로 넘실거리는 금빛의 마력과 그 사이를 간헐적으로 가로지르는 프렉탈 형태의 뇌전.

아름답다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현묘함은 릴리스와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오래 생각에 잠길 여유는 없었다.

태생적으로 마력량이 적은 엘로아와 기이한 수단으로 수십 배의 마력을 증폭한 시우.

두 사람이 구사하는 마력의 차이는 어리짐작으로 잡아도 일백 배에 달한다.

그는 이미 초대형 호문쿨루스에 준하는 마력을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마녀 간의 전투는 마력의 양으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엘로아가 시우를 가르침에 있어 누누이 강조했듯 전투 내내 상대보다 강할 필요는 없다.

단 한 순간 압축된 힘으로 적의 역량을 넘어설 수 있다면 격차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과 같다.

-쾅!

진각을 밟은 엘로아의 몸이 폭발적으로 쏘아져 시우의 품 안으로 달려간다.

거대한 힘은 그만큼 정교함이 부족하다.

지근거리에서 대치 상태를 만든다면 고출력의 마법을 난사할 수 없게 된다.

폭발 범위에 자기 자신조차 휘말리게 될 테니 말이다.

또한 창과 검이 근접전에 돌입했을 때 구조적 특성상 검이 우위를 점할 수밖에 없다.

-챙! 채챙!

고속으로 부딪치는 창날과 검날.

창대를 타고 자석처럼 달라붙는 검이 소드파이트를 걸어왔다.

시우가 창을 놓고 팔을 뻗는다면 엘로아를 꽉 끌어안을 수 있을 법한 초근접전이다.

거듭 격돌하는 서로 다른 마력이 불똥처럼 잔재를 떨친다.

몇 번이고 엘로아를 떼어내려 했으나 무의미한 일이었다.

시우의 기술이 일취월장하긴 했으나 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실전에서 다져진 엘로아를 넘기엔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한번 거리를 좁힌 엘로아는 팔뚝을 문 군견처럼 집요하게 간극을 물고 늘어졌다.

잡았다.

엘로아는 뱀의 싸움처럼 몸을 꼬는 창과 검의 연무 속에서 빈틈을 발견했다.

-팟!

곧장 시우의 무릎을 박차고 왈츠를 추듯 핑그르르 회전하는 엘로아의 몸.

갑자기 하체에 실린 충격에 시우의 중심이 흐트러진다.

그 추진력을 이용해 좁디좁은 간격에서 팽이처럼 회전한 엘로아는 그 짧은 찰나에 세 번의 촌경을 찔러넣었다.

다부지게 움켜쥔 정권이 노리는 곳은 벌어진 몸의 중앙선에 주르륵 늘어선 약점.

명치.

대횡.

기해.

단단한 갑옷을 맹신하고 타격을 흘러내려 해도 의미 없다.

한점에 힘을 몰아 실은 엘로아의 일권은 단 일격으로 전투의지와 관계없이 의식을 앗아간다.

-쾅!

새하얗게 터지는 소닉붐과 충격파.

연격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 차례의 굉음으로 화한 재빠른 타격.

엘로아는 경악했다.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기묘한 일이 눈앞에서 펼쳐졌기 때문이다.

분명 세 번의 공격을 꽂아 넣었다.

그러나 평평한 갑옷 중앙에 존재할 리 없는 굴곡 면이 마치 도탄 하듯 충격을 흘려냈다.

정권을 피할 수 없음을 직감한 시우는 왜곡장을 응축하여 갑옷에 장갑처럼 전개.

본디 체내로 향했어야 할 충격량을 비틀어 ‘왜곡’한 것이다.

“이런 것도 되네요.”

득의양양하게 웃음을 짓는 시우.

전투 중이었지만 엘로아도 작게 미소를 짓고 말았다.

제자의 성장은 언제나 스승의 기쁨이다.

기특하고 대견하여 무심코 칭찬이 나왔다.

“장하네.”

대화는 길지 않았다.

엘로아는 이 정도로 포기할 생각이 없었고, 시우도 그 점을 알고 있었다.

“뭣?”

숨 돌릴 시간도 없이 이어진 초근접전에서 엘로아는 두 번째 경악을 맞보았다.

-쇄액!

분명 지근거리에서 검을 부딪치고 있었는데 아무런 전조 없이 창끝이 턱 아래서 휘듯이 찔러온다.

물리법칙이 아니라 공간 그 자체를 무시한 듯한 불가능한 일격.

의식 영역 바깥에 있던 공격을 회피한 건 엘로아가 초인적인 반사신경을 지녔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쇄액! 쇅! 쇄액!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다시 한번 엘로아의 품으로 찔러오는 붉은가지.

