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마녀의도시-819화 (819/917)

#819

1.

사실 엘로아의 마법은 그다지 테크니컬한 요소가 없었다.

같은 23위계인 리디아처럼 정체불명의 기술을 사용하지 않는다.

아멜리아처럼 입자와 파동을 활용한 광역기를 구사하지도, 르뤼에처럼 거대한 해일을 일으키지도 않는다.

사용하는 것이라고는 계약을 이용한 영체 강화, 발경의 묘리, 초월지, 마법의 영역에 다다른 검술 정도.

순리를 거스르며 온갖 신묘한 마법을 부려대는 대마녀들에 비하면 ‘별로 특별할 것 없는데?’라는 감상이 드는 게 정상이다.

전투스타일 역시 지극히 단순했다.

‘접근한다 벤다’라는 오직 두 가지 시퀀스로 이뤄져 있다.

멋모르는 공적이라면 ‘해볼 만한데?’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원 패턴이란 그만큼 파훼법을 찾기 용이함을 의미하니 말이다.

실제로도 많은 공적이 비슷한 생각을 하며 엘로아와 대적했었다.

그리고 대적한 즉시 그건 섣부른 착각이었음을 깨닫는다.

그 착각에 단 한 단어를 끼워 넣으면 곧 그들이 직면한 상황을 설명할 수 있다.

엘로아는 ‘반드시’ 접근한다.

또한 ‘반드시’ 벤다.

자잘한 마법은 항마의 계약으로 둘둘 말린 몸으로 육탄 돌파한다.

치명상을 남길 큼지막한 마법은 검으로 베어낸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필사적으로 거리를 벌린다해도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다가온다.

그리고 엘로아의 사정권 안에 들었다면 거기서 게임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

방어도, 저지도, 회피도 의미 없는 맹공이 시작될 테니까.

이것이 누구도 파훼하지 못한 엘로아 티페레트의 원패턴.

즉, 최강의 원패턴이다.

수백번의 목숨을 건 혈투와 수천 번의 목숨을 건 토벌.

그 중 단 한 차례도 패배하지 않았기에 ‘계약의 마녀’라는 이명과 별개로 붙여진 칭호.

무신(武神).

비좁은 나선 계단에 엘로아와 마주 선 시우는 대치에서부터 격을 느꼈다.

전장에 설 땐 언제나 그녀의 등을 보고 있었기에 느껴지던 든든함이 위압감으로 돌변한다.

“계약한다.”

-우웅!

계약검의 측면에 빛났다가 사라지는 8개의 문자.

수련의 일환으로 삼던 대련 때와는 차원이 다른 출력에 존재감이 두껍게 부푼다.

작은 체구의 엘로아가 갑자기 거인이 되어버린 것 같다.

“다치지 않게 조심하게.”

분홍빛 마력 반사광이 서늘하게 휘청인다 싶었을 때 왼쪽에서 비스듬하게 뻗어오는 검.

창으로 중단을 막으며 버텨 섰다.

아니, 버티려 했다.

그러나.

-쾅!

“크윽!”

마력과 마력의 격돌.

두 사람의 힘은 이미 초인의 경지다.

고작 일합이 자아낸 충격파에 첨탑 계단이 무너지며 화강암으로 이뤄진 돌벽이 쿠키처럼 바스러진다.

우직하게 밀고 들어오는 힘에 뼈마디와 근육이 비명을 지르며 말한다.

더 버티면 부러질 것이라고.

-쿠구구구궁!

무너지는 첨탑의 잔해를 해치며 뛰어나온 시우는 즉시 그림자의 날개를 펼쳤다.

추진력으로 전환된 그림자의 입자를 쇳가루처럼 흩뿌리며 라벤더 군락 위로 비행했다.

원래부터 알고 있었다.

스승님을 상대로 근접전을 벌였다간 답이 없다.

충분히 거리를 벌렸다고 생각한 시우의 눈에 보이는 건 꽤 무시무시한 광경이었다.

-투쾅! 투쾅!

하늘을 박차며 달려오는 스승님.

그녀는 문자 그대로 하늘을 밟으며 달리고 있었다.

시우처럼 비행 마법이라던가, 하다못해 마력으로 얇은 판을 만들어내 그걸 박차는 게 아니다.

강화된 각력으로, 순수한 물리력으로 대기를 폭발시키며 달린다.

발끝이 공기를 때릴 때마다 폭약이 터진 것처럼 굉음이 터지며 새하얀 압력파가 터져 나왔다.

뒤늦게 그녀의 자취를 좇는 원추형의 충격파가 숲을 헤집고 있었다.

그 속도는 명백히 시우의 후퇴보다 빠르다.

“…말이 안되긴 하네.”

모골이 송연해졌다.

한참 앞서 도주를 시작했음에도 머잖아 따라잡힐 것 같다.

하지만 시우라고 놀고만 있던 건 아니다.

도주하며 의도적으로 흩뿌려두었던 그림자의 입자.

숲 속에 명령을 기다리던 입자들이 일제히 리본의 형상으로 변화한다.

본디 리본은 시우의 몸과 맞닿아야만 조작이 가능했지만, 시우는 거기서 한 단계를 더 발전시켰다.

역장을 활용해 ‘마법진’을 설치해둔다.

이런 방식이라면 외부에 있는 리본도 조작이 가능하다.

-촤아아악!

보랏빛 숲의 물결 사이로 식충생물처럼 솟구치는 리본 가닥들.

그것은 거대한 손아귀와 같이 질주 중인 엘로아에게 향했다.

아무리 엘로아라도 처녀의 베틀에서 직조된 리본의 물리력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한 번이라도 휘말려 속도가 줄어든다면 순차적으로 수천 가닥의 리본이 그녀를 옥죌 것이다.

-우우웅!

그러나.

엘로아의 발치에서 분홍빛 마력이 재차 폭발한다.

설마설마한 재가속.

시우조차 눈으로 제대로 식별할 수 없는 속도에 도달한 그녀는 불새처럼 창공으로 치솟아 리본의 추적을 가볍게 따돌렸다.

“하아아압!”

저렇게 대기권을 돌파하려는 걸까? 싶었을 때 곧장 유성처럼 참격이 내리꽂힌다.

좌표이동식까진 시간이 맞지 않는다.

가까스로 막아냈지만, 충격을 전부 줄이는 건 불가능했다.

빠르게 지면에 처박히는 건 피할 수 없었다.

먼지 대신 사뿐사뿐 흩날리는 보라색 꽃잎.

겨우 착지한 시우의 앞에 엘로아가 가뿐히 내려선다.

“도망만 쳐서는 내게 이길 수 없네.”

“그러게 말입니다.”

시우의 눈은 엘로아의 검에 빛나는 9번째 계약을 확인했다.

두 사람의 검과 창대가 맞부딪칠 때 체결된 것이다.

자체적으로 달성되려는 성질을 지닌 계약.

그것이 엘로아의 자성마법.

그 계약이 상호 간에 체결된다면 시우도 계약의 내용을 알 수 있다.

이번에 강제된 계약은 ‘피아의 부력과 양력을 상실한다’라는 계약이다.

아까처럼 자유로이 비행할 수도 없고, 그렇다면 더더욱 엘로아에게 거리를 벌리는 일은 불가능해졌다.

“스승님은 정말 강하시네요.”

이마저도 전력을 다하는 게 아니라니.

시우의 안전을 고려해 계약검에 솜처럼 두터운 마력을 둘러 충격을 감쇄한 것이라니.

그간의 대련으로 전투 스타일이 익숙해졌다 한들 아주 조금의 승산도 장담할 수 없는 상대였다.

“…그러니 무의미한 저항은 그만두고 브로치를 내놓게.”

설득도 불가능하다.

엘로아는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현실이야 어쨌건 적어도 그녀의 머릿속에서 이 전투는 릴리스의 꾐에 넘어간 시우를 위한 것.

다소 아픈 꼴을 보게 해서라도 브로치를 빼앗고 사랑하는 제자를 ‘제정신’으로 만들기 위해 힘쓸 게 분명하다.

“그건 안됩니다.”

“시우….”