엘로아는 그제야 조금 전 시우의 공격이 어떤 식으로 이뤄졌는지 파악할 수 있었다.

창이 휜다.

굴절된 렌즈로 관측한 것처럼 위로 찔러낸 창이 기묘한 굴곡을 그리며 엘로아를 향한다.

전후좌우 어느 곳에서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는 창격은 제아무리 엘로아라도 대응하기 곤란했다.

“흡!”

거칠게 흩뿌리듯 휘두른 자신의 검마저 기묘하게 비틀려 애먼 허공을 가로지르는 걸 봤을 때 엘로아는 헛웃음을 흘렸다.

언제나 엘로아에게 승리를 안겨주던 간격이 필승의 공간이 아니게 되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즉시 엘로아는 거리를 과감히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도피에 지나지 않는다.

그녀가 계속 거리를 유지하려던 것도 그런 이유 아니던가?

엘로아가 준 거리는 시우가 대규모 술식을 구사할 수 있는 여유가 되었다.

-키이이이이잉!

엘로아가 멀어지길 기다렸다는 듯 머리 위로 떠오른 세 개의 고리가 맹렬한 회전을 거듭하며 방대한 양의 마력을 쏟아낸다.

비현실적으로 순수하고 방대한 마력이 붉은가지를 타고 찌르르 흘렀다.

붉은가지가 허공을 찍는다.

아무것도 없는 공중 한가운데 선연하게 찍힌 하나의 점.

변화는 거기서부터 시작되었다.

-고오오오오

처음에는 손바닥만 한 와류가 생겨났다.

마녀의 해석에 따라 성질이 뒤바뀌는 마력이지만 한 가지 절대적인 법칙이 있다.

고농도로 집적된 마력은 다른 마력을 끌어당긴다.

마녀가 낙인을 통해 주위의 마력을 ‘자기화’하는 방법도 이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그리고 시우는 왜곡을 통해 그 법칙을 극대화하고 과장했다.

표면적이 0인 특이점은 무한한 인력으로 주위의 마력을 끌어당기며 수축한다.

한점을 중심으로 부드럽게 감기는 나선이 주위의 마력을 게걸스럽게 먹어치운다.

마력을 먹이 삼아 먹어치운 소용돌이는 규모를 점점 넓히며 기하급수적으로 강력한 인력을 발한다.

-기이이이이익!

본디 존재할 수 없을 정도로 응축된 마력에 공간 자체가 기이하게 비틀리며 단말마를 질렀다.

지금의 시우라도 붙들고 있는 게 한계지만, 그것만으로 어지간한 마녀를 무력화할 수 있는 마법이었다.

이만한 인력에 휩쓸린다면 어떤 마법도 중도에 헝클어질 테니 말이다.

——————!!!!

그 거대한 힘의 운동에 휘말린 대기가 함께 대류했다.

진눈깨비를 흩뿌리던 두꺼운 적란운이 휘감기며 하늘에 거대한 소용돌이를 남긴다.

엘로아는 그 경이로운 모습을 보며 아마도 마지막이 될 격돌을 준비했다.

시우가 강해지는 동안 엘로아라고 손 놓고 있지 않았다.

여러 위기에 처하는 그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더더욱 강해지기로 수백번을 다짐한 것이다.

그렇게 연습한 결과물을 설마하니 그에게 최초로 선보이게 될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까드드득!

두 손으로 움켜쥔 검.

조용히 호흡을 고르며 심상에 한 자루의 검을 세운다.

계약검 측면의 열두 개의 룬이 환하게 빛나며 단 하나의 계약으로 가득찬다.

엘로아의 자성마법, 그 전신(前身)은 언령(言霊).

인과를 초월해 다른 모든 것보다 우선시하는 계약을 세계와 맺는 것이다.

그렇게 맺어진 계약은 반드시 달성되려는 성질을 지닌다.

엘로아의 입술이 달싹였다.

“나는, 너를, 벨 것이다.”

어두운 밤하늘을 가로지르며 땅까지 이어지는 빛의 기둥.

중후하게 사위로 퍼지는 마력의 떨림은 격류나 다름없는 황금빛 폭풍 속에서도 한점 흐트러짐 없이 고고하다.

달려드는 것이 두려울 정도로 거대한 소용돌이가 엘로아의 시야를 가로막는다.

그럼에도 엘로아의 선택은 언제나 정면돌파였다.

무겁게 땅을 박찬 엘로아의 신형이 길게 쏘아지고.

흐릿하게 번진 일격이 나선과 교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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