“저는 죽었다 깨어나도 스승님을 이길 수 없겠죠.”

“알고 있으면서도 왜 말을 듣지 않는 건가?”

여전히 전투태세를 가다듬는 시우를 보자 엘로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무런 대책 없이 이곳까지 온 건 아니다.

연꽃으로부터 최대한 멀리 떨어지는 게 목적이었다.

엘로아의 꿈의 중추인 연꽃에서 싸웠다간 간섭을 받아버릴 테니 말이다.

시우는 최근 새로운 영역에 발을 뻗고 있었다.

리디아의 금화와 린네의 흑백세계가 그랬듯 ‘관념’을 다루는 마법이다.

더 자세히는 붉은가지의 원래 능력인 ‘왜곡’을 마법에 녹여내는 것인데, 현재까지는 충격을 흘려보내는 수준의 저차원적인 활용이외엔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을 조작하는 여타 마법과 달리 관념의 활용이란 더럽게 모호하며 위험했기 때문이다.

잠깐의 실수나 방심으로 치명적인 자상을 입힐 가능성도 다분했고 말이다.

“정정하겠습니다. 현실에서의 저는 스승님을 이기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이곳은 현실이 아니다.

소망과 바람을 실현해주는 몽환과 관념의 공간이다.

현실에선 실현 불가능한 ‘이상적인 자신’을 그릴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꿈이라면 얘기가 다르죠.”

-키이이이잉!

시우의 머리 위로 고리가 떠올랐다.

새카만 고리 위로 떠오르는 선명한 금빛의 프렉탈 문양.

일전 린네와의 전투에서 ‘천사의 고리’에 ‘거듭 증폭’을 엮어 만들어낸 새로운 자성마법이다.

폭발적으로 솟구친 마법은 그 자체로 주위에 거센 폭풍을 만든다.

그 자체로는 어마어마한 성능을 지녔지만 분에 넘치는 힘은 언제나 한계를 지니는 법이다.

방대한 마력을 사용할 수 있게 해주는 대신 굉장한 코스트를 요구하는 시간제한형 필살기.

기껏해야 5초 정도가 지나면 전신의 마력 회로가 용광로처럼 달아올라 끔찍한 격통과 후폭풍에 시달린다.

그러나.

“피어라.”

왜곡한다.

견고하고 촘촘한 설정 위에 놓인 현실 세계와 달리, 물렁물렁한 점토 같은 꿈의 세계를 조작한다.

-키이이이이잉!

회전수가 임계점에 도달해 금방이라도 궤도에서 이탈해버릴 것 같던 고리에 변형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고속으로 운동하는 물체의 흐릿한 잔영처럼 흔들리더니 확실한 변화를 갖추었다.

하나의 동심원을 지닌 채 하나의 축으로.

마치 맞물려 돌아가는 정교한 기계장치처럼 천천히 회전하는 세 개의 고리.

기하학적인 형태의 톱니가 그 사이에서 안정을 도모한다.

이는 본디 시우가 구상했으나 현실로 옮기지 못했던 상상 속의 마법이다.

몇 단계나 되는 논리적 오류를 ‘왜곡’해야 가능한 것인데 현재 시우의 능력으론 그게 불가능했던 까닭이다.

하지만 지금은 얘기가 다르다.

시우는 떠올릴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마법을,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실체화했다.

마력이, 힘이 끝을 모르고 솟구친다.

타고난 마력 부자 르뤼에조차 이만한 힘을 계속 붙들고 있는 건 불가능하리라.

천체의 움직임을 관장하는 힘처럼 거대한 에너지가 삐꺽거리며 둔중한 초저주파를 내뿜는다.

“그대는 도대체….”

반면 스승님은 이 세계를 현실이라 자각하고 있다.

꿈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이런 눈속임 마술은 불가능하다.

그녀가 이것을 꿈이라 자각하게 하기 위해서 시우는 그저 보여주면 되는 것이다.

절대로 일어나지 못할 일이 일어나는 현실,

예를 들어 시우가 엘로아를 정면으로 압도하는 현실을 말이다.

꿈과 현실이 맞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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